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79)화 (79/181)

79.

M5.

마샤는 요새 걱정이 아주 많았다.

애초에 걱정이 없는 날이 적었다지만, 요즈음 하는 걱정은 가게의 매출이나 옷 디자인 따위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들은 그녀의 머리 일부분도 차지하지 못했다. 

한 사람에 대한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느라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고향 친구였다. 영락없이 죽은 줄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서,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 그 친구.

에이는 걱정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늘 자신의 마음 한편에서 떠나지 않던 친구였다.

* * *

마샤는 아직도 자신의 가족, 이웃, 친구가 모두 한꺼번에 사라진 날을 기억한다. 

자신의 우체통에 꽂혀있던 한 통의 편지. 그 안에는 가족들과 친구들의 일상 따위가 아니라, 마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짤막한 설명과 유감의 말만 들어있었다.

누가 이런 장난을 하는 거냐며 애써 부정할 수 있었던 날은 겨우 하루 정도였다. 다음 날 마샤는 미친 듯이 달려서 자신의 고향에 도착했고, 예전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는 폐허를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그녀의 불안을 현실로 만드는 그 광경을.

조촐하게나마 이뤄진 장례식에는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사람만이 왔다. 그곳에서 마샤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울면서 그들을 기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가족 생각에 울었다. 그다음 주에는 고향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또 다음에는 자신을 아는 이들이 몽땅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에 울었다. 

너무 울어서 더 이상 나올 눈물조차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제야 편지 답장조차 느렸던 그녀의 친구 중 하나가 떠올랐다. 

아, 그 순간 그 무심한 얼굴이 얼마나 그리워지던지.

늘 어딘가로 떠날 것처럼 굴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자리에 머물러주고 있는 것이 고맙던 친구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도 진작에 마른 것 같았던 눈물이 다시 새어 나왔다. 

그 후로도 마샤는 가족을, 이웃을, 친구를, 그리고 에이를 떠올렸다. 

그들의 얼굴이 기억 속에서 닳아 없어질 때까지 계속.

* * *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나가면서, 마샤는 아주 천천히 괜찮아졌다. 아직 그녀의 가족이 끝없이 그립고, 고향이 계속해서 떠오르긴 했으나, 전처럼 울면서 방에 처박히지는 않았다.

전쟁을 일으킨 왕국에 대한 분노에 잠을 설치지도 않았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힘들어할 때 챙겨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고향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때 마냥 가슴 아파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

가끔은 손 쓸 새도 없이 과거에 매몰될 때도 있었다. 상처가 남기고 간 흉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세상에서 사라지고픈 밤이 있었다. 마샤는 그럴 때마다 밤을 새우고, 머릿속에 끼는 먹구름을 몰아내려고 애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잠에 곯아떨어지기 직전에는 늘 침대 위에 가만히 앉아서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도망가는 상상을 하고는 했다. 

현실 도피에 가까운 상상이었으나,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상상의 주체가 되는 것은 주로 그녀의 친구 중 하나인 에이였다. 

다른 마을 사람들과 달리 처음부터 마을에 있지는 않았으니까, 어쩌면 다른 곳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겠지. 폭탄 같은 건 터지지 않은 안전한 곳으로.

무심한 얼굴로 홀연히 사라져서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날지도 몰랐다. 마샤를 아무렇지도 않게 구해줬던 날처럼, 별거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물론 친구의 애인이 정신 나간 꼴로 신문에 얼굴을 비추는 것을 보아, 친구가 기적적으로 살아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샤의 작은 소망 속에서 에이는 어딘가에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에이만은 운 좋게 살아남았을지도 모른다고, 가망 없고 희망찬 생각을 가끔 했다.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을, 단지 헛된 희망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그녀 자신도 알았다. 그렇기에 기대도 기다림도 없었다.

그러나 그리움만은 남아 있는지라, 누구라도 살아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계속 들어서…….

“……에이?”

수도 한복판에서 낯선 옷을 입은 채 서 있는 그녀의 친구를 보았을 때는, 정말 꿈인 줄 알았다.

사실 에이가 몇 년만 더 빨리 나타났어도, 마샤는 에이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트렸을 것이다. 10년 전, 어렸던 그 날로 돌아간 것처럼.

그러나 에이가 만난 직후 해준 이야기가 눈물이 쏙 들어가도록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모두를 잃었던 그 날처럼 우는 일은 없었다.

이제 고향을 마냥 눈물 속에 남겨두고 싶지 않은 마샤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 * *

애인-어느새 남편이 되어있었지만-의 정체와 근황에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던 에이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어떻게든 남편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릴 모양이었고, 마샤도 그런 친구를 걱정하는 한편 응원했다. 

친구를 보내기 전날 밤, 잠자리에 들기 직전 에이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랑 만난 것 때문에 네가 힘들어지면 어쩌지?”

마샤는 그 말에 약간 놀랐다가, 희미하게나마 미소 지었다. 어쩐지 마샤에게 묻는 것도 별로 없고, 함께 살던 마을의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 같더라니. 

무심하지만 매정하지는 못한 이 친구는 마샤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왔으니, 지난 상처를 후벼 파는 것이 되었을까 봐.

에이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마샤의 상처를 덧나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마샤는, 같이 신문을 보던 때 에이가 자신의 떨리는 손을 못 본 척했을 때부터, 그녀의 생각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죽자마자 살아났는데 10년이 지나있었으니,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을 법도 한데. 하지만 마샤는 다른 말을 꺼내지 않고, 다만 계속해서 하고 싶었던 말을 건넸다.

