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20)화 (20/181)

20.

며칠 전에 아주 이상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뭐였더라? 마샤가 내 매력-대체 무슨 매력?-에 대해 동네방네 말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고. 별 해괴한 짓을 다 한다 싶어서 바로 말리러 갔다.

내가 기억하는 마샤는 단테의 얼굴에 감탄하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는데,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단테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말하고 다니면 모르겠는데 갑자기 내 매력을 왜 논하냐고.

어쩐지 얼마 전부터 자꾸 먹을거리를 가져다준다 싶었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그게 마샤 나름의 호의 표시였나보다. 나는 그냥 단순히 음식이 남을 때마다 가져다주는 줄 알았거든.

내가 그만하라고 말하니 자신은 진실을 말할 뿐이라며 마샤가 반발했지만, 친구끼리 뭘 그런 걸 말하고 다니냐고 말하니까 엄청나게 감동받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진짜 왜 저러는 거지.

* * *

[ xxx년 x월 x일 ]

마샤가 일기장을 선물했다. 난 원래 일기 안 쓴다고 하니까 지금부터 쓰라는데, 귀찮게 왜 이런 걸 하래.

하루 쓰고 안 쓸 것 같은 느낌이다.

[ xxx년 x월 x일 ]

하루 쓰고 안 쓰려던 거 걸렸다.

[ xxx년 x월 x일 ]

요즘 할 것도 없어서 심심하니까 그냥 써야겠다.

원래는 심심하다는 사실이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것 같은데, 단테가 온 이후로 뭔가 많이 바뀌었다. 귀찮으면 그냥 굶던 습관도 없어졌고, 사람들도 자주 만나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이렇게 지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 xxx년 x월 x일 ]

단테가 뜬금없이 취향을 물었다. 뭐 때문에 그런 걸 물은 건지는 모르겠다만, 대충 너라고 대답해줬더니 그대로 소파에 엎어졌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또 마법으로 다 터뜨려버릴 뻔했다고 한다.

날이 갈수록 애가 좀 이상해지는 것 같다.

[ xxx년 x월 x일 ]

요즘 날씨가 좋다. 산책을 조금 더 자주 나가도 될 것 같다.

[ xxx년 x월 x일 ]

오늘은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이렇게 오래 자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하루 종일 머리가 멍해서 혼났다.

내가 그렇게 푹 자는 건 본 적 없다면서 단테가 좋아했다.

[ xxx년 x월 x일 ]

내가 의외로 일기를 자주 쓰자 단테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마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어림도 없지. 몰래 보는 날에는 각방이라고 하니까 자기는 오늘부로 글자를 못 읽는단다.

내 생각에 단테가 마을에 내려와서 살자고 졸랐던 건 넓은 집과 같이 쓰는 방이 목적이었던 게 틀림없다.

근데 일기 쓰다 보니까 생각난 건데, 처음에 단테가 사람 많은 곳은 가기 싫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이제 괜찮은 건지 내일 물어봐야겠다.

[ xxx년 x월 x일 ]

사람 많은 곳에 가기 싫다는 건 몸이 덜 나았을 때니까 한 말이었고, 이제는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겠지? 요즘 나사 하나가 풀린 사람처럼 행동하니 영 미심쩍다.

그래도 일은 안 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 xxx년 x월 x일 ]

마샤랑 자주 놀러 나가기 시작했더니 자연스럽게 단테랑 같이 있게 되는 시간이 줄었다.

어제는 마샤 집에서 자고 왔더니 단테가 저녁에 삐진 표정으로 자기가 더 좋냐 마샤가 더 좋냐 하고 물어봤다. 어차피 한집에 살면서 매일 보는데 하루 못 봤다고 저러는 걸까.

친구랑 애인은 다르다는 아주 당연한 말을 하다가, 그냥 내가 손잡고 뽀뽀하고 싶은 상대는 너밖에 없다고 말했다. 뭐가 또 그렇게 부끄러웠던 건지 새빨개진 얼굴로 제발 예고 좀하고 말하란다.

너도 네 얼굴 내밀 때마다 예고 안 하면서 뭘.

[ xxx년 x월 x일 ]

옆옆집에 사는 캐서린이 울면서 왔다.

우리 마을에서 제일 똑똑하고 지식에 대한 욕구가 대단한 아이인데, 눈물이 좀 많은 것 같았다. 이야기를 끝마칠 때까지 계속 울먹거리고 있더라고.

뭐라더라, 마탑 입단 시험을 쳤는데 마탑주가 너무 무섭고 또라이라는 소문이 들려서 자기는 못 들어갈 것 같단다. 사실 나는 마탑이 뭐 하는 곳인지조차 몰라서, 그냥 고개만 계속 끄덕이다가 왔다.

차갑고 냉정하고 또 그 와중에 엄청 천재라 자기 같은 평범한 마법사는 취급도 안 한다 어쩌구 저쩌구.

