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 (143/181)

143.

단테의 손을 잡고 다시 돌아온 그곳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난장판이었다.

“……단테.”

“응?”

“지금 이게 다 뭐야?”

아까보다 더 불어있는 마물의 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릴리와 이반 말고도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 여럿 생겨서 더욱 시끄럽고 복잡해졌다. 다들 무언가를 그리고 주문을 외우는 모습을 보니 마탑의 마법사들인 모양인데, 뭔가…….

마법을 쓰는 모습이 내 생각보다도 과격하다고 해야 하나, 난폭하다고 해야 하나.

“다들 신나서 그래.”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당황스러운 상황을, 단테는 허무하리만치 간단하게 일축했다.

“실전에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쓸 기회니 다들 좋아하고 있는 거겠지. 보기에는 좀 안 좋아도 상황은 빨리 정리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나 진심으로 마탑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했어.”

진짜 한 끗만 잘못하면 마물 시체로 실험실 하나를 다 채우던 그놈처럼 되는 거 아닐까? 내 딴에는 진지하게 물은 거였는데, 단테는 재밌는 농담을 들은 사람마냥 웃었다.

“마탑에서 쫓겨나는 게 무서워서라도 그런 짓은 안 할 거야. 그리고 마법을 과하게 좋아한다는 게, 인간이기를 포기한다는 말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다행이지만.”

하긴,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이 흔하지는 않겠지. 나는 금방 납득했다가, 한 점 변함도 없이 난장판인 풍경을 착잡하게 둘러보았다.

마물이 나오던 입구는…… 단테가 뭔가 더 할 것도 없이 내 손이 닿는 순간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무너져내린 돌이 이 복잡한 광경에 일조했으면 일조했지, 뭐라도 정리되었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다들 자기 한 몸 지킬 힘은 있는 사람들이니만큼 다친 이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물을 상대하는 게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물을 상대하다가 지쳤는지 후방으로 빠진 사람들도 보였고, 이반도 저 멀리서 잠깐 장비들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입구가 부서져도 이미 나와 있는 마물의 수가 상당해서 다들 고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주 잠깐 단테는 왜 안 도와주러 가나 싶어졌지만, 그 이유가 전부 내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생각을 그만뒀다.

“그러고 보니 아까 그놈이 마물을 거둬들일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래?”

“응. 그거 하나 내세우면서 자길 살려둬야 할 거라고 말하는 게 같잖아서 무시했지만.”

내 말에 단테는 잘했다는 듯 맞잡은 손을 가만히 매만졌다. 나는 그 손길을 느끼면서, 말을 꺼낸 순간부터 물어보려고 했던 질문을 내놓았다.

“그래도 그 방법을 물어보기라도 해야 했던 걸까?”

“왜 그런 생각을 해, 에이?”

“왜 그러긴. 도무지 이 상황이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그러지.”

내 개인적인 감정은 미뤄두고 알아낼 수 있는 걸 알아냈다면,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수고는 덜 수 있었을 터다. 혹여라도 모든 마물을 제압하는 데에 실패했을 때 일어날 인명 피해도 막을 수 있을 거고.

그러나 그 말을 하며 고개를 들어 올렸을 때, 나는 내가 하는 걱정이 괜한 걱정이라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단테의 미소가 점점 짙어져 가는 모습이, 내가 어떠한 착각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빨리 눈치챘을 단테는 나를 놀리지 않았다. 다만 내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을 뿐이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 에이.”

“……뭐를?”

“그놈이 할 수 있는 걸 내가 못 할 거라 생각해?”

그럴 리가 없잖아. 그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에 부드럽게 닿은 탓에, 나도 모르게 단테에게서 한 발짝 멀어질 뻔했다. 어차피 손이 잡혀 있어서 그러지 못했을 거지만.

분명 내가 움찔하는 것을 느꼈을 텐데도, 단테는 아무것도 못 알아차린 척 말을 마저 이었다.

“그러니까 괜히 그놈에게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면서 자책하지 않아도 돼.”

“음, 말은 고맙지만. 네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신뢰성이 떨어지는데…….”

“나를 못 믿는 거야?”

그렇게 물어보면 또 할 말이 없다. 그런 뜻이 아닌 걸 알지 않냐며 항의하는 나를 두고, 단테는 비로소 장난기를 지우며 말했다.

“아마 그놈이 생각한 방법은 마물들을 원래 있던 곳으로 역소환하는 방법이었을 거야. 그리고 역소환이 이루어지려면, 처음에 소환할 때 사용했던 매개체가 무조건 필요하고.”

“매개체라면, 설마.”

“응,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아.”

단테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이제 자갈이라는 표현에 가깝도록 완전히 무너져내린 돌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결국 그 방법은 쓸모없어졌다는 이야기잖아.

“네 말대로 쓸데없이 죄책감 가질 이유가 없긴 하네…….”

“그래서 이제 우리한테 남은 방법은 세 가지 정도가 있어.”

세 가지나 있단 말이야? 나도 모르게 의심 어린 눈빛으로 단테를 쳐다보았지만, 단테는 그렇게 볼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일단 첫 번째는 이대로 마물이 다 처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거고.”

“그건 좀.”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산을 통째로 밀어버리는 거야.”

“…….”

“아무리 재생하는 마물이라도 아예 묻어버리면 못 빠져나오지 않겠어?”

