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66)화 (66/181)

66.

아, 맞다. 단테한테 할 말 있어서 온 건데.

“단테.”

잠깐만. 확 가까워진 거리에서 저 얼굴이 이쪽을 향하니까 심장에 해롭다. 새삼 내가 얘 얼굴에 약하다는 게 실감이 나네. 순간 위기감을 느낀 나는 급한 대로 뒷걸음질을 치며 말을 이었다.

“너 혹시 네 동료들이랑 사이가 별로 안 좋아?”

내가 한 발짝 떨어지자 그만큼 한 발짝 다가오던 단테가 멈칫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동료들이랑 있을 때 표정이 싹 굳길래.”

여태까지 들어온 말도 그렇고, 보통 동료라고 하면 생각나는 동지애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파견단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단테를 꺼리는 느낌에 가까웠지.

만약에 그 모습이 이전에 단테와 어떠한 충돌이라도 있어서 그러는 거라면?

음, 그렇다고 단테와 그 사람들이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상상이 간다는 말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잠시 뜸을 들이던 단테가 대답했다.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야.”

“그래?”

뭐야, 내 눈치는 왜 봐? 또 뭐라고 하려고.

“사이가 안 좋아서 표정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들이랑 있기만 하면 표정이 굳는 거야.”

“뭐? 아, 그냥 그게 기본 표정이라고?”

“응.”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냉담한 얼굴이라니. 분명 예전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하기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에 나는 단테의 무표정을 본 적도 손에 꼽았다. 내 앞에만 서면 웃기 바빴으니까.

단테의 눈이 도르륵, 내 시선을 피하려는 듯이 굴렀다. 마치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을 들킨 것만 같은 반응이었다. 설마 내가 자기 표정을 알아챌 줄은 몰랐던 건가. 

뭐,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럼 싸운 건 아니라는 거지?”

“응.”

“그래, 안 싸웠으면 됐어.”

내 말에 단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라 안 해?”

“내가 뭐라 할 게 뭐 있다고. 네 표정 하나하나에 딴지 걸 생각 없어.”

비슷한 맥락으로 내 표정 지적도 안 받는다. 내가 대충 손을 휘젓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단테가 활짝 웃었다.

“그러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 네 표정이야 네 자유지.”

“그쪽 사람들이랑 꽤 친해진 것 같아서. 좀 친절하게 대해주라고 말할 줄 알았어.”

“싸늘한 얼굴이 무례한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막 나가라는 말은 아니야, 단테.”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인상을 찡그리자 단테가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그 웃음소리에 표정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것도 잠시.

“그 사람들이랑 싸웠을까 봐 걱정했어?”

“응, 걱정했지.”

단테의 질문에 다시 한번 미간이 찌푸려졌다. 정말로, 그 사람들이 단테한테 일방적으로 당했을까 봐 걱정했다. 그랬으면 내가 대신 사과라도 해야 하나 싶어서.

내 생각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 말을 들은 단테의 미소는 한층 더 밝아졌다.

“그런 이유로 날 걱정하는 사람은 아마 너밖에 없을 거야.”

“이 걱정이 네가 생각하는 걱정이 아닐 텐데……. 어휴, 됐다.”

네가 좋은 대로 들어. 그렇게 덧붙이며 한숨을 쉬자, 웃음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어느새 또 한 걸음 다가왔는지 바로 가까이에서 울리는 듯한 웃음소리였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감싸는 온기.

나는 순순히 단테에게 안기면서 말했다.

“앞으로도 싸우지 마.”

“그래, 절대 안 싸울게.”

“진짜지?”

“응.”

좋아. 그 대답에 나는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팔을 뻗어 단테를 마주 안아주었다.

* * *

 안 싸운다며, 이 거짓말쟁이야.

* * *

K4.

