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잘생겼다는 말이 곧 인상이 부드럽다는 말은 아니었기 때문에, 남자가 눈살을 찌푸리자 놀랍도록 서늘한 얼굴이 되었다. 때마침 그 얼굴을 바라본 엘리나는 겁을 집어먹었고, 저도 모르게 에이의 뒤에 숨었다.
안 그래도 직전에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에 심장이 콩알만 해져 있어 반사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급작스럽게 자신의 뒤에 숨은 엘리나를 에이는 자연스럽게 토닥였다.
“그 사람이 스스로를 마탑의 마법사라고 칭했다고요?”
“네, 네. 제가 뭘 모르긴 하지만, 마탑이 대단한 곳인 건 알고 있어서…… 그 사람을 믿었었어요.”
“음, 그렇군요.”
남편이라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에이 또한 무언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금세 어깨를 으쓱이며 가벼운 투로 이야기했다.
“그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냥 들어도 거짓말을 하고 있네요. 마탑의 마법사라는 사람이 사기꾼이라는 말에 흉기를 휘두를 리가 없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너무 겁먹고 계실 필요 없을 것 같아요. 뭐, 마탑을 사칭하고 다니니 마탑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하겠죠.”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남편을 쳐다보는 게 서로 무언의 신호라도 주고받는 눈치였다.
하지만 엘리나는 에이의 말에 비로소 마음을 놓고 있었기 때문에, 둘이 눈짓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저 도움을 청한 사람들이 이 부부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
모든 일을 다 설명하고 나자 지독한 탈력감이 밀려왔다. 에이의 소매를 붙잡고 있다가 그대로 축 늘어지자, 에이가 그녀를 가볍게 부축하며 말했다.
“깨어나기 전에 상태가 안 좋으셨으니까 조금만 더 쉬죠. 기절한 친구분은 제 남편이 맡아줄 거예요.”
“아니, 아니에요! 이미 폐를 많이 끼쳤는데 그럴 수는 없어요. 잭은 제가 간호할게요!”
“상태만 보면 저분 말고 당신도 간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에요.”
“그래도……. 전 이미 많이 쉬었는걸요. 정말 괜찮아요!”
계속해서 자신이 남아있을 수 있다며 주장한 끝에, 에이는 결국 엘리나를 말리는 것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앞뒤 따지지 않고 고집을 부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으나, 정말이지 민폐를 너무 많이 끼친 상황이었다.
게다가 잭은, 아직도 그 상황을 생각하면 영문을 모르겠지만…… 어쨌든 칼까지 휘둘렀는걸. 아무리 열에 달아올라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건 정말 어떻게 사죄해도 모자랄 일이었다. 그 와중에 남편분께 잭의 간호를 맡길 수는 없었다.
엘리나는 자기 생각이 옳다 못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불행하게도 에이에게는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저분을 간호하지 않아도 된다면 방에 가서 쉬셔도 괜찮겠죠?”
“네?”
“단테, 부탁해.”
에이가 자신의 남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하자, 단테라고 불린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이렇게 어린애가 쉬지를 못하고 있는걸. 너무 많이 뛰어서 우리 앞에 쓰러지기까지 한 애인데.”
“네가 그걸 원한다면 아무래도 좋지만…….”
졸지에 애 취급을 당한 엘리나는 일순간 멍하니 입을 벌렸다. 15살이 넘고 나서는 장난으로도 아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하지만 그 말에 무어라 한마디 덧붙이기 직전, 남자가 잭의 몸 위로 손을 뻗었다.
“알았어. 지금 할게.”
그리고, 눈앞에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남자가 손을 뻗은 바로 그 자리 위로 복잡한 도형과 선들의 조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촘촘히 겹쳐지고, 또 흩어지고, 다시 겹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하나가 되어 찬란한 빛을 내보였다.
그 빛의 선을 만들어내고 있는 남자는 손가락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적어 내렸다. 허공에 적힌 영문 모를 글자들은 그대로 액체처럼 변해 흘러내렸고, 종래에는 가루처럼 변해 공기 중을 떠다녔다. 순식간에 금빛과 보랏빛의 반짝거림으로 가득 찬 방이, 크게 뜨인 엘리나의 눈에 비쳐 들어왔다.
그것들은 어느 별보다 환하고, 어느 빛보다 밝았다. 엘리나는 넋 놓고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남자가 그려내고 적어내린 것들이 전부 잭의 주변을 떠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치료 마법이에요.”
엘리나와 달리 저 풍경이 익숙한 것처럼, 에이가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분의 상처가 심각해서 마법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 자고 일어나면 흔적도 없이 나아있겠죠.”
“아…….”
“그리고.”
빛에 비쳐 밝은색으로 보이는 에이의 눈동자가 힐끔, 엘리나에게로 닿았다.
“마법으로 외상을 치료하는 건 비교적 쉽지만, 내상은 치료하기가 아주 까다로워요. 그게 가능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
“그러니 어머니의 병이 쾌차하셨다면, 그건 어머니 스스로 이겨내신 걸 거예요.”
엘리나는 그 말을 듣고,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기분에 곧바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사실 그 사람이 사기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 엘리나가 가장 걱정했던 건…….
어머니가 다시 아플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소개해준 마법사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도 걱정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마법사가 큰돈을 받고 고쳐준 어머니가 가장 걱정되었다. 나를 공격했으니 어머니의 상태를 다시 되돌리면 어떡하지? 그럼 다시 빌어야 하나? 무릎 꿇고 빈다고 그 사람들이 들어주기나 할까?
