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154/181)

7.

눈 깜빡할 사이에 시간이 흐르고, 마샤의 결혼식이 점점 다가올 때쯤.

결혼 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마샤가 결혼을 통보할 때만큼이나 갑작스러운 말을 했다.

“원래 결혼식을 할 때, 맨 앞줄에는 신랑과 신부의 가족들이 앉는 게 관례잖아?”

“응, 그렇지.”

“그러니까 그 자리에 네가 앉아줬으면 좋겠어, 에이.”

“뭐?”

나는 마샤가 자랑한답시고 챙겨온 옷들을 정리하다가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마샤는 결혼식 때 입을, 아주 화려한 옷 중 하나를 입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진지하다 못해 엄숙해 보였다.

“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줄 사람이 한 명은 필요하단 말이야.”

“내가 아무리 앞줄에 앉아도 나보다 네 남편이 제일 가까울 텐데.”

“남편 말고! 하객 중에!”

마샤는 빽 소리쳤다가 곧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 자리에 앉기 싫어?”

“그게 아니야, 마샤.”

옷을 정리하던 것을 그만두고 마샤의 옆자리에 앉았다. 치맛자락을 깔고 앉지 않게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자, 마샤가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자신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물론 네가 그걸 원한다면 얼마든지 앉아줄 수 있어. 하지만 그저 지켜볼 사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거잖아.”

“…….”

“왜 내가 맨 앞줄에 앉았으면 좋겠어?”

무거운 침묵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나는 마샤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주머니에서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마샤가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어.”

“그렇구나.”

“결혼을 준비하면 준비할수록 더 그래. 결혼할 때 필요한 네 가지 중에서, 오래된 것을 준비할 때 있잖아. 그때 자꾸 엄마 생각이 났어.”

새것, 오래된 것, 빌린 것, 파란 것 중에 하나 말이지. 마샤의 손에 손수건을 쥐여주며 그 이야기를 잠자코 들어주었다.

마샤는 내 손수건으로 자기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며 말을 이어갔다.

“엄마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나보다 더 설레했을 텐데. 뭔갈 더 못 해줘서 안달이었을 테고, 하나뿐인 결혼식을 너무 간소하게 치르는 거 아니냐며 아쉬워했을 거야.”

“응.”

“엄마 말고 아빠도. 그리고 다른 가족들도, 전부……. 하지만 가족을 계속 떠올릴수록, 아무도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이 자꾸 선명해지더라.”

그래서 그런 거야. 마샤는 흐르려는 눈물을 애써 참고, 빨개진 눈가로 나를 보며 살짝 웃어 보였다.

“나는 내 마음대로 너를……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 중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거든. 네가 내 앞에 있으면 우리 고향이 생각나기도 하고.”

“…….”

“네가 있으면 가족들도 함께 지켜봐 주는 느낌이 들 것 같아.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 무조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만약에 앉을 사람을 정한다면 너로 하고 싶어.”

말을 끝마친 마샤가 내 어깨에 고개를 툭, 기댔다. 살짝 울먹거렸다고 그새 열이 올라 뜨끈해진 마샤의 얼굴을 느끼며, 나는 그 어깨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너무 이상할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또래 친구를 맨 앞자리에 앉히다니.”

“이상할 게 뭐 있어. 그리고 네 결혼식인데, 너만 이상하게 느끼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렇지?”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 모양인지, 마샤가 내게 편하게 기대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마샤의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정돈해 주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이렇게 이야기했다.

“네가 원한다면 그래, 알았어. 그날은 네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볼게.”

“……정말? 그래 줄 거야?”

“응. 그런데 단테도 내 옆에 같이 앉을 건데 괜찮지?”

“그렇게 물으니까 갑자기 기분이 엄청 이상해졌어…….”

마샤의 떨떠름한 목소리에 크게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너와 나 사이에 단테가 끼어드니까 기분이 엄청 이상하네.

이 자리에 단테가 있었다면 ‘마샤가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게 아니라, 너희 사이에 내가 끼어든 거냐’라고 억울해할 생각을 하며,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앞자리에 앉는다면 캐서린은? 그 애, 네 결혼식 때는 어떻게든 시간을 내보겠다며 아주 의욕적이던데.”

지금쯤 마탑에 거의 갇혀있을, 또 한 명의 고향 친구 이름을 꺼내자 마샤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캐서린은 진작에 자기 자리를 정해놨어. 아주 가깝지도, 아주 멀지도 않은 넷째 줄에 앉아서 오열하다가 부케 받아보는 게 자기 소원이었대.”

“정말 구체적이고 이상한 소원이네.”

“걘 가끔 엉뚱한 구석이 있더라.”

그렇게 말하는 마샤의 얼굴은 한결 편해져 있었다. 뜬금없이 말을 꺼냈지만 제법 긴장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며, 마샤의 심경을 다시 헤아려본 후 나는 마샤를 가볍게 토닥였다.

“이렇게 네가 우울해하니까 갑자기 네 결혼이 가까워졌다는 게 실감 나는 것 같아. 이때까지는 결혼하는구나, 근데 아직 멀었지, 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내 결혼 진짜 얼마 안 남았어. 너도 친구이자 가족으로서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야.”

