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8. (128/181)

128.

[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

정말 어딘가에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문이 열리는 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렸다가, 언니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한 번 더 들려왔다.

어디 건물에라도 들어간 거냐고 물어보니 너 때문에 못 들어갔다는 대답이 들려온다. 언니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쁜 거 아니었어? 안 들어가도 돼?”

[ 지금 그게 중요해? 갑자기 그런 걸 묻는 이유나 순순히 말해 봐. ]

“아니, 그냥.”

적당히 얼버무릴 생각으로 입을 열었지만, 충동적으로 한 질문이라 그런지 그럴싸한 변명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아무 대답 없이 침묵하기만 하자, 곧 언니가 불안한 어조로 물었다.

[ 너…… 무슨 죽을병이라도 걸린 거 아니지? ]

“아니, 그런 거 아니야.”

[ 그게 아니면 뭔데? 혹시 그 남자친구라는 사람이랑 사랑의 도피라도 떠나기로 했어? ]

“…….”

[ 그래서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고 밑밥 까는 거야? ]

“음…….”

[ 왜 대답이 없어! ]

뭔가 틀린 것 같으면서도 맞는 말이라 순간 말문이 막혀서.

하지만 언니가 목소리를 더 높이기 직전, 나는 고개를 거칠게 털어내고 가까스로 대답이라고 할 만한 것을 만들어냈다.

“아니, 무슨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그냥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래. 죽을병이니 사랑의 도피니 그런 거창한 거 아니야.”

정말 ‘갑자기’ ‘우연히’ ‘호기심으로’ 물어봤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지만, 언니의 목소리에 서린 의심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

[ 네가 갑자기 이런 걸 물어볼 애가 아닌데……. 어쨌든 한 번은 넘어가 줄게. 음,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 것 같냐고? ]

“넘어가고 말고 정말 별 이유 없다니까.”

내가 한 질문을 다시 반복하는 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괜한 걸 물었다 싶어 슬쩍 후회가 차올랐다. 너무 뜬금없기도 하고, 또 무슨 대답을 듣든 달라지는 건 없을 텐데.

나는 대체 뭘 바라고…….

솔직히 말하면, 장난기 가득한 대답이 들려올 거라 생각했다. 언니와 내가 낯부끄러운 대화를 잘하는 사이도 아니었고, 뜬금없이 물은 만큼 언니도 실없는 농담으로 받아들일 거라 예상했으니까.

그러나 얼마간의 침묵 후에 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 많이 보고 싶겠지. ]

“…….”

[ 그리고 많이 힘들 거야. 언제든 만날 수 있었는데 한순간에 못 만나게 되는 거니까. ]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서 멈춰 선 나에게, 그 잔잔하고 솔직한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들어왔다.

[ 다시는 보지 못한다는 게 꼭 죽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지? 보지는 못할 뿐, 어딘가에 살아있을 수도 있겠지? ]

“……응.”

[ 그러면 슬프기는 덜 슬프겠다. 내가 못 보는 곳에서 행복할 거라고 믿으면 되잖아. ]

진지하게 그런 상황을 생각해보는 듯, 언니의 목소리에는 한 점 웃음기도 없었다. 나는 휴대 전화를 힘주어 잡은 채로 그 말들을 잠자코 귀담아들었다.

내가 제대로 된 대답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언니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만나지 못한다는 걸 믿지도 않겠지만,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 같다고. 받아들인 다음에 한참을 슬퍼하더라도 어떻게든 괜찮아질 거라고.

마치 그런 상황을 실제로 겪어본 사람처럼 나열되는 말들에, 희미한 위화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 내가 왜 이렇게 미리 준비한 사람처럼 대답하는지 알아? ]

마치 내 의문을 읽은 것처럼 언니가 먼저 물어왔다. 나는 지레 놀라서 잠시간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순순히 대답했다.

“아니. 사실 안 그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농담 반 진담 반인 대답 뒤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 밝은 웃음에도 가라앉은 분위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언니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숨을 내쉬듯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던 만큼 잘 들리지 않을 법도 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독 또렷하게만 들려왔다.

[ 실은, 어제 이상한 꿈을 꿨거든. 너한테 전화한 것도 그 꿈이 계속 생각나서였어.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꿈을 잘 기억하는 사람도 아닌데……. 오늘은 왜 이러는지. ]

“무슨 꿈이었는데?”

[ 음. ]

짧은 망설임과 함께 머뭇거리는 듯한 대답이 닿는다.

[ 네가 증발한 것처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는 꿈. ]

“…….”

[ 실종 직전에 어딘가 나간 흔적도 없고, 찾을 수 있을 만한 단서도 증거도 뭣도 없고. 정말 하늘로 솟아난 건지 땅으로 꺼진 건지 어디에도 찾을 수 없게 되는 꿈. ]

이상한 꿈이지? 언니는 가볍게 웃으며 그렇게 이야기했으나, 말하는 속도는 어쩔 수 없이 살짝 느려져 있었다.

[ 꿈에서 널 한참 찾아다니다가 잠에서 깼어. 근데 잠에 깨기 직전에는, 너무 힘든 나머지 나도 모르게 자포자기하게 되더라고. 아, 시체도 못 찾았다는데 뭐! 그럼 살아있겠지! 그리고 살아있으면 알아서 잘 살겠지! ]

“…….”

[ 그리고 지금은 네가 이런 질문을 하네. 널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되면 어떨 거 같냐고. ]

“…언니, 나는…….”

