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내 말에 한참 머뭇거리던 마샤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단테가 어디 있는 줄 알고 그렇게 찾아간다고 말해?”
얼핏 들으면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었다.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단테를 찾아갈 수는 없는 거니까.
나는 흠, 하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꼈다.
“그러게. 마샤, 단테가 어디 있을까?”
“…왜 그걸 나한테 물어?”
“너라면 알고 있을 거 같아서.”
마샤가 찻잔을 들던 그대로 멈칫했다.
“아까 고객 중에 높으신 분이 있어서 주워들었다고는 했지만, 그렇게 소식을 들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이 알고 있잖아.”
“…….”
“이 신문을 따로 모아온 것도 그렇고.”
툭툭, 손가락으로 신문 뭉치를 두드렸다.
“전쟁이나 단테에 대해서 일부러 더 알아본 것 같았는데… 아니야?”
“…왜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서 눈치가 좋아?”
나는 짧게 웃었다. 오래 살다 보면 눈치도 늘기 마련이니까, 뭐.
“단테가 어디 있는지까지 알고 있을 거라는 건 그냥 찍은 거야. 반응 보니까 진짜 알고 있나 보네.”
마샤가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이윽고 방금 새로 따른 차를 그대로 목구멍에 때려 넣더니, 찻잔을 깨트리기라도 할 듯이 거세게 내려놓았다.
“네 말이 맞아.”
“응, 그럴 줄 알았어.”
“일부러 더 알아본 것도 맞고, 단테가 지금 어디 있는지까지 알고 있는 것도 맞는데…. 너 진짜 갈 거야?”
그 질문에 되레 의아해진 건 나였다. 지금 단테를 찾으러 가지 않으면 어딜 가는데?
내가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의아한 얼굴을 하자, 마샤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거기까지 가도 단테가 너를 못 알아볼 수도 있잖아.”
“…….”
“네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닌데, 솔직히 걱정돼.”
마샤가 신문 더미를 치우고 내 손을 잡았다. 나보다 조금 더 높은 체온이 손가락을 감싸고, 아프지 않을 만큼 강하게 붙잡았다.
“네가 갖은 고생을 해서 결국 단테를 만났다고 쳐. 근데 만나고 나서는 뭘 어떡할 거야? 단테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너는 그때 죽은 사람이잖아.”
“…….”
“네 이야기를 단테가 믿어주지 않으면 어떡해?”
마샤가 말하는 ‘네 이야기’가 뭔지는 뻔했다. 나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으며, 단지 살아나는 데 10년이 걸렸을 뿐이라는 이야기.
쉽게 믿을 수 없는 내용이기는 하다. 미쳤다는 소문이 도는 사람한테는 더 말하기 힘든 내용이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 그런 걸 걱정할 때인가?
“그렇다고 찾아가지 않을 수도 없잖아.”
내 비밀을 단테에게 말해주지 못하고 죽은 이상,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내 말을 믿도록 설득하는 건 어차피 감당해야 할 문제였다. 단테를 직접 찾아가든지, 찾아가지도 않았는데 기적적으로 만나게 되든지 간에.
그리고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걸음을 주저하기에는 내 마음이 급했다.
“어떻게 설득할지는 만나고 생각해보지, 뭐. 이런 건 원래 직접 부딪혀보지 않으면 몰라.”
“…내 말은, 이렇게 급하게 가야 하냐 이거지.”
“기왕 찾아갈 거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아서.”
내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마샤의 얼굴이 구겨지다 못해 종래에는 포기한 사람의 것처럼 변했다.
“죽었다가 눈떠보니까 어제였다며. 좀 더 쉬었다 가면 어디 덧나?”
“이 상태로는 제대로 쉬지도 못해.”
“어휴.”
벌써 세 번째 한숨이었다. 하지만 그 한숨을 듣고, 나는 마샤가 더는 말리지 않을 거라는 걸 직감했다.
“알았어, 알려줄게. …근데 대외적으로 알려진 장소일 뿐이지, 단테가 진짜 거기에 있는 건지는 아무도 몰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중요한 건 찾아갈 만한 곳이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찾아갔다가 없으면 바로 돌아오면 되니까.
“전쟁이 끝나고 한 곳에만 처박혀서 안 나오고 있대.”
“거기가 어디인데?”
“마탑.”
간결한 대답에,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 뻔하다면 뻔한 장소에 있네.”
“뻔한 게 문제가 아니야. 네가 마탑까지 가는 게 문제라고.”
마샤는 신문 뭉치 맨 밑에 있던 지도를 꺼냈다. 나라가 있고, 대륙이 있고, 땅과 바다를 촘촘하게 기록해둔 지도를.
