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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마탑주였다 (77)화 (77/181)

77.

눈을 뜨고 꿈을 꿔 본 적이 있는가?

물론,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단 단테는 아니었다. 그는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환각을 보지는 않았다. 

애초에 사랑하는 사람의 환상을 스스로 볼 수 있었다면, 환상을 보여주는 마물을 보러 그들의 서식지까지 일부러 가지는 않았을 테니.

더 미치기 전에 아예 죽어버리자는 생각도 늘 하고 있어서, 단테가 스스로를 완전히 미치지는 않았다고 평가하는 것은 당연했다. 

물론 단테가 내리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와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내리는 평가에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건 모두 별개의 이야기였다.

어쨌든 적어도 그 하나만큼은 자신이 완전히 미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게 핵심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때, 단테는 뒤늦게나마, 자신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미친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눈을 뜨고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면, 환각 따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눈앞의 사람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다는 말인가?

기억 속과 같은, 아니, 기억하던 것보다 더 또렷한 형상이 이를 악물었다.

“내가 진짜, 다른 건 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자신의 분노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다짜고짜 질책을 내뱉는 목소리. 

“죽으려고 한 건 좀 아니잖아, 단테.”

그 목소리는 그가 더듬어온 기억과 정말 소름이 끼치도록 닮아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은 단테는, 당연하지만, 대답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당황하고 말았다. 그때 그가 할 수 있었던 거라곤 당황한 얼굴로 입술을 달싹이는 것뿐.

물론 상대가 그에게 원한 것도 대답 따위가 아니었다.

그에게 한점 변명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성난 목소리가 연이어 쏘아붙여 졌다. 마물에 대해서 묻고, 언젠가 알려준 그의 비밀에 대해서 말했다. 

이미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멱살을 쥐고 있으면서, 말을 이을수록 더더욱 손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다.

가시 돋친 목소리와 다르게 떨리고 있는 갈색 눈동자. 분노하는 와중에도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붙잡고 있는 손.

눈앞에 있는 이는 분명 그에게 화를 내고 있었으나, 동시에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그렇게 보인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슬퍼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단테는 알아볼 수 있었다. 

전에, 일리난 서식지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저렇게 화난 얼굴은 본 적이 없어서 더욱 진짜처럼 느껴진다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에이의 슬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그렇기에 더욱.

에이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차마 대답하지 못했으나, 그녀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어떤 답도 해주지 않을 작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어떤 말이라도 하는 순간 눈앞의 그녀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때까지도 단테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게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의 온 감각은 눈앞의 사람은 진짜라고 외치고 있었다.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목소리에 속절없이 심장이 뛰고,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가에 열이 몰렸다.

애초에 가짜였다면 그에게 화를 내지 않았을 터였다. 그를 속이는 것에 집중했다면, 자신이 진짜 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급급했겠지. 이렇게 그가 한 일에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지만, 그녀를 잃은 세월이 자그마치 10년인데. 어떻게 판단과 감각만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단테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발밑에서 폭탄이 터진다면 죽는 것이 당연하고, 죽은 이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그의 아내는 폭발에 휩쓸리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와 다른, 불행하게도 그와는 완전히 다른, 평범한 사람이었단 말이다.

눈을 뜨고 꿈을 꿔 본 적이 있는가? 아니.

하지만 눈을 뜨고 꾸는 꿈을 바란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렇게 많이 바라왔으니 결국 이런 게 보이는 거겠지. 역시 이게 진짜일 리 없다고, 단테가 체념하듯 생각했을 때.

그 순간 에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내리꽂혔다.

“넌 내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더라도 천국에서든 지옥에서든 멱살 한 번쯤 잡혔을 거야.”

진심이 담겨있었지만, 그보다는 화풀이에 더 가까운 말이었다. 여전히 분노에 차 있고 원망이 느껴지는 한마디.

그리고 ‘살아났다’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 한마디이기도 했다. 

그 말은 단테가 강박적으로 생각하던, ‘죽은 이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라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었다.

“……무슨,”

체념이라는 감정이 손바닥 뒤집히듯이 놀라움으로 바뀌었을 때, 쐐기를 박듯 에이가 사납게 쏘아붙였다. 

“네가 분명 그랬잖아. 넌 영생을 얻었고, 그러니 네가 죽는 일로 날 떠나지는 않을 거라고.” 

