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 (155/181)

8.

우연과 우연이 겹친 날이었다.

“이거 받아 갈래? 무슨…… 머리카락 색깔을 바꿔주는 과자래. 내 후배가 나눠줬어!”

“와, 진짜?”

캐서린을 보러 간 마샤가, 마탑의 마법사 중 한 명이 개발했다던 과자를 덥석 받아오고.

“잠깐만 앉아있어, 에이! 금방 마실 거 가져올게!”

“응, 알았어.”

마샤가 그 과자를 자신의 집 탁자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아두고.

“너 온다길래 특별히 준비했지~ 여기 레몬차 가져왔……. ……?”

평소라면 모르는 음식 같은 건 함부로 집어 먹지 않을 에이가, 마샤 집에 있다는 이유로 방심하고 그 과자를 뜯어 먹은 날.

부작용인지 뭔지, 에이는 그대로 소파 위에 쓰러졌다. 공황 상태에 빠진 마샤는 곧바로 통신구를 이용해 단테를 불렀고, 단테가 도착하자마자 에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래, 이렇게 ‘잠에서 깨어났다’로 끝날 사건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에이! 괜찮아? 정신이 좀 들어?”

눈을 뜬 에이가 던진 한마디 때문에, 이 일은 한동안 여러 명에게 충격을 안겨주게 되었다.

“……누구세요?”

* * *

D17.

단테는 순간 온몸을 굳혔다가, 마샤의 얼굴을 확인하고 자신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마샤의 눈과 입이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커다래진 탓이었다.

“뭐, 뭐라고? 잠깐만, 에이!”

마샤는 다급히 소파 근처에 아무렇게나 앉았다. 그 상태로 얼굴을 바짝 들이대자, 에이가 부담스럽다는 듯 고개를 뒤로 물렸다.

“나 못 알아보겠어? 잠, 잠깐 잘못 보고 누구냐고 물은 거지?”

“아뇨……. 정말 누구신지 모르겠는데요. 실례지만 좀 떨어져 주실래요?”

“……!”

에이의 말에 마샤는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그대로 얼어붙었고, 그 모습은 흡사 박물관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동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에이에게 마샤의 모습이 큰 감흥을 주지는 못했다. 그녀는 그저 덩달아 멍해 있는 단테를 힐끔 바라보고,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가, 자신이 누워있는 소파를 한 번 쳐다봤을 뿐이다.

그 일련의 과정에는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작은 호기심이나 경계심 따위도 없었고, 마치 처음 만난 날처럼 한없이 무심하기만 했다.

에이의 눈빛과 행동에 단테와 마샤가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의, 의사를…….”

아연실색한 마샤가 뒤늦게 중얼거렸고,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되레 침착해진 단테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가야겠어. 마법과 관련된 일이라면 평범한 의사는 해결책을 알아내지 못할 거야.”

“그건 그렇지만…….”

“일어날 수 있겠어, 에이?”

이런 위험성이 있는 음식물을 아무렇게나 나눠주었을 누군가를 향해 이를 갈며, 단테는 에이를 향해 물었다.

당연하지만, 단테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태인 에이는 그 말에 대답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했다.

실로 차분하고 또 그녀다운 질문이었다.

“죄송하지만, 누구시길래 저를 그쪽 집에 데려가신다는 건가요?”

“…….”

“애초에 여긴 어디고요? 전 분명 집에서 잠이나 자고 있었는데.”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던 단테는 그 말에서 ‘집’이라는 단어를 냉큼 낚아챘다.

“잠깐만. 네 집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기억나?”

“그런 건 왜……. 이거 신종 강도인가요? 나름 오래 살았지만 이런 건 처음인데요.”

“아니, 그게 아니라…….”

에이의 두 눈에 귀찮음이 어리는 것을 보고 단테가 쩔쩔매는 사이, ‘의사’, ‘기억’, ‘에이’ 따위의 단어를 중얼거리던 마샤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린 강도 같은 게 아니고! 난 네 친구야!”

“……?”

“얘는 네 남편이고!”

잠시 그들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에이가 황당하다는 눈으로 단테를 쳐다보았고, 단테는 자신의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음,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에이는 이제 그만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눈치였다. 슬금슬금 소파에서 내려오려는 에이를 간신히 말린 마샤가, 이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에이,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모르는 사람 집에서 눈을 뜬 것보다 더 놀랄 일이 있나요?”

“너 방금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지? 지금 넌…….”

마샤가 마른침을 한 번 삼켰다.

“뭘 잘못 먹고 기억을 잃은 것 같아.”

그 말에 에이는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이게 무슨 개소리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 *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셋 중에서 제일 빨리 침착함을 되찾은-사실 당황한 적도 없는-에이가 흠, 하는 소리를 냈다.

