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 (132/181)

132.

“……수도?”

순간 내가 알고 있는 그 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다시금 정신이 돌아왔다. 

차원을 이동하고 싶어서 납치까지 감행한 놈이 왜 갑자기 수도로 도망쳐?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는지, 곧 케이드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골치 아픈 곳으로 도망친 걸로도 모자라, 목적지만으로는 의도를 알 수 없군요.”

“그래? 난 왜인지 알 것 같은데.”

심드렁한 단테의 말에, 각기 다른 생각에 잠기느라 흩어졌던 시선이 다시 단테에게로 몰렸다. 하지만 단테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든 말든 아무렇지도 않은 기색이었다.

“그놈의 수하를 거의 다 처리했으니 힘을 충분히 모을 수는 없고, 은신처로 돌아가기에는 마력이 부족했을 거고. 그러니 결국 건물을 무너뜨린 것처럼 마지막 발악이라도 할 생각이겠지.”

“……마지막 발악이라면?”

“글쎄.”

단테의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상냥한 미소로 바뀌었다.

그 미소와 함께 뱉은 말은 전혀 상냥하지 않았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그놈들의 특기가 마물을 다루는 것이니, 수도에 마물이라도 풀어놓지 않을까.”

“…….”

“본인들만 죽기에는 억울하다는 심리 아니겠어?”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무거운 침묵이 찾아왔다.

마물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예전에 단테를 찾으러 갈 때 상단의 마차를 덮쳤던 마물과, 일렁거리며 환상을 보여주던 마물이 차례대로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차라리 그것만 떠오르면 다행이었을 텐데, 마지막에는 그자가 자랑이랍시고 보여줬던 마물 시체들도 생각이 났다.

나는 박제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을 느꼈는데, 그런 것들이 수도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면…….

반사적으로 인상을 확 찌푸렸다가, 마샤의 안색이 눈에 띌 정도로 하얗게 질렸다는 것을 알아채고 표정 관리를 했다.

우리 중에서 제일 당황한 모습을 보이던 마샤는 곧 더듬더듬 말을 꺼내놓았다.

“마물들이 수도를 덮치면…… 사람들은…….”

“그건 수도 쪽에서 어련히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마샤가 완전히 겁에 질리기 전, 나는 빠르게 이야기했다. 제국의 중심지인 수도가 안전하지 않을 리 없고, 온갖 기사나 마법사들이 몰려있는 곳이니 괜찮을 거라고.

무엇보다 지금은 마탑의 마법사들도 수도에 있다고들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마샤는 그 말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고향에 그런 일이 있었던 이후, 수도에 계속 정착하고 살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 같았다.

“수도에 아무리 대단한 실력자들이 많아도, 그 사람들은 전부 귀족들을 지키러 갈 거잖아. 그럼 우리는 어떡해?”

그렇게 이야기하는 마샤는 자신의 지인들을 비롯해 지금껏 가꿔놓았던 모든 것들이 걱정되어 견딜 수 없어 보였다.

다들 안전할 거라고 안심시키는 건 누가 듣기에도 겉만 그럴듯한 거짓말이니, 일단 다른 말로 진정시켜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차분히 입을 여는 순간, 갑자기 케이드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누군가가 간절히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빠르게 빛이 반짝거리는 보석이었다.

“혹시 마석인가요?”

“예.”

그럼 보나 마나 연락 용도겠군. 통신구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일회용 느낌으로 간단한 연락을 할 수 있는 마법이 걸려있는 듯했다. 

연락한 상대는 아마도…… 수도에 있을 누군가겠지.

그리고 곧이어 마석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는 나도 잘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 케이드! ]

“예, 릴리아나 님.”

[ 아직도 마탑, 아니. 혹시 지금 마탑주와 함께 있나요? ]

정말 오랜만에 듣는 릴리의 목소리였으나, 태평하게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다급하게 말이 이어졌다. 케이드는 잠시 단테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마석을 향해 대답했다.

“예. 지금 함께 있습니다.”

[ ……원래라면 마탑주가 먼저 말해주기를 기다렸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쪽에서 물을 수밖에 없네요. 에이 님과 관련된 일은 다 해결되었나요? ]

“이제 전 괜찮아요, 릴리.”

[ 에이 님! ]

조급하게 말을 이으면서도 반가움을 표현할 수 있구나. 고운 목소리가 확 밝아지는 게 마치 꽃이 만발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잠깐의 틈을 이용해 릴리에게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건네면서, 다시 한번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릴리가 케이드 씨를 빌려준 덕에 일이 더 잘 풀린 것 같아요.”

“잠깐만, 빌려줬다니. 표현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에요. ]

“릴리 님, 거기서 그렇게 대답을…… 됐습니다.”