하지만 이게 뭐야.

“너는 결국 날 두고 떠날 뻔했어.”

“…….”

“다른 것도 아니고, 날 따라 죽는 걸로. 그렇게 죽었으면 정말 나를 다시 보지 못했을 텐데도! 알아들었어, 단테?”

알아들었을 리가 없지. 

분명, 알아들을 리가 없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게도, 갑작스럽게 단테의 머리에 내리꽂힌 것은 깨달음이라는 감정이었다.

내가 너를 떠나다니, 무슨 소리야, 떠난 건 너잖아. 분명 떠난 건 너인데, 내가 죽으면 우리가 다시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니?

정말 살아나기라도 했다는 소리야? 어떻게?

죽은 이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 그러니 네가 살아날 리는 없는데, 만약에 네가 살아났다면, 어떻게 살아난 거지? 불가능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단테가 가지고 있는 상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한가? 에이가 그의 앞에 있는 지금, 그녀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따위가 중요하냐는 말이다.

네가 지금 내 앞에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건,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되살아났다는데.

연이은 충격에 둔해진 머리가 결국 새하얗게 변해갔다. 단테는 정말 멍청이처럼,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되 알아들은 상태로 계속 생각했다. 

진짜 에이구나. 방법과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살아났고, 날 찾아왔고, 그리고 내 앞에 있어. 

……날 찾아와줬어, 네가.

혼란스럽던 머리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환희로 젖어갈 때쯤, 집 나간 단테의 정신이 갑작스럽게 되돌아왔다. 

그를 노려보던 갈색 눈에, 점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목도하고 말았기 때문에.

화난 모습과 더불어, 단테는 에이의 눈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울 것 같은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단테는 정말 말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왜 죽으려고 했어?”

그녀가 화를 내자 내심 기뻤던 전과 다르게, 에이의 울먹거림을 듣는 순간 단테는 머리 위에 찬물이 끼얹어지는 감각을 느꼈다.

영원히 살 수 있으면 살면 될 것이지, 왜 죽음 같은 걸 생각했냐고. 그가 죽을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어할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원망하고 있지 않았다.

그녀가 온전히 탓하고 있는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사과의 말은 없었으나, 에이가 그에게 느끼는 미안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그만큼 그녀의 자책도.

세상에서 가장 기뻐해야 할 재회의 순간에, 에이는 누구보다도 슬퍼하고 있었다. 

에이가 떠난 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괴로웠다는 사실은, 그리고 자책과 절망 속에서 스스로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슬픔을 마주하자마자 모조리 휘발되어 사라졌다. 자신의 선택이 그녀를 울게끔 만들었다는 사실만이 그 자리에 남아 단테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자신이 겪었던 고통보다도, 에이가 왜 그렇게까지 했냐며 원망하는 말이 더욱 뼈저리게 아팠다.

질책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를 계속해서 걱정해주는 것은 그녀의 다정함이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죽을 생각 같은 것은 왜 했냐는 말은 결국 혼자 둬서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단테가 속삭이듯 부른 이름을, 에이는 들은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사실 들었으면서 모른 척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습이 꼴사납다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손에서 점점 힘이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멱살을 쥐고 있던 손이 힘없이 떨어지고, 끝까지 울지 않은 에이가 마침내 자신은 진짜라는 말을 내뱉었을 때.

그리고 그 말을 하자마자, 이 상황에서 도망치려는 것처럼 문으로 걸어갔을 때.

단테는 그제서야 팔을 뻗어, 자신이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사랑할 사람을 단단히 껴안을 수 있었다. 

아, 정말로. 몇 번이고 덧그렸던 온기. 떠올리고 떠올려서 무뎌지는 것 같던 감각들이 다시금 선명해졌다. 익숙하고, 그리웠고, 간절했고, 정말 어쩔 수 없이 울고 싶어지는.

이윽고 단테는 작은 몸을 단단히 끌어안으며, 그녀가 희미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귀 기울였다.

“울지 마.”

“……응.”

그는 자신이 울음을 그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기적은 너무나도 다정해서, 그가 운다면 달래줄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그런 다정함이 이제 그에게 돌아와 있었으니까.

그녀를 더욱더 강하게 끌어안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바야흐로 재앙의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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