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붉은 마석의 출처를 알아보라고 명령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의 유능한 비서는 금세 정보를 구해왔다.
상사의 변화를 감지한 듯 평소보다 신속한 일 처리였고, 이윽고 단테는 모든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몇 장 되지 않는 서류에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읽었을 때 얼마나 어이가 없던지.
고작, 대륙 정복을 꿈꾸는 한 왕국의 욕심 때문에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갑자기 그들이 마법을 이용하기로 했다는 점, 그리고 마탑주인 그가 알기로 왕국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마법사들이 없다는 점이 석연치 않기는 했지만…. 에이를 잃은 시점에서 그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무엇이 되었든 전쟁을 일으킨 건 왕국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 전쟁으로 많은 마을이 불에 타 사라졌고, 사라진 마을 중에는 그가 지내던 마을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마을에는 하필 그녀가.
그가 사랑하던 이가 그곳에 있었다.
그 마을만 건드리지 않았다면 너희가 전쟁을 하든 말든 아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혼자 남겨진 그는 뒤늦게 분노를 터뜨렸지만, 그의 분노에 화답해주는 이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송두리째 뒤집힌 것은 순식간이었다. 에이를 죽게 한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그리고 에이의 곁에 있지 못했던 자신을 향한 분노가 새빨갛게 그의 눈앞을 채웠다.
화염처럼 단테를 덮친 그 감정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이성을 태우며 넘실거렸고, 에이를 잃은 직후부터 제정신이 아니었던 그는 그 불길을 가라앉힐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머릿속을 지배한 감정을 받아들인 단테가 행한 것은 복수라는 명목의 살인이었다.
전쟁의 초입인 만큼 왕국군은 사방에서 진격해오고 있었고, 그렇기에 단테는 특별히 그들을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단테는 한 치의 자비도 없이 왕국군을 고통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마을을 터뜨린 주범과 같은 편이라고 판단되면 무조건 처리했다. 아무리 많아도, 그들이 울어도 빌어도 두려워하고 도망쳐도 가차 없이 죽였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이가 에이의 죽음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자신이 분노에 휩싸여 무고한 이를 죽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은 당시의 그에게 불가능했다.
아니, 사실 판단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보이는 그녀의 잔상에, 꿈만 꾸면 되풀이되는 그녀의 죽음에 그는 매일 새롭게 슬펐고, 괴로웠고…….
종래에는 절망했다.
나날이 그가 짓밟는 시체와, 신음과, 공포가 많아졌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피가 옷을 새빨갛게 물들이는 것쯤은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되었다.
살갗이 타는 냄새가 익숙해지고, 죽어가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풍경 속에서도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광범위 마법을 시전하는 것은 이제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었다.
그날도 그는, 왕국군이 은신하고 있는 곳을 찾아내어 불을 지른 뒤였다. 에이를 죽게 한 이들에게 똑같은 고통을 선사하면 기쁠 것 같았는데, 정작 불에 탄 시체를 보는 그의 기분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복수를 하면 후련하다는 말이 그에게만 해당되지 않았던 걸까. 이것도 그 나름의 복수일 텐데도, 해소되는 감정은 없고 오히려 날이 갈수록 더더욱 외로워지기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멈출 수도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들, 전부 자네가 죽인 건가?”
반사적으로 마법을 시전하려던 그가 멈칫, 동작을 정지했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천천히 뒤를 도니, 갑옷을 입고 말에 탄 사람들이 보였다. 간신히 열 명을 넘길 것 같은, 그러나 최정예만 모아놓은 것 같은 기사들.
그중에서도 선두에 선 사람은, 단테를 똑바로 직시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백금을 녹인 듯한 머리카락이 햇볕에 빛나는 듯했다.
“최대한 일찍 도착한 건데, 서두른 보람이 없군.”
상대가 한숨을 쉬며 말에서 내렸음에도, 단테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서 서 있었다.
눈앞의 사람이 한 제국의 황태자라는 것도, 그 황태자가 ‘우정에는 나이가 필요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며 기어코 친구라는 호칭을 따낸 사람이라는 것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에이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황태자의 앞에서 사라졌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에, 단테는 용건만 말하라는 눈으로 황태자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 눈빛을 받은 상대가 순순히 용건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누가 왕국군을 죽이고 다닌다기에, 하늘이 돕는가 했지.”
