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50)화 (50/181)

50.

“어떻게 또 무사히 돌아오기는 했네.”

나는 마차에 걸터앉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잠깐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보니, 이렇게 마차 안으로 들어온 것만으로도 감회가 새로웠다.

케이드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기색이라, 마차를 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아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숲에서 그 난리를 쳤던 걸 생각하면 몇 시간은 훌쩍 지나있을 것 같았으나, 정작 시간을 확인해 보니 겨우 30분이 지나있었다. 이건 뭐, 사람 가지고 노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정말 그 숲은 왜 그랬던 거지?

불현듯 떠오른 의문에 대답하는 것처럼, 가볍게 짐을 정리한 릴리가 말문을 떼었다.

“자세한 건 더 확실한 조사가 이루어져야겠지만, 숲에 걸려 있던 환각은 마물들이 모이면서 생겨난 현상일 거예요.”

릴리가 차분하게 말을 이으면서 케이드와 내 얼굴을 살폈다.

“일단 저희 모두 한 번 이상은 일리난과 마주쳤죠. 그리고 마주친 이후에는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걸음만 하게 되었고요.”

“네.”

비록 같은 공간에 갇혔던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런 경험을 했다.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릴리가 잠시 뜸을 들였다.

“숲 전체가 그런 게 아니라, 아마 같은 자리를 맴돌게 되는 구역이 있고……. 일리난이 그곳으로 저희를 유인한 것 같아요.”

유인. 나는 그 숲에서 이반이 투덜거리듯이 내뱉었던 말을 기억했다.

‘걸어가면서 일리난을 열 마리쯤 만났어요. 계속 상대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까 어느새 이상한 곳에 갇혀서…….’

일리난에게 그럴 만한 지능이 있을까?

‘위험하지 않은’ 마물이라는 건, 결국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말과 같다. 실제로 나는 일리난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때 그것들이 보여주는 환영과 관련된 주의만 들었을 뿐, 지능과 관련된 말은 듣지 못했다.

그건 결국 힘이 없는 것과 더불어 그다지 똑똑하지도 않다는 말인데. 역시 마석으로 인해 마물에게 어떤 변화라도 일어났던 걸까.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연 릴리는 꽤 예상 밖의 말을 꺼냈다.

“이 일에 마탑주가 관련된 건 확실하다고 생각해요. 마탑주가 마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게 쌓이다 보니…… 일리난이 서식하는 이 숲에까지 영향을 미친 거라고, 저는 추정하고 있어요.”

“……?”

갑자기 걔는 왜? 나도 모르게 의아한 눈빛을 했는지, 릴리가 곧 설명을 덧붙여주었다.

“전쟁이 끝난 후, 그가 마탑에서 상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마물들에게 변화가 생겼어요. 마탑주가 어떤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변화의 근원인 건 확실합니다. 물론, 마탑주가 무슨 의도를 담아 마물을 상대로 실험이라도 벌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요.”

“혹시 왜 그렇게 확신하시는지 여쭤보아도 될까요?”

릴리가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케이드가 말을 이어받았다. 어째 설명을 해주는데도 짜증스러운 어조였다.

“마탑 주변에 정체불명의 마법진이 그려지고 있다는 보고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파견단을 보낼 때마다 마탑 주변의 마법진이 지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만 들려왔으니, 아마 거기서 마력이 흘러나오는 거겠지요.”

…정체불명의 마법진?

그 말을 듣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목 뒤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니까 단테가 마탑에서 모종의 마법을 준비하고 있고, 그 마법이 마물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그러다 보니 그 숲 전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다는 거였다.

이래서 그때 그 상인이 마물이 나타났을 때 마탑주를 언급했군. 밤에만 활동해야 할 마물이 한낮에 움직이는 것도 다 단테 탓으로 보였을 테니. 원래 의문이 해소되면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데 어째 불퉁해지기만 했다.

일단 단테가 마물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건 알겠다. 아마 이들이 마탑주를 필사적으로 찾으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겠지.

하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때 본 마물들은 마력에만 영향을 받았다기에는 다른 점이 하나 있지 않았나?

“그럼 아까 그 마물의 목에 박혀 있던 마석은 뭘까요?”

일부러 반박하거나 단테를 감싸주기 위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정말 의문스러웠다.

“목에 마석을 일부러 박아넣은 것처럼 보인다고 말씀하셨는데, 단, 아니. 마탑주가 그런 짓을 한 거라면, 손수 마석까지 박아넣은 일리난을 죄다 죽이고 다닐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마탑주가 일리난을 깡그리 죽인 흔적들을 보고 오지 않았는가. 내 말을 듣고 고민하는 것 같던 이반이 대답했다.

“마탑주가 일리난으로 실험을 했는데 그게 실패해서 처리하고 다닌 걸까요?”

“하지만, 증거 인멸이 목적이 아니라면 번거롭게 처리하고 다닐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마탑주는 굳이 증거 인멸을 할 정도로 남의 눈치를 보지는 않는다. 걔가 불명예 같은 걸 의식했다면 마탑에 처박혀 있지도 않았겠지.

