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39)화 (39/181)

39.

나는 난처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지점장에게 물었다.

“음, 저기…….”

“응?”

“저는 어쩌죠?”

“어쩌냐니?”

지점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수도로 돌아가야지. 이분들이 치료를 해주셨다지만, 너는 크게 다쳤었으니까 수도에 가서 의사를 찾아가 보는 게 나을 거야.”

내가 차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지점장은 금세 무언가 알아차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 마을에 못 가게 되어서 이러니?”

“……네.”

“다른 사람들한테 들어보니까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일단 자기 몸부터 챙겨야지.”

“…….”

“친구 만나러 가다가 골병 생기면 좋을 거 하나 없어.”

상식적인 말과 그 안에 담긴 사려 깊은 배려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서 있자, 아까 이반이라고 불렸던 남자애가 다가와서 슬쩍 물었다.

“원래 저 상단 사람이 아니신가요?”

“아, 네.”

한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어제 마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불안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다니.

“제가 저분들이 가는 마을에 볼일이 있어서 함께 가고 있던 거였어요.”

“어디로 가고 계셨는데요?”

“이름이 뭐였지……. 로넨 마을?”

“마탑 바로 옆에 있는 그 마을요?”

“네.”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남자애가 이제 어쩌냐는 듯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걸렸냐는 말에 일주일 정도 걸렸다고 하니까 난처하다는 듯한 표정이 안쓰럽게 짝이 없다는 표정으로 변했고.

어째 동정하는 듯한 모습에 더 서러워졌지만, 뭐라 할 기운도 없었다. 상인 중 한 명이 다가와서 내 짐을 미리 챙겨뒀다는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표정 관리를 못 하는 상태로는 다른 사람들의 걱정만 살 것 같아서, 일단 근처의 나무 그늘에 들어가 아무렇게나 기대어 섰다.

내가 심란한 것과 별개로, 날씨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좋았다. 체감상으로는 여기까지 올 때 겪었던 모든 날씨 중에 제일 맑은 날인 것 같았다.

그 맑은 날씨 아래에서 짐을 챙기고 수도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상단 사람들의 모습이 마냥 화목해 보이기만 했다. 어제 마물 때문에 살벌했던 풍경이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다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내렸다.

상단 사람들 덕분에 빨리 출발하게 된 것도 그렇고, 혼자 생고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된 걸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갑자기 마물이 나타나서 마차 하나를 통째로 부숴놓을 줄이야.

그러고 보니 마물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마탑주를 입에 올리는 걸 어렴풋이 들은 것 같은데.

“…음.”

따지고 보면, 단테 때문에 이런 상황이 된 건가?

물론 지나가듯이 들은 것뿐이니 그 사람의 말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그리고 이 여정 자체가 단테 때문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한 번 물어보기라도 해야겠네. 나 없는 동안 무슨 해괴한 마법을 써서 마물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냐고…. 아니, 이것도 결국 다 만나야 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

뒤숭숭해진 마음을 어떻게든 환기시키려고 사람들과 떨어진 건데, 전혀 진전이 없었다. 나는 나무에 기대어 서 있던 것을 그만두고 그냥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일이 꼬이는 바람에 예상했던 것보다 더 시간이 지체될 듯했다. 수도로 다시 갔다가 다시 와야 하니까…….

아, 근데 이렇게 상단의 마차를 얻어탈 수 있는 것도 전부 운이었는데. 수도에 도착한다고 해서 상단 사람들이 바로 다시 출발하려고 할까? 분명 재정비하는데 시간을 좀 쓰겠지?

어쩌면 마물이 습격한 길을 다시 지날 수는 없다는 이유로 일정을 미루다 못해 아예 취소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그냥 나 혼자 마탑으로 갈 방법을 찾는 게 나으려나?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수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마탑으로 가야 할 텐데, 도로 수도에 돌아갈 처지라니. 이렇게 생각하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그냥 걸어갈까?”

“네?!”

아, 깜짝이야. 고개를 돌리니 아까 말을 걸던 남자애가 내 옆에서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까의 대화로 용건이 끝난 줄 알았는데 계속 옆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큰 소리를 내지른 게 민망해진 듯, 남자애는 어색하게 입을 다물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할 말이 있었던 건 아니고…. 근데 아까 하신 말씀 뭐예요?”

할 말이 있었던 게 아니면 왜 여기 있는 건데.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한 그 애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심심하기라도 한가 보지.

“제가 뭐라고 했더라. 아, 걸어간다고 한 거요?”

“네.”

남자애가 냉큼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냥 혼잣말한 건데 그걸 또 왜 들은 건지 모르겠네. 나는 어깨를 한번 으쓱거렸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걸어가기라도 할까 싶어서요. 음,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기는 한데.”

“걸어가요? 어디로요, 로넨 마을까지요?”

“네.”

남자애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리예요?! 여기서 거기까지 얼마나 먼데!”

“대충 도보 여행이라고 치면 안 되나?”

“누가 이런 오지로 도보 여행을 와요!”

애초에 너무 위험하잖아요! 기겁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기에 대충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말도 안 되긴 하지. 나도 안 될 걸 알면서 말해본 거다.