“저는 지금 그쪽들을 만나기 직전의, 그러니까 숲속에서 혼자 살 때의 기억만 가지고 있고. 지금은 그로부터 10년 넘게 지났다고요?”

“응.”

“그게 말이 되나요?”

에이는 냉정하리만치 딱 자르며 대답했다. 더 들을 가치도 없는 말에 그러하듯이.

“차라리 제가 지금 납치를 당했고, 그쪽들이 거짓말로 절 속이려고 하고 있다는 게 더 자연스러운데요.”

“에이…….”

그 말을 들은 마샤는 숫제 울먹거리는 사람이 되었고, 단테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에이 태도가 그들 생각보다 더 완강하여 상황 설명부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사실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니 당연하지만.

“당신들 말마따나 10년이 지났다면, 무슨 차이점이라도 있어야겠죠. 저한테든 다른 곳에서든.”

“하지만 에이, 너는…….”

“네, 당신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니 말하자면, 전 늙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게서 차이점을 찾을 수는 없을 거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뭐라도 변했는지 확인하기에는……. 에이가 중얼거리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는 제가 아는 곳이 아닌 완전히 모르는 곳이네요.”

“…….”

“그러니, 저는 당신들의 말을 믿을 수 없어요. 알아들으셨나요?”

그렇게 말하는 에이는 금방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마샤의 집에서 나갈 것 같았다. 기억이 없든 말든,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보겠다는 태도였다.

지금 당장 에이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단테는 도저히 말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입에 담아야만 했다.

“있어, 차이점.”

“……!”

“그게 뭔데요?”

놀란 마샤가 에이를 말리려던 그 자세 그대로 멈추었고, 에이가 담담히 단테를 돌아보았다.

두 명의 시선을 고스란히 받으며, 단테는 잠시 침묵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10년 전에는 네 상처가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사라졌지만, 지금은 생기자마자 사라져. 마치 처음부터 상처가 생기지 않은 것처럼, 순식간에.”

“…….”

“……미리 말하지만, 확인은 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다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단테는 자신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에이가 제발 이 말만큼은 들어주기를 바라며.

하지만 지금의 에이는 평소 같지 않았고, 그를 아끼던 때처럼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았다.

“아니요, 확인해 봐야겠어요.”

“……!”

“확인하지 않으면 믿을 수가 없잖아요.”

잠시 두리번거리는 것 같던 에이가 마샤를 향해 말했다.

“혹시 날카로운 것 아무거나 가져다주실래요?”

“어, 어…….”

흘러가는 상황에 당황한 마샤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버버거리는 사이.

에이는 그 잠시를 기다려주지 않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낼 만한 것을 직접 찾아 나설 요량이었다.

갈색 눈동자가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다가, 또 다른 탁자 위에 놓인 가위를 찾아내었다.

에이의 손이 가위로 향하기 직전에.

“하지 마.”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에이의 손을 잡아챘다.

자신의 옆으로 온 사람을 확인한 에이가 눈을 깜빡였다. 방금까지 멀찍이 거리를 두고 있었던, 그녀에게 차이점을 알려준 장본인이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다가올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는데.

그와 동시에 옅은 보랏빛의 반짝거림이 잠시 눈앞을 스쳤다.

“…….”

“난 네가 아픈 게 싫다고 했잖아.”

단테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랐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가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고, 그를 좋아하는 에이라면 더더욱 그럴 법한.

잠시 할 말을 잃은 얼굴이던 에이가 느닷없이 한숨을 쉬었다.

“이제 알았어요.”

“응? 뭐가?”

“그 얼굴에 내가 넘어갔군요.”

갑자기 남편이 생겼다길래 뭔가 했네. 에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단테는 조금 멍하게 바라보았다.

“상처를 내지만 않으면 되는 건가요?”

‘기억을 잃은’ 에이답지 않게, 그녀는 잡힌 손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혹시나 뿌리쳐질까 긴장했던 단테는 안도의 한숨을 애써 억눌렀다.

“난 네가 아프지만 않으면 돼. ……그래서 말인데, 이제 나랑 같이 우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

“혹시 모를 통증 같은 게 발생하기 전에 이 일을 해결해야 하니까.”

말을 끝마친 단테가 조심스럽게 에이의 안색을 살폈다. 또다시 거절의 말이 돌아오리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에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한 번 가보죠.”

“……! 정말?”

“네. 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남의 집보다는 제집에 있는 게 나을 테고.”

‘남의 집’이라는 말에 울상을 짓는 마샤를 뒤로한 채, 에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아픈 건 싫다는 사람이 나를 해칠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그 말에 단테는 오늘 처음으로, 에이 앞에서 미소 엇비슷한 걸 만들어 보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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