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M9.
대충 어림잡아도 몇 시간은 지난 것 같은데 왜 안 오는 거지. 갑자기 호화로워진 방에서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있던 마샤는 시간이 지날수록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며칠 만에 만난 친구가, 그것도 납치범의 목적이었던 친구가 사라져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불안해 미칠 것 같은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 방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일밖에 없었다.
에이가 자진해서 따라가길래 일부러 붙잡지 않았는데, 그러지 말아야 했던 걸까? 아까 보았던 게 마지막으로 인사하라면서 준 시간이었던 거면 어떡하지?
만약에 에이가 뒤늦게 돌아오더라도, 어딘가 잘못되어서 돌아온다면…….
점점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빠지던 마샤가 급기야 중얼거렸다.
“…미친 척하고 밖에 나가볼까?”
그럼 에이든 납치범이든 누구 하나는 만날 텐데. 얌전히 방에서 기다렸던 시간들을 물거품으로 만들려던 순간, 때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방으로 들어오는 이는 다행스럽게도 마샤가 여태껏 기다려왔던 사람이었다.
“에이!”
마침 문가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마샤는 에이를 보자마자 반색했다. 머뭇거릴 새도 없이 바로 다가가니,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옷에 핏자국이 비쳐 보이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 달라진 점도 없는 것 같고. 어딜 봐도 헤어지기 직전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조바심에 못 이겨, 에이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볼 작정이었으나.
“에이?”
“…….”
마샤는 한 박자 늦게, 에이의 안색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무표정하던 얼굴과는 대비되도록 인상은 잔뜩 찌푸린 채였고, 마샤가 두 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하는 불안감이 가슴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것도 잠시.
마샤를 피하는 것처럼 벽 쪽으로 등을 돌린 에이가 갑자기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에이!”
기겁한 마샤가 재빨리 에이를 붙잡았지만, 에이가 정말 그 자리에서 먹은 것을 게워내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토할 것 같다는 듯 헛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질 뿐.
반사적으로 에이의 등을 토닥여주며, 마샤는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너 왜 그래? 속이 안 좋아? 그 사람이 뭐 이상한 거 줬어? 아니면 독 같은 걸 먹어서 이래?”
“……그 사람이 준 건,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그럼 왜 이러는 건데!”
거의 울상이 된 채로 소리치자, 작게 숨을 몰아쉬던 에이가 겨우 벽에 기대어 섰다. 그래 봤자 파리한 안색은 여전해서 안심되지 않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잠시 호흡을 고르던 에이가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 말했다.
“그냥 좀, 속이 안 좋아질 만한 걸 보고 와서 그래.”
“속? 거기서 대체 뭘 보고 온 거야?”
그자가 무엇을 보여줬을지 가늠조차 안 된다는 건 둘째 치고, 에이가 이토록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하늘이 무너져도 놀라지 않을 것 같던 애가 이렇게…….
마샤가 아연하게 중얼거리는 사이, 어느새 에이의 호흡은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새하얘졌던 얼굴이 혈색을 되찾은 뒤에야 에이는 한껏 질린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자기 친구한테 인체 실험을 시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인, 인체 실험?”
“응. 갑자기 성과를 보여준다길래 뭔가 했더니, 마물을 이용해 뭘 연구했는지를 보여주더라. 피 냄새나 표본 같은 건 그럭저럭 참았는데, 거기에 있던 사체 중 하나가…….”
말을 이어나가던 에이가 잠시 멈칫했다.
“직접 말로 하려니까 너무 역겹다. 그냥 그 사람이 우리 생각보다 더 미쳤다는 것만 알아둬, 마샤.”
“응…. 알았어.”
어쩐지 뒷말을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모르는 편이 정신 건강에는 더 좋을 것 같은, 그런 직감적인 느낌.
다소 떨떠름하게 대답한 마샤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그런데 너를 데려간 이유가 고작 자기 연구를 자랑하기 위해서야?”
온갖 불안감이란 불안감은 다 부추겨놓고 한 짓이 겨우 그런 거라고? 분명 다른 꿍꿍이가 숨겨져 있을 게 틀림없었다. 인질의 목숨을 걸고 협박을 해도 모자랄 상황에 연구 성과를 보여주다니, 어떻게 보아도 수상하잖아.
마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에이가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연구는 그냥 이 정도로 노력했다는 걸 보여줘서 나를 안심하게 만들 작정인 것 같았고, 그게 본 목적은 아니었어.”
“…본 목적이 뭐길래 그런 것까지 보여주면서 너를 안심시키려고 해?”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마샤는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감지했다. 곧이어 상상하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될 것 같았고, 자신은 이런 상황을 직감했음에도 꼼짝없이 놀라게 될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돌아본다면 예측하는 것을 넘어 확신까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차원을 이동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차원 이동자인 내 도움이 필요하대.”
