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 (89/181)

89.

단테가 나를 가리고 선 탓에 창틀과 나 사이의 거리는 꽤 됐는데도, 그 까마귀의 외형만큼은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티끌 한 점 없이 까만 깃털은 빛을 등지고 있는 탓에 더욱 어둡게 드리워져 있었다. 반들거리는 눈은 피를 머금은 양 검붉었고, 딱 소리를 내며 닫히는 부리는 위협적이었다.

《 그렇게 귀신 보듯이 쳐다볼 필요까지는 없는데. 》

“…….”

그 태평한 말에도 단테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것은 지금껏 내가 보아왔던 동물들과는 전혀 다른 구석을 가지고 있었다. 말을 하는 모습부터가 그랬고, 나와 단테를 빤히 응시하는 시선도 그랬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분위기가 진정 그러했다.

분명 평범한 가정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새였다. 그러나 그 까마귀가 깨진 창문틀에 발톱을 박아 넣고 서 있는 모습에서, 응당 느껴져야 할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본디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느낌이었다.

그건 내가 했음에도 매우 기묘한 감상이었고, 나는 그러한 감상이 까마귀의 태도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까마귀는 이 장소가, 그곳에 서 있는 것이, 그리고 빛을 등지고 있는 것이 익숙해 보였다.

마치 이미 한번 이곳을 들러본 사람처럼.

생각을 더 거칠 틈도 없이 내 입이 열렸다.

“너구나.”

《 ……. 》

“네가 마샤를 데려갔지.”

까마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비웃듯이 목울대를 울리며 우는 소리를 냈다.

《 인사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물어보는군. 》

“단테.”

나는 까마귀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빠르게 속삭였다.

“저 까마귀, 정체가 뭐야?”

리사처럼, 평소에는 새의 모습으로 있다가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종류일까? 아니면 반대로 오히려 인간 쪽이 본체고, 지금은 둔갑한 모습으로 있는 것일까.

까마귀를 발견하자마자 공격하던 모습에, 나는 단테가 저것의 정체를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 생각을 확인시켜주듯, 단테는 내 물음에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저건 마물이야. 지금 지껄이고 있는 놈은 마물에 의식의 일부분을 심은 것뿐이고.”

“의식의 일부분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것 참……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들리는데.

내가 떨떠름하게 반문하는 소리를 주워들은 건지, 까마귀는 이번에야말로 웃는 소리를 냈다.

《 왜, 이런 건 처음 보나? 》

탑주님께서 좋은 것만 보여주신 모양이군. 이어지는 말에 단테가 내 손을 꽉 붙드는 것이 느껴졌다.

마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그것의 목소리가 어딘가에 긁히는 것 마냥 지직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계속 듣고 있기 싫어지는 소리네. 물론, 오래 들어줄 생각도 없지만 말이다.

내 친구를 어딘가로 데려간 주제에, 그리고 마샤를 찾는 우리의 앞에 뻔뻔하게 나타난 주제에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붙여오는 태도가 거슬렸다. 

내가 단테의 뒤에서 한 발자국 걸어 나오자, 섬뜩하리만치 붉은 시선이 나를 향했다.

“마샤는 어디 있지?”

《 이미 예상했겠지만, 나와 함께 있지. 》

이죽거리는 말투는 마치 도발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상대의 감정적인 동요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의 것처럼.

내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자, 까마귀는 재미없다는 듯 혀 차는 소리를 냈다. 분명 새의 얼굴에는 표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텐데도 감정이 전해진다는 게 기이하다면 기이한 점이었다.

단테는 금방이라도 저 까마귀를 찢어발기고 싶다는 눈으로 서 있었으나, 특별히 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아마 저것이 마샤를 데리고 갔으니, 그리고 내가 옆에 있으니 당장 저것을 해칠 엄두는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원하는 게 뭐야.”

잔뜩 억눌려서 낮아진 단테의 목소리와 달리 까마귀는 여유롭게 대답했다.

《 먼저 물어봐 주다니, 자비롭기도 하지. 》

“한 번만 더 시답잖은 말을 덧붙였다가는…….”

단테는 험악한 어조로 말을 잇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괜히 내 눈치를 볼 필요까지는 없는데.

뭔지는 몰라도 지금 이 상황에서 나와 단테의 심정은 비슷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까마귀의 나긋한 말투에는 한점 변함이 없었다.

《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그저 대화를 원해. 정확히는 단둘이 대화할 시간을 원한다는 게 맞겠군. 》

“대화가 목적이었다면 바로 나를 찾아오는 게 더 빨랐을 텐데.”

《 내가 대화를 청하는 건 자네가 아니거든. 》

순간, 단테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 나는 자네 옆에 있는 아가씨와의 대화를 원하네. 》

……나?

갑자기 지목당한 탓에 차마 당황한 표정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나도 단테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단테의 날 선 반응을 보아 저것은 분명 단테와 오랜 악연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감히 예상해보건대 요즘 단테가 해결하려는 문제인 변질자들 중 한 명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마탑의 변질자가, 연관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인 나와의 대화를 원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복잡하게 돌아가는 머리를 알아챈 것처럼, 까마귀가 노래하듯 말을 이었다.

