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 (129/181)

129.

골목길의 정확한 위치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 걸었던 길을 그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집 안에만 머물렀던 며칠 사이 확 쌀쌀해진 공기 속, 나는 목을 스치는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가 다시 세웠다.

한 겹이라도 더 두르고 나올 걸 그랬다고 생각하며 옷을 여미고 있자니, 옆에서 걷고 있던 단테가 내 손을 잡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추워, 에이?”

“아니, 괜찮아. 그냥 바람도 많이 불고 공기가 차가워진 것 같아서. 넌 안 느껴져?”

“음…….”

단테는 내 말에 수긍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곧바로 부정하지도 못한 채 잠시간 뜸을 들였다. 하여간 거짓말은 끝까지 안 한다니까. 

“추운 것보단 안 추운 게 좋지, 뭐. 못 느낀다면 됐어.”

그렇게 말하며 나는 단테의 손을 잡고 길을 걸어 나갔다.

우리가 그때 지나갔던 풍경은 달라진 게 없었다. 날씨가 추워져서 그런지 사람이 적어진 것 정도가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었고, 그 외에는 같은 날인 것처럼 거의 다 똑같아 보이기만 했다.

산책로를 지나 카페에 닿을 때까지 나는 단테가 내게 머플러를 건네주려던 것을 두 번 거절하고, 내가 그걸 두르면 누가 봐도 네 물건을 뺏은 사람처럼 보일 거라고 다섯 번쯤 이야기했다. 그렇게 투닥투닥거리며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카페 앞에 도착해있었다.

“그래, 여기까지 오는 건 쉬운데…….”

“쉬운 것치고는 꽤 많이 헤맸잖아.”

“조용히 해.”

나는 단테의 입을 한마디 하는 걸로 막은 다음에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흐릿한 기억이라도 남아있었던 길과는 달리, 골목길로 가는 경로는 아예 기억나지 않았던 탓이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곰곰이 생각하는 내 옆에서, 단테는 할 일 없이 기웃거리기만 했다.

“오늘은 저기 안 들어가?”

그런데 얘는 왜 고민하는 척도 안 하는 거지. 문득 의문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단테가 카페 문을 쳐다보더니 그렇게 물었다.

단테의 시선을 따라 카페 문으로 시선을 한 번 줬다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지금은 그 틈인지 금인지 모르는 걸 살펴보러 나온 거잖아. 굳이 카페를 들를 필요는 없지.”

“음, 그렇구나.”

내 말에 고분고분 수긍한 것처럼,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더니.

“그럼 더 갈 곳은 없는 거네.” 

내 손을 잡아당겨 팔짱을 끼듯이 하고는 어딘가로 슬슬 이끌기 시작한다. 나는 갑자기 앞장서기 시작하는 단테를 어리둥절하게 따라가다가, 곧바로 이어지는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사실 네 집부터 골목길까지 오는 길은 다 알고 있었어.”

“길을 알고 있었다고?”

“응.”

“어떻게 알았는데?”

내 질문에 단테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외웠어.”

바람이 부네, 따위를 말하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막힘 없이 대답하는 단테와는 달리, 그 말을 듣는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여기 딱 한 번 와봤는데? 그리 인상 깊지도 않고, 애초에 길이 문제가 아니라 단테에게는 거의 미로처럼 느껴질지도 모르는 풍경인데?

그러나 나는 곧, 단테가 비를 맞으면서 이곳 주변을 전부 둘러보았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래, 그러고도 집에 잘 돌아왔으니 길은 진작 외워두긴 했겠지.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단테의 머리는 역시 다소 쓸모없는 곳에 낭비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단테를 따라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앞장서지 말걸. 괜히 헤매다가 시간만 낭비했네,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길을 다 외웠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었는지, 우리는 곧 골목길의 앞에 도착했다. 나는 내가 한 번 지나간 탓에 길이라도 나 있는 것처럼 옆으로 치워져 있는 쓰레기를 보며 이곳이 그때 그 장소가 맞다고 확신했다.

바짝 긴장해있던 그때와 달리 거침없이 나아간 덕분인지 금세 골목길의 끝에 도착했다. 나는 흠, 하는 소리를 내며 이곳저곳을 살펴보다가, 곧 단테를 돌아보았다.

“단테. 너는 뭐가 보여?”

“아니.”

“그래, 사실 나도 안 보여서 물어봤어.”

그때 갑작스럽게 맞닥뜨린 것이니 이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복잡한 눈으로 허공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때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랗던 틈새가, 지금은 예고도 없이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안 그래도 사람 많은 곳이 나오기 직전까지 우리 뒤를 따라오다가 사라졌었지. 우리를 놓치고 자기 자리에 돌아간 게 아니라, 정말 그대로 사라진 건가? 사라질 수 있는 거였나? 

……애초에 그게 대체 뭔데?

“일단 그 틈이 뭔지부터 알아야 찾든 말든 할 텐데…….”

