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4. (104/181)

104. 

어쩌다 이런 방법을 선택하였는지에 대해 설명하려면 상황을 약간 되돌려볼 필요가 있다.

정확히는, 마샤가 납치된 뒤 그자가 생각해보라며 주었던 일주일간의 상황을.

적진에 걸어 들어가기로 결정한 사람치고는 태평했던 나와 달리, 그때의 단테는 내게 어떤 마법을 걸어줄지에 대한 고민이 아주 많았다. 

아마 그날도 마탑의 최상층이자 이전에 단테가 은신처로 사용했던 곳에 마주 보고 앉아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같다. 

“그놈의 발상을 빌리기는 싫지만, 다른 사람이 닿을 수 없도록 만드는 건 괜찮을지도 몰라.”

고대 마법이 적혀있다던 책을 덮은 단테가 작게 중얼거렸다. 마땅히 할 일도 없이 단테나 구경하고 있던 차에 그런 이야기가 들려오자, 나는 잠깐 당황할 뻔했다가 곧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 ‘닿을 수 없다’라는 말이 정말 접촉만 차단한다는 거야, 아니면 닿으려는 상대를 공격한다는 거야?”

그렇게 물어보니 마치 뻔한 걸 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당연히 닿으려는 상대를 공격한다는 말이지.”

“넌 가끔 이상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 같아…….”

흘러나오는 한숨을 참지 않고 크게 내쉬었다.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오갈 것이 뻔한 와중에 입으로 직접 내뱉은 게 저 모양이라면, 이후에 이어질 말들도 그다지 멀쩡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일단 내게 닿으려는 사람마다 무차별적으로 공격한다는 것도 너무 위험하게 들리고, 무엇보다 그러다가는 마샤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 안 돼.”

“알았어….”

단호하게 대답하자 단테가 다시 생각에 잠겼다. 어느새 탁자 위에는 정체불명의 수식들이 적힌 종이들로 가득 찼고, 단테는 그걸 하나씩 들여다보았다가 옆으로 치우는 행위를 반복했다. 

아무래도 ‘무슨 조치를 취해도 된다’라는 말이 단테에게는 더 불안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꿍꿍이가 있는 게 뻔히 보이는 와중에 그렇게 이야기하니, 마치 무슨 짓을 하든지 자신을 막지 못할 거라고 장담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그자의 권모술수를 당당히 해치고 마샤를 구해 그곳을 탈출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대놓고 위협을 해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피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그러니 결국 나를 보호해야 하는 단테만 미친 듯이 머리를 굴려야 하는 판국이 된 거고.

나는 완벽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나를 지킬 방법에 대해서 강구하는 단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진작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을 단테가 지금만큼은 미동도 없었다. 얼마나 집중하고 있으면 시선도 눈치채지 못하는 건지.

이런 상황까지 오니, 내가 마냥 평범하기만 하다는 사실이 다소 불만스럽게 느껴지려고 했다. 적어도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있었다면 이런 고민을 반쯤 덜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마냥 단테의 힘에 의지하지 않을 수 있었다면…….

아니, 그렇지만 평범함을 원망하게 만드는 놈들이 잘못한 거 아닌가? 순간 자책에 빠질 뻔하다가, 급하게 제정신을 되찾았다. 살아가는 데에 별 지장이 없으면 됐지, 왜 자꾸 건드려서 나 자신에게 불만을 가지게 만들어. 

힘이 없다는 건 살아가는 게 조금 귀찮아진다는 말에 불과해야 했다. 이렇게 내 안위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게 되는 게 아니라.

새삼스레 분노가 차오르려고 해서 발을 앞뒤로 까닥거리는데, 종이 뭉치를 가만히 살펴보던 단테가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그놈을 만나자마자 불 지르고 나오라고 하고 싶어.”

“또 어쩌다 생각이 그렇게까지 간 거야?”

“어쩌다가 간 게 아니라, 처음부터 생각했던 거야. 그냥 아예 만나지도 말았으면 좋겠고, 만날 거라면 그냥 말도 섞지 않았으면 좋겠어.”

단테의 손가락이 다소 힘없이 탁자를 두드렸다.

“보호할 수단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건, 너를 강제하지 않고서도 꾀어낼 자신이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아무리 불안해도 그렇지, 나를 친구의 납치범에게 넘어갈 사람으로 보면 곤란한데…….”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단테가 헛기침하더니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눈을 피할 목적으로 종이를 쳐다보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정신없이 집중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단지 소파에 몸을 푹 기댔다.

아무리 위험한 사람을 만나는 거라고 해도 사람을 방화범으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단테의 생각이 얼마나 극단으로 치달을 셈인지 모르겠다. 

“거기서 무슨 말을 들어도 빠짐없이 다 이야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어차피 통신구도 챙겨 줄 생각 아니었어?”

