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76)화 (76/181)

76.

그 말대로였다. 단테는 오만했고 또 어리석어서, 저 가르침을 실감하지 못한 채 불멸을 얻어서 스승의 안배를 온전히 거두지 못했다. 저 말 중 그가 지켜낸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정말로, 불멸을 후회하고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네가 너무 보고 싶다고 죽어봤자, 정말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죽어봤자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은 것밖에 되지 않는데. 언젠가 그렇게 생각했듯, 가장 어리석은 끝을 맞이하는 거나 틀림없는데…….

그러나 우습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죽음이란 단어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내가 죽으려고 하면 에이는 화를 내겠지.’였다.

그녀가 천국에 있든, 지옥에 있든,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되 인정하지 못한 단테가 더 이상 살펴보기를 포기한 마을 잔해에 잠들어 있든, 에이는 그가 죽을 거라는 말만 해도 화를 낼 것이다. 

그 누가 봐도 멍청한 짓이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다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준 이유는 단테가 죽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불멸에 가까운 삶을 산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에이는 비로소 안심하며 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웃던 이는 이제 그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그 분노라도 듣기 위해 죽는 것을 택한다고 해도 죄가 아니지 않은가. 설사 죄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가벼운 타박이라도 날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너는 안 그런 척하면서 자주 발끈했지. 단테는 끔찍하리만치 새까매서 흡사 지옥을 연상시키는 마법진을 그리며 웃었다. 

그러니까 네가 죽은 사실을 잊어버릴 정도로 화를 내줬으면 좋겠어.

그 분노 한 자락이라도 내 귀에 닿는다면, 나는 마지막으로 정말 행복할 테니까…….

10년이라는 세월 끝에 단단히 돌아버린 초월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이제 와 말하지만, 사실 단테는 머리 한구석이 이상해진 상태였음에도 제법 이성적이었다. 

마법진이 완성되자마자 마탑 주변의 일리난을 남김없이 처리한 행동이 그 증거였다. 에이의 모습을 환상으로나마 보기 위해 남겨두었던 것을, 한 마리도 살려두지 않고 깡그리 날려버렸다. 이제 가짜에 연연할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일리난을 모조리 불태우는 과정에서 에이에게 줬던 팔찌와 한 쌍인, 그리고 에이가 위험할 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던 팔찌도 함께 부쉈다. 

보랏빛 마석이 산산이 부서져 재와 함께 흩날리는 것을 지켜볼 때도, 그의 머릿속은 깨끗하고 명료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돌아버린 상태임에도 이성적인 상태였기 때문에. 

굳이 이성적이었다는 것을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 후에 그의 이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런 일. 

“내가 마물이라고?” 

10년 동안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얼굴이 자신에게 말을 건네오는 일이라던가. 

“뭘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단테.”

저렇게 화난 얼굴은 본 적이 없어서, 그렇기에 더욱 진짜처럼 느껴진 일이라던가.

“나는 마물이 아니야.”

그럼에도, 버릇이 되어버린 비관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치밀어 오르는 두려움 탓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버린 일이라던가. 

저건 마물이고, 환상이고, 너는 죽었고, 그러니까 너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만 믿고 죽기로 결심했는데도. 

그럼에도 그가 목을 조르려고 할 때 느껴지는 온기가 진짜 같아서, 그 체온이 하필 언젠가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단테.”

차마 손에 힘을 주지 못했다. 

아니, 정말 목을 조르고 싶었던 건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까지 비슷해 보이는 사람마저도 진짜가 아니면 단순히 죽고 싶어지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던 것 같다.

눈앞에 이를 떨쳐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손에 힘을 주지도 못하고 떨고 있을 때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비웃듯 그의 손을 톡톡 두드리는 손길과 함께.

그 가벼움 두드림이 그를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차마 고개를 들어 그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목을 조를 생각이었다면, 손에 힘을 줘야지.”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있질 않냐고.

그 고요하고 차분한 말조차, 그가 평생을 잊지 못했던 것과 똑같이 닮아있었다. 그러나 그 얼굴을 바로 앞에 두고도, 그 목소리를 직접 자신의 귀로 듣고도 단테의 혼란스러움은 더 커져만 갔다.

마물을 발견했다는 이유로 공격했지만,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일리난은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눈 깜빡할 새에 지나가 버린 10년 동안, 마물이 보여주는 환영 속에서 그는 에이의 ‘모습’만 봐왔다. 

그것들이라면 자신을 현혹하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했을 것이다. 목소리를 흉내 낼 수 있었다면 진작 흉내 냈겠지.

그러니 목소리를 내어 이름을 부르고 있는 이는 마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왜.”

“…….”