보기 편하게 지도 방향을 내 쪽으로 돌린 마샤가 한 부분을 콕 가리켰다. 위치는 아마, 제국의 끄트머리쯤.
수도랑은 정 반대편에 있는 곳이었다.
“마탑은 여기 있어.”
“…여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까?”
“나도 모르지.”
마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하지만 무척 오래 걸릴 거라는 건 확실해.”
당연히 그렇겠지……. 내가 저기까지 한 번에 갈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일단 가는 방법부터 문제네.
아니, 방법도 시간도 다 문제였다. 어떤 수단으로 이동하든 이 정도 거리라면 시간을 꽤 잡아먹을 게 뻔했다. 찾아갔다가 없으면 바로 돌아오면 된다는 생각은 철회해야겠는데?
“남편 만나러 가겠다고 이렇게까지 고생을 하네…….”
“그 고생, 전부 네가 한다고 한 거야.”
마샤의 말은 매정했지만 틀린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 다 내가 한다고 했는데 뭘 어떡하겠어.
나는 고개를 젖히며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지도로 시선을 내렸다. 까만 점 밑으로 ‘마탑’이라고 적힌 글씨가 선명했다.
여기에 단테가 있단 말이지. 전쟁이 끝난 후 처박혀서 나오지도 않는다는 그 소문이 맞다면 말이다.
……단테가 들려오는 소식대로 지내고 있기를 바라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 * *
그 후로 이틀이 지난 아침.
“어제 짐은 다 쌌잖아. 이렇게 더 챙겨줄 필요 있어?”
“당연히 필요하지. 너 거기 가만히 있어. 금방 들고나올 테니까!”
어젯밤에 챙긴 짐을 들고 바로 떠나겠다는 나를 마샤가 붙잡았다. 제대로 챙긴 건지 한 번만 더 확인해 보자면서.
그 말에 알겠다고 대답한 지 30분가량 지난 현재, 마샤의 집은 내가 처음 봤었던 그 꼴로 다시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당탕. 마샤의 움직임에 맞춰 무언가가 넘어지고 깨지는 소리가 났다.
집 안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데 괜찮은 건가. 나는 질린 표정으로 마샤를 살폈지만, 마샤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뒤지며 방을 더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대충 챙겨도 돼, 마샤.”
“뭘 대충 챙겨도 돼. 마탑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봤잖아, 거기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죽기 전에는 가겠지, 뭐.”
“넌 안 죽으니까 그렇겠지!”
마샤가 빽 소리를 질렀고, 나는 재빠르게 귀를 막았다. 평소에도 높은 편인 마샤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한결 더 높아져 있었다.
“가는 동안 좀 불편한 건 괜찮아. 어차피 편하게 가는 걸 기대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너 정말 아무 대책 없구나.”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태평한 대답에 마샤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머리를 짚었다.
“내가 이런 걸 10년 동안 걱정했다니…….”
“걱정해 준 건 고마워. 아, 그 옷 챙기면 좋겠다.”
“이거?”
마샤의 손에 들린 겉옷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숙도 고려하고 가는 거니까 옷은 최대한 많이 챙기면 좋겠지.
입으로는 계속 잔소리를 뱉으면서도 내 짐은 착실하게 챙겨주는 마샤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걱정해 준 거 말고 다른 것도 고맙고.”
“뭘?”
“그냥 전부 다. 짐 챙겨주는 것도 그렇고, 마탑까지 어떻게 가는지 알아 봐준 것도 고맙고. 너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 했을 거야.”
음, 말하고 나니까 정말 그렇네. 빈말이 아니라, 마샤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아무것도 못 했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조금 멋쩍어져서 눈을 굴렸다. 마샤는 픽 웃더니, 옷을 마저 접으면서 말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돌아와서 해. 남편 만났다고 나 잊어버리고 다른 데 가버리면 안 된다?”
“당연하지. 내가 널 어떻게 잊어버려.”
“네 건망증이 워낙 심해서 신뢰가 가지는 않지만……. 그래, 뭐.”
“건망증이 심하다고 해서 어떻게 사람을… 아니, 내 기억력은 정상이라니까.”
“그래,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안 믿네. 나는 어쩐지 조금 불만스러운 기분으로 턱을 괴었다. 아까의 일 때문에 마샤에게 계속 내 기억력을 의심받고 있는 듯했다.
마샤와 함께 아침을 먹을 때, 내가 정확히 얼마나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게 화근이었다.
‘너 그럼 정확한 나이는 몰라? 150년 넘게 살았다는 거 말고도.’
‘음……. 일단 여기 넘어오기 전에 몇 살이었는지가 기억이 안 나는걸.’
