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단테의 품 안에서 뒤를 돌자 어렵지 않게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믿기지 않고, 서럽고, 슬프고, 또 기뻐서 한껏 일그러진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서, 언젠가 은하수를 담은 것 같다고 생각했던 눈동자는 물기를 가득 담고 흔들리고 있었다.
눈앞의 얼굴에 손을 뻗어 눈가를 매만지자, 아슬아슬하게 맺혀 있던 눈물이 방울지며 떨어졌다.
간신히 멈춘 것 같던 눈물이 내 손길에 다시 한번 흐르기 시작하고, 이윽고 단테의 얼굴은 물론 내 손까지 적셔버릴 기세로 끝없이 쏟아져 내렸다.
단테는 나와 시선을 맞췄음에도 말을 꺼내지는 못하고 입을 열었다 닫기만을 반복했다. 무언가 무너진 표정으로 내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을 뿐, 목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이제 내가 가짜가 아니라는 걸 알겠어?”
“…….”
대답 없이 울기만 하는 모습에, 나는 작게 속삭였다.
“역시 안 믿어지지?”
“……응.”
“그렇구나. 뭘 해야 믿어줄래?”
누가 들으면 놀리냐고 물을 것 같은 말은, 내가 듣기에도 아까와 같은 무게감은 사라져 있었다. 단테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과 막막함은 저 멀리 사라져 버린 목소리.
내 장난 같은 말에 단테는 억눌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키스해 줘.”
그 말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면서, 너에게 입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 * *
리사가 바로 단테에게 데려다주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실인데, 마탑의 구조는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분명 겉은 칙칙하리만치 단순한 탑이었는데 안에는 무슨 호화 저택처럼 생긴 것도 그렇고. 웬 방문을 열면 갑자기 복도가 나타나질 않나, 계단을 찾자마자 꼭 어디선가 생긴 것처럼 곧바로 발견되질 않나. 마법으로 이루어진 공간이라 그렇다고는 하지만, 그런 원리를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어쨌든, 겉보기와 달리 방이 많은 탓인지 오래 방치된 것이 분명한 마탑에도 멀쩡한 방이 하나쯤은 있었다.
두세 명의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소파가 마주 보며 놓여 있고, 소파들 사이에 탁자가 있는 방. 예상하건대 예전부터 응접실 용도로 사용해왔던 방인 것 같았다.
긴 여행에 지쳤던 나는 소파를 보자마자 편하게 몸을 기대며 앉았고, 내가 앉자 릴리와 케이드, 이반이 반대편의 소파에 따라 앉았다.
같이 여행하던 사람들과 이렇게 마주 앉으니까 정말로 그 힘들었던 여정이 다 끝난 것 같네. 나는 등 뒤로 닿아오는 푹신한 감촉을 느끼며 그렇게 생각하다가, 마주 앉은 세 명의 표정이 하나같이 묘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음, 모르긴 몰라도… 확실히 골칫거리를 해결한 사람들의 얼굴 같진 않은데.
“…….”
저러는 이유는 딱 한 가지뿐이겠지.
나는 내 허리를 감싸 안고 기대어 있는 단테를 쳐다보았다.
“단테.”
“응.”
“널 찾으러 온 동료분들이야.”
내 말에 단테가 힐끗, 건너편의 세 명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어.”
“야, 그 말이 아니잖아.”
“그럼 뭔데?”
안부 인사나, 용건을 묻는 말이나,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을 텐데. 단테는 그중에 어느 것도 입에 담지 않고 있었다.
아마 둘이 있고 싶은데 왜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냐는 자기 나름의 항의 표현인 것 같긴 하다만…….
시치미를 뚝 떼며 시선을 굴리는 모습이 익숙했다. 물론, 나에게만 익숙했는지 다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정도로 놀라?
도대체 그동안 사람들한테 어떤 태도를 보이면서 지냈던 거지.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동료분들 앞에서 굳이 이렇게 껴안고 있어야 하냐고.”
“당연하지.”
“아니, 뭐가 당연해. 뭐가.”
“에이 님, 저희는 괜찮아요…….”
내가 팔을 뻗어서 단테를 쭉 밀자, 결국 릴리가 흐린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창백한 얼굴로 웃어봤자 하나도 안 괜찮아 보여요, 릴리.
저 괜찮다는 말이 거짓말인 게 뻔한 것도 뻔한 거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러고 있으면 내가 더 부끄럽다. 아, 케이드 저 사람 표정 좀 보라고! 내가 다시 한번 버둥거리자, 단테가 심통 난 얼굴로 팔을 풀어주었다. 내가 밀어낸 만큼 다시 다가오려는 태도는 여전했지만 말이다.
그만 좀 붙으라고 단호하게 말한 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용건을 꺼냈다.
“이분들이 할 이야기가 있으시다는데, 일단 먼저 들어보자. 계속 기다리게 할 수는 없잖아.”
“어차피 뻔한 이야기…….”
“그 뻔한 이야기, 나는 듣고 싶은데.”
“…….”