단테가 이미 다 처리한 적들을 둘러보는 시선이 짐짓 여유로웠다.
“근데 이제 보니 하늘이 아니라 마법사가 돕고 있었군?”
“……시답잖은 소리 할 거면 이만 가지.”
“오랜만에 봤는데 까칠하기는. 물론, 나도 이런 말을 하려고 온 건 아니야.”
능청스럽게 말을 붙이는 모습만은 여전했다. 단테의 표정이 짜증스럽게 바뀌기 직전, 황태자가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장난처럼 이야기하던 직전과 달리 한층 진중해진 얼굴이었다.
“자네가 추모식에 참석했다고 들었어.”
“…….”
“이번 일로 소중한 이를 잃었나?”
침묵하던 단테의 얼굴에 미세하게 금이 가자, 황태자 얼굴의 미소는 더욱더 짙어졌다.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는 사실이 못내 만족스러운 듯이.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가, 고작 시골 마을의 추모식에 나타나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나야 뭐, 전쟁의 첫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부하를 보냈다지만 자네는 그런 것도 아니잖아?”
“…내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
“당연히 상관있지. 다른 것도 아니고 자네의 행동이 우리 제국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단테는, 황태자가 굳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짐작했다.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계속 제국에게 도움을 줄 거라면, 아예 동맹 내지 협력을 요청하겠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마탑은 유구하게 중립을 지켜왔다. 마탑주인 그가 협력한다는 것은 마탑을 전쟁에 동원한다는 말과 다름없는데, 마탑이 전쟁에 관여하는 것도 모자라 특정 누군가의 편을 들어준다니 안될 일이다.
머리로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네가 갔다 오면 나도 내 비밀 하나 알려줄게.’
너를 잃었는데 그런 게 중요할까?
어차피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지는데, 마탑이 어떻게 되든 그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단테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는 사이, 황태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마을을 터뜨리자고 명했던 사람들을 알려주겠네.”
자네도 핵심 인물까지는 모를 것 아닌가.
그렇게 덧붙여지는 한 마디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던 보라색 눈동자가 천천히 황태자를 향해 움직였다.
“나는 자네의 목적을 알아. 사실 모를 수가 없지. 일단 보이는 대로 다 죽이는 거 보니까 그 원흉도 궁금할 것 같은데.”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지리라 의심하지 않는 얼굴. 원래라면 마탑의 전력을 얻기 위해 무수한 노력을 해야 했을 테지만, 황태자는 마탑의 주인을 찾아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협조를 구하고자 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자면, 황태자로서는 무척 쉬운 방법을 고른 것이었다.
어찌 보면 매우 건방지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으나, 단테가 오히려 황실의 공식적인 연락은 받고 있지 않다는 점과 황태자가 그의 목적을 정확히 파악한 제안을 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확실히 황태자는 영민하고 교활한 지도자의 재목이 아닐 수 없었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맞춰주는 것 같으면서, 사실상 누구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시키는.
게다가 그는, 단테가 약간이라도 고민할 여지를 없애겠다는 듯 쐐기를 박았다.
“보통 첫 진격지를 정할 정도의 권한을 가진 인물들이라면 보통 계급은 아니겠지. 그런 이들의 처우는 신중히 결정해야 마땅할 테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
“자네가 그들을 온전히 ‘상대’할 수 있도록.”
다소 후한 결정임에 틀림없었다. 그만큼 마탑주라는 전력이 탐난다는 소리이기도 했고.
앞으로 마탑의 입장이 곤란해질 거라는 사실도, 황태자가 교활하다는 사실도 단테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을을 뒤집어놓은 주범이 누구인지 성가시게 알아내 준다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처우를 온전히 맡긴다는 것에 구미가 당겼다.
단테는 이미, 자신의 분노를 감당하지 못해 저 자신 말고는 신경 쓰지 않는 상태가 되어있었으니까.
그와 눈을 맞추며, 다시 한번 황태자가 웃었다. 악수를 청하듯 단테를 향해 손을 내미는 모습이 정중했다.
“그러니까 날 좀 도와줘.”
단테는 거절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