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말을 바로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갑자기 단테가 나를 끌어안았다.
“단테?”
“응.”
고개를 파묻으면서 대답하는 것이 당황스러워 눈을 깜빡거리자, 단테의 팔이 나를 품에 더 단단히 가두었다. 아니, 잠시만.
“나 할 말 있다니까.”
“그래, 해.”
“이 상태로 하라고?”
얼굴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바르작거렸지만, 단테는 그 움직임마저 차단하려는 듯 더 세게 안아올 뿐이었다. 얘 왜 이래.
그 와중에 단테의 품 안은 따뜻했다. 나도 모르게 마주 안을 뻔했을 만큼.
하지만 이 이야기를 더 미룰 수는 없었기에, 나는 내 팔을 억지로 밑으로 내리며 단테의 등허리를 톡톡 두드렸다.
“이렇게 안고 있는 상태로 할 이야기 아니야.”
“이제 언제든 안아주겠다며.”
“내가 언제……. 아, 맞다.”
아까 릴리 앞에서 그랬었지. 약간은 말이 달라진 것 같기는 했지만, 맥락 자체는 비슷했다.
단테가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 수 있냐는 듯 고개를 더 깊이 파묻었다. 누가 꽉 안고 기대어 온다는 게 이렇게 간지러운 건지는 몰랐는데.
하지만 나는 간지럽다고 말하는 대신 단테의 등을 한 번 더 두드렸다.
“할 말부터 하고 그다음에 안으면 안 돼?”
“안 돼.”
“못 보는 사이에 고집이 늘었다, 너.”
아무 생각도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돌아온 건 물기 어린 목소리였다.
“……그 못 보는 사이에 한 번도 못 안았으니까 좀 봐줘.”
“…….”
마치 애원처럼 들리는 말에, 일부러 그러려고 하지 않아도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빠져나가려던 시도를 멈추고 단테에게 가만히 안겨 있는 것뿐.
어차피 이렇게 꽉 안겨 있는 상태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지만.
나를 안고 있는 네 팔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이내 낮게 이어지는 목소리도.
“너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
억눌림을 애써 숨기는 듯한 말이 귀 가까이에서 울렸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안아오는 팔이 어쩐지 매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안고 있는데도 꿈속인 것 같아. 어젯밤 꿈에서도 너는 내 손을 잡아 주다가 사라졌었어. 지금처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화하다가 그렇게…….”
아무것도 남겨 주지 않고. 뭉개진 발음으로 덧붙여진 문장은 끝을 맺지 못한 채 사그라들었다.
“나는 아직도 너의 꿈을 꾸는 걸까.”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이 들리기도 잠시.
단테가 입을 다물고, 금세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나는 아주 작은 흐느낌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단테.”
“……응.”
“너 울어?”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대답만 없었다. 흐느낌은 조금 더 커졌고, 단테의 등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으며, 여전히 나를 안고 있는 팔은 풀리지 않았다. 정말로, 이런 자세로는 얼굴을 살펴볼 수조차 없어서.
나는 단지 너를 마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있잖아. 꿈에서도 내가 마주 안아줬어?”
“……아니.”
“왜 그랬지. 내가 나빴네. 손만 잡아 주는 게 아니라 안아도 줬어야 했는데, 그치.”
마주 안은 후 등을 토닥거리자, 내 손길에 따라 등의 떨림이 더 커졌다.
아, 분명 펑펑 울고 있을 것 같은데.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는 것이 마냥 아쉬웠다.
“아니야, 넌 마주 안아주려고 했어. ……그때마다 내가 꿈에서 깼을 뿐이지.”
“그래?”
“꿈에서 깨지 않기를 그렇게 바랐었는데.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아니. 안 되지, 그건.”
꿈에서 깨지 않는 방법은 영원히 잠드는 것뿐이다. 네가 영원히 잠들 뻔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꿈에서 깨지 않기를 바랐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타박하는 말을 내뱉는 대신 단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꿈에서 깨지 못했다면 지금 나를 보지 못했을 거잖아.”
“…….”
침묵하는 단테를 느끼고, 조금 웃음기를 섞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꿈속의 나로 만족할 수 있어?”
못하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분명 이어지는 흐느낌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또다시 고요해지기를 한참. 나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단테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노을빛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나를 안고 있는 팔을 풀었다.
놓아주지 않으려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손쉽게 풀려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단테의 품속이었다.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손을 뻗자,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오는 네가 있었다.
만나지 못했던 시간은 빈말로라도 짧다고 말할 수 없는데도, 나를 대하는 네 모습은 하나도 변한 게 없구나.
나는 단테의 뺨을 쓰다듬으면서 속삭였다.
“나한테 물어볼 건 없어?”
“……뭘?”