마차 안에 있는 모두가 고민에 잠기자 꽤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이 흘렀다. 계속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던, 또는 무언가 망설이는 것 같던 릴리가 입을 열었다.

“저도 그 점을 의아하게 생각하고는 있어요. 마탑주가 마물로, 그것도 일리난으로 실험을 했다는 게 미심쩍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마탑주가 아니라면…….”

그래, 단테가 아니면 도대체 누가 저런 짓을 하냐는 거겠지. 안 그래도 마탑 주변의 마법진 때문에 마물들이 날뛰고 있겠다, 그리고 주변에 사람도 없겠다. 누가 봐도 단테가 한 일처럼 보이잖아.

하지만 그렇게 넘기기에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다행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 듯, 곧 케이드가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뭐가 됐든, 마탑주를 빨리 만나봐야겠군요.”

저 사람과 마음이 맞은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 * *

바로 그날 저녁, 케이드와 릴리가 이야기할 것이 있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마차 안에서 충분히 쉬다가 바람을 쐬러 잠시 밖으로 나갔는데, 이반이 냉큼 내 옆으로 다가왔다.

“누나, 저 이야기 할 거 있어요.”

“뭔데?”

뭐길래 그렇게 또 진지한 표정인데.

“저…….”

“응, 말해봐.”

“……전쟁에 나갔었어요.”

당연히 그렇겠지, 단테의 동료였다며. 나는 부러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래?”

“여기까진 알고 있었죠? 그래도 이다음에 하는 말 들으면 깜짝 놀랄걸요!”

누나가 놀라는 걸 보고야 말겠어요! 그렇게 덧붙이는 말에 설핏 웃어 보였을까, 이반은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수인족이에요. 나이로만 따지자면 케이드 형이나 릴리 누나보다 더 많아요! 아마 이 중에서 제일 많을걸요?”

“어, 그래? 그렇구나.”

“왜 안 놀라요?”

“놀랐는데? 엄청나게 놀랐어. 끽해야 10대 후반인 줄 알았는데.”

“10대 후반이면 10년 전에 시작했던 전쟁을 어떻게 나가요……. 아니, 이게 아니고. 수인족을 본 적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안 놀라는 건가? 이반이 의문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눈을 보면서 사람의 눈동자보다는 동물의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거든. 이미 신체 능력이 보통 사람보다 월등하다는 것도 몇 번 봐왔었고.

이런저런 심증이 있던 와중이라 놀라지 않은 거지만, 곧이곧대로 대답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수인족은 처음 봐.”

“반응이 왜 이렇게 무미건조해……. 언젠간 누나가 놀라는 걸 꼭 봐야겠어요.”

“그래, 힘내. 근데 계속 누나라고 부를 거야?”

“이미 외관 대로 호칭 붙인 세월이 꽤 되는걸요. 그래서 릴리 누나, 케이드 형, 이렇게 부르잖아요.”

이미 입에 붙어서 고쳐지지도 않아요. 이반이 그렇게 말하자, 나는 알아서 하라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갑자기 네가 수인족이라는 이야기는 왜?”

“그냥……. 어차피 언젠가는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잠시 아무 말 않던 이반이 웃었다.

“수인족이라고 말하면서 마탑주의 동료라는 이야기도 같이하려고 했죠. 누나가 마탑주한테 관심이 좀 있어 보여서요.”

“…….”

“아까 저희가 마탑주 이야기를 할 때 별로 놀라지 않는 거로 봐서, 누나는 이미 우리가 마탑으로 가는 파견단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정확하다. 이 사람들이 파견단임을 알아채고 있었던 것도 맞고, 마탑주에게 관심이 있는 것도 맞았다.

그렇게 티가 났냐고 되묻자, 이반은 조금은 그랬다며 웃었다.

“저, 마탑주랑 관련된 이야기 중에서 아는 거 많은데. 음… 뭐라도 이야기해줄까요?”

“해준다면야 좋지.”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줘야 재밌을 것 같은데. 뭐가 있지…….”

잠시 생각하던 이반이 곧이어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누나는 신 마탑이 왜 그렇게 꽁꽁 싸매어있는 줄 알아요? 그, 왜. 방문 규정도 엄청 엄격하잖아요.”

“아니, 몰라.”

“그럴 줄 알았어! 나 이거 꼭 누구한테 말해주고 싶었어요!”

왜 말해주고 싶었던 거지? 반짝거리는 눈빛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반이 곧이어 신난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쟁이 거의 다 끝나갈 때였나… 왕국이 잠잠해졌을 때, 우리도 짧게 수도에 돌아왔었어요.”

그때를 떠올리는지, 이반이 눈동자를 위로 굴렸다.

“들어올 때야 우리 업적을 칭송하는 말들이 들렸지만, 뭐. 솔직히 귀족들은 우리를 어떻게 봤겠어요? 특히 마탑주를.”

“그냥……. 뭐, 안 좋게 봤겠지.”

“네, 말 그대로 안 좋게 봤어요.”

