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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마탑주였다 (26)화 (26/181)

26.

단테는 정말 저녁때에 맞춰서 돌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함께 저녁을 먹고, 자기 전에 마샤에게 보낼 편지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단테가 나를 불렀다.

“에이.”

“응. 불렀어?”

“이리 와봐.”

밖으로 고개를 내밀자 벌써 잘 준비를 마친 단테가 보였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긴장한 표정이라, 군말하지 않고 단테의 옆에 가서 앉았다.

“너한테 줄 게 있어.”

단테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를 받아서 열어보니, 그 안에는 작은 팔찌가 들어있었다.

은색 체인이 섬세하게 얽혀있는 끈에, 가운데에는 노란색 보석이 자리잡혀 있는 팔찌였다. 노란색 보석은 그다지 큰 크기는 아니었으나 그 빛깔만큼은 무척 선명했다.

빛 아래에서 팔찌가 반짝거리는 모습에 잠시 시선을 빼앗기는 사이, 단테가 상자에서 팔찌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원래 더 좋은 품질의 마석을 쓰고 싶었지만…. 급하게 구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더라.”

“마석이 뭐야?”

“간단하게 말해서 마법을 새길 수 있는 돌이라고 생각하면 돼.”

팔찌의 연결 부분이 단테의 손에서 분리되고, 이내 차가운 금속이 내 손목을 감싸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내 왼쪽 손목에 자리 잡은 팔찌를 보며 잠시 눈을 깜빡거렸다.

“여기에 나랑 짧게나마 대화할 수 있는 마법을 새겼어. 나한테 연락하고 싶을 때, 마석을 손으로 덮으면 돼.”

“이런 것도 있구나.”

신기해하면서 이리저리 팔찌를 살피는데, 머릿속에서 아주 근본적인 물음이 떠올랐다.

“근데 갑자기 이건 왜 주는 거야?”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응.”

아까 긴장한 표정이었던 건 이걸 말하려고 그랬나 보군. 어렴풋이 짐작하면서 단테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단 네가 결혼반지는 싫다고 했으니까… 다른 거라도 주고 싶었어.”

“내가 언제 반지가 싫다고 했어? 누가 훔쳐 갈 만큼 비싼 게 싫다고 한 거지.”

“나는 맞춰줄 거면 최대한 좋은 거로 맞춰주고 싶었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진심인 듯싶었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돈이 많다는 걸 티 내봤자 우리만 손해인데? 나는 한숨을 작게 쉬었다.

“그래서 반지 대신에 가져온 게 팔찌야?”

“응. 물론 마석이 웬만한 보석보다는 훨씬 비싸긴 하지만, 겉보기에는 그렇게 안 보이니까 괜찮지?”

아니, 안 괜찮은데.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싶었지만, 반지에 이어 팔찌까지 거절했다가는 단테가 정말 단단히 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단테의 손목에 걸려있는, 내 것과 한 쌍으로 보이는 팔찌를 확인하니 뭐라 하려던 마음이 금세 사라지기도 했고.

정 안 되면 옷소매 속에 숨기고 다녀야겠네…. 그렇게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두 번째 이유는?”

단테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계속 일 있다고 저녁에 들어오고 그랬잖아.”

“응, 그랬지.”

그리고 오늘도 그랬고.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단테가 내 얼굴을 힐끔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원래 하던 일을 완전히 처리하는 편이 나을 것 같고, 또 다른 일도 생겨서…. 아마 내일부터 3일 정도 집에 못 돌아올 것 같아.”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3일 동안 연락할 일이 있으면 이 팔찌로 연락하라고 준 거구나. 이해했다.

그동안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날은 있었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은 없었던 것 같은데. 정말 중요한 일이긴 한 모양이었다.

“3일이면 끝나는 일이야?”

“응. 3일이면 충분해.”

“더 길게 갔다 와도 되는데.”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하자, 단테가 한숨을 쉬면서 내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더 길면 내가 안 돼. 못 버텨.”

“뭘 못 버텨?”

“…….”

그랬더니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는다. 또다시 빠르게 붉어지는 단테의 귓바퀴가 새삼스러웠다.

“…그것보다 더 오래 떨어져 있기 싫다고.”

“음.”

그 말에, 나는 단테의 손을 깍지 껴서 잡았다. 내 손에 비해 단테의 손은 너무 커서 깍지를 끼는 것만으로도 조금 벅찬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손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그런 말 하면서 쑥스러워하지 않을 때도 됐는데.”

“놀리지 마….”

계속 부끄럽다는 말투다. 괜찮아, 난 네 한결같은 점이 참 좋아. 웃으면서 그렇게 속삭이는데, 느닷없이 단테가 고개를 들었다.