[ 그래, 그래. 네가 갑자기 어딘가로 사라질 리 없지. 사람인 이상 그렇게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는 게 가능할 리도 없고 말이야. 전부 꿈이어서 가능했던 일인걸! ]

이번에야말로 언니의 목소리가 다시 유쾌함을 찾아 올라갔다. 그리 진지하게만 듣지 말라는 듯, 그리고 자신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듯 어조도 다시 활달해진다.

[ 어쨌든 결론은 이거야. 다시는 못 만나게 되면 보고 싶기는 하겠지만, 결국 네가 잘 지낼 거라 믿을 거라고. ]

“응.”

[ 그렇게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이 지난다면……. 그 후에는 나도 잘 지내겠지. ]

언니가 지나가듯 덧붙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왜 이런 질문을 내뱉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를 그리워 해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내가 없어도 나를 기억해 주기를, 그래서 이 사람들을 잊지 못하는 나에게 작은 위안이 되어주기를 바라서가 아니었다.

나는 나 없이도, 내가 아꼈던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비록 내가 그 행복한 모습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잠시간 흐르던 침묵 사이를 언니의 평온한 목소리가 가로질렀다.

[ 죽지 않을 거지? ]

조금 전의 내 질문처럼 뜬금없기만 한 물음이다. 그러나 나는 더 묻지 않고, 단지 작은 목소리로 긍정했다.

“……응.”

[ 그럼 됐어. ]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언니는 마치 다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하고는 평소처럼 웃었다. 마지막으로 듣는 걸지도 모르는 웃음소리가 가슴 속 어딘가를 꽉 짓누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통증을 무시하고 언니에게 웃음을 되돌려주었다. 최대한 편안하게 웃으려고 노력하면서, 언니에게 들리도록 소리 내어 웃었다.

이제는 정말 가봐야 한다며 서두르는 말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쉽게만 들렸다.

[ □□아. 다음에 또 전화할게. ]

언니의 목소리가 도시의 소음과 바람 소리에 섞여들며, 내 이름이 마구 뭉개졌다. 하지만 제대로 듣지 못했어도 괜찮았다. 언니가 마지막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변함없으니까.

“응, 알았어. 빨리 들어가, 언니.”

[ 남자친구 얼굴 한번 보자는 거 농담 아니니까 생각해보고! ……어쨌든, 밥 잘 챙겨 먹어. 이제 끊는다! ]

“응.”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전자음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는 화면이 휴대 전화 위로 떠 올랐다. 나는 한참을 그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어느새 단테가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단테. 언제 나왔어?”

“방금.”

방금이라면 언제? 나는 그렇게 물으려다가, 입술만 몇 번 달싹이고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내가 정말로 묻고 싶은 건 이게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전화하는 걸 들었어? 지금껏 알아차리지 못한 걸 보면 멀리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언니 목소리도 들렸어? 전화하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진작 알아차렸지? 내가 몇 번이고 언니라고 불렀으니까.

그래, 언니라고…….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휴대 전화를 부서져라 쥐고 있었던 것 같다. 단테가 조용히 내 손을 잡고 휴대 전화를 얽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떼어내기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내 손이 하얗게 변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순히 단테에게 휴대 전화를 넘기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니까 좋았어. 아, 이런 말투였었지. 그리고 이런 성격이었지. 여러 생각이 들기도 했고.”

“…….”

“그리 오래 통화하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많이 지난 느낌이야.”

나는 스쳐 지나가듯이 작게 웃어 보였지만, 아까부터 가라앉은 단테의 얼굴은 돌아올 기미가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슬퍼하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불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내게 고정되어있는 보라색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툭 던지듯이 질문했다.

“내가 언니랑 통화했다고 다른 마음을 먹을까 봐 무서워?”

“……아니.”

“그럼 표정이 왜 그래?”

나는 단테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다시 웃었다. 그러나 단테가 한 대답이 내 웃음소리를 완전히 잦아들게 만들었다.

“네가 슬퍼하고 있잖아.”

“…….”

“넌 네 표정이 어떤지 모르지?”

모른다. 평상시와 같은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게 일그러트리기라도 하고 있었던 걸까.

손을 올려 더듬더듬 얼굴을 짚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내 표정을 알 수 없었다. 멍해진 나를 앞에 두고 단테는 휴대 전화를 다시 내 손 안에 돌려주었다.

“가끔은 네가 눈물이 많았으면 좋겠어. 그럼 울고 난 뒤에 마음이 얼마나 편해지는지도 알 수 있을 텐데.”

“……난 너처럼 펑펑 못 울어.”

“하지만 어떻게 울든, 울기라도 하면 내가 달래줄 수는 있잖아.”

그 말을 듣자 뒤늦게, 단테가 나를 위로하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순간 몸에서 긴장이 빠져나가고,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미소가 새어 나온다.

“지금 위로를 받고 싶은 기분은 아니니까 괜찮아, 단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해졌는걸.”

“…….”

“방금 통화에서 내게 꼭 필요한 말을 들었거든.”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지금 내 표정은 여전히 슬퍼하는 표정일까, 아니면 기뻐하는 표정일까.

“언니가 자기는 어떻게든 행복할 거래. 내가 없어지더라도, 한동안 그리워하다가 나중에는 괜찮아질 거래.”

“……응.”

“그러니까 나도 괜찮아.”

그리고 괜찮을 거고.

내가 천천히 팔을 벌리자, 단테가 곧 몸을 웅크리며 내게 안기듯 나를 껴안는다. 이렇게 안고 있으면 차가워졌던 손도 다시 따뜻해지겠지.

품 안에 들이찬 온기를 느끼며, 나는 단테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골목길, 다시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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