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 (137/181)

137.

“그렇게까지 걱정할 줄 알았으면 좀 더 참을 걸 그랬어.”

“걱정?”

“단…… 네 남편 말이야.”

마샤는 단테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려다가, 아직 우리가 마탑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해 중간에 말을 바꿨다. 나는 마샤의 이야기에 단지 어깨를 한번 으쓱였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 단테는 우리에게 몇 겹이나 마법을 둘러주는 것도 모자라 마법이 담긴 마석도 두 개씩이나 떠넘겼다. 되도록이면 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면서.

우리를 데려다줄 마법사가 하나 붙는다고 생각하면 과한 처사처럼 보이기도 했기에, 마샤는 자신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단테를 걱정시켰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단테가 끝까지 우겨서 우리를 안 따라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걘 우리가 신 마탑에 머무른다고 해도 그랬을 테니까 괜히 자책하지 마. 단테가 하루 이틀 이러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나 때문에 너까지 움직이고…….”

“이제 그만. 내가 원해서 널 따라온 거니까 그 이야기는 됐어.”

마샤는 할 말 많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마치 ‘나 혼자 가도 됐었는데!’라고 외치는 것만 같은데, 너 혼자 가긴 뭘 혼자 가.

다른 때면 몰라도 마샤가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직후라 혼자 보내기는 좀 그렇다. 그것도 마물이 득실거리는 와중에 밖으로 나가는 건데.

사실, 내가 따라 나간다고 하면 확실하게 실력이 보장된 마법사를 붙여줄 것 같아 반쯤 일부러 그런 것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지만.

“다시 뵙겠습니다, 마샤 님, 그리고 에이 님. 곧바로 모시면 될까요?”

신 마탑에 도착한 직후에 보았던 어벙벙한 얼굴은 어디 가고, 지금은 생글생글 웃고 있는 모습의 루크가 우리 앞에 서 있었다.

마탑주의 비서 역할을 도맡고 있으니 실력이야 보장되어 있겠지만, 이 바쁜 상황에 자신의 비서를 붙여줄 줄이야. 나는 잠시 단테를 붙잡고 잔소리를 하는 상상을 했다가 금세 그만두었다.

“마탑주의 비서님이시면 엄청 바쁘실 텐데, 저희를 데려다주시러 가셔도 괜찮은 건가요?”

“탑주님이 직접 부탁하셔서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탑주님 말씀대로라면, ‘잠깐 갔다가 곧바로 돌아올’ 예정이니까요! 그 정도면 괜찮습니다.”

그렇게까지 강조하지 않아도 빨리 돌아올 예정인데요. 과한 걱정이야, 진짜.

나는 차마 다른 분에게 부탁하면 안 되겠냐는 소리도 하지 못하고, 한숨을 작게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마샤와 루크의 얼굴이 비로소 밝아지는 게, 둘 다 어느 순간부터 내 눈치를 보고 있었구나 싶어졌다.

어쩐지 내가 이 셋 중에 책임자라도 된 것 같지만, 다 착각이겠지.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내가 단테에게 변명을 해야 한다는 것도 다 착각일 거야.

마샤와 내가 함께 순간 이동 마법진 위에 올라서자, 루크가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주문 같은 걸 외우기 시작했다.

단테에게서는 듣지 못했던 주문을 신기하게 여기기도 전, 시야가 위에서 아래로 뒤바뀌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 *

“와, 바로 도착…… 했…….” 

자신의 집을 보며 반색하던 마샤가 곧이어 입을 다물었다. 위치상으로는 마샤의 집이 맞았지만, 집안 풍경이 도저히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는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샤를 따라 집안을 가볍게 살펴보았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사이에 강도라도 왔다 갔나?” 

“…….” 

“아직 무슨 일인지는 모르니까 울려고 하지는 마, 마샤. 집안이 엉망이어도 중요한 물건은 그대로일 수도 있잖아.”

물론 말하는 나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와중에 강도짓을 할 사람이 있나? 자기 집에 콕 박혀있는 게 목숨을 부지할 방법일 텐데? 

……아니면 강도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마샤의 집을 헤집어 놓고 간 걸까.

이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기에 되려 침착해지던 찰나, 울먹거림을 간신히 멈춘 마샤가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일단 방에 들어갔다 올게. 나 진짜, 그 도안만 몇 년을 붙잡고 있었어. 잃어버리면 안 되는데…….”

“중요한 물건이라는 게 옷 도안이었구나. 일단 알았어, 빨리 들어가 봐.”

나는 이미 날아가 있는 문을 애써 모른 척하며 마샤를 방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렇게 마샤가 양손 가득히 물건을 챙기고 나오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마법사를 데려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루크와 나는 방 밖에서 마샤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마샤의 짐을 정리해주며 기다리고 있었고 루크는 집 어딘가를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루크 씨?”

