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2. (112/181)

112.

방 안에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나는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은 채 입을 다물었고, 단테는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보라색 눈동자가 눈꺼풀에 가려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몇 번.

얼마 지나지 않아 단테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나도 몰라.”

……뜸을 들인 것치고는 싱거운 대답인데.

내가 인상을 얕게 찌푸리든 말든, 단테는 사그라졌던 웃음기를 다시 피워올렸다.

“여기로 넘어오는 것을 준비하는 데에만 급급했는데, 귀환까지 생각할 정신이 어디 있었겠어.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면 지금부터 찾아봐야지.”

“그것참…… 대책이 없다는 말처럼 들리네.”

“대책이 없다기보다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지.”

그 말에 고개를 휙 치켜들자, 단테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가 순식간에 감쪽같이 평소처럼 돌아왔다.

“농담이야.”

농담처럼 안 들렸거든? 부러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속으로만 투덜거리는데, 단테가 은근슬쩍 이야기를 원점으로 되돌려놓았다. 

“돌아갈 방법이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든, 이거 하나는 확실해. 지금 당장은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거.”

“…그래, 그렇겠지.”

나는 중얼거리듯이 대답했다. 저 ‘지금 당장은’이라는 말의 기간이 확실치 않다는 게 못내 신경 쓰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애초에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답을 듣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긴 하지. 결국, 단테가 그 잘난 능력으로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만들어 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단테. 너, 마법은 쓸 수 있어?”

애초에 돌아갈 방법을 이야기하려면 이것부터 물어봤어야 했는데. 단테의 말이 워낙 충격적이다 보니 새까맣게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내가 살던 차원,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는 마법 같은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쪽 차원과 이쪽 차원에는 무수히 많은 차이점이 있었지만, 이 차원에서는 환상의 영역으로 취급받는 것이 그 차원에서는 일상이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이 차원에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건 전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아닐까? 마력이 아예 존재하질 않는다거나, 마법을 사용하기 힘든 환경이라던가. 가정할 수 있는 상황은 많잖아. 

초조한 마음이 은은하게 올라오려던 찰나, 눈을 깜빡이던 단테가 손가락을 뻗어 허공에 원을 그렸다.

어느새 익숙해진, 하지만 새삼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신비한 빛이 눈앞에서 맴돌았다.

“응, 쓸 수 있어. 공기 중에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마법을 쓰는 것 자체가 어색하긴 하지만.”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공간에서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야?”

“마법은 마법사의 체내에 있는 마력으로 시전하는 거라서 그래. 하지만…….”

설명하기에는 다소 모호하다는 듯, 단테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법을 쓰고 빠져나간 마력이 아주 느리게 채워진다는 느낌은 있어. 안 채워지는 건 아닌데, 저쪽과 비교하면 채워지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야.”

공기 중에 마력이 없다면 아예 안 채워지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순간 의아해졌지만, 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겠지 싶어서 금방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럼 마법을 최대한 사용하지 말아야겠네.”

“응. 돌아갈 방법을 찾을 때 또 얼마나 마력을 써야 할지 모르니까, 미리미리 아껴둬야 할 것 같아.”

“좀 아쉽긴 하다. 네 순간 이동 마법 정말 편했는데.”

“이참에 걷는 시간을 좀 늘려봐, 에이…….”

“됐어. 걸을 바에야 집 안에 갇히고 말지.”

평이하게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나는 아까부터 은연중에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언뜻 들으면 단테는 자기 생각을 다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면서도 나에게 물어보리라 짐작했던 질문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예를 들면, 단테가 돌아갈 방법을 찾았을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를.

단테는 돌아가기 싫다는 말을 대놓고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함께 돌아가자는 말도 꺼내지 않았다. 

단지, 돌아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며 유예 기간을 뒀을 뿐.

내심 단테라면 절대 나와 떨어지려고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물어보지 않는 이유가 뭘까? 

무슨 답이 나올지 불안해서? 

내 의사는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밀어붙일 생각이라서?

생각에 잠긴 머리와 달리 입은 착실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긴, 마법을 맘껏 쓸 수 있어도 쓰면 안 되는 상황이긴 하지.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큰일 날 테니까.”

“왜?”

“여긴 마법이 아예 없으니까. 외계인으로 취급받아서 정체불명의 연구소에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잘…….”

잘 숨겨야 할걸. 그렇게 말을 하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비단 마법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나?

새삼스레 단테를 자세히 살펴보니, 오늘도 변함없이 예쁘고 잘생긴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보랏빛이 도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별이 박힌 듯한 눈동자. 잘생긴 거 좋지. 좋긴 한데…….

