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단테의 설명은 요컨대 이러했다.
한 세기에 한 명꼴로 매우 드물게 마력에 격렬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태어나곤 하며, 그들을 통칭해 ‘마력 부적응자’라고 부른다고.
마법부터가 대중에게 신묘하며 낯선 분야이니, 마력 부적응자의 존재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마탑의 마법사들은 그들에 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다고 한다.
그 연구를 통해 알아낸 특징 중 하나가…….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거구나.”
나는 마법 자체를 원천 차단할 방법에 관해서 물었고, 단테는 마력 부적응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대화의 흐름이 설명하는 바는 명백했다.
“단테. 나를 마력 부적응자로 만들 방법이 있는 거지?”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지만, 단테의 복잡한 표정이야말로 내 질문에 대한 긍정이었다. 인내심 있게 단테가 입을 열기만을 기다리며, 의미 없이 펜으로 종이 위를 툭툭 두드렸다.
마침내 한숨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백지 위에 잉크로 만들어진 점이 몇 개고 생겨났을 때였다.
“네가 왜 그런 생각을 한 건지는 알겠어. 하지만 그 방법은 안 돼.”
“뭐? 왜?”
제법 괜찮은 발상인 것 같은데. 내가 약하게 인상을 찌푸리자, 단테가 바람이 빠지듯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일단, 한 번 마력 부적응자의 몸을 가지게 되면 이전의 몸으로 되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고.”
“응.”
“무엇보다 그놈뿐만 아니라 내 마법도 통하지 않게 되잖아.”
아. 나는 짧게 신음했고, 단테가 마저 말을 이었다.
“그러면 너를 지키기 위한 보호 마법은 물론이고,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돼.”
확실히 안 된다는 대답이 나올만한 이유이기는 하네.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잠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마법이 통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수작을 사전에 막을 수 있겠지만, 내 안전을 보장할 방법도 잃는다.
한 마디로 순전히 맨몸 싸움이 된다 이 말이었다.
물론, 내가 누군가와 무력으로 싸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긴 한데….
눈을 굴려 단테를 흘끔 쳐다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간절한 눈빛이 따라붙었다. 왜 벌써부터 그렇게 봐,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물론 단테가 예상했듯이 순순히 저 말을 들어 먹을 생각은 없었다.
“내가 만약 마력 부적응자와 같은 상태가 되더라도, 그게 영원히 유지되지는 않을걸? 너도 알다시피 내 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꾸만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잖아.”
펜촉을 거꾸로 돌려 나 자신을 가리키자, 자연스럽게 단테의 시선이 이쪽으로 달라붙었다. 침울한 듯 답답한 듯 잔뜩 흐려진 보라색 눈동자를 보며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쩌면 마력 부적응자가 되어보려는 시도조차 실패할 수도 있겠지. 작은 상처조차 순식간에 나아버리는 판국이니.“
“…….”
“그러니 한 번쯤은 시도해볼 만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니 아무 대답 없이 시선만이 집요해졌다. 왜 은근슬쩍 그것만 이야기하고, 다른 건 말하지 않느냐는 거겠지.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비슷한 맥락으로, 거기서 어떻게 다치든 어차피 다 낫지 않을까 하는데….”
“에이.”
“음, 미안.”
사과는 거의 본능적으로 잽싸게 내뱉어졌다. 뒷말로 ‘그런데도 보호 마법을 꼭 걸어야 할까?’라고 이으려던 것을 관두고, 나는 단지 입을 꾹 다물었다.
뒤늦게나마 이리 가벼운 어조로 말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내가 되살아나는 것을 몰라서 미쳐있었던 사람을 앞에 두고.
그때의 기억에 여전히 사로잡혀서, 내 사소한 상처 하나하나에 예민한 사람을 앞에 두고 말이다.
단테가 잠깐 마른세수를 하더니 바닥에 긁힐 듯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 그냥은 못 보내.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나도 그냥 해본 소리……. 알았어. 이제 안 할게.”
단테가 내 안전과 관련해서 유독 날이 서 있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본전도 못 찾을 줄은 몰랐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다음 사과하는 버릇을 좀 고쳐야 할 텐데.
이제는 아예 나를 책망하는 듯한 눈빛을 보고, 나는 잠시 눈동자를 굴렸다.
“하지만 마냥 마법으로 둘둘 싸매고 가는 것도 불안하잖아. …무슨 조치를 취해도 된다고 말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그래도, 너를 보호할 수단이 아예 사라지는 것보단 나아.”
참 단호하기도 하지. 나는 다시 턱을 괴며 알게 모르게 투덜거렸고, 단테는 그런 내 손에서 펜을 빼앗아갔다.
그 이후로 다시 마력 부적응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그때 내가 피력했던 의견은 그대로 폐기가 되는 줄만 알았고.
[ 사실 당사자의 의견도 묻지 않고 이렇게 말씀드려도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에이 님을 지키는 데에 마법이 아닌 다른 분야의 힘을 동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
“다른 분야라고 하시면…….”