설마 지금 농담하나 싶어서 단테의 얼굴을 다시금 살펴보았다. 그러나 뻔뻔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 미소는 변함이 없었으므로, 나는 그냥 잠자코 다음 방법은 뭐냐고 물었다.

“세 번째는 뭔데?”

“세 번째는, 소위 말하는 돈 낭비를 하는 거지.”

어차피 이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듯 웃는 얼굴이 얄미웠다.

“마석을 아낌없이 이용하는 거야.”

* * *

C1.

“캐서린, 마법식 보조 좀 부탁해.”

“네, 선배!”

지금껏 보아왔던 마물보다도 더 많은 수가 몰려있는 듯한 곳에서, 캐서린은 애써 겁을 삼키고 자신의 선배 중 한 명을 도왔다. 온전한 마물의 시체를 얻을 수 있을 거라며 캐서린을 살살 꾀어냈던 선배는 이제 시체는 안중에도 없이 신나게 공격 마법을 남발하고 있었다.

선배들이 신나 보이는 건 아무래도 좋지만……. 이렇게 소모전이 된다면 금방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을 텐데.

가장 최전방에 서서 마물들을 베어내던 저 붉은 머리 검사도, 지금은 어느 정도 속도를 줄였지 않은가. 빠르게 끝날 일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강한 쪽보다는 최대한 버티는 쪽이 승리할 거라는 사실도.

승산이 없지는 않았지만 막막한 건 사실이었다. 원래도 겁이 많고 눈물도 많은 캐서린에게는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급기야는 신 마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남몰래 고개를 올리고 한숨을 삼켰을 때.

그 순간 캐서린의 눈가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스쳐 지나갔다.

“어?”

그게 무엇인지, 이 상황에서 왜 나타난 건지 생각할 새도 없었다. 손가락 한마디만 하지만 우박은 아닌 그것은, 처음에는 간격을 두고 떨어지다가 마치 비가 내리듯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넋을 놓고 있다가 정수리에 떨어지는 무언가에 공격당한 캐서린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야! 선배, 이거 뭐…….”

“이…… 이거 설마.”

“……?” 

도무지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선배에게 물어보기라도 하려고 했건만, 선배들 또한 자신과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이거 다 마석이야?”

“마석이라고? 갑자기 마석이 왜?”

“이만한 마석들이 하늘에서 떨어져? 누가 일부러 뿌리고 있는 거지, 지금?”

“아니, 이 정도로 많은 마석을 사들일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돈은? 유통처는?”

“있지……. 딱 한 사람.”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마법사들이 일제히 숨을 삼켰다. 하지만 그 놀람과 얼떨떨함이 담겨 있는 대화는 곧 마물들의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비처럼 퍼부어지는 마석들에 의해 저마다의 핵이 깨져나간 마물들이 제각각 쓰러지거나 소멸하기 시작했다. 색색이 빛나는 보석 같은 돌들의 향연 속, 점점 힘을 잃어가는 마물들의 모습은 기괴하면서도 볼만한 풍경을 만들어주었다.

계속해서 멍하니 서 있던 마법사들은 곧, 뭐라도 하나 챙겨보겠다며 그 자리에서 뿔뿔이 흩어졌다. 어쩐지 아까보다도 더 신나 보이는 모습이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캐서린은, 그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속에서 멍하니 마석이 내리는 풍경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 어쩐지 커다란 사건이 하나 끝난 기분이었다.

……이렇게 후련함을 느낄만한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캐서린이 고개를 마구 휘저어 정신을 다잡으려고 하던 찰나, 누군가가 뒤에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캐서린.”

“……에이 언니?” 

여기서 볼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오늘 극적인 재회를 마쳤던 고향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옅은 갈색 단발머리와 늘상 태연해 보이던 얼굴이 다시금 시야에 들어왔다.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 캐서린이 당황스러워하며 눈을 깜빡였지만, 에이는 캐서린의 의문에 관해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만 도무지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조용히 속삭였을 뿐.

지금 이 세상에, 캐서린과 에이 둘만 남았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조용히.

“우리 마을에 폭탄을 터트렸던 범인이 죽었어.”

“…….” 

“미안, 너무 뜬금없었지?”

하지만 너희에게는 가장 먼저 말해주고 싶었거든. 그렇게 덧붙이며 에이는 캐서린의 어깨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이미 캐서린은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얼어버리고 말았고, 에이가 놓아주었다고 해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가까스로 고개만 움직여 에이를 쳐다보자, 에이는 작게 웃으며 캐서린의 머리 위로 손을 뻗었다.

그 행동이 캐서린의 얼굴을 스치는 마석들을 막아주기 위해서였다는 건 한참 뒤에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울 줄 알았으면 나중에 알려줬을 거야, 캐서린.”

“허, 흑…….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나 손수건 없어. 그러니까 뚝 그치자, 응?” 

한 손으로는 비를 막아주고, 한 손으로는 눈물을 닦아주는 다정함이 캐서린의 마음속에 깊이 닿았다. 거짓말이라고 의심할 수도 있었지만, 그 옅은 표정 변화와 세심한 행동들이 차마 의심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에이가 어떻게 저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왜 이 장소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어야 할 것은 많은데도 불구하고.

저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고 싶었다는,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따뜻함이 기뻐서.

“……수고했어요, 언니.” 

캐서린은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인사를 건네고 말았다.

그 말을 들은 에이는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캐서린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래, 너도.”

비로소 에이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환한 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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