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63)화 (63/181)

63.

“죽지 않는다고?”

“응.”

순순히 대답해주기는 했지만, 단테가 여전히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불안감이 슬그머니 치밀어 올랐다.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 거짓말을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 어쩌지? 진위를 가리는 걸 떠나 아예 믿으려고 하지도 않는다면?

“…죽어도 다시 살아나고, 늙지도 않는다고.”

“응.”

“그럼 내가. ……혼자 남겨질 일도 없다는 말이야?”

하지만 전부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게 금세 드러났다. 나는 새어 나오는 안도감을 꾹 누르며, 단테와 시선을 마주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리고는 더 이어지는 말이 없었다.

방금 전의 질문을 생각해보면 내 말을 아예 알아듣지 못한 건 아닌 듯했는데,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건가? 조심스럽게 단테의 손을 놓아주던 찰나.

“……지금, 지금 이거.”

속삭이듯 나온 말과 함께, 단테의 눈에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이거 꿈인 거…….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서 주춤, 단테가 비틀거리면서 물러났다. 그 작은 움직임에 눈물이 또 떨어지고,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가 물기로 젖었다.

물러났다고 해봐야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 그 거리 끝에서, 단테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자기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아까 그렇게 울었으면서 또 흘릴 눈물이 남아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아까부터 나랑 이야기하기만 하면 울고, 또 울고. 그러고 보니 단테는 내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때도 내 앞에서 울었었지.

단테가 지금 우는 이유는 내가 한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내 말이 믿기지 않아서일까.

눈이 아플 정도로 번져오는 노을빛이 울고 있는 네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비췄다.

“꿈 아니야.”

내 조용한 대답에 단테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럼 내 귀가 잘못된…….”

“그것도 아니고.”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딱 잘라 대답하자, 단테가 입을 다물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입을 다물며 울먹거렸다. 울고 있으면서 또 울려고 하는 건 뭐야.

참을성이 바닥난 내가 떨어진 거리만큼 성큼 다가가자, 단테가 흠칫하면서 또 그만큼 물러났다.

“왜 물러나?”

“아, 아니…. 나도 모르게.”

“흠.”

그렇게 대답했으면서 다가가니 또 물러난다. 이러면 자기도 모르게 물러난 게 아니잖아. 일부러 도망치고 있지, 지금?

나는 단테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단테, 너.”

“응.”

“지금 내가 사라질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지.”

“…….”

침묵은 곧 긍정이었다.

아까도 그랬었지, 꿈속에서 늘 내가 손을 잡아 주다가 사라졌었다고. 단테가 나를 안고, 내가 단테를 마주 안아주려고 할 때면 늘 꿈에서 깼다고 했었나.

아예 다가가지도 못하게 하는 걸 보니 꿈이 아니라는 말이 믿기지 않나 보다. 

내가 너처럼 죽지 않는다는 말이 그렇게 꿈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말이야?

어떻게 해야 믿을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다시금 단테의 눈을 마주 보았다.

뭐야, 왜 그렇게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알고. 울고 있는 와중에도 저런 표정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단테.”

“……응.”

“넌 지금 내가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는 게 안 믿기는 거지?”

“어? 그.”

“고장 나지 말고.”

다시 한번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니 단테가 놀란 듯 한 번 더 비틀거렸다. 저러다가 넘어지겠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음, 내가 다쳤다가 낫는 거 보여줄까?”

“뭐?”

“다시 살아나는 건 어때? 요즘 상처 회복 속도도 빨라서 낫는 것도 시체만 온전하면 그대로 살아날 것 같…….”

“아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아직 말을 끝마치지도 않았는데, 단테가 기겁하면서 내 한쪽 손을 덥석 붙잡았다. 여전히 단테의 눈동자엔 물기가 아롱거렸고, 내게 매달려오는 손엔 간절함이 담겨있었다.

진작 이럴 것이지.

내가 잡히지 않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주자, 단테가 몸을 흠칫 떨었다.

“난 진심이야, 단테.”

“…….”

“내가 이렇게 해야만 내 말을 믿는다면 할 수 있어.”

죽고 다쳐보겠다는 건 나인데, 제발 그러지 말라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건 너였다.

“못 믿을만하지만, 그래. 난 정말로 200년 동안 늙지 않았고, 만약에 죽는 일이 있어도 완전히 죽지 않았고, 결국 죽지 못해서 살다가 너를 만났어. 그리고 또…… 죽었고.”

