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6. (146/181)

146.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도 전에 생각이 멈췄다.

마치 케이드의 말이 온 머릿속을 뱅뱅 돌다가 흩어지고, 또다시 합쳐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죽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말을 다시금 되뇌고 나서야, 케이드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죽어도 죽지 않는 내가,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영원한 잠에 빠질 수 있다고?

이 차원에 남아 있는 채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니,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이상할 것이다. 그것도 오랜 시간 낯선 세계를 헤매며 죽지 못했던 이라면.

차마 삶을 완전히 놓지도 못한 채 어떻게든 붙잡아야 했던 이라면.

무슨 대답이라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저쪽 차원으로 넘어갔을 당시, 다시금 상처를 입는 몸으로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을 때와는 궤가 다른 충격이었다.

아주 먼 훗날, 옛날처럼 왜 나는 죽지 않냐며 절망하는 날이 올 때 그저 좌절에 그치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마치 평범한 사람처럼 삶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지금까지의 내 삶을 부정하는 기분이 들었다.

……수렁에 빠져들던 감정은 곧,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졌지만.

“그 방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온 거예요?”

이미 가슴 속에 차오른 거부감은 여전하기만 해서.

나는 동요를 완전히 숨기려고 노력하며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 듯, 케이드는 어떤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히 대답했다.

“아니요. 저도 그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당신도 모른다고요?”

“예. 그와 관련된 자료는 일절 들춰보지 않은 채, 신전에 두고 왔습니다.”

그 차분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심장 박동이 점차 원상태로 돌아왔다. 무엇 때문에 긴장했던 건지, 그리고 무엇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어도.

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지금 당장 듣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왜 그건 가지고 오시지 않으셨어요?”

“…….”

케이드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침묵이 점차 길어져 슬슬 의아한 감정까지 들던 차에, 차라리 중얼거림에 가까운 말이 들렸다.

“당신이 알고 싶지 않아 할지도 모르니까요.”

“…….”

“궁금하지도 않은 사실을 억지로 알려주려고 드는 건 폭력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말에 입이 저절로 다물렸다. 도무지 다른 행동을 할 수가 없어 케이드를 빤히 쳐다보는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 방법에 대해서 궁금하시다면, 맨 첫 장에 적혀져 있는 신전으로 가시면 됩니다. 제 이름을 대면 어디든 들여보내줄 테니까.”

“……당신 이름을 대라고요?”

“예.”

이쯤 되면 당황스럽다 못해 이상하기까지 하다. 분명 자신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차원 이동자에 대해서 찾아봤다고 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뭔가…….

내 기분을 생각하고, 또 내게 필요할지도 모르는 것을 일부러 찾아본 것 같지 않은가.

아니, 애매하게 짐작할 필요도 없었다. 나를 위한 거라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것은 분명한 호의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사람이 건네주는 호의.

……무언가 알 듯 말 듯 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내가 말문을 떼자 케이드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눈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저 사람이 나를 마냥 싸늘하게만 바라보았던 날들을 떠올렸다.

이렇다 할 괴롭힘이 있지는 않았지만, 내게 호의적이었던 이반과 릴리와는 다르게 케이드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의 품위를 생각하여 몇 번 참는 기색이긴 했지만 하는 말은 계속 모나기도 했고.

나는 케이드가 왜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건지 확실한 이유를 알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하기 전에 어째서 그랬는지 먼저 물어봐야 했다.

싫어한 이유를 들으면 왜 변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겠지. 내가 변했거나, 저 사람이 변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왜 그렇게 싫어했어요?”

* * *

K7.

에이가 불쑥 내뱉은 말에 케이드는 다시금 그녀를 바라보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갈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고, 자연스레 그의 호흡이 잠깐 잦아들었다가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건 그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미약한 변화였고, 당연히 에이 또한 알아차리지 못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를 왜 그렇게 싫어했어요?”

무심코 던진 듯한 말에 그는 잠시 몸을 굳혔다. 당신을, 왜 그렇게 싫어했느냐고.

그 질문을 듣자마자 기억이 과거로 흘러갔다. 그리 멀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어서 그런지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케이드는 평생을 노력하며 살아왔고, 그렇기에 진정으로 무능한 사람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껏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들을 혐오하고, 또 경멸해왔다.

노력해도 무능력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능력이 없다는 말은 곧 노력하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에이와 어떤 대화를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저를 다짜고짜 짐 덩어리 취급할 때부터 예상했지만, 당신에게는 평범한 사람이 악의 축으로라도 느껴지는 건가요?”

“갑자기 그런 헛소리는 왜 하시는 겁니까?”

“자기보다 좀 모자라다 싶은 인간을 질타하는 모습이 익숙해 보이셔서요.”

“…….”