“음. 에이 님의 친구분께서는 혼자 사신다고 말씀하셨지요?”

“네.”

“저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집니다.”

“이제 챙길 건 다 챙겼…… 뭐라고요?!”

루크가 창고 방처럼 보이는 곳을 가리키자, 때마침 방에서 나오던 마샤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 비명에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을 뻔했다가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움직이는 무언가라면 사람일까요? 차라리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흠……. 그건 문을 열어보아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보호막을 친 뒤 문을 열어보아도 괜찮을까요?”

“제발 열어봐 주세요.”

뭔진 몰라도 빨리 쫓아내고 싶어. 마샤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리자, 곧 우리 앞에 반투명한 막이 생겨났다.

루크가 창고의 문을 열어젖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크기가 사람만 한 무언가가 맹렬하게 튀어나왔다. 워낙 빠르게 움직여서 형태를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굳이 동물에 비유하자면 개처럼 보이는 무언가였다.

차라리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보기 좋게 빗나갔네.

“에, 에이. 저거!”

마샤가 기겁하며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것을 보며, 나는 마샤를 내 등 뒤에 숨겼다. 창고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침을 질질 흘리며 이쪽저쪽을 살피던 마물은, 조금 더 약해 보이는 쪽을 선택하기로 한 건지 곧 우리 쪽으로 달려들었다.

아까 루크가 보호막을 쳤으니 가까이 닿을 일은 없을 테지만, 글쎄. 그렇다고 저 마물을 그냥 놔둘 수도 없다.

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곧장 손에 들려있는 마석 중 하나를 집어던졌다.

- 쨍!

“……? 깨졌나?”

“에이? 너 뭘 던진……. 저건 갑자기 왜 저래?! 상태가 이상한 것 같은데?” 

마샤의 말대로, 이마를 맞은 마물은 주춤주춤 물러나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고작 한 대 맞은 걸로 저러나 싶어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뒤늦게 마물의 이마에 박혀있는 돌을 발견했다.

아. 저 마물에도 마석이 박혀있었던 건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버둥거리던 마물은 곧 연기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때 환영을 보여주던 마물도 저런 식으로 사라졌던가? 다시 떠올려보려고 해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마물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바짝 굳어있던 마샤는 곧 긴장이 풀린 것처럼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일단 마샤에게 괜찮다고 말해준 뒤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눈을 크게 뜨고 바짝 굳어있는 루크가 보였다.

마법진을 그리다가 그대로 멈춘 손을 보아하니, 아마 곧바로 공격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비서님보다 제가 빨랐다는 건 단테에게 비밀로 해드릴게요.”

“……그, 보호막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 생각…….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뭐 감사할 것까지야. 그건 그렇고…….”

나는 창고 방까지 열려 훤히 보이는 마샤의 집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탁자나 의자가 넘어져 있는 건 기본이고, 옷은 다 찢겨 있고. 오, 저 의자는 다리가 다 부러져있네.

안 그래도 그때 그놈이 침입했던 일 때문에 유리창도 다 깨져 있어서 그런지, 사람보다는 마물이 지낼 만한 꼴이 되었다. 밤에 보면 다소 을씨년스럽기까지 하겠는데.

“너 나중에 집을 갈아엎든, 이사를 가든 둘 중 하나는 해야겠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마샤는 내 말에 해탈한 듯이 대답했다. 얼굴이 새하얘진 채로 품에 있는 물건들을 꼭 껴안는 걸 보니, 이것만은 지켜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마물이 집안까지 들어오다니, 상황이 제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가 봐요.”

“예. 저도 보고는 들었지만, 이 지경일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야 옆에 마법사도 있고 단테가 이것저것 해준 눈치니 다칠 일은 없겠지만-애초에 제대로 달려들기도 전에 처리하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마 우리와는 사정이 좀 다를 것이다.

아무런 조치도 안 되어있는 집에 이렇게 마물이 들어온다면…….

“그런데 마물이 어디서 들어왔지? 그냥 무식하게 바깥문을 들이박고 들어왔나?”

“그러게. 내가 문을 열어두고 간 것도 아닌데.”

“게다가 지금 거리에는 마물이 안 보이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던 찰나, 내 말을 부정하듯 밖에서 커다랗고 기분 나쁜 소리가 울렸다.

마치 무언가가 땅을 긁고 간신히 멈추는 듯한 소리였다.

그리고 마샤의 집 앞에 펼쳐진 광경은, 집채만 한 마물과 한 사람이 대치하듯 서 있는 모습. 

하지만 그 광경에 놀라는 것보다 마물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더 빨랐다.

붉은 머리에 앳된 얼굴을 가진 소년. 파견단 일행 중 하나였던 이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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