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 (82/181)

82.

“……단테?”

생각보다 더 거친 반응에 얼떨떨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도 모르게 품을 벗어나려고 바르작거렸으나, 그럴수록 단테는 나를 더 강하게 껴안았다.

숨이 잠깐 막힐 정도로 강한 악력 너머로, 내 어깨를 끌어안은 손이 얕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역시 이상해. 나는 단테의 손이 차갑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이쯤 되면 이상하다 못해 걱정스러울 정도다.

이건 잘 쳐봤자 몇 시간 못 봤다고 나올 법한 반응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몇 날 며칠 생사를 모르던 사람을 만났을 때 할 만한 행동이었지.

지금 단테의 반응만 보면, 우리가 다시 한번 헤어지기라도 한 것만 같았다.

“단테. 왜 그래?”

“…….”

나는 그 상태에 대한 의문을 표하기에 앞서, 여전히 나를 꽉 안은 채 놓아주지 않고 있는 단테부터 진정시키고자 했다.

팔을 뻗어서 마주 안아주니, 원래도 전해져오고 있었던 옅은 떨림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 떨림을 애써 모르는 척하고 등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세게도 약하지도 않게.

내가 늘상 해오던 것처럼.

한참 동안 토닥임을 받은 단테가 점점 긴장을 푸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 갔다 왔어?”

“……너야말로. 방에 안 있고 어디 있었어?”

“나야 뭐, 마샤랑 이야기 끝나고 나서 바로 도서관 왔지.”

내가 여상히 대답하자 단테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안도감에 나온 것 같기도 했고, 허탈감에 나온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한숨을 쉴 정도로 열심히 찾아다닐 이유가 뭐가 있냐고, 대체. 나는 단테를 한번 꽉 안아주고 그 품에서 벗어났다.

“넌 어디 갔다 왔는데?”

“나는 리사 만나고…….”

거기까지만 말하더니 입을 다문다. 의아해져서 고개를 드니, 무언가 걱정거리라도 가득 들고 있는 듯한 얼굴이 보였다.

“리사 만나고?”

“…….”

대답하라는 의미로 빤히 바라보아도 돌아오는 건 침묵뿐이었다. 안 이러던 애가 이러니까 더 답답해져서, 나는 단테의 어깨를 마구 흔들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야 했다.

“왜 대답을 안 해. 말하기 어려운 거야?”

근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한테 말 못 할만한 이야기가 뭐가 있어? 그렇게 재촉하는 말에도, 단테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르고 달래는 건 나와 정말 안 맞는 거 같단 말이야. 결국은 오늘도 돌려 말하는 걸 포기하고 대놓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 너 요새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지.”

단테는 그 말을 듣자마자 입을 열었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닫았다. 마치 말을 하려다가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처럼.

네가 어떨 때 이렇게 반응하는지 잘 알지.

대표적으로, 무언가 거짓말을 하려다가 차마 뱉지 못했을 때 이러곤 한다. 

“네가 말 안 해주면 리사한테 물어볼 거야. 무슨 이야기 했냐고.”

나도 모르게 말투가 협박조로 나왔지만, 그다지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협박이라도 해서 속 안에 감춰둔 말을 털어놓게 만들 수 있다면 그러고 싶은 기분인걸.

하지만 단테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다. 아까까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애가 지금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나마 대답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리사도 너한테 이야기 안 해 줄걸. 내가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 조그마한 애한테 입단속을 시키고 왔다고? 내가 이렇게 따지듯 물어보기도 전에? 

마치 내가 물어볼 날을 대비해놓은 것만 같은 철두철미함이라니.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허탈한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처음부터 나를 따돌리려고 작정을 하고 있었구나?”

황당하다는 어조로 말해 봐도, 단테는 죄책감이 섞인 얼굴을 할 뿐 기어코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끝까지 말해줄 생각은 없는 모양인데, 네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

“너……. 일단 이것부터 대답해, 그럼.”

또 입을 다물면 가만 안 둘 거라는 의미를 담아서, 숫제 노려보듯이 보라색 눈동자와 시선을 맞추었다.

“지금 숨기고 있는 게, 요즘 네가 불안해하는 거랑 관련이 있는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사람처럼 단테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그 반응에 이유를 알 수 없는 확신이 든 나는 내친김에 지금까지 느껴왔던 것을 줄줄이 내뱉었다. 

“너 요새 자꾸 내 옆에 붙어있으려고 들지. 그건 예전에도 그러던 것 같으니까 대충 넘어가는데, 뭐 하나에 자꾸 흠칫흠칫 놀라고 불안해하잖아. 내 안색도 자주 살피고.”

“…….”

“처음에는, 그래. 내가 10년 동안 죽은 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가 했어.”

잠시 말을 끊고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

“하지만 이제 너도 우리가 헤어질 일이 없다는 걸 알잖아.”

혹시 아직도 내 말을 못 믿겠어? 속삭이듯 질문하자, 단테가 작게나마 고개를 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럼 왜. 그걸 알고 있는데도 마음은 불안해져서 그래?”

차라리 그런 거라면 나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은 이렇게 행동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단테의 불안이 점점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왜 자꾸 그것뿐만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하게 드는 건지.