“에이.”

“응?”

“3일 뒤에 돌아오면, 할 이야기가 있어.”

무슨 이야기?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미간을 좁혔다.

“뭘 말하려고 하길래 또 심각한 표정이야?”

“별 건… 아니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

“흠. 뭐 범죄라도 저지르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런 건 절대 아니고.”

단테는 저번에 마탑주 이야기를 꺼냈을 때처럼, 또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그냥,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세히 말해준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건 그렇지. 단테가 말해주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애초에 내가 먼저 물어본 적도 없었다. 요새 바빠 보인다, 하고 적당히 넘기긴 해도 단테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지.

그냥 마법사를 찾는 사람들한테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줄 알았는데, 뭐 특별한 게 더 있는 건가?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명령을 듣는 단테도 상상이 가지는 않았다. 흠, 이렇게 나열해보니 그동안 단테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은 내가 이상할 정도인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느라 대답을 하지 못했는데, 내 침묵을 어떻게 해석한 건지 단테가 안절부절못하며 말을 덧붙였다.

“내가 비밀을 만들려고 해서 만든 게 아닌데…. 다녀오면 전부 이야기해줄게.”

그 말에 불현듯 정신이 돌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단테가 말한 비밀이라는 단어에.

그러고 보니 나도 비밀이라고 말할 법한 사실이 하나 있었지. 우리 둘 다 하나씩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작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나만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던 건 아니라는, 안도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그동안 단테에게 내 특이체질을 말하지 못한 게 내심 양심이 찔리기라도 한 걸까. 내가 뜬금없이 웃자 단테가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웃음의 이유를 설명해 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다른 이야기는 할 수 있었다. 나중에라도 내가 왜 웃었는지 알려주기 위한 이야기는.

“네가 갔다 오면 나도 내 비밀 하나 알려줄게.”

“…너 비밀이 더 있었어? 차원 이동자라는 거 말고도?”

“네 아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숨기고 있어.”

차원 이동자라는 것을 밝혔던 날은, 여느 때처럼 단테에게 내가 죽지 않는다는 걸 밝히려고 마음먹은 날이었다.

물론 지금 단테가 비밀이 더 있냐고 물어보는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날도 결국 끝까지 말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단테에게 그 사실을 말하려면 생각보다도 더 큰 결심을 해야 할 것 같더라고.

참고로 내가 차원 이동자라는 것을 밝혔을 때의 단테의 반응은 이랬다. 아주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어쩐지 차원이 다른 귀여움이다 했어.’

들을 가치도 없는 헛소리를 했지.

어쨌든, 네가 큰 결심을 해서 비밀 하나 말해준다는데 나도 다시 힘을 내보긴 해야겠다. 아무리 그 사실을 말하는 게 어렵다고 해도 무작정 미루면 좋을 게 없지 않은가.

서로의 비밀을 하나씩 주고받자는 말이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들린다는 것을 뒤늦게 눈치챘지만, 뭐 어떤가 싶었다.

숨기는 게 많다는 소리를 듣고 복잡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단테는, 나중에 들으면 될 거라고 결론을 내린 듯 다시 내 어깨에 기댔다. 내 키가 훨씬 작은데 목이 아프지도 않은가.

뭐, 자기가 좋다는데 어쩔 거야. 나는 단테를 말릴 생각을 금방 그만두고, 가만히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깨에 가만히 기대 있기만 하던 것도 잠시, 단테가 금방이라도 잠에 들 것처럼 눈꺼풀을 내렸다. 마법으로 만들어 낸 빛이 단테의 속눈썹 위로 미끄러지고, 하얀 피부가 조각처럼 빛났다.

그 모습을 누구보다도 가까운 거리에서 보고 있자니, 새삼스럽지만 단테 너.

“눈 감은 모습도 진짜 잘생겼다.”

내가 단테의 외모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신비로운 보라색 눈동자인데도 그랬다. 그게 가려진 모습도 잘생겨 보이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다소 뜬금없는 말이었는데도, 단테는 당황한 기색도 없이 그저 웃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네가 내 얼굴을 마음에 들어 해서 다행이야.”

“그게 왜 다행이야?”

그렇게 되물었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답 대신 귓가에 들려오는 건, 잠이 든 사람의 규칙적인 숨소리.

듣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평화의 소리였다.

단테를 깨워서 방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이 상태로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단테의 숨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온몸으로 쏟아지는 잠을 받아들이기 직전, 단테의 손이 내 손을 꽉 잡은 것도 같았다.

둘밖에 없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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