마샤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단호한 목소리에 나 또한, 웃음을 간신히 삼키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앞으로 네 결혼식만 생각하고 있을게.”

그리고 그 말 때문인지 점점, 시간은 더 빠르게만 흘러갔다.

* * *

마샤의 결혼식은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끝났다.

신랑은 그렇게 안 보여서는 친구가 많은 사람이었는지 너도, 나도 몰려 와 축하해주었고, 그에 질세라 마샤의 지인들도 마샤에게 행복을 기원하는 말들을 잔뜩 남겼다.

사람이 몰려 마샤가 바빠질 때마다, 마샤의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참석한 나 또한 바빠지는 건 덤이었다.

“안녕하세요! 마샤의 단짝 친구분이라면서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안녕하세요. 혹시 마샤네 의상실에 같이 다니시는 분들이신가요?”

“네, 맞아요. 제 이름은…….”

맨 앞줄에 앉지 않았다면 이렇게 인사를 많이 하고 다닐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지만 단테가 아닌 나에게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오랜만이었기에-단테는 오늘 존재감을 흐릿하게 하는 마법을 걸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마샤의 지인들이었기에 성심성의껏 응대를 해주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가끔 남자친구 여부를 물어보는 사람도 몇 있었지만, 손을 들어 반지를 보여주면 거진 다 알아서 물러났다. 뭐지, 마샤가 진짜 내 딸인지 궁금하기라도 한 건가. 내가 애인이 있는지 없는지는 왜 물어보는 거야?

그런 이상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단테가 혼자 쓸데없는 경계를 하는 듯했지만, 어쨌거나 이렇다 할 큰 소란은 없었다.

아, 그리고 캐서린은 그 애가 원한 대로 부케를 쟁취해냈다.

“에이 언니! 저 부케 받았어요!”

마샤가 손수 고른 꽃들을 내게 불쑥 내밀면서 자랑하는 모습이, 딱 그 나이대 아이 같아서 귀여웠다. 내가 잘했다며 칭찬해주자 뿌듯하다는 듯이 웃는 모습도 그랬고.

예고한 대로 결혼식 내내 오열하느라 빨개진 눈가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듯했다.

“저는 오늘 제 오랜 소원을 위해 뒷자리에 앉았지만, 언니가 맨 앞줄에 앉는 걸 보고 감동했어요. 저도 제 결혼식 때는 마샤랑 에이 언니를 맨 앞에 앉힐래요!”

“그래, 네가 그걸 원한다면.”

“약속한 거예요, 언니! 그럼 전 마샤 언니한테 인사하러 가볼게요!”

나는 그렇게 손을 흔들다가는 부케가 망가질 거라고 조언해주며 캐서린을 보내주었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사람들은 작별 인사를 한마디씩 남기고 점점 사라져갔다.

그리고 슬슬 나도 집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에이.”

손님들을 배웅하느라 매우 바빴을 마샤가, 먼저 나를 부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어쩐지 그럴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살짝 미소를 띠고 마샤의 손을 잡았다.

“마샤, 피곤하지는 않아?”

“엄청 피곤해. 나도 지인들을 많이 초대했다고 생각했는데, 남편 쪽 지인들이 더 많을 줄이야……. 인사하다가 혼났어.”

“그래, 안 그래도 그렇게 보이더라.”

그러니까 덩달아 나도 이렇게 늦게 돌아가게 된 거고. 그러나 나는, 마샤처럼 피곤함을 느낄 만한데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단지 기뻐하고 싶은 날이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결혼 축하해, 마샤. 꼭 행복해야 해.”

“응.”

“그리고…… 네가 결혼했다고 덜 놀러 가지는 않을 테니까, 앞으로 미리 각오해 둬.”

마샤는 내 장난스러운 말에 눈을 크게 떴다가, 살짝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다 들켜서 속상한 사람처럼, 어쩌면 그만큼 고마워하는 사람처럼.

“……내가 그걸 걱정하는지는 어떻게 알았어?”

“딱 보면 알지. 오늘 몇 번이고 들었던 것처럼, 나는 맨 앞줄에 앉을 정도로 너랑 친한 친구니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에이. ……그리고 또, 오늘 정말 고마웠어.”

이걸로 네가 조금 더 행복해졌다면 그걸로 다행이야. 조용히 그렇게 대답하니, 마샤가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마치 앞으로도 찬란할 마샤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것 같아서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나는 아마 저 웃음을 오랫동안 잊지 못하겠지. 반짝거리며 쏟아지는 찬란한 햇빛의 편린 속, 그 여느 때보다 예쁘게 웃는 마샤를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샤의 이 모습을, 그리고 축복이 가득하던 오늘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거야.

아주 긴 시간이 지나고, 다른 사람들이 그래왔듯 네가 떠나가게 되어도, 그래서 네가 추억 속에만 남아있게 되더라도. 마샤가 내게 웃어 보이던 얼굴은 바래지 않고 내 마음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예전이라면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어쩔 수 없이 슬퍼졌겠지만 오늘은 그저, 이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슬퍼할 필요 없어. 기쁘고 기분 좋은 날에 괜히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떠올리며 불안해할 필요도 없어.

이 순간, 내 소중한 사람이 행복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을 테니까.

나는 그날 내 모든 기원을 담아 마샤의 행복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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