케이드는 질린 듯한 표정을 짓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우린 늘 이랬는데 이제 와서 뭘.

내 인사를 받아준 릴리는 이제 정말 다른 말을 할 시간이 없다는 듯 본론을 꺼내놓았다.

[ 갑자기 수도 전역에 마물들이 출현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풀어놓은 것 같은 게, 마치 전쟁 막바지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서요. 실례가 아니라면, 혹시 에이 님의 일과 관련이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

“음, 네. 그냥 관련된 정도가 아니라 같은 일이라고 보셔도 무방해요.”

내 말을 들은 릴리가 앓듯이 작은 신음을 뱉었다. 남몰래 그 신음에 백 번쯤 공감을 보내며, 릴리가 다른 말을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걸 묻는 것 말고도, 혹시 저희의 도움이 필요해서 연락하신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저 말고 단테의 도움이.”

[ ……최선을 다해서 사태를 진압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제국민들의 피해가 심각할 거예요.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시다면……. ]

“네, 알았어요. 갈게요.”

나는 어깨를 한 번 가볍게 으쓱였다.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도와야죠. 그렇지, 단테?”

“네가 그걸 원한다면.”

[ 그대의 도움에 감사를 표합니다, 마탑주. ……그리고 에이 님도요. ]

난 한 게 없고, 또 앞으로 할 일도 없을 텐데 감사 인사까지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대신 바쁘시다면 이만 끊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안 그래도 정말 바쁜 상황이었는지, 릴리는 재차 감사 인사를 남기며 통신을 끊었다.

바빠 보이는 릴리도 그렇고, 여전히 안절부절못하는 마샤도 그렇고. 아무래도 우리도 최대한 빨리 수도로 가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단테를 재촉할 생각으로 뒤를 도는데, 옆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릴리아나 님이 말씀하셨지만, 한 번 더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도와주신다고 해서 감사합니다.”

“…….”

그 말에 순간 미묘한 표정을 지을 뻔했다가, 가까스로 무표정을 유지한 채 케이드를 바라보았다.

“케이드 씨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요.”

“예. 저도 이런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거기까지 들으니 정말 기분이 이상해지려고 한다. 답지 않은 말을 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나를 향한 태도가 너무 순순해서 수상할 정도였다.

해야 할 말. 해야 할 말이라.

“당신에게 감사 인사는 해야만 하는 말인가요?”

“……예.”

내가 단테에게 사람을 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내게 사명감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다. 사람의 불행을 모른 척하지 못할 정도로 착해서도 아니었고, 마물 때문에 고생할 사람들에게 동정을 느껴서도 아니다.

단지 단테는 이 일에 어느 정도 관련이 있고, 나중에 깔끔하게 끝을 내려면 도우러 가는 게 맞는 일이니까. 그리고 마샤가 수도를 걱정하는 탓에.

하지만 그 모든 이유가 없더라도, 사람을 구할 수 있는데 안 구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그게 가능한 일이니까.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케이드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분명 내 생각을 알고 있을 텐데도.

아까와 같은, 묘하게 복잡하고 또 가라앉은 눈을 한 채.

……뭔지는 몰라도 나한테 다른 할 말이 있다는 건 알겠다.

“케이드 씨.”

“……예.”

“자꾸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꼭 해야 할 말이라면 나중에 알아서 찾아오세요. 지금은 들을 시간이 없는 것 같아서.”

내 말에 케이드는 순간 할 말을 잃은 것 같다가, 그대로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결국에는 말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저렇게 답지 않게 구는지는 나중에 알 수 있겠지.

일단 케이드에게서는 신경을 끄고, 잔해를 내려놓으며 상황을 정리하고 있던 단테에게로 다가갔다.

“단테, 정확히 어디로 갈 거야?”

수도가 얼마나 넓은데 무작정 한복판에 떨어지지는 않을 거 아닌가. 내 말에 단테는 느긋하게 손을 거두었고, 미처 사라지지 않은 반짝거림이 눈앞을 맴돌았다.

“이렇게 여러 명이 움직일 때는 아무래도 전용 순간이동 마법진이 있는 곳이 편하지.”

“전용 순간이동 마법진? 그게 어디 있는데?”

“황궁. 아니면 신 마탑.”

……아무리 그래도 황궁은 좀. 떨떠름하게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 전에 단테가 가볍게 손뼉을 짝 쳤다.

“우리가 갈 곳은 신 마탑이야.”

그 말을 끝으로 발아래에서 빛으로 만들어진 선이 사정없이 그어지기 시작했다.

도형과 글자의 복잡한 조화를 마저 눈에 담기도 전,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뺨에 닿는 공기의 흐름이 달라졌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