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6. (106/181)

106.

K6.

케이드는 자신의 손안에 모여드는 빛무리를 느꼈다.

“정령이 신호를 보내는군요.”

그 말에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마탑주가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점차 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케이드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자가 결국에는 공격을 시도한 모양입니다.”

“…그래, 정말로 대화만 원했을 리는 없지.”

그렇게 말하고는 뒷말을 기다리듯 보랏빛 시선이 케이드에게 닿았다. 마탑주가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는 자명했기에, 케이드는 별다른 물음 없이 순순히 내뱉었다.

“정말 시도만 받았을 뿐, 여전히 다친 곳 하나 없습니다.” 

“에이가 전해오는 말은 아직 없고?”

“예.”

살아있는 통신구가 된 기분이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무덤덤하게 대답하자, 마탑주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지금 서 있는 곳은 에이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곳이자, 마탑의 순간이동 마법진이 자리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 쓰였을 마법진은 이틀 사이에 모조리 지워졌고, 마탑주는 그 공백 위로 새로운 마법진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가 정확히 무슨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지는 알아차릴 수 없었지만.

“마법이 통하지 않는 상태일 텐데, 이걸 그리는 의미가 있습니까?”

“하지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것보단 낫지.”

이것이 에이를 안전하게 귀환시킬 수단 중 하나라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장장 이틀 동안 그려낸 마법진을 바라보며, 마탑주는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정령으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도 불안하니까.”

“…….”

“잡생각을 안 하려면 뭐라도 하는 게 나아.”

그 말이 일종의 자기 세뇌처럼 느껴지는 것은 분명 착각이 아닐 터다. 케이드는 단지 손안의 빛무리를 바라보며 침묵했고, 곧 마탑주의 시선 또한 이곳에 와닿았다.

케이드는 지금, 정령을 소환한 뒤 에이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각인시킨 상태였다. 정령 소환에 대한 부담은 모두 자신에게 오되, 정령들이 주인의 말을 따르듯 에이의 요구 또한 들어줄 수 있도록.

일종의 편법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거창한 헌신 또한 아니었다.

그는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었다. 에이가 그곳에서 다치는 일이 없어야 마탑주가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뛰는 일도 없을 테니. 

마탑주의 전력을 뼈저리게 실감한 적 있는 케이드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적어도, 그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옆에서 케이드를 지켜본 이의 감상은 또 다른 모양이었다.

“왜 우리를 도왔지?”

빛무리를 가만히 쳐다보던 마탑주가 짤막하게 내뱉었다. 케이드는 그 말에 대답하려다가, 입을 열자마자 갈피를 잃고 잠시 멈칫했다.

막상 말로 직접 표현해야 하는 순간이 오니 저 스스로에게도 혼란이 찾아온 탓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에이를 돕고 있지? 단순히 정령들에게 에이를 지키라고 부탁했다면, 정령을 소환하는 것도 모자라 각인까지 하며 무리한 부담을 감당할 일은 없었을 것을.

하지만 제 속내를 자세히 곱씹어보기도 전, 마탑주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어쩐지 기분이 나빠진 듯한 낯으로.

빛무리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은 어느새 케이드를 향한 채였다.

“에이가 전부 이야기해주지는 않았지만, 네 태도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말은 들었어.”

“…….”

“하지만 내가 볼 때, 너는 마치 에이에게 빚을 진 듯이 구는 것 같은데.”

“……예.”

에이는 과연 어떻게 이야기했을까? 자신이 보였던 태도에 대해서, 마탑주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자신이 가진 일방적인 부채감의 원인은 명백했다. 에이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정 내내 그녀를 함부로 대했지만, 자신의 태도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는 후회.

그러나 그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필연적으로, 자신이 에이에게 어떻게 굴었는지에 대해 언급해야 했다. 하지만 가감 없이 이야기하자니, 마탑주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신경 쓰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케이드는 간신히 질문했다.

“…저와 관련해서 특별히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까?”

그 질문에는 마탑주에게 말을 전했을 대상이 생략되어 있었으나, 누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정말 어디까지 말해야 하나 고민이 되어 물었을 뿐인데, 마탑주는 그 의미를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이내 마탑주가 얕게 인상을 찌푸리더니 경계 어린 어조로 물었다.

“그게 왜 궁금하지?”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특별히 들은 이야기는 없어. 그냥 네가 호의적이지 않았다, 딱 여기까지만 들었을 뿐이지.”

그러다가 잠시 침묵하더니.

“그러니까 궁금해하지 마. 에이가 너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해하지는….”

않았던 게…… 맞나.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어쩐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자기 자신을 속이고, 제 마음을 부정하는 기분.

왜 에이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가 궁금했던 거지? 