케이드가 마탑주와 맞닥뜨린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계단이 나오기 직전, 복도의 끝. 그곳을 지나가며 잠깐 시선이 마주친 것이 다였으나, 케이드는 마탑주의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기민하게 눈치챘다. 여전히 차가워 보이지만 어쩐지 어느 한구석이 누그러진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그리고 그 변화에 떠오르는 건 단 한 사람. 

언젠가 지평선 너머를 향하던 갈색 눈동자와, 그를 등지고 서 있던 누군가의 뒷모습이 눈앞에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탑주가 단번에 자신을 알아봐서 다행이라며 이야기하던 얼굴도.

“마탑주.”

입을 열어 상대를 부른 것은 충동에 의한 행동이었다.

멈칫. 지나쳐가던 마탑주가 걸음을 멈추고, 금세 시선이 부딪쳤다.

“뭐 좀 물어봐도 됩니까?”

“…….”

분위기가 약간 누그러졌다고 해서 냉담한 눈빛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으나, 케이드는 개의치 않았다.

저 모습에 기가 죽을 거였다면 전쟁 중에 마탑주의 가까이에서 싸우지도 않았을 거고, 또 이렇게 불러세우지도 않았을 테니.

조용한 공간에 케이드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에이의 말로는 당신이 마탑주라는 걸 다른 사람의 입으로 알았다고 하던데.”

역시나. 에이의 이름이 나오기 무섭게, 마탑주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그리고 당신은 에이가 죽어도 죽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았고요. 맞습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묘하게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빠르게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까와 비슷하게, 케이드는 자신의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본래 남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고, 지금은 더더욱 상대를 살피고 있지 않았으니.

“그냥, 좀 의문이 들어서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생각하는 이였다면 애초에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하는 말도, 단순히 그의 의문에서만 비롯된 건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질문하는 것은, 케이드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시작된 거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둘, 그리고 그 둘을 볼 때마다 까닭 없이 기분이 저조해지는 자신.

케이드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견디지 못했다. 그게 하물며 자기 자신일지라도.

마탑주를 바라보는 그의 은색 눈이 희미하게 찌푸려졌다.

“부부라는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서로를 모를 수 있습니까?”

반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어조였고, 반은 비아냥대는 어조였다.

좋게 본다면 직설적인 질문이었고, 나쁘게 본다면 시비였다. 평소의 그였다면 분명 마탑주에게 이런 식의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평소의 그였다면.

그 질문을 뱉고 나서야, 그리고 질문을 들은 마탑주의 표정이 변하고 나서야 케이드는 마탑에 들어온 순간부터 자신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가시가 돋친 성미를 따라가듯, 원래도 친절하지 않았던 말투가 더 날카롭게 튀어 나갔다.

“당신이 마탑주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 것은 그렇다고 쳐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듣지 못했던 결과는 꽤 크지 않았습니까. 그건 당신이 제일 잘 알 텐데요.”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으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건 일종의 분풀이에 가까웠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는지 물어보기는 했나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 그 와중에도 마탑주의 침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케이드는 자신이 무의미하게 한 사람의 신경을 거스르고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챘다. 분명 그가 입에 담고 있는 것은 저들만의 문제였고, 케이드가 관여할 수는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의 이성은 이미 자신이 선을 넘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고, 그렇기에 멈추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말해주지 않을 만큼, 상대가 무심하다는 것을 알고도.”

케이드가 까딱, 고개를 기울였다. 옅게 찌푸려졌던 인상은 어느새 얼굴 전체를 채울 정도로 가득 일그러져 있었다.

“계속해서 그 사람을 사랑할 마음이 듭니까?”

그 한마디가 마치 칼날같이 떨어진 순간.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채, 바닥을 향하고 있던 마탑주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너…….”

마치 주변을 옥죄어오는 듯한 살벌함에, 역설적으로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반응은 이쪽이 더 격렬하기는 하군.

기분이 나빠도 티 내는 일은 없던 다른 쪽과는 확연히 달랐다.

“감히.”

짧지만 선명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

마탑주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커다란 굉음이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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