뭐긴. 죽었던 사람이 갑자기 살아 돌아오면 물어볼 법한 질문들을 말하는 거지.
“내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왜 이렇게 긴 시간 너를 만나러 오지 않았는지 말이야. 안 궁금해?”
“응.”
그 대답에는 어떤 망설임도 없어서, 오히려 망설이는 사람은 내가 되었다.
“왜?”
단테는 가만히 내 손을 감싸 쥐었다. 어쩐지 대답을 알 것 같은데, 정말 내가 생각하는 그 답이라면 조금 슬퍼질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단테와 관련해서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알아차리지도 못한 사이 단테를 내 생각보다도 더 좋아하게 된 탓에.
“네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아, 이것 봐. 넌 결국 나를 슬프게 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던 것 같다. 내 표정 변화에 따라 나를 응시하던 눈동자가 아프게 일렁거리고, 너만은 그런 표정을 짓지 말라는 듯 단테의 뺨이 내 손에 기대어왔다.
분명 나를 위로해주기 위한 행동이었을 텐데 왜 자기가 더 위로받는다는 표정인 건지.
내 손에 기댄 채로 단테는 잠시 눈을 감았다. 마치 안정을 취하는 것처럼.
“……어쩌지, 에이.”
평온한 표정과 달리, 낮게 가라앉아서 조금 갈라지는 목소리.
이내 눈꺼풀 사이로 어둡게 침전한 보라색 눈동자가 보였다.
“너를 다시 잃을 자신이 없어.”
그렇게 말하는 단테는 벼랑 끝에 몰린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나와 다시 만났는데도, 또다시 이별을 생각하는 얼굴. 아무것도 모르는 단테로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필연적으로 나를 떠나보내야 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이번에야 운이 좋아서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이런 행운이 두 번은 없으리라고.
네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단테, 내 눈 봐.”
단테는 늘 그랬듯이 내 말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이렇게 시선을 마주하는 것조차도 벅차다는 듯 눈길을 피하기는 했지만, 정말 잠깐이었고.
내 손을 놓고 똑바로 선 단테가, 온전히 내 눈 안에 담기고 나서야 나는 입을 열었다.
“내가 어떻게 살아 돌아왔다고 생각해?”
“…말했잖아, 어떤 식이든 상관없다고.”
“아니, 이제부터 상관있을 거야. 너도 알아둬야 해.”
무슨 뜻이냐는 듯, 커지는 네 눈동자 속에 스며드는 노을은 분명 아름다웠다.
“내가 또 목숨을 잃는 일이 있어도, 오늘 그랬던 것처럼 다시 살아 돌아올 테니까.”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멍한 얼굴로 단테가 나를 바라보았다. 단테와 헤어졌을 때부터 다시 만난 지금까지 너무나도 그리워했던 모습이었다.
그랬기에 더욱더 사랑스러웠고.
나는 내가 느끼는 사랑스러움에, 한때 입 밖으로 꺼내는 걸 두려워했던 사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이런 식으로 말하면 분명 놀라겠지. 하지만 이 말을 하기 전에 또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
역시 빙빙 돌려 말하는 건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단테.”
“……응.”
“난 죽지 않아.”
“…….”
침묵이 흘렀다.
“내가 차원을 이동했다고 말한 적 있지. 나는, 그래. 차원을 이동한 이후로 단 한 순간도 늙지 않았어. 지금 내가 이곳으로 넘어온 지 200년이 넘었다고 하면 믿어져, 단테?”
나는 차갑게 식은 단테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죽는 일이 있더라도, 상처가 모조리 사라진 채로 어딘가에서 살아나. 그때처럼, 폭탄이 터져 몸이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도 나는 다시 살아났어. 단지 상처에 따라 살아나는 시간이 다를 뿐.”
결국 이번에도 나는 그렇게 살아났고, 살아났기 때문에 여기에 올 수 있었어. 덧붙이는 사이, 차갑게 식어있었던 단테의 손은 어느덧 내 손과 같은 온도가 되었다.
“진작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나중에 말해주면 된다고만 생각했어.”
“……나중에.”
“응.”
내세울 만한 근거는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단테가 10년 전, 우리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때를 떠올리고 있으리라는 걸.
네가 다시 돌아온다면 내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다고 이야기했던 그 날을 말이다.
기억을 되짚어보는 듯한 얼굴은 여전히 멍하기만 했다. 그 얼굴을 다시 살피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정말 영원히 사는 건지, 그냥 아주아주 오래 살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네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을 고스란히 떠올리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삶이라고 해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게 되었어.”
“…….”
“그러니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렇게 묻는 말에도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밤이 찾아오기 직전. 지평선 너머의 노을이 최후의 빛을 내며 반짝이고, 그에 따라 붉은빛이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갈 때.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침묵하던 단테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