9.
D18.
단테는 에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벌써 느지막한 오후가 되어있었고,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적당히 햇빛이 비치는 거리도,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잎들도 다 평소와 같았다.
이 안에서 평소답지 않은 것은 그의 뒤를 따라오는 에이뿐이었다.
또 길을 걸어오는데도 잡지 않은 손도 그러하고.
공연히 빈손을 쥐었다 편 단테는 머뭇거리다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작은 존재감이, 왜 이토록 그를 긴장하게 만드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여기가 저랑 당신의 집이라고요?”
에이는 집 안 풍경을 하나하나 신중하게 둘러보는 듯했다. 창가에 놓인 꽃병을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보기도 하고, 소파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구경하기도 했다. 마치 어딘가의 전시회라도 온 사람 같았다.
“왜? 뭔가 기억나는 거라도 있어?”
“아뇨. 그냥 여기서라도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구나 싶어서.”
“…….”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시려나? 예전에 제가 살던 곳에는 사람들이 집을 갖는 걸 인생의 목표처럼 여겼는데…….”
“아니, 알고 있어. 예전에 설명해준 적이 있으니까.”
에이는 잠시 고개를 기울였지만, 곧 순순히 수긍했다. ‘기억을 잃은 것 같다’라는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런 에이를 보고 계속 무언가를 망설이던 단테는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아까부터 존댓말을 써?”
“네?”
“너랑 나는 결혼한 사이라고 말했잖아. 당연히 말 놓아도 돼.”
거리를 두듯이 존댓말을 쓰는 에이를 보며, 단테는 계속 이유 모를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에이는 지금 기억을 잃었고, 낯선 사람인 자신과 거리를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에이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말을 놓았던 그는 이 상황이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말을 높이는 에이가 있는 상황이.
단테의 말에 에이는 딱 잘라 대답했다.
“아뇨, 지금 제 입장에서는 처음 뵙는 분인데 그건 좀.”
“…….”
“말을 놓는 건 좀 익숙해지면 알아서 할게요.”
“왜, 왜?”
“네?”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단테는 바보같이 말을 더듬었다. 그때 그의 머릿속은 맹렬히 에이와의 첫 만남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분명 나랑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반말을 쓴다고 하니까 너도 따라 쓴다고 했단 말이야. 지금은 반말을 못 할 정도로 거리감을 느끼는 거야?”
“음…….”
“……정말?”
에이의 반응을 보고 단테는 울고 싶은 기분이 됐다. 난데없이 결혼했다고 한 것부터 문제였나? 좀 다르게 소개했으면 에이가 거리감을 느끼는 일이 없었을까?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그를 피하는 에이는 보고 싶지 않은데…….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에이가 입을 열었다.
“아뇨, 거리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오히려?”
“흠. 이건 아직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고. 하여튼, 걱정하실만한 건 없어요. 만약에 제가 첫 만남부터 반말을 썼다면, 그건…….”
에이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그쪽이 먼저 저한테 말을 놓으셨었다고 했죠?”
“어? 응.”
“그 후에 저도 반말을 쓴 거면, 반말을 듣는 제 기분이 별로니까 그대로 돌려주겠다는 심보였을 것 같은데요.”
“…….”
“…….”
“귀엽다.”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단테는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자연스럽게 넘기려고 시도했지만, 에이는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았다. 방금까지 적당히 떨어져 있던 거리가 무색할 정도로 그에게 바짝 다가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잠깐만, 에이.”
“혹시 욕이라도 하셨어요? 흠, 저희가 그렇게 사이가 좋지는 않았나 보네요.”
“욕이라니, 그런 거 아니야!”
“그럼 뭔데요?”
“…….”
“알려주셔야 저도 오해를 안 할 텐데.”
“…….”
단테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를 빤히 보는 에이의 시선은 점점 짙어져만 갔다.
그 무언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단테가 결국 한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면서 입을 열었다.
“귀…….”
“귀?”
“귀여워서…….”
“…….”
그렇게 말하자, 에이가 몸을 물려서 슬쩍 뒤로 물러났다.
“……왜 멀어져?”
“아, 죄송해요. 평생 귀엽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보니 약간 소름이 돋아서.”
“…….”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말은 취소할게요.”
“그래…….”