물론 그쪽이 추적을 피한답시고 연락을 차단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단테에게 다 털어놓을 작정이었다. 그러면 내가 정말 어딘가 잘못돼서 그편에 선다고 하더라도 단테가 말려주겠지.

하지만 단테는 그것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그렇긴 하지만, 또 그때처럼 깨지는 일이 생길까 봐.”

단테가 흘러가듯 언급한 ‘그때’가 언제인지는 명백했다. 할 말이 없어진 나는 입을 다물었고, 곧 자연스럽게 침묵이 찾아왔다. 

각각 생각에 잠긴 방에서는 가끔 단테의 혼잣말만이 들려올 뿐. 

그 혼잣말마저도 내게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투성이였다.

“마법을 중첩하는 것보다 하나로 엮는 게 낫나? 이런 식으로 만들면 아무리 배치해도 6개가 한계일 텐데……. 아니, 이참에 해보지 뭐. 안 되는 게 어딨어.”

분명 저 ‘안 되는 게 어딨어’라는 말이 다른 마법사들의 분통을 살 거라는 데에 저 귀걸이를 걸 수도 있었다. 어차피 알아들을 수 있는 것도 없겠다, 나는 단테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금세 다른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홀로 지내는 게 익숙한 사람들은 다들 혼잣말하는 버릇이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내 혼잣말 습관까지 되짚어 보며 점점 엉뚱한 곳으로 빠지려던 정신을 깨운 건,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온 단테의 한 마디였다.

“그놈이 무슨 마법을 쓸지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건 정말 아쉬움에서 나오는 푸념 같았고, 실제로 단테는 그 말을 뱉고 나서 별다른 덧붙임 없이 다시 마법진을 조합하는 데에 집중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말이 유독 머릿속에 깊게 꽂혔다. 

무슨 마법을 쓸지 미리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냥 알아낼 필요조차 없도록 만들면 안 되나?

“단테.”

“응.”

나는 등받이에 푹 기대고 있던 허리를 슬금슬금 일으켰다. 손을 뻗어 단테가 쥐고 있던 펜을 뺏자, 당연한 수순처럼 의아한 빛을 띤 보라색 눈동자가 내게 닿았다.

“지금 그놈이 마법으로 나한테 무슨 수작을 부릴지가 걱정인 거지?”

“그게 걱정에 제일 큰 비중을 자리하고 있긴 하지.”

이제 자신의 불안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지, 단테가 담백하게 대답했다. 이것뿐만 아니라 또 뭘 걱정하고 있는지 캐물어 보고 싶어지는 답이긴 한다만.

일단 하려던 말부터 꺼내자 싶어, 나는 펜을 손안에서 한 바퀴 돌리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럼 그냥 나한테 마법이 통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야?”

“뭐?”

단테가 아까까지 쓰던 종이를 내 쪽으로 가져와서, 빈 공간에 낙서하듯이 조그맣게 그림을 그렸다. 간단하게 그려서인지 성의는 없었지만 알아보기에 무리가 되지는 않았다.

“마법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몰라서 구체적으로 설명은 못 하겠는데, 그냥 이런 말이야. 다른 사람의 접촉을 차단하듯 마법이라는 힘을 차단하면 안 되냐고.”

나는 사람 모양 형체를 그린 뒤 그 주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렇게 외부 마법을 가로막는 보호막을 치던가 하는 식으로.”

“……마법을 완전히 차단하는 보호막이, 있기는 하지만.”

잠깐 머뭇거리던 단테가 대답했다.

“모든 종류의 막이 그렇듯, 그 보호막의 주체가 되는 사람은 그 안에서 움직일 수가 없어. 만약에 움직일 수 있도록 개조한다면 분명 어디든지 빈틈이 생길 거고.”

“흠.”

그 말을 듣고 짧게 고민하다가, 이번에는 사람 위에 까맣게 덧칠을 했다.

“그럼 ‘막’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나 자체를 마법이 통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면?”

“…….”

“이건 좀 그런가? 마법을 통하지 않는 몸을 마법으로 만든다니…….”

좀 모순적인 발상이기는 했다. 뒷말을 흐리면서 중얼거리는데, 금방이라도 대답이 날아올 것 같던 건너편이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종이에서 눈을 떼 고개를 드니 금세 눈이 마주치기는 했지만. 어쩐지 미묘한 표정이 된 게, 무언가 생각나기라도 한 눈치였다.

“…너 지금 뭔가 떠올랐지?”

“음…….”

뭘 떠올린 건지 빨리 말하라고 추궁했는데도, 단테는 한참을 머뭇거리며 입을 열지 않았다. 

단테에게 끝내 그 생각을 들을 수 있었던 건 또 도망쳤다간 내 손에 죽는 줄 알라는 협박을 하고 난 뒤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는 듯, 깊은 한숨이 들리더니.

“마력 부적응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

단테는 곧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꺼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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