“뭐?”
“그러면 나도 원래 있던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던데.”
“뭐?!”
그자가 뭘 원하는지는 아무래도 좋지만, 에이가 원래 차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상상치도 못한 일이라 듣는 순간 기절할 뻔했다. 갑자기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리야?
무슨 경위를 거쳐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저 말 자체를 머리가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충격으로 사고가 멈춘 상황에서 마샤는 허둥지둥 입을 열었다.
제대로 이해되는 게 없는 와중에도, ‘돌아간다’라는 말만은 귓가에 똑똑히 박혀서.
본인이 듣기에도 잔뜩 얼이 빠져 있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돌, 돌아가고 싶어?”
“뭘?”
“네가 원래 있던 차원…… 으로.”
뒤로 갈수록 흐려지는 말끝을 느끼며, 마샤는 곁눈질로 에이의 표정을 살폈다.
“여기 온 지 2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잖아. 그러면 네가 원래 있던 차원은…….”
기억도 안 나지 않아? 차마 문장을 끝마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소리 내어 내뱉고 보니 너무 생각 없이 말을 한 것만 같아서.
원래 차원이라는 게 에이에게 어떤 의미일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됐다. 방금 자신이 직접 언급한 ‘200년이 넘는 시간’을, 에이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텨야 했던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이 차원에 온 이후로, 죽어도 죽지 못하는 몸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돌아가지 못하는 한 살아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마샤는 한껏 풀이 죽은 채 입을 열었다.
“미안.”
“아니야. 네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알겠어.”
마샤의 가슴 속에 죄책감이 가득 들어찬 것과는 별개로, 에이는 여전히 한 점 동요도 없이 평온하기만 했다.
“예전만큼 그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사실이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고, 하나하나 기억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
“사실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쓴 것도 있어.”
그 말과 함께, 에이의 얼굴에서 희미한 자조가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 같았다.
“돌아가지 못할 곳을 그리워하면 결국 나만 힘들잖아. 그래서 잊으려고 했고, 절반 정도는 성공했지.”
“절반 정도는?”
“응.”
그 후에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 안의 의미를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짐작하지 못할 세월 속에서도, 고향을 완전히 잊는다는 건 불가능했던 거다. 심지어 그 기억을 가진 당사자가 무수히 노력했음에도.
마샤는 그 기분을 짐작하다 못해 뼈저리게 이해했다.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절망스러운 일인지, 과거를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았다.
마샤 또한 한순간에 고향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었으므로.
하지만 그들의 차이점이라면, 마샤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지만 에이의 시간은 그렇지 않다는 거였다. 마샤가 나이를 먹고 계속 늙어가는 한 상처가 영원히 남을 일은 없었다.
하지만 에이는?
“……돌아가고 싶어?”
똑같은 질문이었지만, 아까와는 사뭇 다른 어조를 띄고 있었다. 조금 더 조심스럽고, 또 약간의 불안감을 담고 있는.
가만히 마샤와 눈을 맞추는 것 같던 에이가 순순히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었지.”
“그럼 지금도 그래?”
당연한 말이지만, 마샤는 에이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거리가 멀어지는 게 아니라 영영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는 거잖아. 게다가 마샤는 이미 친밀한 이를 못 보게 되는 일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아마 에이를 붙잡을 방법은, 많진 않아도 충분하겠지. 모든 일에 무심한 듯 구는 에이는 정을 준 이들에게는 쉽게 물러지고는 했고, 굳이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도 없이 마샤 자신이 말린다면 망설이는 모습을 보여 줄 터다.
더군다나 너한테는 단테가 있잖아. 그 애가 있다면, 이곳에 계속 있어도 홀로 남겨지는 일은 이제 없을 텐데.
하지만 마샤는 끝끝내 자신이 생각한 그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거든.”
에이가 어깨를 으쓱이면서 꺼낸 답이, 일말의 심란함도 내비치지 않고 있어서.
“…그래?”
“응. 하루 정도 생각할 시간을 준다고 했으니, 한 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
이어지는 목소리 또한 태연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정작 마샤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한 번 고민해봐야겠다고?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도 되는 거야?
마샤는 에이가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을 정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녀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 큰 게 분명하다고, 그래서 이곳에 미련을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어깨가 축 늘어지고, 저절로 얼굴이 시무룩하게 변했다. 그럼에도 자신의 기분을 티 내기는 싫어 자연스레 고개가 푹 내려갔다.
새하얀 바닥에 닿은 시야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자신의 신발을 노려보는 일뿐.
그렇게 한참을 울적한 감정에만 젖어있느라, 에이의 시선이 허공 어딘가로 향해있었다는 사실은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