자세한 내용은 기억 안 나는데 어쨌든, 단테도 마법사니까 혹시 아는 사람일까 싶어서 마탑주가 정말 냉혈한이냐고 물어봤다. 듣자마자 엄청나게 당황하더니 막 변호해주던데.

마탑주랑 되게 친한 사이인가 보다.

[ xxx년 x월 x일 ]

옆 마을에 새 빵집이 생겼는데 어느새 단골이 됐다. 거리가 좀 멀기는 한데, 집에 다시 올 때는 보통 단테가 데리러 와주기 때문에 괜찮다.

참고로 내가 제일 잘 사 먹는 건 케이크다. 가격이 좀 나가지만 나는 단테가 있으니 별 상관없다.

[ xxx년 x월 x일 ]

빵집 사장님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시골이라 케이크가 이렇게 잘 팔릴지 몰랐는데 다 내 덕분이라고 한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사가니까 다른 손님들도 궁금해하는 것 같다면서.

……좀 작작 사 먹을 걸 그랬나.

[ xxx년 x월 x일 ]

단테가 요즘 바쁘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도 아침마다 꼬박꼬박 포옹은 받고 나간다.

[ xxx년 x월 x일 ]

캐서린이 마탑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 xxx년 x월 x일 ]

옆 마을에서 스토커가 붙었다.

* * *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그만큼 이상한 사람도 참 많다.

예를 들어보자면, 자신이 이 세상에 주인공인 줄 알고 모두가 자신한테 관심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그런 사람들을 자의식 과잉이라고 하지.

그리고 나는 지금 자의식 과잉의 표본을 보고 있다.

“솔직히 나 보러 매일 여기까지 왔잖아.”

세상에 이런 헛소리가 또 있을까. 나는 답을 하려다가 귀찮아져서 입을 다물었다.

단골 빵집 때문에 옆 마을에 자주 오게 되면서 별 이상한 놈이 붙었다. 대뜸 첫눈에 반했다며 쫓아오더니, 내가 무시하니까 자기 관심을 끌기 위한 작전이냐고 하더라. 이제는 자기를 만나기 위해 내가 이 마을까지 오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만 말해도 얼마나 상식이 없는 놈인지 알겠지?

그래, 솔직히 말이 안 통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

“내가 너를 보러 왜 와? 나 애인도 있는데.”

“흥, 애인한테 질리기라도 했나 보지. 나랑 눈 마주쳤을 때부터 알아봤어.”

“아 그래.”

진짜 이길 자신이 없다. 그냥 때려서라도 기절시킬까? 주위를 둘러봤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이 좀 많았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진짜 날 안 받아줄 거야?”

“이게 뭔 노력이야. 사람 말 무시하는 게 네 노력이야?”

“매일 이렇게 따라와 주고 널 좋아한다고 표현하고 있잖아.”

“누가 봐도 그냥 스토커 짓인데.”

언제까지 이 의미 없는 대거리를 해야 하는 거야? 아직 이걸 걷어차지 않은 내 인내심에 박수를 보낸다.

저번까지는 이놈이 뭐라 지껄이든 간에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갔었다. 내가 사람 말 흘려듣는 걸 얼마나 잘하는데 이거 하나 무시를 못 할까.

그동안 무시로 일관한 이유는, 솔직히 진지하게 상대할 가치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토커한테 허비할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고. 원래 미친놈은 더러워서 피하는 거다.

하지만 오늘은 아예 무시하고 갈 수도 없게 내 앞을 단단히 막아서고 있었다. 꼴에 멋진 척 좀 해보겠다고 쉼 없이 건들거리는 게 보기 싫었다.

주변에 지켜보는 눈이 많다 보니 억지로 끌고 가진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사람이 좀 적으면 좋을 텐데. 진짜 한대만 쥐어 패보게…….

“지금 백번쯤 말한 거 같은데 나 너 안 좋아하고, 오히려 혐오하고, 내 앞에서 꺼졌으면 좋겠어.”

“너 그렇게까지 튕기면 오히려 매력 없는 거 알아?”

“아, 튕기는 거 아니라고.”

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가라앉았다. 난 교양인이니까 험한 말은 자제해야지, 응.

어차피 계속 여기 붙잡혀 있을 걱정은 할 필요 없었다. 이미 집에 들어갈 시간은 한참 지났고, 집에서 내가 돌아오길 얌전히 기다리던 사람이 찾아올 때도 다 됐거든.

“야,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너……”

하늘을 보고 시간을 가늠하는데, 때마침 어디선가 강한 돌풍이 불어왔다.

금빛 반짝거림이 스토커의 얼굴을 할퀴듯이 스치고 지나가는데, 솔직히 속이 다 시원했다.

“에이.”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나를 뒤에서 껴안았다. 누군지는 뭐, 뻔하지. 내가 자연스럽게 그 품에 기대자 단테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오늘은 좀 늦는 것 같아서 데리러 왔어. 그런데…….”

단테가 삐딱하게 고개를 들어 앞의 사람을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웃지 않았다는 양 아주 싸늘한 표정으로.

“저건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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