전에 살던 숲이 그랬던 것처럼 위험 요소가 거의 없으면 모르겠는데, 여기는 마물이 습격할 정도로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곳이니……. 한 번 더 죽었다가 깨어나고 싶은 게 아니면 그냥 얌전히 돌아가는 게 맞다.

불가능한 이야기인 걸 알고 있는데도 헛소리를 내뱉은 건 그만큼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고.

내가 나무에 몸을 완전히 기대면서 한숨을 쉬자,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서 있던 그 애가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왔다.

“……그 마을에는 무슨 일로 가시길래 그래요?”

“음.”

나는 도무지 갈 기미가 없는 남자애한테 다시 시선을 던졌다가,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 옆자리를 두드렸다.

“일단 옆에 좀 앉을래요? 올려다보려니까 목이 좀 아픈데.”

“아, 네.”

남자애는 내 말대로 순순히 자리에 앉았다. 가볍게 통성명을 나눈 후, 그 애…. 아니, 이반이 다시 한번 더 질문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로넨 마을에 가세요?”

“거기 사는 친구를 만나러요.”

또 친구라는 변명을 쓰게 되는군. 한번 둘러댄 적이 있다 보니 거짓말이 더 쉽게 흘러나왔다.

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면 저번에 마차에서 했던 이야기를 그대로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아온 질문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그 친구 만나는 게 많이 급한 일이에요?”

어떤 사람도 저런 식으로는 묻지는 않았는데.

무슨 의미일까. 나는 턱을 괴고 있다가 눈동자를 굴려 남자애를 쳐다보았다. 아까부터 계속 무언가를 물어보는데 당최 질문하는 의도를 모르겠다.

슬슬 목적이 의심되기는 하지만, 뭐. 별로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고, 어차피 정직하게 말할 것도 아닌데 좀 이야기해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면 그냥,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물어보는 걸 수도 있으니까. 마수가 들끓는 오지를 걸어서라도 가려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할 수도 있지.

“급하다면 급하죠. 오해를 풀러 가는 길이거든요.”

“오해요? 무슨 오해요?”

답답해진 참에 누가 자꾸 옆에서 물으니까 나도 모르게 털어놓게 되네. 나는 한숨을 한번 쉬었다.

“거기 사는 친구는 제가 죽은 줄 알아요.”

“헙.”

이반이 숨을 들이켰다.

“어, 어쩌다가요?”

“원래 살던 곳에서 일이 좀 있어서…….”

내가 말끝을 흐리자 그에 대해 더 캐묻는 기색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궁금증은 남아있는 모양인지, 이반이 머뭇거리다가 질문했다.

“편지 같은 걸 보내면 안 되나요?”

“죽은 사람한테 편지 왔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잖아요.”

내가 대수롭지 않게 한 말에 이반의 얼굴이 곧장 시무룩해졌다.

“게다가 그 친구, 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미친 사람처럼 지내고 있다고 해서요. 가서 얼굴이라도 제대로 비추면 친구 상태도 괜찮아질까 싶었는데, 지금 보니까 뭐.”

나는 짐을 챙긴다고 바쁘게 움직이는 상단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던지다가 툭 덧붙였다.

“빨리 가기는 글렀네요. 여기서 그 마을까지 가는 마차를 구할 수 있을 리도 없고.”

“…….”

이제 궁금증은 다 해결된 모양이지?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나는 다시 턱을 괴고 저 너머를 바라보았다. 자꾸 이동 수단으로 애를 먹으니까 단테의 순간이동 마법이 그리워진다. 아니, 원래 한참 전부터 그리웠지만. 사실 마법이 그리운 게 아니라 마법을 쓰는 당사자가 그립긴 하지만.

나도 마법 하나쯤은 쓸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이렇게 고생하는 일은 좀 줄었을까…….

가능성 없는 것들을 생각하기도 잠시, 저 멀리서 나를 바라보던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나를 치료해주었다던 치료사였다.

그 옆에는 모르는 사람이 한 명 붙어있었는데, 아마 내 옆에 앉아있는 이반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동료인 듯싶었다. 아까는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지.

언뜻 안경을 쓴 모습이 보이는 것도 그렇고, 대충 훑어도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치료사에게 뭐라 뭐라 말하다가, 치료사가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와, 눈매 진짜 날카롭……. 뭐야, 난데없이 왜 노려봐.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누나, 누나.”

하지만 그 사람과 눈싸움을 주고받기 전, 이반이 옆에서 나를 불렀다. 아니, 잠깐만. 뭐라고?

“저요?”

“여기 누나 말고 누가 있어요.”

통성명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짜고짜 누나라니. 난데없는 호칭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무심코 바라본 이반의 얼굴은 아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쾌활해 보이는 인상 위로 그늘이 져서 어두워 보였고, 왜인진 몰라도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꺼내려고 하길래 저런 얼굴을 하는 건지. 하지만 이반은 먼저 불러놓고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이반이 말을 이을 때까지 잠깐 기다려주다가, 선수를 쳐서 불쑥 질문했다.

“근데 그쪽 일행분들은 어쩌다 여기를 지나가고 계셨던 거예요?”

“…….”

이반이 아무 대답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