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 (131/181)

131.

M10.

마샤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갑자기 에이가 그들을 데리러 왔다는 낯선 사람을 옆으로 밀쳤고, 허공 어딘가를 다급하게 쳐다보았다가, 그대로 그 자리에서……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당혹스럽고 놀란 감정이 들기도 전 저절로 단테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으나, 그의 표정이나 행동 따위를 제대로 확인할 새도 없었다. 마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보랏빛 소용돌이가 눈이 따갑도록 주위를 에워쌌으니까.

그리고 당연한 수순처럼 단테의 모습까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마샤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멍해지고 말았고, 갑작스럽게 에이의 손길에 밀려난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그 자리에는 졸지에 서로 초면이자 영문을 모르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하지만 ‘에이가 갑자기 사라졌다’라는 상황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마샤와 달리, 시리게 빛나는 색깔의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는 무언가를 눈치챈 것 같았다. 모노클 너머의 눈동자가 금세 의심과 경악의 빛을 띠고, 직후에 또 다른 감정으로 물들었다.

함께 그 상황을 겪은 이를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마샤는 그 감정의 변화를 똑똑히 목격했다. 찰나에 스쳐 지나간 것 같았지만, 분명 저건…….

말하자면 상실감에 가까운…….

“……저기.”

생각을 거치지 않은 부름이 마샤의 입에서 소심하게 튀어나왔을 때, 갑자기 그 사람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심상치 않은 기세에 움찔할 뻔했으나, 그가 쳐다보고 있는 것은 분명 그녀의 등 뒤였다.

어느 새부터인가 아주 가까이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기도 돌아왔을 때 시간이 하나도 안 지나있네.”

“아냐, 지나긴 했을 거야. 그때는 네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서 그랬던 거라면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까.”

“음,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황급히 그 시선을 따라 뒤를 돌아보자,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나타난 에이와 단테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방금 그녀의 앞에서 사라졌던 이들이 뒤에서 나타났다는 사실보다, 마샤의 말문을 더욱 틀어막는 것이 있었다.

“에이……?”

“아, 마샤.”

왜 마샤를 발견하자마자 반가운 듯한 기색을 내비치는지를 잠시 묻어둔다면, 눈앞의 사람은 마샤가 알던 에이가 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샤는 그 순간 낯선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전부 에이의 모습에 있었다.

에이는 지금 그녀가 본 적 없었던 형식의 의복을 입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천으로 만들어진 상의와 목 부분에 달린 정체불명의 두 끈까지. 종아리를 다 덮을 정도로 긴 치마를 입고 있긴 하지만, 치마도 그들이 입곤 하는 모양과 달랐다.

아니, 저런 옷을 딱 한 번쯤은 본 적 있던가? 분명 봤었는데, 언제 봤었지.

……에이가 난데없이 내 집 앞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봤던가?

“너 갑자기 그런 옷은…… 왜 입고 온 거야? 갑자기 사라진 게 옷을 갈아입으러 간 거였어?”

“아.”

에이는 그제야 자신의 옷차림을 알아차린 듯했다. 잠시 고개를 내려 옷을 살펴보는 것 같다가, 곧 어깨를 으쓱이며 여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다 보니 일이 좀 있었거든. 그래서 갈아입었어.”

“그 ‘일’이라는 게 도대체 뭔데?”

“음. 요약한 설명을 원해, 자세한 설명을 원해?”

마샤로서는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둘 중 최대한 간결한 쪽을 택했다.

“요약한 설명.”

“잠깐 사고 같은 게 있어서 내가 원래 있던 차원에 갔다 왔어. 그 와중에 단테가 나를 따라왔고, 지금 같이 돌아오던 길이야. 이 옷은 그 차원에서 입던 옷이고.”

“……뭐, 뭐라고?”

마샤는 이해할 수 없는 정보가 머리에 너무 많이 들어오면 사고가 멈춘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마샤가 말을 더듬자, 에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해줄게. 그나저나 케이드 씨, 당신은 또 표정이 왜 그래요?”

에이의 말에 마샤는 한 박자 늦게 남자를 쳐다보았다. 똑바로 생각하는 게 불가능해져서 그런지, 아까 남자를 불렀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였다.

에이가 말을 걸자 그 사람은 뒤늦게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하지만 멍한 상태에서 깨어났을 뿐, 마샤의 상태와 마찬가지로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입을 다문 채로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도 한참, 남자는 에이가 흥미를 잃기 직전에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아까, 당신이 저를 밀친 게 혹시.”

“제가 당신을 밀쳤다고요?”

에이는 그 말에 미간을 잠시 찌푸리더니, 곧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기억났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맞아, 그랬었지. 근데 단테 말로는 당신은 아무것도 안 보였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당신을 밀친 건, 음.”

알 수 없는 말을 이어가던 에이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케이드라고 불렸던 사람이 다시금 말을 이었다.

그 잠깐 사이에 조금 잠긴 듯한 목소리가 된 채로.

“당신이 본래 있던 차원에 다녀온 것이, 저를 밀친 행동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건……. 네.”

에이는 순순히 대답을 내놓았고, 그 사람은 그 이후에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에이를 쳐다보기만 할 뿐.