내가 죽었었다는 말에 단테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또 살아났지.”

“…….”

“생각해 봐, 너랑 내가 함께 지내던 마을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렇게 된 곳에 있던 내가… 죽었다 살아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지금 네 앞에 있겠어. 지금 나는 너의 꿈도 아니고, 일리난도 아닌데.”

마을을 떠올리자마자,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치솟아 오르는 기분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할 말은 끝까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나는 내 손 위로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보았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울고 있는 거야 아까부터 계속 울고 있었다지만.

어째서인지 아까와는, 자기가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르고 울고 있던 아까와는 확연히 달랐다. 안타깝고, 슬프고 걱정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는 얼굴.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단테가 작게 속삭였다.

“많이 아팠어?”

“…….”

순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게, 상처를 입어도 낫고. 죽어도 살아나고, 산산조각이 되어도 살아났다는 말은…… 네가 그 모든 걸 다 겪어봤다는 거잖아.”

닦아준 것이 무색할 정도로 속절없이 흘러넘치는 눈물.

단테의 얼굴이 다시 젖어 들었다.

“네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기뻤는데. 믿기지 않았어도, 네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는 정말…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기뻤어. 그런데…….”

횡설수설, 단어들이 조각조각 이어지며 간신히 알아들을 수는 있을 만한 문장이 만들어졌다.

“너 아픈 거 싫어하잖아. 근데 그렇게 죽을 것 같은, 아니, 실제로 죽을 만큼의 고통을 몇 번이나 견뎠다고?”

“……난 괜찮아.”

“뭐가 괜찮아. 그렇게 죽었다가 살아났었다고, 산산조각이 나도 살아났었다고 담담하게 말할 일이 아니잖아.”

여전히 너는 네가 더 아픈 것처럼 울고 있어서, 늘 버릇처럼 말하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도 이젠 익숙해졌다는 그 말이.

단테에게 붙잡혀 있는 손이 아닌, 아까 눈물을 닦아주었던 다른 손. 단테는 그 손마저 자신의 손안에 가두더니, 내 손등에 입을 맞췄다.

손등에서 느껴지는 옅은 간지러움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네 말 다 믿어. 200년 동안 늙지 않았다는 말도,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말도, 무슨 말이든 다 믿을게. 네가 하는 말이라면 세상이 무너진다는 말도 믿을 테니까…….”

눈물이 한 방울 더.

“그렇게 네가 아팠던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지 마…….”

네가 그럴 때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끝이 한껏 흐려진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단테는 계속 울고 있었고, 내 손은 네가 붙잡고 있었으며, 나는 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나는……. 너를 바라보며, 네가 나에게 한 말을 남김없이 들어버린 나는,

너처럼 울어버릴 것 같았다.

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 과분할 정도로 사랑해주는지.

“……계속 네가 안 믿어주면 어쩌냐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내 말에 단테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믿는 건 너무 쉽게 믿어버리고, 그 와중에 날 걱정하고, 나 때문에 울고…….”

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덧붙이는 말은 내가 듣기에도 지나치게 태연하게 들렸다. 비록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한 말이었어도.

손을 놓고 단테의 얼굴을 끌어당기자, 단테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면서도 자세는 내가 끌어당기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낮춰주었고.

그래. 너는 정말이지,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다정했다.

“네가 그때 그랬지. 내가 영원한 사랑을 얻은 거라고.”

나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는, 아직 울음기가 가시지 않은 얼굴은 여전히 예쁘고, 잘생겼고, 내 취향이고, 어쨌든 내 마음에 안 들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흠, 이게 콩깍지인지 진짜 잘생긴 건지 잘 모르겠네.

이런 얼굴로 자꾸 그런 말들을 하니까 결국 내가 이 말까지 하게 된 거잖아.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보라색 눈이 다시금 커지는 모습을 보고, 나는 활짝 웃었다.

“단테.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이미 밤이 되어버렸으니 그때와 완전히 같은 풍경은 아니었지만, 뭐 어때.

나는 언제나 너로도 충분했다.

“너는 영원한 사랑을 얻은 거야.”

“…….”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마법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때, 너랑 좀 비슷했어? 덧붙이며 내가 또 한 번 웃자, 잠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굳어 있던 단테는.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아니, 나보다 훨씬 나았어.”

너는 그렇게 말하고, 또 한참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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