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전부 그의 잘못이었다.
온통 무채색인 풍경 속에서 한참 울고 난 후에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에이는 그가 아니었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성급하고, 앞뒤가 맞지 않으며 동시에 비이성적이기까지 한 생각이었다. 어느 누가 보아도 에이가 죽은 것은 그의 탓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를 죽인 사람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누구의 죄를 묻고 따진단 말인가.
하지만 단테가 그 순간 생각하고 있었던 건 그녀가 죽었던 상황이 아니었다. 그는 조금 더, 그 전의 과거를 더듬고 있었다.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그 모든 생각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겠지만.
그 당시 단테의 머릿속은 분노와 슬픔으로 섞여 엉망이 되어있었고, 코끝을 찌르는 탄내가 그것을 더 헤집어 놓았다. 그렇게, 제 구실 못하는 머리로, 그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아, 그때.
그때 이 마을로 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처음 만났던 그 작고 좁은 집, 그곳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모든 풍경이 한눈에 담기는 마을이 아니라 나무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숲에 계속 있었더라면.
에이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그 짧은 시간, 그는 용케도 마을 옆의 숲이 꽤 멀쩡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탄내가 조금 묻어있을 뿐인 나무들도, 입구 쪽만 조금 흐트러진 것이 전부인 흙과 풀도, 누가 다녀간 흔적조차 없었던 그 집도… 모든 것이 다 변함없었다.
불이라도 크게 번져 자신들에게까지 피해가 올까 봐 일부러 내버려 둔 건지, 아니면 마을에 폭탄을 터트리는 일에만 집중해 종래에는 무시하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마을과 달리 숲은 깨끗하기만 하다는 사실이었다.
너도 거기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단테가 조금만 더 침착했더라면 그 모든 생각이 의미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
잠시 호흡을 끊어낸 단테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붉어진 눈가를 그대로 드러낸 채, 그가 걸음을 옮겨 향한 곳은 다름 아닌 마을 근처의 숲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을 뿐 그녀에 대한 기억만은 그대로 남아 있는 과거의 집으로.
그곳까지 닿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익숙해져 버린 길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그들이 함께 지내던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볼품없는 모양새도, 까맣게 탄 한쪽 벽도, 작게 난 창문도 그대로인 작은 집.
누구도 가꾸지 않은 집주변은 어느새 풀잎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오지 않았던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사람의 흔적이 사라진 곳은 마치 오래 방치된 폐가처럼 변해 있었다.
그 풍경은 시간의 흐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에, 그가 이 근처에서 쓰러져 있었던 일도, 그녀와 이곳에서 함께 살게 지내게 되었던 것도 전부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지게 했다.
낯익고도 낯선 집 앞에서 한참을 굳어 있다가 겨우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살짝 미는 것만으로도 쉽게 열리는 문, 그 틈 사이로 보인 것은 낡은 소파만이 남아 있는 황량한 풍경이었지만.
폐허가 된 마을에 비하면 눈앞의 황량함은 굉장히, 온전한 축에 속했다. 낡은 소파와 그 위에 앉은 햇빛만으로도 그녀가 생각날 정도로.
네가 이 안에 있었던 풍경을 속절없이 떠올리고 말게 될 정도로…….
그것은 분명 허상이었으나, 당시의 그에게는 가장 간절한 것이었다.
마치 눈앞의 풍경을 깨트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소파 쪽으로 옮기는 걸음걸이가 한없이 느렸다. 느린 걸음으로도 그의 다리는 금세 작은 소파에 닿았다. 자세를 낮춰 그 위에 앉아 보니 금세 푹신한 감각이 그를 감쌌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안온함에 긴장이 풀리며, 몸에서 천천히 힘이 빠졌다. 오래 방치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소파에서 희미하게 먼지 향이 났다. 마을에 진동하던 탄내와 비슷하지만 명백하게 다른 향이었다.
이 소파를 네가 좋아했었는데. 소파에 앉은 채로 창문을 쳐다보며, 그는 멍하게 생각했다. 네가 이 소파에 앉아서 저 밖을 내다보는 걸 좋아했었어.
언젠가, 왜 그렇게 하염없이 창밖을 보고만 있냐고 에이에게 물어보았던 것도 같다. 그 질문에 에이는 평화로운 얼굴로 대답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흘러가는 게 느껴지잖아.’
‘……그게 왜?’
‘그냥. 가끔은 그런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져.’
그 대답을 들은 후에는 가끔, 에이가 자리를 비웠을 때 단테도 이 자리에 앉아 보곤 했다. 그녀가 무슨 기분으로 그렇게 늘, 아주 오랜 시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자신도 느껴보고 싶었기에.
