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5. (95/181)

95.

그 시각, 나는 단테를 말 그대로 취조하듯 털고 있었다.

“너 나한테 말 안 한 거 있지? 아니면 숨기고 있는 거나.”

“그런 거 없……. 잠깐만.”

단번에 부정하려다가 찔리는 게 있는지 황급히 말을 멈춘다. 바로 최근에 싸움 비슷한 걸 한 전적이 있다 보니, 본격적으로 따지기도 전에 변명부터 시작하는 모습이 볼만했다.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숨기려던 건 아니야. 그냥 확실해지면 말해주려고……. 안 그래도 오늘 다 말하려고 했어.”

“내가 다른 때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텐데, 지금은 안 되겠다. 너 이리와.”

“진짜 숨기려고 한 거 아닌데…….”

단테가 울 듯한 어조로 말을 이으면서도 내게로 다가오려던 찰나, 돌연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한순간에 얼굴을 확 굳히면서.

“단테?”

“…….”

갑작스럽게 차가워진 분위기에 당황하기도 잠시.

“에이.”

“응.”

“아직 하루 남은 거 맞지?”

앞뒤 맥락이 없는, 하지만 적어도 나만큼은 알아들을 수밖에 없는 질문이 들려왔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저걸 왜 묻는 건가 싶었지만, 나는 일단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주일 준다고 했으니까.”

“그런데 왜…….”

단테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다가, 순간적으로 분노를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를 사리물었다가도 침착함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표정을.

하지만 그 얼굴을 자세히 살필 틈도 없었다. 곧장 단테의 손바닥 위에서 마법진이 그려지며, 허공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자 하나가 떨어졌으니까. 

나는 그 상자가 뭔지 묻기에 앞서 일단 비명부터 목 뒤로 삼켰다.

“……단테, 그거…….”

“아.”

상자를 부술 듯 들고 있던 단테가, 황급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거 피 아니야. 그냥, 음, 실험 용액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실험 용액?”

“응.”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꺼림칙함은 여전하다. 나는 상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시선을 억지로 단테에게 고정시키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실험 용액 같은 게 어쩌다 거기에 묻은 건데?”

단테의 손안에 들어갈 정도로 크기가 작은 상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색의 액체로 물들어 있는 채였다. 그냥 처음부터 색깔이 저랬던 거라 착각할 수 없을 정도로 축축하게. 

끈적한 액체 방울이 단테의 손가락 사이를 타고 내려와 바닥으로 추락했다.

하필 피 색깔이랑 똑같을 건 뭐야. 순간 마샤의 안위에 대한 불안감이 다시 치밀어오를 뻔해서, 나는 잠시 호흡을 고르는 데에 집중했다.

사람 피도 아니고, 그냥 용액일 뿐이라잖아. 아직 마샤는 멀쩡해.

내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알아챈 듯, 단테는 아까보다도 더 장황하게 말을 이었다.

“이걸 전달하는 데에 또 마물을 이용한 것 같은데, 내가 마탑 주변에 아무나 통과할 수 없도록 마법을 걸어놔서…….”

거기까지 말하던 단테가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음, 그래. 무슨 소리인지 알았어.

‘아무나’가 마탑 주변을 통과하려고 시도하면 어떤 꼴이 되는지 심히 궁금해지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일단 저 액체가 내 알 바가 아니라는 걸 들은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껍데기에 신경을 쓰던 것을 그만두고, 단테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줘 봐. 한번 열어보게.”

“…손 더러워져.”

내가 열게. 한껏 낮아진 대답이 들린 직후, 금세 상자 안에 들어있던 내용물이 밖으로 드러났다.

내가 사용했던 것보다는 크기가 조금 작은 듯한 통신구와……. 한 장의 종이.

카드와 비슷한 형태의 빳빳한 종이에는 정체불명의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차마 그걸 다 읽어내려가기도 전에 단테가 종이를 구겨버렸지만.

“편히 죽는 게 사치일 놈 같으니.”

“…….”

온전한 형태로는 처음 듣는 단테의 험한 어조에, 나는 종이를 가져오려던 손을 어색하게 내렸다.

그래, 단테는 저게 뭔지 이해한 것 같으니까. 지금 정체를 알아보니 뭐니 해서 시간을 잡아먹을 필요는 없겠지.

나는 단테의 손에서 통신구를 뺏어서 늘 해왔던 것처럼 연결을 시도했다.

그리고.

“마샤!”

[ ……에이? ]

더 기다릴 필요도 없이, 곧장 화면이 맑아지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붉은 머리, 푸른색 눈. 습관처럼 빠르게 깜빡이는 눈꺼풀까지.

다급하게 이름을 부르니, 조금 얼떨떨한 어조일 뿐 멀쩡한 목소리가 들린다. 비치는 얼굴에도 상처 하나 없고, 겁에 질린 표정도 아니고.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쉴 뻔했다가, 아직 마음을 놓기에는 이르다 싶어 마샤에게 말을 걸었다.