불만스러운 표정 좀 봐. 한시도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모습에 어이가 없어지는 한편, 희한하게도 가슴속에는 희미한 안도감이 들어찼다. 참 이상한 일이지.
나는 단테에게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이제 언제든 안을 수 있잖아.”
마침내 단테가 조용해졌다.
내가 릴리에게 말해도 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릴리는 심란한 표정으로 단테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황실의 명을 받고 온 파견단입니다. 마탑주의 행방을 알아보고, 교란되고 있는 마물의 생태계를 조사하는 것……. 사유는 많았지만, 모두 표면적인 이유이고.”
“…….”
“저희는 당신을 설득하러 왔어요, 마탑주.”
릴리의 녹색 눈동자가 단테에게 닿았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것이 느껴지는, 강한 의지로 반짝이는 눈이었다.
“당신의 오래된 방황을 이제는 그만두라고요.”
“…….”
“오라버니가 그랬습니다. 일단 만나기만 하면 무슨 패를 내세우든, 당신에게 제자리를 찾아가라고 말하라고. 저도 그 생각에 동의했기에 직접 이곳까지 왔어요.”
방황.
10년간, 내가 없었을 때 단테가 행한 행위들을 일축시키는 그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보았다. 방황, 방황이라.
미친 짓이었다고 대놓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해도 그렇지, 너무 순화시킨 거 아닌가. 그 누구도 방황의 결과로 목숨을 끊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도 릴리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떠오른 방법들은 많았죠. 마탑주의 의무를 들먹이며 설득해보겠다는 생각부터, 최악의 경우에는 공격까지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정도로 당신의 상태는 위험해 보였어요. 가라앉은 어조로 덧붙여진 말에, 머릿속에 다시 한번 그 문제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마법진의 마력에 영향을 받아 날뛰었다는 마물들도.
“하지만 지금의 당신을 보니.”
살짝 주저하듯, 말하는 속도를 늦춘 릴리가 잠시 침묵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그렇죠?”
그렇게 말하는 릴리의 시선이 어느새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테의 시선도.
언제부터 단테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 릴리가 나를 쳐다봤을 때부터? 아니면, 내가 단테의 ‘위험한 상태’를 떠올렸을 때부터? 설마 릴리가 말하던 내내 나를 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내가 눈을 맞춰오자 사르르 접히는 미소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그래.”
“…….”
“…이제 내 상태에 대해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릴리에게 그리 대답하며 단테는 웃었다. 자각하지 못한 사이 갑갑해졌던 마음이 비로소 편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그 모든 행동의 이유가 이제 사라졌으니까.”
모호한 말이었으나, 방 안의 모두가 단테의 말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나를 안아오는 팔을 이번에는 뿌리칠 수 없었다.
* * *
릴리와 케이드, 이반에게 쉴 만한 방을 내어주는 단테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복도로 끌고 나왔다.
별다른 말도 없이 그저 단테의 팔을 당기기만 했는데, 단테는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티 한 점 없는 얼굴을 너무 오랜만에 보니 적응이 될락 말락 했다.
단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한 여유가 생기니, 밑바닥에서부터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어느새 머리는 별 쓸데없는 걸 떠올리며 굴러가고 있었다.
가령, 여기가 도대체 몇 층일까 하는. 리사가 데려다주면서 슬쩍 말해준 것 같기도 한데, 3층이었나, 4층이었나.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몰라. 중요하지도 않은 게 갑자기 궁금해져서, 나는 내가 있는 곳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기 위해 복도 끝의 테라스로 다가갔다.
하지만 다가가봤자 큰 소용은 없었다. 얼마나 높은지 확인하기도 전에, 난간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눈을 사로잡았으니까.
“…….”
검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한 숲, 음울하기만 하던 풍경을 태양이 분홍과 주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지평선을 넘고, 숲을 넘고, 이곳 테라스까지 닿은 노을은 창문가에 서 있는 우리까지 빛 안으로 끌어들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구나.”
내가 작게 중얼거리자, 노을에 뒤덮인 숲을 눈에 담던 단테가 고개를 돌렸다. 투명하게 빛나는 눈이 곧 나를 직시하는 게 느껴졌지만, 나는 그 순간까지도 풍경에 시선이 사로잡혀 있었다.
이곳에서는 처음 보는 노을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단테가 내 곁에 있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이 울렁거리는 이 풍경.
그래, 이 풍경은 마치 그날을 닮았다. 내가 원한다면 세상을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네가 영원히 산다는 것을 알려주었던 그 날.
그 사실을 떠올리자, 나는 나도 모르게 단테의 손을 붙잡았다.
“단테.”
먼저 손을 잡은 것은 나인데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처럼 단단히 깍지를 끼며 마주 잡아 오는 손이 느껴졌다.
내가 불러준 것이, 아니, 그냥 내가 여기 있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담겨있어서.
나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마시었다가 내쉬었다.
진작 말했어야 했고, 어쩌면 늦은 것이 분명하지만.
“할 말이 있어.”
이건 꼭 너에게 해줘야 할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