“확실히 제가 당신들한테 일방적으로 얹혀가고 있는 건 맞아요. 그 점은 저도 약간은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에게 맞서는 듯한 말을 하는 순간까지도 무덤덤하던 얼굴.

“그래도 그 사실이 저를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잖아요?”

그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에이를 비로소 마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껏 스스로가 무능한 사람은 곧 비난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는 걸, 그래서 지금껏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경멸해왔다는 걸 오랜 시간 뒤에야 인정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한 세계가 깨어지는 듯한 일이었고, 그 과정에는 많은 부정과 짜증이 뒤따랐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가 틀렸다는 걸 가르쳐준 존재가 누구인지도 인정했다.

이러나저러나 죄 없는 사람에게 날이 서 있었던 꼴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그렇게 함부로 대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탑주를 마주친 에이가 그녀답지 않게 감정을 드러내던 순간, 온갖 비난에도 태도를 바꾸지 않던 그녀가 먼저 그에게 부탁해오던 순간.

케이드는 자신이 처음부터 친절하게 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속절없이 떠올리고 말았다.

그때도 이미 그는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다. 굳이 단어로 정의한다면, 그녀를 싫어한 게 아니라…….

싫어한 게 아니라.

“대답을 안 하시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굳어버린 케이드를 두고, 에이는 그의 침묵을 마음대로 해석해버린 듯했다.

흥미를 잃은 듯 그를 보던 시선이 저 멀리 창밖으로 멀어져갔다. 그 눈동자가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케이드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당신을 싫어했습니까?”

약간의 생각도 거치지 않고 무작정 뱉은 말이었다. 에이가 문득 표정을 굳히고 나서야, 케이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자각하고 속으로 험한 말을 내뱉었다.

이런 멍청하고 또 어리석은 말을 하다니. 그저 질문 하나였지만, 그 스스로가 보기에도 저 말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가 알아차릴까? 아니,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케이드는 그의 멍청함을 탓하다 못해, 결국 변명과도 같은 말을 하고야 말았다.

“예, 맞아요. 당신을 싫어합니다.”

뒤늦게 말해봤자 거짓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데도.

“그냥 싫은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나한테는 그게 당신입니다.”

“음, 그렇군요.”

도저히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케이드는 버릇처럼 인상을 험하게 구겼다가, 에이의 얼굴이 평소와 다를 것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애써 표정을 갈무리했다.

무어라 말을 덧붙여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미약한 초조함과 불안함, 그리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내심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였다.

케이드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던 에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 떠는 거나 숨기고 말하던가.”

스치듯 들려온 중얼거림에 다시금 케이드의 몸이 얼어붙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던 생각마저 멈춘 그를 남겨둔 채, 에이는 부엌 쪽으로 멀어져갔다. 마치 자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를 내며.

“늦게라도 차를 내오려고 하는데, 무슨 차로 드릴까요? 내 마음대로 주기에는 당신 취향이 너무 까다로워 보이네.”

그 목소리만 들으면,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한 점 어색함도 없이 행동하는 뻔뻔함이 그의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싫어한다는 말이 거짓말인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저 아무렇지도 않다는 반응이…….

왜 새삼 어딘가를 날카롭게 찌르는 것만 같은 건지.

“아니요, 차는 됐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됐으니 이제 가봐야겠군요.”

케이드는 자신이 가져온 문서들은 그대로 탁자 위에 내려놓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겉옷을 정돈하고 문을 향해 걸어가자, 에이가 금방 뒤따라왔다.

“하긴, 오래 있으시긴 했죠.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차를 내올 걸 그랬네요.”

“괜히 찻물만 버리게 됐을 겁니다.”

“예의상으로도 마셔줬을 거란 말은 안 하시네……. 뭐, 그건 됐고.”

에이의 시선이 탁자 쪽으로 잠시 향했다가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번거롭게 알아봐 주시고 전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예.”

“아, 그리고 이왕이면 릴리한테도 감사하다는 말 좀 전해주세요. 제 친구 때문에 드리는 감사 인사라고 하면 알아들을 테니까.”

그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어렵게 느껴지는 감사 인사를 에이가 담백하게 입에 담았다. 그러고는 손수 문을 열어주는 행동이, 정말 그에게 더 궁금한 것이 남지 않은 듯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었다. 항상 상대를 궁금해했던 건 오직, 그 하나뿐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래서 케이드는 단지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인 뒤 따뜻한 햇볕이 흐르던 집에서 완전히 나왔다.

에이가 지나가듯 덧붙인 말대로 유독 날씨가 좋았다. 그는 에이가 햇살을 맞으며 표정을 부드럽게 풀던 장면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다가, 억지로 그것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잠깐 잊어버리고 나서도 간간이 생각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어쩌면 예감이 아닌 확신이 느껴졌으나.

그래도 지금은 이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맛이 씁쓸한, 마치 차향과 닮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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