《 원래 소중한 사람을 인질로 삼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나. 아가씨에게 효과적인 인질은 아가씨의 친구일 것 같았고, 그래서 이 집에 살던 아이를 데려간 거지. 》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서 참 뿌듯해. 그 말에 무어라 대답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럼 결국 나 때문에 마샤가 위험에 처했다는 건가?

저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들고, 나도 모르게 초조함을 수면 밖으로 드러낼 뻔했을 때.

까마귀와 나 사이를 가로지르듯 단테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안 돼.”

《 매정해라. 길게 붙잡아두지는 않을 텐데도? 》

“분명 네가 있는 곳까지 에이가 오라고 할 셈일 테니까.”

단테의 얼굴에는 이제 한 점의 불안감도 비치지 않았다. 그저 표현할 수 없는 차가움이 그 안에 있을 뿐.

내게는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감정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정 대화를 원한다면 내가 동행하는 것을 승낙해.”

《 아니, 그건 안되지. 난 단둘이 대화하기를 원한다니까. 》

진심처럼 느껴지지도 않는 곤란함이 까마귀의 목소리에 깃들었다.

《 난 저 아가씨를 해칠 생각이 없어. 아니, 해칠 수 없다는 말이 더 옳지. 지금껏 속고만 살았나? 》

“…….”

《 저 아가씨의 보호를 위한 어떤 마법을 써도 좋고, 어떤 조치를 해도 좋아. 좀 과격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내가 일정 거리 이상 가까이 가면 내 몸이 터지는 마법을 걸어도 좋네. 》

경계심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킬킬거리는 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 나는 정말 오붓한 대화 말고는 바라는 게 없으니까. 》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 못 믿을 이유가 있나? 》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뚝 멎었다. 장난기가 완전히 빠진 목소리로, 까마귀는 다시 말했다.

《 나는 자네를 못 이겨. 》

“…….”

《 자네가 정말 작정하고 그 아가씨를 지키려고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지.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건 나이기 때문에 그 어떤 시도조차 하지 않을 거야. 》

무슨 꿍꿍이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단테와 관련된 무언가를 제안하려는 걸까? 아니면 정말 오롯이 나와 관련된 용건이 있는 걸까.

하지만 그것의 목적이 무엇인지보다 더 내 마음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나를 노리는 사람 때문에 이 상황에 휘말린 내 친구.

마샤.

“……내가 당신의 말에 응하지 않으면, 마샤는 어떻게 되는데?”

“에이.”

단테가 조급하게 나를 불렀지만, 나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내 시선을 온전히 받은 까마귀는 당연할 걸 묻는다는 듯 여상한 투로 대답했다.

《 죽겠지. 》

“…….”

《 왜, 이렇게 말해도 마음이 움직이질 않나? 그럼 죽는 것을 제외한 모든 고통을 겪을 거라고 말해줄까. 》

우스운 농담이라도 한다는 듯한 태도가 그 말에 담긴 무게감을 흐리지는 못했다. 나는 불안감이 내 안에서 몸집을 불리는 것을 선명히 느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샤가 무사하다는 걸 보여줘.”

《 아, 그건 어렵지 않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말고. 》

그 놀리는 어조에 다른 대답을 하기도 전, 까마귀가 가볍게 날갯짓했다.

순간 날아가려는 건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발이 먼저 움직였지만, 그런 나를 단테가 막아섰다. 단순히 팔로 막아서는 것도 모자라서 내 앞에 마법진을 한 겹 띄우기까지 했다.

그 행동에 의아함을 표시하며, 단테를 바라보았을 때.

까마귀가 날개를 접고 나를 다시금 응시했다.

《 그쪽으로 통신구를 보낼 테니, 그걸 통해 확인하기를 바라. 확인한 뒤에는 겸사겸사 내 제안에 대한 답도 해주고. 》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는, 오만하고도 건방진 말이 일종의 선고처럼 떨어졌다.

《 그럼 긍정적인 답변을 바라지. 》

그 말을 마지막으로, 까마귀의 몸이 그대로 폭발했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시야에 무언가가 언뜻 스치는 듯했지만, 내 눈을 가린 단테의 손 덕분에 처참하다고 말할 만한 광경을 직접 보는 일은 없었다. 

아, 아까 띄운 마법진이 보호 마법의 일종이겠구나. 그런 생각만이 잠시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나는 여전히 내 눈을 가린 채로 뒤에서 어깨를 끌어안는, 너무 익숙해서 도저히 떨어지고 싶지 않아지는 체온에 완전히 몸을 맡겼다.

침입자가 완전히 사라진 공간, 우리 둘 중에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지 그 온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만이 계속해서 이어졌을 뿐.

나를 단단히 붙들고 있는 손길이 절박하게 느껴져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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