“…….”

잘만 이야기하던 사람이 말을 멈추자 에이는 의아함 반,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은 의심의 눈초리 반으로 남자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케이드와 마주 보고 서 있는 에이와 달리, 살짝 비스듬히 선 마샤에게는 단테의 얼굴까지 훤히 보였기 때문에 혼자 눈을 굴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테는 점점 찬바람이 불다 못해 표정이 없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안색이 확연히 어두워진 케이드라는 사람을.

에이가 무언가를 더 캐물으려는 듯 입을 열었을 때, 단테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손쉽게 둘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에이. 해야 할 이야기나 들어야 할 이야기들은 일단 미뤄두고,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부터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아, 그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에이는 뒤늦게 주변을 다시금 둘러보기 시작했다. 곧이어 마샤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가에 관해서 묻더니, 체감상 1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다는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로 시간 차이가 안 나다니 운이 좋았네.”

“아마 내가 이 차원의 사람인 영향도 조금 있을 거야, 에이. ……마샤 표정이 자꾸 괴상해지는데, 이 이야기는 정말 그만할게.”

단테는 잠시 그들을 차례대로 살피더니, 모두를 이끌고 무너진 건물 가까이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다 함께 죽자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는지, 온통 하얗고 텅 비어있던 건물은 파편과 먼지로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마샤는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억지로 갇혀있었던 건물의 흔적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것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기도 했다.

혼자서 살펴보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주섬주섬 에이의 팔짱을 끼자, 에이가 곧 자연스럽게 마샤의 손을 토닥여주었다.

팔에 닿는 낯선 천의 감촉을 느끼며 안심하는 사이, 그들을 앞서 거의 잔해에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바짝 다가간 단테가 손을 휘저었다.

이제는 거의 익숙해지려고 하는, 그러나 볼 때마다 신기한 감정이 드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전보다도 훨씬 많아 보이는 금빛 반짝거림이 흩날리다가 돌연 움직임을 멈췄다. 그 사이를 희미하게 맴돌던 마법진도 점점 속도를 늦추더니, 곧이어 모든 잔해가 공중에 들어 올려졌다.

그건 마치 무수히 떠다니는 반짝거림이 그 파편들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마샤가 멍하니 하늘 위로 시선을 두는 사이, 잔해가 사라진 자리를 가만히 보는 것 같던 단테가 입을 열었다.

침묵만이 맴돌아 고요하던 순간에 뼈가 시리도록 싸늘한 말이 떨어졌다.

“시체가 없군.”

“…….”

마샤는 처음에 단테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가, 벼락처럼 그 의미를 깨닫고는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하지만 당황해서 굳어버린 마샤와 달리, 에이는 귀찮다는 듯 반쯤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큰 마법을 시전했으니 마력이 진작에 바닥났을 줄 알았는데. 대체 어떻게 도망갔대?”

“다른 장치를 미리 준비해뒀을 수도 있고, 정말 살을 깎아내면서까지 마력을 끌어모아서 간신히 이동했을 수도 있고…….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그래도 될 수 있으면 순순히 죽어주길 바랐는데.”

오랜 세월을 살면서 진작에 평범의 기준에서는 벗어났을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며, 마샤는 마지막 문장을 그냥 못 들은 셈 치기로 마음 먹었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잡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사람이 있든 말든, 단테는 천천히 그 공간들을 둘러보다가 어딘가에 멈춰 서고는 몸을 낮추었다. 새하얀 손가락이 무너지기 전에는 바닥이었을 것을 가볍게 쓸고, 곧이어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잘 보이도록 손을 들어 보였다.

“그래도 몸을 온전히 건사하지는 못한 모양이야.”

그들 쪽으로 향한 단테의 손에는 검붉은 무언가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에이의 팔을 꽉 붙잡은 채 멀찍이 떨어져 있어 잘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일부분이 붉게 물든 손가락을 보니 바람에 비릿한 냄새가 실려 오는 것 같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금방이라도 기절하고 싶은 기분이 되었지만, 마샤는 에이에게 기대다시피 서면서 간신히 버텼다. 그렇게 멈춰서 있는 둘을 두고, 케이드라고 불렸던 남자가 단테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디로 간 건지는 알아낼 수 있습니까?”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을 테니, 그래.”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하더라도 알아내야만 하겠죠.”

납치까지 감행한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쉽게 포기할 리 없지 않습니까. 누군가를 겨냥한 듯 겨냥하지 않은 듯 모호한 말 사이로, 단테가 손에 묻은 핏자국을 지우며 단호히 말했다.

“그럼 제발 포기하게 해달라고 빌게 만들어줘야지.”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겠다는 듯, 또다시 정체불명의 마법을 시전했다.

방금까지 그자가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짐작하건대 아마 추적과 관련된 마법인 듯싶었다. 아까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반짝거림과 바람에 마샤가 눈을 가늘게 뜬 순간, 콱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는 단테의 모습이 보였다.

“……일이 귀찮아졌네.”

“왜. 어디로 갔는데?”

심상치 않은 반응에 에이가 곧바로 물어보자, 단테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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