“너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어?”

[ 다친 곳도 없고, 사지 다 멀쩡하기는 한데……. ]

여전히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듯, 어리둥절한 투로 말을 잇던 마샤가 갑작스레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 지금 이런 걸 말할 때가 아니잖아! 에이, 나 납치당했어! 그리고 납치범이 너한테 날 가지고 뭐라도 협박하려는 것 같아! ]

“협박……. 응, 그렇지.”

아무래도 그자가 마샤에게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신의 신상에 대한 것은 물론, 마샤를 왜 데려왔는지도.

순간 마샤가 소리치듯 뱉은 말에 당황했다가,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가족을 포함한 고향 사람들을 모두 죽였을지도 모르는 이가, 지금은 자기 목숨을 빌미로 다른 사람을 협박하고 있다는 걸 안다면…….

음. 그 사실을 알았다면 마샤는 지금 멀쩡하게 대화를 이어갈 만한 상태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 충격으로 인해 공황이 오지 않았다면 다행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침착하게 머릿속으로 정리해보다가, 역시 마샤에게는 최대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만 설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샤의 상태를 더 악화시킬 만한 내용은 최대한 피해 가면서.

“나는 지금 다른 것보다 네가 멀쩡한지가 더 중요해. 마샤, 너 진짜 괜찮아? 어디 다친 데는 없고?”

[ 어, 응. 여기 처음 끌려왔을 때 팔이 유리 조각에 스치긴 했는데……. ]

유리 조각? 그 말에 나도 모르게 표정을 굳히기라도 한 건지, 마샤가 빠르게 말을 마저 이었다.

[ 누가 일부러 찌른 건 아니고, 우리 집 창문이 깨지면서 그랬던 거였어. 어쨌든 그래서 팔에 생채기가 남았는데, 그것도……. ]

못내 찝찝하다는 표정. 잠시 머뭇거리는 것 같던 마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그 사람이…… 마법으로 치료해줬어. 상처를 발견하자마자. ]

“그렇구나.”

마샤의 목숨을 가지고 대화를 운운한 사람인만큼 ‘멀쩡하다’라는 말이 ‘숨은 붙여 놓겠다’라는 의미일 줄 알고 긴장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불행 중에 다행이지.

마샤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곧장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그럼 너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알아?”

[ 그건…… 모르겠어. 그냥 눈 감았다가 뜨니까 모르는 곳이었고, 텅 빈 방에 갇혀 있었어. ]

“텅 빈 방에……?”

그러고 보니까 통신구 뒤편에 비치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뒤늦게 위화감을 느끼기도 전, 마샤가 힘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창문이 있기는 한데 아무것도 안 보여. 방 밖에 또 다른 방이 있는 것처럼, 정말 ‘아무것도’ 없기만 해. ]

“…….”

[ 온통 새하얗기만 하고, 방도 방이라 말할 수도 없이 가구 같은 것도 안 보이고……. ]

말을 이어가던 마샤가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숙였다.

[ 근데 제일 이상한 건, 이 방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나 자신이라는 거야. ]

“……마샤.”

[ 그냥 의자에만 앉아있는데 몸이 찌뿌둥하지도 않고 어딘가 불편하지도 않아. 배도 안 고프고, 피곤하지도 않고, 그냥 가끔 졸리기만 해. ]

잠이 오는 걸로 간신히 날짜만 셀 수 있었어. 마샤의 목소리에서 두려움이 조금씩 차오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마치 토로할 사람이 생기니까 뒤늦게 감정이 몰려오기라도 한 것처럼.

[ 사실 이상한 건 이곳이 아니라, 내 몸이면 어떡하지? ]

“……단테.”

나는 당황에 물든 마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단테를 불렀다.

내 뒤에 서서 잔뜩 어두워진 낯으로 통신구를 바라보던 단테가 나를 바라보았다가, 마샤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감각을 마비시키는 마법을 건 거야. 하지만 마법을 풀면 바로 후폭풍이 몰려와서…… 될 수 있는 한 빨리 풀어야 해.”

“그 후폭풍이라는 걸 줄이는 방법은 없어?”

“있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단테가 차마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래, 마샤가 우리 앞에 있는 것도 아닌데 손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없겠지.

나는 차차 복잡해지려는 머릿속을 고스란히 느끼다가, 다시 통신구를 바라보았다.

“마샤.”

[ ……응? ]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하지만 억지로 눈물을 참은 푸른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무섭고 두렵겠지만, 그리고 이 말로 안심을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울지는 말고 조금만 더 참고 있어. 다 괜찮아질 테니까.”

[ 그게 무슨 말이야? ]

차마 안심하지 못하고 불안한 빛을 띠는 마샤의 얼굴에, 나는 선언하듯 말했다.

“내가 그쪽으로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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