“네가 살아 돌아와서 기뻐.”

“…….”

“그러니까 네 남편이나 제대로 찾아와. 난 너라도 가족이랑 다시 만나는 걸 봐야겠거든.”

마샤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던 에이가 눈을 접으며 웃었다.

“응, 제대로 찾아올게.”

“어휴. 나 정말 따라가면 안 돼?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벌써 걱정되는데.”

“너무 걱정하지 마. 아예 하지 말라는 말은 못 하겠지만, 뭐…… 어떻게든 끌고 올 테니까.”

그리고 이제 너도 내가 죽을 일 없다는 거 알잖아. 농담처럼 덧붙이며 에이는 웃었지만, 마샤는 씁쓸한 기분만 느낄 뿐 따라 웃지 못했다. 그러다가 결국 한숨만 한번 쉬었고. 

“됐어, 잠이나 자자. 안 그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배웅은 해줄 거지?”

“당연하지.”

마샤의 말에 에이는 슬쩍 미소짓고는 눈을 감았다. 걱정투성이인 자신과 다르게 아무 근심도 없어 보여서, 저도 모르게 나오려던 한숨을 간신히 참았다.

하지만 네가 걱정된다고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면 오히려 어색했겠지.

평소라면 잠들고도 남았을 만큼 깊은 밤. 마샤는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도망가던 상상을 하던 날처럼, 오랫동안 잠들지 않고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러나 상실감에 젖어 있던 날과 오늘은 분명 달랐다. 마샤는 자신의 기억 속에 오늘이 아주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을 알았다. 

어쩌면, 죽는 그 날까지도.

마샤는 곤히 잠든 친구를 내려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오늘은 진짜 내가 서서 꿈꾸는 줄 알았어. 네가 살아 돌아온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못 해봤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으나 마주치는 순간 알 수 있었다. 희미해졌다고 덧칠하는 것이 어려운 건 아니니까. 

그리고 마샤는, 자신의 기억을 덧칠해준 에이가 못내 고마웠다. 마을 사람 중 누군가는 살아있을 거라던,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못하는 상상을 진짜로 만들어 준 친구가. 

내가 오늘 너한테 고마웠던 만큼 열심히 빌어줄게. 최대한 고생하지 말고 남편만 딱 데려오라고 말이야.

부러 장난스럽게 생각하고 나서야, 마샤는 친구의 옆에서 잠들 수 있었다. 

* * *

“편지 같은 것도…… 안 왔고.”

하긴, 편지를 어떻게 보내. 마샤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종이 쪼가리들을 식탁 위에 던졌다. 자신이 원하는 소식이 담겨있지 않은 신문도, 친구의 이름이 적히지 않은 편지도 전부 미웠다.

방금까지는 몰아치는 허기에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는데, 우편함을 확인하자마자 입에 뭘 넣을 의욕이 없어졌다. 소파에 비스듬히 눕고 나니 의욕이 없는 것도 모자라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집도 좀 치워야 하고, 저녁도 챙겨 먹어야 하고, 집 앞에 놓여 있던 이상한 상자도 뜯어봐야 하는데……. 

‘오늘은 소식이 있을까?’하고 기대했던 것이 전부 허사로 돌아가자 힘이 쭉 빠졌다. 

“내가 네 걱정을 안 하려고 해도, 에이. 네 남편이 여간 미친 게 아니어서…….”

혼잣말을 하며 한참을 엎어져 있던 마샤는 정말 배고파서 죽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야 일어났다. 퇴근할 때 뭐라도 사와야 했나, 하고 약간 후회하고 있던 그때.

밖에서 갑자기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에 흠칫 놀란 마샤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황급히 창밖을 쳐다보니 하늘은 어느새 까맣게 물들어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누군가가 찾아올 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웃 중 누군가가 찾아온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온 적이 없었으며, 만약 찾아왔다고 해도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게 아니라. 

“…….”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대답을 안 하니 그냥 갈 법도 한데, 상대는 꾸준히 문을 두드렸다. 작아지지도, 커지지도 않는 일정한 노크 소리는 오히려 마샤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누구시냐는 질문조차 나오지 않아 가까스로 마른침을 삼켰다가, 굳이 대답을 해야 하냐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게, 자기가 누군지도 밝히지 않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굳이 사람이 있다는 걸 밝혀야 할까?

차라리 아무도 없는 척을 하는 게 낫겠다. 짧은 고민을 끝내고 슬그머니 뒤를 도는데, 아까와는 다르게 쾅 하는 소리가 밖에서 울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샤는 기민하게,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이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까는 문 쪽에서 소리가 났다면, 방금은 문보다는 창문에 가까운 곳에서……. 

저도 모르게 오른쪽으로 시선을 옮긴 순간, 마샤는 새까만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을 발견하고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 * *

옆집은 물론이고, 그 거리에 사는 사람들을 모두 깨울 정도였던 비명은 갑작스레 뚝 끊겼다. 

이후 마샤는 무슨 일이냐고 찾아온 이웃들을 돌려보내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손님이 찾아왔는데 모르는 사람인 줄 알고 비명을 질렀다고 말하면서. 

“에이가 최대한 놀라게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마샤의 ‘손님’은 여전히 후드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마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따지듯이 대답했다.

“그게 안 놀라게 하려는 사람 태도야?”

“…….”

뭐라 변명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닫는 모습이 생소한 동시에 익숙했다. 

마샤는 친구의 편지 대신 친구의 남편이 나타난 이 상황을 돌이켜보다가, 친구 이름을 앓듯이 부르며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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