애꿎은 벽을 위에서 아래로 한 번 쓸어내리며, 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만 들을 수 있는 혼잣말에 가까웠는데, 단테는 용케 그 소리를 듣고는 내게 물었다.

“그 틈의 정체가 궁금한 거야?”

“궁금하지, 그럼. ……잠깐만. 너는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냥 그거라 생각하고 있는 거에 가깝지만, 응.”

태연한 대답에 순간 어처구니가 사라진다. 벌써 두 번째로 내 말문을 막은 단테는, 이번에도 여상한 태도로 내 의문에 답을 내어주었다.

물론 그 답을 들은 나는 단테처럼 태연할 수 없었다는 건 덤이었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까……. 음, 풍선에 너무 많은 공기를 넣으면 터지지? 그리고 가방에 너무 많은 물건을 넣으면 가방이 찢어지고.”

“그게 갑자기 무슨 말…… 지금 비유를 들어주는 거야?”

“응. 이래야 이해하기 쉬울 테니까.”

순간 ‘어린이도 이해하기 쉬운 물리학’ ‘초보도 할 수 있는 수학 공부법’ 따위의 제목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이런 분야에서 나는 정말 어린이이자 초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어 수긍했다.

쉽게 설명해준다면 좋은 거지.

미묘했던 내 표정이 평소대로 돌아오자, 단테도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차원도 생물과 무생물을 담아내는 하나의 그릇… 아니다, 주머니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아. 주머니이기 때문에, 수용량이 한계치에 다다르면 터지는 흔적이 생겨. 그리고 네가 본 균열은 그중 하나야.”

“음…….”

“지금 그런 게 어떻게 있을 수 있냐고 생각했지?”

곧바로 알겠다고 대답하지 않고 애매한 신음만 흘리는 나에게, 단테는 상냥한 선생님처럼 미소 지었다.

“차원은 그런 균열을 메꾸어가면서 점점 더 커지거든.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균열을 마주쳐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지금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결국 핵심은 이거야. 그 문장과 함께, 지금까지의 설명을 간단히 축약하는 말이 떨어졌다.

“그때 그놈의 건물 앞에서 보았던 구멍도, 이 차원에서 네가 마주쳤던 균열도. 다 공간의 경계에 틈이 생긴 흔적들이라는 거지.”

“……” 

“그리고 그 흔적들은 모조리 다 너를 인식했어.”

인식. 그 새삼스러운 울림에, 나는 단테가 차원을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 차원이 무생물이냐 생물이냐로 따지자면 생물에 가깝지 않을까 싶긴 하지만……. 무생물은 스스로 몸집을 불리지도, 사람을 잡아먹으러 뛰어오지도 않잖아.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단테가 내 뒤를 가리켰다.

“봐, 지금도 생겼네. 그때 보았던 균열.”

“……뭐?” 

그 말에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아까까지는 아무것도 없던 벽 위로 커다랗게 생긴 흠집이 보였다. 내가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니 단테가 내 어깨를 잡았다.

졸지에 단테에게 기대게 된 나는 그 틈과 단테 사이에 갇히게 되었다.

그 와중에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가 상상치도 못한 말을 내뱉은 단테 때문이었다.

“저 균열에 손을 한번 뻗어볼래, 에이?”

“…미안한데, 지금 내 귀가 이상한가 봐. 아니면 네가 가짜 단테거나.”

“네 귀는 정상이고, 난 진짜야. 위험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 그냥, 좀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손을 뻗어봐. 

내 귀에 낮게 속삭이는 미성의 목소리는 의심의 여지 없이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결국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내 손이 균열의 한가운데에 닿자마자.

- 쨍!

균열이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한 반응을 보이며, 한순간에 깨져나갔다.

귓가를 찌르는 듯한 소리에 놀라서 물러날 새도 없었다. 허공에 희미한 유리 벽이 생긴 것처럼 풍경과 분리되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금들이 더더욱 선명해졌다.

그리고 그 금들이 만들어내는 틈새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것들은…….

적어도 이 차원에서는 보이지 않을 풍경.

무수히 많은 또 다른 차원들.

“…….”

내가 있는 차원에 맞게 비유해보자면, 화면이 조금 어그러진 컴퓨터들을 모아 세상의 모든 감시 카메라를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어마어마하고 말문이 막히는 광경에 나는 순간 멍해졌지만, 압도적인 숫자의 풍경들은 적어지기는커녕 균열이 커질수록 수를 더 불려가기만 했다. 

더 보다 보면 미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때쯤, 내 뒤에서 다시금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일이 이전에도 있었다고 그랬지?”

“어, 응.”

나는 얼떨결에 대답하면서, 꽤 오래전의 기억을 더듬더듬 거슬러 올라갔다. 예전에 숲에 갇혔을 때도 이랬고, 그놈의 건물에서 탈출할 때도 이랬고…….

내가 단테의 말에 수긍하자, 단테는 곧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러다가 차원 하나를 통째로 부술 수 있게 되는 거 아니야?”

……이제 와서 말하자면, 이해가 불가능하다 못해 헛소리로까지 들리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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