이 차원에서는 어떤 외국인도 이런 머리 색이나 눈 색을 가지고 있진 않을 거라는 게 문제다.

잠시 단테와 멀찍이 떨어져서 그 모습을 샅샅이 뜯어보다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염색이나 렌즈라고 우기면 어떻게든 되겠지…….”

“에이? 어디 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는 나를 단테가 의아하게 올려다보았다. 그대로 자기도 따라 일어나려는 걸, 가볍게 단테의 어깨를 누름으로써 저지했다.

“어차피 너 지금 이 상태로는 밖에 못 돌아다녀. 일단 나 혼자서 갔다 올게.”

“갑자기 어디 가는 건데?”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네 옷 사러.”

* * *

“솔직히 예상하긴 했는데…….”

나는 턱을 괴고 단테를 구경하다가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얼굴이 잘생기면 뭘 입어도 되는구나.”

그러자 단테가 잘 어울린다면 다행이라며 웃었다. 

느지막한 오후가 된 지금, 내 집에는 온갖 종류의 옷들이 널려 있었다. 혼자 남아 있을 단테가 걱정되기도 하고, 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 어색해서 도망치듯 옷을 골라온 흔적들이었다.

안 어울리면 도로 환불하면 되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치수만 확인한 뒤 이것저것 집어왔는데. 

“잠깐만 뒤로 돌아봐. …이것도 괜찮네.”

전부 다 어울리다 보니 그냥 다 입어야 하게 생겼다.

자기가 잘생겼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았다던 단테는 옷에도 영 관심이 없는지, 자꾸만 자신의 모습이 내 마음에 드는지부터 물었다. 하지만 이쪽 분야에 크게 호불호가 없는 나도 그다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냥 입는 옷마다 짜증 날 정도로 잘 어울린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이지.

“옷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아?”

“음… 입다 보면 적응될 것 같아.”

결국 어색하기는 하다는 소리네. 하긴, 의복 형식이 이렇게나 다른데 곧장 편하다고 말했으면 그게 더 이상했을 터다.

나는 단테가 이미 입어 본 옷들을 대충 정리해 옆으로 치워두며 중얼거렸다. 

“나중에 매장에 직접 가서 입어보고 사는 것도 재밌겠다.”

“지금 사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고도 남을 것 같은데?”

“필요의 문제가 아니라 취미의 문제야. 갑자기 인형 놀이에 재미가 붙을 것 같아서 큰일이네.”

인형 놀이가 뭔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듯, 단테의 안색이 살짝 나빠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남은 옷을 착실히 챙겨 자신의 팔에 걸어두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서 또 한 번 옷을 갈아입고 나온 단테가 머리에 쓴 모자를 만지작거렸다.

“근데, 에이. 모자는 왜 계속 써야 해?”

“네 머리 색이 이쪽에선 자연적으로 나올 수 없는 색이라서 그래. 다들 염색으로 볼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너무 눈에 띄어.”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얼굴을 다 드러내고 다니면 분명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생각만 해도 피곤해져서 앓는 소리를 내니, 단테가 그게 뭐 어떠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냥 시선이 몰리는 거면 나도 신경을 안 쓰는데. 여긴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있다니까. 예쁘고 잘생긴 사람이 과한 주목을 받는 게 당연시되는 시대라고.

“단테. 누가 붙잡고 어디 좀 가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했지?”

“…혹시 내가 진짜 어린애로 보여?”

“아무리 이야기해도 불안해서 그러지.”

게다가 이 차원에 대한 지식이 없다시피 한 단테는 내게 어린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으니-안 그래도 가끔 우리 사이에 나이 같은 건 없다며 주장하곤 한다-생각한 것을 그대로 입 밖에 내놓지는 않았다.

“일행 있다고 이야기하고, 혹시 명함 같은 걸 떠넘기더라도 다 거절하라고.”

“그래. 잘 기억하고 있네.”

“기억한 게 아니라 그냥 상식이잖아, 에이.”

황당하듯 덧붙여지는 목소리는 무시했다.

“아마 그게 마지막일 것 같은데.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옷은 없었어?”

“난 네가 좋으면 다 좋아.”

“그래, 그럼 그냥 다 입자.”

내 말의 어디가 그렇게 마음에 든 건지 단테는 연신 화사하게 미소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단테에게 해야 할 잔소리 목록에 표정 관리와 관련된 항목도 추가했다. 자꾸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을 홀려서 성가신 일을 만들까 봐 걱정하게 만드네.

이 세상에 남편 입꼬리 단속까지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아.

“생각해 보니까 여기선 결혼했다고 말 못 하고 다니겠네.”

옷을 챙기던 단테가 그대로 손에 있는 모든 걸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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