‘그건 그냥 대충 끼워 맞춘다고 치고… 언제 넘어왔는데? 그건 알아?’
‘넘어왔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게 사람들이 보라색 깃발을 들고 축제하는 풍경이었어.’
‘보라색 깃발 축제면… 잠깐만, 역사책에서 본 것 같은데…….’
마샤가 역사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내가 이때까지 봤던 것을 기반으로 해서 내 나이를 추측해주었다.
정확한 나이는 알 방법이 없었지만, 대략적으로 계산한 것만으로도 약간 충격을 받았다.
‘너 못해도 200년은 살았어.’
‘어? 그만큼이나 됐어?’
‘네가 죽었다가 살아나는데 걸렸던 시간을 어림잡아 20년이라고 쳐도 200년은 넘었어. 어떻게 나이를 모르나 했더니 이 정도 살았으면 나이는 무슨, 어제 일도 가물가물할 때쯤이긴 하다. 네 건망증이 이제 이해되네.’
알만하다는 눈빛과 함께, 이상하게 찝찝한 이해를 받았다. 약간, 노인 취급 받은 느낌…….
아무튼, 그 후부터 계속 저런단 말이야. 네 건망증, 네 건망증 이러고.
결국 기억력에 대한 오해는 풀지 못한 채로, 나는 마탑으로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 * *
M4.
마샤는 짐을 확인하는 자신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너 지금 위험한 곳에 가는 거라고, 네 남편은 지금 미쳐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에이는 태평했다. 에이가 태평한 만큼, 마샤의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역시 걱정된다. 마샤는 지금이라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에이를 따라나설까 생각했지만, 에이가 말릴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만두었다.
분명 내가 다녀온 뒤 겪어야 할 후폭풍을 걱정하며 말리겠지. 일은 어쩔 거냐, 가는 길이 험할지도 모른다, 하며. 웃겨, 정말. 자기는 살아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누굴 걱정해.
속으로 빈정거리듯이 말해봤지만, 기분은 더 저조해질 뿐이었다.
마샤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아까부터 생각해왔던 것을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에이.”
“응?”
“너 정말로 괜찮아?”
“괜찮지, 그럼. 다 고생할 줄 알고 가는 건데.”
“아니, 그것 말고. 폭발 말이야.”
멈칫. 에이의 움직임이 정지하고, 이내 옅은 갈색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 마샤를 향했다. 언제나처럼 속을 알 수 없는 그 눈빛에 마샤는 인상을 찌푸렸다.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해서 네가 경험한 게 없어진 건 아니잖아.”
“…….”
“나라면 너처럼 태연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자신의 고향을 앗아간 그 폭발은 마샤에게 있어서 입에 담기도 싫은 주제 중 하나였으나, 지금은 그 이야기를 꺼내야만 하는 때였다. 지금 묻지 않으면 또 언제 물을 수 있을지 몰라서.
“폭탄이…… 내 발밑에서 터지면, 그 후에 나는 뭐라도 무서울 것 같아. 하다못해 길을 걸어가는 것조차 꺼리게 될 것 같다고.”
마샤의 입장에서야 에이는 10년 만에 나타난 친구지만, 에이는 죽었다가 눈을 뜨니 자신도 모르는 새 10년이 지나있었다고 말했다.
다르게 말하면, 에이한테는 10년 전의 폭발이 어제의 일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단테를 찾아가는 것도, 혼자 그 먼 길을 떠나보내는 것도 전부 걱정되었지만, 제일 걱정되는 것은 ‘에이가 정말 괜찮은가?’ 였다.
끔찍해서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정신이 망가지고도 남을만한 일을 겪은 에이는 지금 정말로 괜찮을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답 없이, 마샤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던 에이가 입을 열었다.
“글쎄. 모르겠어.”
“…….”
“그런 거 생각 안 해본 지 꽤 됐어. 깊게 생각하면 나만 손해잖아.”
난 괜찮지 않다는 이유로 죽을 수도 없으니까. 마지막 말은 마치 농담처럼 덧붙여졌고, 마샤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하지만 마샤는 그 아무렇지도 않은 대답에 오히려 슬퍼졌다. 에이가 한 말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가슴 밑바닥에서 무언가가 깨진 듯이 아려왔다.
에이는 과연 스스로가 원해서 저렇게 생각하게 된 것일까? 마샤는 자기 자신에게 질문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저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지나야 했을까. 평범하게 나이를 먹고, 평범하게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평범하게 살아갈 자신으로선 짐작조차 되지 않아서, 마샤는 결국 자신의 친구를 위로하지 못했다.
어설픈 아는 척은 오히려 독이 될 테니.
마샤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에이가 떠나기 직전, 잠시 안아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녀는 단지 친구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빌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