하지만 바로 이 순간에 눈앞의 사람이, 마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이런 말을 한다. 어머니는 병을 스스로 이겨내셨을 거라고.
그 말 한마디에, 여느 때보다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로.”
엘리나는 온 진심을 담아 그렇게 이야기했고, 에이는 대답 대신 아주 연한 미소를 되돌려주었다. 그러는 동안 마법은 점점 사그라들고, 거칠게 이어지던 잭의 숨소리가 고르게 변했다.
“이 정도면 별다른 간호가 필요 없을 거예요. 이제 정말 자러 갈까요?”
“네, 네!”
엘리나는 에이의 말이라면 뭐든 들을 사람처럼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번갈아 보는 것 같던 남자가, 슬쩍 그들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나는 잠깐 일하러 갔다 올게, 에이.”
“응, 고생하네. 잘 갔다 와.”
“최대한 빨리 올 거야.”
그 말에 에이는 눈가를 접어 웃더니 남자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래.”
그 입맞춤이 있고서야 남자는 비로소 웃어 보였고, 그들을 남겨둔 채 방문을 열고 나갔다.
흔한 부부의 애정행각을 본 엘리나는 혼자 속으로 꺅꺅거리다가 에이가 다시금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복도로 나오자 흐린 햇빛이 창문을 넘어 그들을 비추고, 엘리나의 뺨과 다리를 넘어 끝으로는 곤히 잠든 잭의 위에서 머물렀다.
분명 시간만 따지자면 밤이 더 조용해야 할 텐데. 오늘만큼은 새벽이, 그리고 아침이 더 조용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커다란 일이 한 차례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으니까.
에이가 이끌어주는 대로 다시금 침대에 누우면서, 엘리나는 자신이 이 일들을 절대 잊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비로소 모든 고생이 끝난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던, 평온한 어느 날의 새벽이었다.
* * *
“……그때 그런 일이 있었잖아. 내가 얼마나 무서웠는데!”
“아야! 잠깐, 때리지 마. 아파!”
“넌 더 맞아도 싸. 거기서 대놓고 사기꾼이라고 왜 외쳐, 외치기는!”
이야기를 이어가던 엘리나가 참지 못하고 결국 잭의 어깨를 때리자, 잭이 엄살을 부리며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잭이 손을 피하려고 노력하든 말든, 엘리나는 계속해서 잭의 이곳저곳을 마구 찰싹였다.
그 일이 있었는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되었다. 그때 그 사기꾼은 정말 마탑의 마법사들이 알아서 잡아갔고, 엘리나와 잭도 무사했으며, 다른 마을 사람들도 모두 멀쩡했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 특히, 엘리나의 어머니가 무사하셨다.
그때 잭이 에이에게 흉기를 휘두를 때는 정말 심장이 떨려서 죽을 뻔했는데. 이렇게 일이 잘 끝나서 다행이라며, 엘리나는 자신의 손에 있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매서운 손길이 끝나자 슬금슬금 다시 엘리나의 옆으로 다가온 잭은 혼자 시시덕거렸다.
“그래도 운 좋게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서 다 잘 해결됐잖아. 넌 평생 쓸 운 다 썼다, 진짜.”
“내 운만 다 썼어? 네 운도 다 썼지! 그리고 평생 쓸 운을 걱정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은인한테 상처를 내고도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로 넘어간 너지! 엘리나는 울컥해서 소리치려다가, 일순 떠오르는 장면에 그 자리에서 멈칫했다. 엘리나의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간 건 다름 아닌, 에이의 상처가 순식간에 나아버리던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건 진짜 뭐였지?”
“응? 뭐 말이야?”
그 직후 정신을 잃어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는 잭에게, 엘리나는 최대한 자세히 그때의 일을 설명했다. 그분이 칼을 멀리 떨어트린다고 얕은 상처를 입으셨는데 눈 깜빡할 사이에 다 나았다고.
설명을 다 들은 잭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뭐, 그 사람도 마법사였던 거 아니야? 그때 보았던 남자가 마법사여서 내 상처를 다 치료해줬다며. 부부가 둘 다 마법사인 거지.”
“하지만, 남편분이 마법을 쓸 때는 뭔가 화려한 풍경이 펼쳐졌는데…….”
“안 그런 마법도 있겠지, 뭐. 그러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되잖아?”
맞아, 설명이 안 되긴 하지……. 곰곰이 뭐라도 짐작해보려던 엘리나도 금세 생각을 그만두었고, 먹던 사과나 마저 뜯어 먹었다.
“이 짧은 시일 동안 그 귀하다는 마법사를 셋이나 만났다니 믿기지 않아. 아니, 하나는 가짜였으니까 둘이구나.”
“맞아, 둘이지. 어쨌든 나는 더 이상 마법사는 안 만났으면 좋겠어.”
“왜? 나는 에이 언니 같은 사람이라면 몇 명을 만나도 상관없는데!”
“그새 언니라고 부르는 사이가 됐냐?”
잭이 그렇게 타박하듯이 말했지만, 엘리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잭의 머릿속에도 그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거라는 사실을.
가짜 따위가 아니라 진짜 마법사였던 사람. 그들을 구해주고, 또 그녀를 다독여 주었던 다정한 사람.
조금은 특이하고, 그리고 어쩌면 범상치 않던 그 부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