전쟁의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부류들과 전쟁의 참혹함을 실감하지 못한 부류들. 둘 다 단테를 포함한 전쟁 영웅들을 곱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쪽은 결국 사람을 수없이 죽인 이들이 아니냐며 꺼림칙하다는 이유로, 한쪽은 그들이 제국 내에서 새로운 권력의 구심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웃기지, 그 사람들은 단테가 아니었으면 지금쯤 목숨을 걱정해야 할 수도 있는데.

어쩐지 짜증이 나던 순간, 분위기를 전환하듯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짠! 언제부터인지 마탑주에 대한 긍정적인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거예요! 물론, 정말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긍정적이었지만. 아니, 긍정적인 게 맞나 싶지만!”

“소문?”

“네. 어디서부터 난 줄 알아요?”

글쎄, 귀족들은 마탑주를 싫어했다고 했으니 평민들 사이에서 뭔가 이야기가 돌았나? 내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이반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귀족 자제들한테서 시작되었다고 하면 믿어져요? 그러니까, 어린 귀족들이요.”

“어, 갑자기 그 사람들은 왜?”

“그쵸, 안 믿기죠.”

나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에요. 이반이 뿌듯하게 중얼거리는 걸 보고, 이래서 아까 신 마탑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렇게 신나 보였나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귀족 자제 중에서도 ‘전쟁이 났다는 사실만 알고 있는 채로 수도에서 안전하게 있었던 사람들’, 즉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르는 사람들에서부터 시작됐어요.”

“아하, 그러니까. 마탑주가 뭘 했는지 실감이 나지 않는 사람들?”

“네, 그렇죠!”

맞장구를 쳐주니 평소에도 높은 편인 이반의 목소리 톤이 한 층 더 올라갔다.

“그 사람들도 솔직히 처음엔 마탑주가 무서웠을 거예요. 당연하죠. 소문이 워낙 흉흉하니까……. 근데 얼굴 한 번 딱 보고, 홀라당 넘어간 사람들이 반쯤 됐을까.”

“넘어갔다고?”

“마탑주 얼굴이 워낙 잘났잖아요.”

아, 얼굴 보고.

“그래, 그럴만한 얼굴이긴 해.”

“다른 건 다 모르면서 마탑주 얼굴은 아네요, 누나! 어쨌든, 나머지 반은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세상에.”

왜 말투가 점점 연극조가 되어가는 것 같지. 착각인가.

“딱 그때, 마탑주한테 숨겨둔 연인이 있었다는 소문이 퍼진 거예요.”

“…….”

“와, 누나 이번에는 놀란 것 같네요.”

“……어, 맞아. 놀랐어.”

그걸 어떻게 알았나 싶어서.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만, 어쨌든 맥락은 비슷해서 조금 놀랐다.

“뭐라더라… 마탑주가 자기 목에 걸고 다니던 보라색 원석 목걸이에 입을 맞추는 걸 누가 봤다고 했던가?”

“…….”

“진짜 그 목걸이를 하고 다닌 건 맞는데, 제가 입을 맞추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거든요. 아마 헛소문인 것 같아요!”

아. 내가 준 그거.

‘자, 이거 봐.’

‘…….’

‘네 생각이 나서 샀지.’

목걸이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구나, 단테.

“그러고 나서, 뭐. 사랑 이야기에 환장한 귀족들은 난리가 났죠. 마법사 중에서 제일 강하다고 불리는 마탑주에게 연인이 있다니. 잘은 몰라도 왠지 모르게 연인을 그리워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니까……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어디 있겠어요.”

“……응.”

“또 뭐랬더라.”

정신이 아득해져 가던 도중, 이어지는 이반의 말은 꽤 충격적이었다.

“옛 연인을 잊고 귀족 영애와 새 사랑을 시작하는 마탑주의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 소설도 유행했다던데.”

그 말과 동시에 거부감이 확 치밀어 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미 결혼한 사람한테 뭐 하는 짓이야.

확 인상을 찌푸릴 뻔한 걸 미간 사이를 꾹꾹 누르며 감추는 동안, 이반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잘난 얼굴과 뜻밖의 순정으로 인기를 얻은 마탑주를 만나려는 사람들은 당연히 많아졌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전부,”

“신 마탑으로 몰려갔다고?”

“네, 그거예요. 거의 쓸어 담는 수준으로 신 마탑에 사람이 몰렸죠.”

하필이면 그때 신 마탑이 갓 만들어져서 체제 정비만 하기에도 정신없었다고 하던데, 귀족들까지 가세했으면 어땠겠어요? 이반이 그렇게 물었고, 나는 굳이 듣지 않아도 답을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은, 황족까지도 쉽게 마탑을 방문할 수 없는… 아주 빡빡한 규정이 생기게 된 거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요.”

별거 아닌 이야기죠?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고는 ‘나만 특별히 알고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우쭐함이 느껴지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 얼굴을 보고도 다소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앉아서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피로해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그러지 않아도 될 일에 감정 소모를 심하게 당한 느낌. 어쩐지 머리 한구석이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러게 너는 왜 그렇게 얼굴이 잘나서.

…다른 건 모르겠고, 그 로맨스 소설인지 뭔지를 다 태워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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