하지만 단테는 마냥 하늘을 바라보고만 있지는 않았고, 그 대신 그녀를 기다렸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던 에이가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기를, 문을 열고 들어와 이곳에 앉아있는 그를 발견하고 희미하게나마 웃어주기를 바랐다.
그게 당연했던 때도 있었다. 혼자서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돌아오는 것이.
“…….”
이곳에서 그녀를 생각한다고 그녀가 돌아오지 않음을 알고 있다. 단테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앉아있으니 마치 자신이 에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저 멀리 나갔을 뿐인 누군가를, 곧 다시 돌아올 이를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기다리고 떠올린다면,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그녀가 그를 다시 찾아올 것만 같아서.
결국 단테는 창밖이 노을빛으로 가득 물들 때까지, 그곳에 한참을 머물러야 했다.
한참을.
* * *
R1.
상사와의 연락이 끊긴 것이 벌써 며칠째였다.
루크의 상사, 그러니까 마탑주는 원래도 제멋대로기 짝이 없어서-어느 누가 결혼을 아무도 모르게 한단 말인가! 그런 중대사를!-가끔 일언반구도 없이 잠적을 하는 일이 잦기는 했지만, 이렇게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사라진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아내와의 연락이 잘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연락이 잘 안 될 수도 있지, 갑자기 사라질 건 또 뭐람.”
항상 그래왔듯이 마탑에 관련된 업무를 대신 처리하며, 루크는 혼자서 투덜거렸다.
변질자들에게 공격당해 잠시 연락이 끊겼던 이후로, 그리고 자신을 구해준 이와 함께 살다가 결혼까지 하게 된 이후로 자신의 상사는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처럼 굴었다. 일단 행복감에 취해 변질자들을 향한 경계를 누그러뜨린 것이 첫 번째였고, 이렇게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사라지는 것이 두 번째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사이에 변질자들이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는 일은 없었지만……. 솔직히 루크로서는 불안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렇게 평화에 안주하다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고.
이미 마탑과 동떨어진 곳에 지내고 있는 이가, 그리고 자신은 마음대로 연락하지만 그렇다고 상대의 연락을 받지는 않는 상사가 그의 잔소리에 가까운 충언을 들어줄 리 만무했지만, 하여튼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친김에 상사에 대한 불만도 몇 마디 중얼거리는데, 갑자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통신구에서 불빛이 반짝거렸다. 무심코 불빛에 시선을 주었던 루크는 그것이 마탑주의 연락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득달같이 통신구를 낚아챘다.
저번에 연락을 갑자기 끊었던 것이 생각나 다짜고짜 용건부터 들이민 것은 덤이었다.
“어디 가셨어요? 지금 당장 돌아오셔야…….”
[ …루크. ]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루크는 딱 소리 나게 입을 다물었다.
“탑주님, 목소리가…….”
[ ……. ]
“에이 님을 만나러 가신 거 아니었어요? 거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 ……해. ]
“예?”
[ 지금 당장……. 붉은색의 마석을 대량으로 사들인 사람을 조사해. ]
“갑자기 그게 무슨……. 탑주님, 무슨 일인지는 알려 주셔야.”
루크가 질문을 마저 완성하기도 전에, 뚝 하는 소리가 들리며 통신구의 불빛이 다시 반짝거렸다. 연결이 끊겼다는 신호였다.
이렇게 자기 말만 하고 끊어버린다고? 진짜?
루크는 약간의 황당함과 걱정 속에서 몇 번이고 마탑주와의 연결을 시도했으나, 상대는 그의 연락에 답해주지 않았다.
잠잠하기만 한 통신구를 허탈하게 내려놓으며, 루크는 마탑주가 일방적으로 내뱉고 간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뭐라고 했더라, 붉은색의 마석? 그리고 그걸 사들인 사람에 대해서 조사하라고?
갑자기 그건 왜? 아내를 보러 간 남편이 찾기에는 너무 뜬금없는 물건이 아닌가. 루크는 늘 상사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오늘은 특히 그랬다.
차라리 업무에 대한 경과나, 그가 내팽개치고 간 일의 수습에 관해서 물었다면 이해라도 했을 텐데.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다 못해 숫제 긁히는 것처럼 들렸던 이유도 물어보지 못했고 말이다. 일단 시킨 일이니, 하긴 해야겠지만…….
“……무슨 일이시지, 도대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예상하지도 못한 채, 루크는 그저 어리둥절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