늘 그랬던 것처럼, 에이를 생각할 때마다 찾아오곤 하는 혼란이 케이드를 덮치려고 했다.

그것을 확인한 마탑주가 또 무어라 입을 열려고 하는데.

케이드의 손안을 가만히 떠돌고 있던 빛무리가, 갑작스레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단순히 상황을 전달하려는 것을 넘어서서 마치 소환자의 주의를 끄는 것처럼.

“……!”

에이가 정령을 통해 말을 전해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 * *

그래, 인정하자. 나는 눈앞의 사람이 미쳤다고 생각하면서도 정도 이상으로 돌아버리지는 않았다고 믿고 있었나 보다.

새삼스럽게 왜 이런 말을 하냐면, 어쨌든 사람인 이상 자기 목숨은 아낄 거라고 생각했어서.

하지만 지금 남자의 태도를 보면 그것조차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내가 저 마법을 어떻게 완성했는데, 이대로 모두 끝난다고?”

지금 남자에게는 정령을 파훼할 힘이나 이 상황을 해결할 타개책이 없었다. 자신의 입으로 턱없이 부족하다고 표현했던 마력은 차원 이동 마법을 발동시키기 위해 대부분을 써버렸고, 그나마 남아있는 것조차 나와 대치하면서 모조리 사용했다.

혹시라도 다시 마샤를 이용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나에게는 다행인 일이었지만.

이대로 귀찮은 일은 다 끝났으면 좋겠다는 희망과 함께 자연스럽게 불안감이 차올랐다. 나를 잡아채기 위해 발악하던 남자가 곧 무형의 힘으로 묶여 바닥에 쓰러졌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바닥에 떨어진 단도를 저 멀리 걷어찼다.

분노에 못 이겨 몸을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제 남자의 기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더 선택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이대로 우릴 내보내 줄 생각은 없어?”

몸을 숙이며 남자를 들여다보니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 말에 남자가 고개를 휙 치켜들었다가 짓씹는듯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이제 와서 너희만 좋은 짓을 하라고?”

“그래. 사실 기대도 안 했어.”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그럼 그렇지. 

남자와 눈을 맞추기 위해 쪼그려 앉던 것을 그만두고, 다시 몸을 일으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정말 강제로 이곳에서 탈출하는 방법밖엔 안 남은 거네.

남자가 힘을 잃은 이상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방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오니 답답했다. 문을 열고 나간다고 곧바로 죽는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다 괜찮을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는 사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발악하던 남자가 갑작스레 조용해졌다.

순식간에 찾아온 침묵을 꺼림칙하게 확인하기도 전.

“정말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 모든 일이 실패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둔 게 있었지.”

순순히 포기할 생각은 없다는 듯, 남자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실패하면 그냥 실패하는 거지, 또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해놓았단 말인가. 당연한 수순처럼 머리 한구석이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남자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굳이 다른 걸 생각해낼 필요도 없었어. 내 부하들은 이미 마탑놈들에게 다 처리되었고, 나도 잡힌다면 그들과 같은 결말을 맞게 될 테니.”

정령에게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게 선연히 느껴지는데도, 남자는 마지막까지 여유를 가장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 어떡하겠나. 실패할 것 같으면 길동무를 골라 함께 가는 수밖에.”

“……뭐?”

“더 정확하게 말해줄까?”

입꼬리를 찢어질 듯 올린 미소를 내비쳤다가.

“이 건물이 지금부터 무너지기 시작할 거라는 소리야.”

그 상태 그대로, 폭탄 같은 발언을 터트렸다.

건물이 무너진다니. 사실 여부를 떠나 그 문장 자체를 알아듣지 못했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내가 표정을 굳히자 남자는 있는 힘껏 웃음을 터트렸고,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차피 잡히면 죽는 일밖에 남지 않았겠다, 혼자 죽기는 싫으니까 누구 하나라도 잡아서 같이 죽겠다는 말 아니야. 와, 진짜. 미쳤다 미쳤다 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네.

소위 말하는 너 죽고 나 죽자는 발상을 실현하려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이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기껏 해봐야, 남자를 기절이라도 시키고 탈출하면 되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나 했건만.

나는 어느덧 건물 전체에서 울리기 시작하는 진동을 느끼고, 아주 잠깐 격렬한 현실 도피 충동에 사로잡혔다.

납치고 마법이고 뭐고 그냥 집에 갈 수만 있으면 좋을 텐데. 

“어디 한 번 재주껏 빠져나가 봐.”

하지만 순간적으로 몰려온 극도의 피곤함도 오래 가지 않았다.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며 억지웃음을 흘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 길로 뒤를 돌았다.

졸지에 무너지는 건물에서 탈출기를 찍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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