“왜, 진짜 같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네가 살아날 리가 없었다. 자신이 괜히 마을로 나가자고 해서, 괜히 그때 자리를 비워서 죽은 에이가 돌아올 리가 없었다. 그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10년 동안 수백, 수천 번이고 되뇌었었으니까.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해도. 왜 진짜 같지.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단테는 그때 울기보다는 차라리 웃음을 터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이제는 죽을 수도 없겠구나.

정말 너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여기 있으니까, 죽어서도 널 보지 못할까 봐 이제는 죽지도 못하겠어.

‘이게’ 가짜이든 진짜이든, 앞으로 그는 죽으려 하지도 못할 것이다. 지금 나타난 건 가짜라고 해도 앞으로 진짜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단테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에이와 만나기만을 기다리게 될 테니까…….

절망과 그리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속절없는 눈물을 흘리며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죽고 싶어진, 사실은 죽고 싶어지지 않은 그 순간에.

그때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 하나.

저번에, 그래, 그런 생각을 했었지. 자신이 죽으려고 하면 에이는 그를 찾아와 화를 낼 거라는, 그런 어리석고 정신 나간 생각을 했었다.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 이가 진짜라면.

단테는 오롯이 자신을 응시하는, 석양이 담겨 투명해진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 색채마저도 그가 그리워하던 것과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마침내 조금 슬퍼졌지만.

마탑으로 이동하기 위한 마법을 시전하며, 그는 고개를 숙여 눈앞에 있는 이를 향해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죽기 전에 나를 만나러 와.”

그때 그녀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녀를 남겨두고 도망친 것은 자신임에도, 단테는 마치 혼자 남겨진 아이처럼 계속 울었다. 

마탑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계속.

* * *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사실 단테는 단단히 돌아버린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법진이 완성되자마자 마탑 주변의 일리난을 남김없이 처리한 행동이 그 증거였다. 에이의 모습을 환상으로나마 보기 위해 남겨두었던 것을, 한 마리도 살려두지 않고 깡그리 날려버렸다. 평소에는 쳐다보는 것도 아까워 시선조차 잘 주지 못했으면서.

그리고 일리난을 모조리 불태우는 과정에서 에이에게 줬던 팔찌와 한 쌍인, 그리고 에이가 위험할 때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던 팔찌도 함께 부쉈다. 

보랏빛 마석이 산산이 부서져 재와 함께 흩날리는 것을 지켜볼 때도,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서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돌아버린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제정신 아닌 머리가 가까스로 사고 비슷한 것을 하기 시작했을 때는 그 날부터였다.

‘그때 그 사람이 진짜 에이였으면 어떡하지?’

그래,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날부터.

분명 가짜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거지꼴인 자신의 모습을 정돈하고,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복도의 잔해들을 대충이나마 가장자리로 몰아넣으면서 든 생각이었다. 그럴 리 없지만, 에이가 살아 돌아올 리 없지만, 그게 진짜 에이였다면?

……자신은 에이가 탄 마차를 공격한 게 되는 건가? 그다음에는 목을 조르려고 하고?

“…….”

“뭐야, 나 갑자기 불안해……. 왜 이러지?”

자신과 감정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리사가 즉각 반응하며 벌떡 일어났지만, 정작 당사자인 단테는 그 자리에 얼어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뭐, 그가 지금 그녀가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나 희망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걸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가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 진짜 에이라면…….

“…….”

“어떡하지? 막 누구한테 사과해야 할 것 같아. 나 뭐 잘못한 거 있나? 아닌데. 왜 이러지?”

리사가 안절부절못하고 제자리에서 몇 바퀴 돌다가, 결국 자신이 공격했던 사람-이제는 시체가 된-에게 사과를 하러 뛰어갔다. 단테는 그 모습을 보고 몇 번 삐걱거리다가, 간신히 앉을 만한 곳을 찾아서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리사처럼 어딘가로 달려가서 사과해야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뭐. 솔직히 자신도 조금 그래야 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갑자기… 가장 좋은 사죄 방법은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꽤 회피적인 생각임이 틀림없었다.

* * *

그녀를 그리워한 세월은 10년이나 되는데도, 의외로 그의 혼란과 부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사실 그럴 새도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일단 첫 번째로, 10년 동안 에이의 머리카락 한 톨마저 기억하려고 한 집념이 어디 갈 리가 없었고.

그리고 두 번째로,

“이 개자식아.”

다른 잡생각이 드는 것보다, 그녀가 다짜고짜 욕을 내뱉으며 그의 멱살을 잡는 것이 더 빨랐기 때문에.

마탑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그를 손쉽게도 찾아낸 에이는 이전에 만났던 날처럼 화가 난 얼굴이었다. 마치, 그가 언젠가 바랐던 그 모습대로.

그는 에이가 다시금 눈을 맞춰오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말 그대로 영원히.

……정말이지 낯익은 갈색 눈이었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