뭐, 적어도 릴리아나가 케이드의 존재를 언급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 * *
그 일련의 과정 끝에, 나는 아직 이 자리에 멀쩡히 서 있다.
시선만 내려 발아래를 확인해보니 내게 닿지 못한 채 스스로 스러지는 검은 줄기들이 보였다. 가시덤불을 자라나게 하는 마법까지는 손쉽게 이루어졌지만, ‘나’를 잡아채게 하는 마법만큼은 영락없이 실패한 꼴이었다.
역시 단순히 생각하면 안 될 뻔했지.
꿈틀거리는 줄기들에게서 시선을 떼어내 저 먼 곳을 바라보자, 끔찍한 형태의 마법진이 어렵지 않게 눈에 들어왔다.
단테가 내게 걸어주려고 했던 마법들은 전부 위협을 저지하는 종류였다. 나를 해하려 들거나 강제적으로 닿으려고 했을 때, 그 상황에서 날 지켜줄 수 있는.
하지만 차원 이동은 근본적으로만 따졌을 때 위협이나 가해가 아니다.
또한 저 남자는 분명히, 완전한 의미의 동의를 받아내지 않아도 괜찮도록 마법진에 억지를 부렸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마법진에 올라오는 것이 곧 동의이다’라고 수정했겠으나, 과연 그게 끝일까.
이미 한 번 수정을 거쳤는데 두 번이라고 불가능할 리가 없다. 어쩌면 무리를 해서라도 더 큰 억지를 부렸을지도 모르지. 굳이 나를 저 마법진 위로 끌고 갈 필요도 없도록 조건을 바꾸었다면…….
그땐 단테가 걸어준 마법이고 뭐고, 꼼짝없이 차원 이동에 휘말렸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뒤늦게 섬뜩해지려고 했다. 나 진짜 단단히 미친 사람한테 걸려있었네.
보란 듯이 가시덤불을 밟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자, 나를 꿰뚫을 듯한 시선이 진득하게 따라왔다.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는 직전의 것처럼 마냥 여유가 넘치지 않았다.
“마법으로 보호하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저런 몸으로 만들었다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하던 남자는 숫제 혼잣말하는 어조로 빠르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찝찝한 시선이 묘하게 비껴간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게 초점을 맞추지 않은 눈은 그것대로 불안하게만 비쳤다.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지? 저 이를 아끼는 게 아니었나? 마법만 통하지 않을 뿐 맨몸으로 보내는 거나 다름없는데?”
그러다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잠깐만. 너, 이곳으로 올 때는 순간이동 마법으로 왔잖아. 그건 어떻게 가능했던 거지?”
곧이어, 지금껏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살기가 나를 짓눌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겁에 질리다 못해 도망쳤을 정도로 위협적인 기운이었고, 그 순간만큼은 나 또한 곧이곧대로 대답할 뻔했다.
입을 열기 직전에 정신을 차리고 간신히 움츠러든 목소리는 내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걸 네가 알아서 뭘 어쩌게.”
결국, 나도 모르게 공격적으로 대답이 튀어 나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 태도가 남자의 눈에는 많이 거슬린 모양이다. 여태까지 제대로 찌푸린 적조차 없었던 얼굴이 눈에 띄게 일그러지고,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고압적인 어조가 귓가에 울렸다.
“내가 이대로 차원 이동을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안 될 텐데, 자네 말본새는 여전히 한결같군.”
아까 잠깐 ‘너’라고 부르는 것 같더니, 다시 자네라는 호칭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호칭이 돌아온 것이 긍정적인 신호인지, 부정적인 신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건, 저자가 이 상황을 예견하지는 못했다는 거.
아까 정신 사납게 중얼거리던 것도 그렇고, 지금 숫제 대놓고 협박하듯이 굴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행동이 똑바로 머리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듯 보였다. 대놓고 우왕좌왕하며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이대로 이성 한구석이 굳어서 대놓고 날뛰어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상황에서 그런 행운까지 바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나를 노려보던 남자가 곧 억지로 자신의 인상을 누그러뜨렸다.
내게 흔히 보여주던 고분고분한 얼굴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노여움은 완벽하게 숨긴 듯했다.
…방심하게 만들려는 게 이렇게 뻔히 보여서야.
“아니, 그런 사소한 건 됐어. 잠깐 혼란이 왔는데, 내가 이거 하나만큼은 똑똑히 알지. 마탑주가 자네를 매우 아낀다는 거.”
“갑자기 그건 또 왜?”
“마법이 통하지 않는 몸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마냥 내보내지 않았을 거라는 말일세.”
그 말에 무슨 대답을 해야 하나 미처 생각해보기도 전.
방과 복도 간격만큼 떨어져 있던 남자가 내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지고, 곧바로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 깡!
그리고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무언가가 빠르게 튕겨 나가는 소리.
“아하.”
반사적으로 뒤를 돌자, 애써 낯을 가라앉힌 보람도 없이 다시 구겨진 남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내 앞을 막아선 반투명한 형체도.
“정령이로군.”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가 건조하게 가라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