늘 그랬지만, 지금의 에이는 더욱더 단테를 당황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단테는 자꾸만 휘말리는 자신을 반쯤 포기한 채로 에이를 소파에 앉혔다.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자신은 그 맞은편에 자리를 잡은 채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녀에게 편하게 있으라고 하고 집에 적응할 시간을 좀 주고 싶었지만, 그들은 아직 마저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있었다.
“일단, 에이. 지금 네가 기억을 잃은 게 마샤가 마탑에서 받아온 과자를 먹어서라는 건 설명해줬지?”
“네.”
“이건 희망 사항에 가깝지만……. 음식을 이용해서 발현되는 마법은 지속 시간이 그리 길지 않거든. 네 상태도 아마 그럴 거야.”
말 그대로 확신이 아닌 희망 사항에 가까운 말이었다. 다른 경우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따위의 희망 사항.
에이의 상태가 ‘마법식이 잘못된 결과’가 아니라 ‘마법은 제대로 발현됐지만, 그에 따라오는 부작용’에 가깝다면, 지금의 상태가 더 길게 지속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하지만 마법의 한계를 잘 아는 단테는 단언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으리라고.
에이가 기억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마샤보다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단테가 걱정하고 있는 것은 에이가 다시 기억을 되찾을 수 있는가가 아니었다. 기억을 잃은 에이가 겪을지도 모르는 두통, 그를 포함한 여러 통증이었다.
그리고 에이가 느끼고 있을 것들. 혼란과 두려움과 같이, 기억이 잘려나간 이에게 마땅히 찾아오는 감정들.
겉으로 보기에는 언제나처럼 평온해 보이지만, 지금 에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일단…… 차후를 지켜보자. 기억은 하나씩 차근차근 돌아올 수도 있고, 갑자기 돌아올 수도 있어. 하지만 돌아올 거라는 건 확신해.”
“흠. 지금 당장 기억을 되돌릴 만한 방법은 없는 건가요?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던가?”
“고전적인 방법?”
에이가 뜬금없는 소리를 할 때마다 그러했듯이, 단테는 문득 불안해졌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어딘가에 머리를 박거나 뒤통수를 얻어맞거나, 그런 무식한 방법 말이에요. 물론 저는 아픈 게 싫어서 스스로 머리를 박지는 않을 테지만.”
“……네가 아플 만한 일은 절대 시도도 안 할 거야.”
“저도 알아요. 그러니까 그렇게 정색하지는 마시고.”
에이가 흠, 하는 소리를 내며 소파 등받이에 편하게 몸을 기댔다.
“저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는 답답하니, 최대한 빨리 기억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기억이 되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아니라.”
“일단 내가 방법을 찾아보기는 할 거야. 네가 먹었다던 과자를 조사해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그리고 덤으로 그 과자를 만든 놈도 털어볼 것이다. 미완성인 마법을 다시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탈탈.
단테의 머릿속에서 무슨 살벌한 생각들이 오가는지 모르는 에이는 태평하리만치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럼 이만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응?”
“제가 먹은 과자를 조사하셔야 한다면서요. 그럼 이렇게 있을 시간도 부족하실 텐데.”
혹시 이거 쫓아내는 건가?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단테는 이어지는 말로 확신했다. 아, 쫓아내는 게 맞구나.
“무엇보다 제가 지금 혼자 있고 싶어서요.”
“……방에 들어가서 눈에 안 띄면 안 돼? 아무 소리도 안 내고 얌전히 있을게.”
“그래도 한집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안 돼요.”
“에이…….”
단테는 부러 울먹거리는 소리를 내보았지만, 평소의 에이가 아닌 지금의 에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울먹거림을 듣고 더 단호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다.
“저한테 그러셔도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없어요. 제가 부탁을 하더라도 가실지 마실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거잖아요.”
“…….”
“표정이 왜 그래요?”
“아니, 새삼 네가 나한테 얼마나 너그러웠는지를 생각하고 있었어.”
에이는 자신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언제나 단테가 더 양보한다고 생각했지만, 단테는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에이가 자신을 사랑하면서 얼마나 많이 태도를 바꿨는지를.
물론 지금의 에이도 귀여웠지만, 아니,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당하는 건 오랜만이라 새로웠지만……. 서운한 감정은 또 별개이지 않은가.
이렇게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으면, 한숨과 함께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머리 위로 닿던 손길이 없었다. 단테는 그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앞으로 이 아쉬움을 몇 번이고 견뎌야 한다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질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