나도 내 생각의 근거를 찾아볼 수 없지만, 때때로는 이렇게 기분을 따라가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자꾸만 고개를 돌리는 단테의 얼굴을 억지로 붙잡고 눈을 맞추자, 보라색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네가 왜 그러는지 나도 알고 싶어. 뭔지는 몰라도 내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

“왜 너 혼자만 알고 있으려고 그래?”

마지막 말은 내가 듣기에도 꽤 속상한 투로 들렸다. 말이 이어질수록 단테의 얼굴에 점점 갈등이 퍼져 나가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나는, 단테가 자기 속마음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너는 몰라도 돼.”

머뭇거림 끝에 나온 건, 결국 또다시 자기 속내를 숨기는 말이었다.

“너까지 불안해할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야.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알아서 다 해결할게.”

“내가 지금 불안해하는 거로 보여? 그냥 네가 왜 그러는지를 알려달라니까.”

‘너까지’ 불안해할 필요 없다는 말은, 결국 자신의 불안함을 인정하는 말과 같았다. 모종의 이유로 자신은 불안해하고 있다고. 게다가 자신뿐만 아니라 나까지 불안해할 만한 일이라고.

해결이고 자시고, 그건 단테가 불안해하는 원인을 먼저 듣고 생각할 문제다. 

하지만 일부러 딱 잘라서 이야기했는데도 단테가 자신의 고집을 꺾는 일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단테가 보여주는 태도가 마냥 당황스러웠다. 내 앞에서 이런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뭐라도 더 캐묻기 위해 입을 열던 찰나, 단테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 겹쳐있던 팔이 나도 모르는 사이 떨어지고, 온기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당황하는 내 쪽은 보지도 않으며, 단테가 빠르게 내뱉었다.

“난 이만 갈게. 넌 읽던 책 마저 읽고 와.”

“갑자기 웬 책……. 아니, 잠깐만. 단테?”

몸을 돌리더니, 내가 제대로 대답하기도 전에 자리를 떠버린다. 쫓아오지 말라는 듯 아주 빠르게.

순순히 대답하지 않을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도망갈 줄이야. 나는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사람을 앞에 두고 도망가는 건 어디서 배워온 거야?

“너 거기 안 서?”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지만, 단테는 마치 이곳에 온 적이 없는 사람처럼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니, 왜 이렇게까지 말해주지 않으려고 하는 건데?

도대체 왜?

* * *

그날부로 단테와 나만 있는……. 정확히 말하면 리사도 있긴 하지만, 리사는 무슨 까닭인지 잘 보이지 않았으므로 거의 둘만 있는 마탑에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지냈다.

너무 귀여운 비유 아니냐고? 그래, 내 짜증을 좀 중화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렇게 말해봤다. 

숨바꼭질이란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단테는 내 눈에 안 보이게 숨고, 나는 그런 단테를 찾으러 다닌다. 

그것도 하루 종일.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단테가 곁에 없었다. 잠결에 내 머리나 볼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질 뿐, 정작 눈을 떠보면 단테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나는 얘가 또 어디 갔나 싶어서 찾으러 나가고, 가끔 시야에 잡히는 단테의 뒤꽁무니나 옷자락만 쫓아다니면서 시간을 보내고. 

할 말이라도 있는가 싶으면 쪽지를 남길지언정 내 앞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 쪽지를 보고 허공에다 대답-사실은 짜증에 가까운-을 하면 어떻게 들은 건지는 몰라도 또 다른 쪽지를 보내왔다.

이런 상황이 며칠째 계속되니, 아무리 흘러가는 대로 사는 나라도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숨어다니는 일에 재미라도 붙인 거야, 뭐야.

아예 눈에 띄지 않으면 찾으러 다니지도 않을 텐데, 마탑 안에 있기는 한 건지 때때로 살짝씩 모습이 보이기는 해서 더 짜증이 났다.

애초에 나한테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마탑주라는 명칭답게 마탑의 지리를 꿰고 있는 단테와, 모르는 곳만 가면 길을 잃기 일쑤인 나. 보나 마나 뻔한 게임 아닌가.

시야 밖으로만 사라져도 불안해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단지 대화를 거부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단테는 나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 

여기서 더 열 받는 건, 내가 단테를 찾는다고 엉뚱한 곳에 들어가면 홀연히 나타나서 원래 있던 곳까지 옮겨다 준다는 거였다.

지금도 봐, 누군가가 뒤에서 허리를 감싸 안는 감각을 느끼자마자 어느새 방으로 돌아와 있잖아.

“뭐 하자는 거야, 지금?”

분명 방금까지는 무슨, 커다란 돌덩이 같은 걸 가득 전시해놓은 곳을 둘러보고 있었단 말이다. 마치 박물관에라도 온 것 같은 분위기에 단테를 찾던 것도 잠깐 잊어버릴 정도로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린 결과가 이거다. 어딘가에서 나타난 단테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돌아오는 것.

혼자 남은 방에서 화를 내봐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서 문을 벌컥 열어젖혔지만, 역시나 복도에는 단테의 옷 끝자락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 자꾸 이러면 내 발로 여기서 나갈 거야!”

마치 메아리가 울려 퍼지듯 넓고 텅 빈 공간에 내 목소리가 퍼져 나갔다. 다 듣고 있는 거 아는데 대답 안 하는 것 좀 보라지.

얼굴은 안 비추는 주제에 내 눈치를 보듯, 다음 날 내가 좋아할 만한 음식이나 책을 잔뜩 방 앞에 두고 갈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더 짜증이 났다.

진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