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 (111/181)

111.

아까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난 후유증인지 뭔지,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내가 앓는 소리를 내며 완전히 몸을 일으키자,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던 단테가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어디 아파, 에이?”

“아픈 건 아니고 그냥 피곤한 것 같은데…. 아니, 머리가 아픈 건 맞아.”

하지만 머리가 아프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다. 나는 습관처럼 미간 사이를 꾹 눌렀다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내렸다.

아무래도 단테와 나는 지금 내 방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니, 내가 그 차원으로 넘어가기 전에 보았던 것과 똑같은 방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혼자 살았던 만큼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게 당연하지만, 책상에 올려놓은 컵에서 김이 새어 나오는 것까지도 똑같으니 말 다 했지.

사라졌던 구성품이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한치의 위화감도 없도록 한다는 게 이런 말이었나. 순간 내가 겪었던 수많은 세월이 허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뭐, 시간이 많이 지난 채로 돌아오는 것보단 낫지만…….

멍하니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단테가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짚었다.

“열은 안 나는데.”

“머리 빼고 아픈 곳은 없어. 그보다 여기 앉아봐, 단테.”

나는 침대에 내려와 앉으면서 단테를 함께 끌어 내렸다. 단테는 내가 끌어당기는 대로 끌려오더니, 침대를 등받이 삼아 바닥에 앉았다.

어디 의자에라도 앉히고 싶지만 그러면 이렇게 나란히 못 앉는다. 내 방에 의자라고는 내가 쓰던 것 하나뿐이니까.

나는 단테를 잠시 바라보다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하기로 마음먹었다.

“단테. 내가 지금 상황 파악이 똑바로 안 돼서 그런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 질문에도 단테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뭐라 대답할지 갈피를 못 잡는듯한 모습에, 나는 더 구체적으로 풀어 설명했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구멍에 삼켜지면서 내가 차원 이동을 했고, 너도 같이 휘말려서 함께 온 상황이 맞냐고.”

“음, 아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어.”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옅게 인상을 찌푸렸지만, 단테는 내 시선을 피할 뿐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잘못을 실토하기 직전의 사람처럼 보인다는 걸 깨달았을 때.

지금 당장 숨겨도 어차피 소용없을 거라는 판단이 든 건지, 단테가 금방 곧이곧대로 털어놓았다.

“네가 구멍에 삼켜지면서 차원 이동을 한 건 맞는데, 내가 어쩌다 휘말린 건 아니야.”

“어쩌다 휘말린 게 아니면…….”

야, 너 설마. 내 얼굴에 번지기 시작하는 경악을 확인한 단테가 슬쩍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널 따라왔어. 네가 그 구멍에 휩쓸리자마자 바로.”

“따라왔… 아니, 잠시만.”

내용이 어렵다거나 말을 못 알아들은 것도 아닌데, 머리가 너무 복잡한 탓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단테의 말을 끊었다가, 미친 듯이 꼬여 들어가는 생각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나를 따라왔다고?”

“응.”

아니, 대체 어떻게?

그리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가 무슨 옆 나라도 아니고, 따라오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따라올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리 간단하게 풀릴 수 있는 일이었다면, 마샤를 가지고 협박했던 그자가 건물을 무너트리지도 않을 것이다. 안 그래도 아팠던 머리가 더더욱 깨질 듯이 아파 오려고 했다.

“뭘 어떻게 했길래 따라올 수 있었던 거야? 그, 고대 마법인지 뭔지라도 썼어?”

단테는 잠깐 말을 고르는 듯이 침묵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건물이 무너지던 그때, 내가 널 찾아왔던 거 기억나?”

“…응.”

뛰어내리던 걸 딱 들켜서 혼났던 그때 말이지. 지레 찔린 내가 단테의 눈치를 살폈지만, 단테는 별다른 반응 없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때 사용한 마법은 간단히 설명해 추적과 관련된 마법이었어. 하지만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복잡하고, 또 고차원적이지.”

“내가 마력 부적응자가 되어있었는데, 그게 통했어?”

그렇게 말한 나는 뒤늦게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혹시 나를 그 사람에게 보냈을 때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한 거야?”

그 사람이 보내준 좌표로 건너갈 때도 단테의 순간 이동 마법을 사용했었다. 마력 부적응자면서 마법을 이용했던 탓에, 그자가 내 상태를 짐작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고. 

그때 나와 단테가 사용한 방법이란 건 사실 거창한 게 아니었다.

마력 부적응자는 마력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든 마력을 받아들이게 만든다면, 마법의 발현 또한 성공시킬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이렇지. 마력 부적응자가 그릇이고, 마력이 물이라고 하자.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건지 아래가 너무 깊은 건지는 몰라도, 도저히 물이 담기지 않는 그릇 안에 물을 담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그릇에 물을 부으려 하지 말고, 물속에 그릇을 넣어버리면 된다. 

아예 사람이 그 안에서 잠겨버릴 만큼,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마력의 양보다 몇 배에 달하는 양을 때려 부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마력에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게 거짓말은 아니었던 만큼 죽도록 아팠지만. 나는 순간 이동 후 아무도 모르게 앓았던 걸 떠올리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단테가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부정했기 때문이었다.

“너를 보낼 때도 내 마력을 전부 끌어모으고 나서야 마법이 발현됐는걸. 그보다 더 복잡한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 쓸 수 있는 방법은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한 건데?”

곧바로 대답해줄 줄 알았는데, 단테는 잠시간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에이. 너 거기서 다쳤지?”

“어? 아니, 안 다쳤는데?”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부정했다가, 뒤늦게 손에 상처가 났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 이후에 놀랄 만한 일이 워낙 많아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슬그머니 덧붙이는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기어가는 것처럼 들렸다.

“생각해보니까 손을 조금 다쳤던 것 같기도 하고…….”

단테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 주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네가 상처를 입었다가 나았다는 건 원래 몸 상태로 돌아갔다는 거고, 그때 네 마력 부적응자 상태도 사라졌어. 네가 원래대로 돌아오자마자 추적 마법을 걸어서 널 찾아간 거야.”

“내가 원래대로 돌아온 건 어떻게 알았는데?”

“그냥 마법이 걸릴 때까지 계속 시도했어.”

“…….”

“이틀 날밤을 새웠지.”

아무렇지도 않은 어조에 할 말을 잃은 건 내 쪽이었다. 불안해서 잠을 못 잘 거라 생각은 했어도, 이런 이유로 밤을 새우리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내 반응에 쐐기를 박듯 단테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때 쓴 추적 마법은 처음부터 네가 차원을 이동할 때를 대비해서 만들었던 거야.”

“…뭐?”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샤에게 다시 연락이 오기 전에, 내가 일주일간 왜 그렇게 바빴는지 생각해본 적 없어?”

완성 시키느라 고생 좀 했지. 태연한 목소리 사이로, 나는 유례없는 두통이 닥쳐오는 걸 느꼈다.

“처음부터…… 나를 따라올 작정이었다고?”

단테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차마 잇새로 앓는 소리가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를 따라왔다는 사실 자체만 따진다면 속 편히 감동이라도 받아보겠으나, 이 상황은 그렇게 간단치가 않았다.

왜 넘어온 사람 대신 내가 머리 아파해야 하는 거지? 얘는 뭔데 지금까지도 태연하기 짝이 없단 말인가?

잠시 머릿속을 엄습하는 두통을 고스란히 느끼다가,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단테.”

“응.”

“내가 이 차원과 그 차원은 많이 다르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았어?”

고향에 대해서 하나하나 자세히 말한 적은 없으나 이것만큼은 이야기해줬던 기억이 난다. 

처음 차원을 이동했을 때, 내가 단순히 다른 나라에서 눈을 뜬 게 아니라 완전히 낯선 차원에 떨어졌다는 걸 한 번에 알 수 있었다고.

그만큼 이곳과 저곳은 많이 달라서 적응하는데 깨나 고생했다고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차원 이동의 산증인이 그렇게 이야기해줬는데, 앞뒤 안 가리고 차원을 넘어올 생각이 드나? 다시 지끈거리려는 머리를 애써 붙잡는데, 단테가 뻔뻔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라서 다 똑같았다며.”

아, 그걸 여기다가 갖다 붙인다고?

“지금 말하고 있는 게 그런 뜻인 것 같아?”

“아니. 그건 네가 어떻게든 적응을 했다는 말이었겠지.”

단테가 한쪽 다리를 세우며 고쳐 앉더니,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았다. 단테의 표정은 천연덕스럽다 못해 나른하기까지 해서 애꿎은 내 속만 답답해졌다.

“하지만 너도 저쪽 차원에서 적응했는데, 나라고 못 할 이유가 있어?”

“내가 적응하기까지가 그렇게 수월하지만은 않았으니까 이러지…….”

분명 내가 왜 이러는지 알 텐데도 저런다. 슬쩍 인상을 찌푸리자, 기분을 풀라는 듯이 단테가 애교스럽게 웃었다.

“이제 와서 뭐라 해도 소용없어. 이미 너를 따라왔는걸.”

따라온 거랑은 별개로 뭐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마음을 꾹 참고, 단테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따라왔다는 말이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지.”

너는 나랑 상황이 다르잖아. 덧붙이는 말에, 단테가 대답 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마치 내가 무슨 질문을 할지 알고 있는 사람처럼.

나는 가슴 아래에서 널뛰는 감정들을 무시하며 단테에게 물었다.

“네가 돌아갈 방법이 있는 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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