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17)화 (17/181)

17.

“나 잠깐 나갔다가 올게.”

“또?”

“응.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그 마법을 본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느지막하게 점심을 먹은 시간, 단테는 오늘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검은색 로브를 걸치고 머리를 대충 정리하는 모습이 분주해 보였다.

자꾸 나를 불러, 아무리 내 권한이 중요하다지만 그 정도 일은 자기들이 처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고 꿍얼거리는 말이 계속 들렸다.

무슨 일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마법 관련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면서 소파에 몸을 기댔다.

요 며칠 사이에 무슨 진전이 있었냐고 한다면,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단테의 비밀을 듣고 나서 우리 사이가 좀 편해지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하지만 극적인 수준만 아닐 뿐이지 편해진 것도 변화라면 변화였기 때문에, 단테의 마음을 알게 된 후로 가장 느슨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래도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지 않냐고? 그래, 나도 안다. 안 그래도 슬슬 제대로 답을 하긴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마음도 정했는데 애매한 상태를 계속 유지할 이유도 없었고. 그건 단테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니까 말이다.

오늘은 꼭 말해야겠다고 나름 거창하게 결심까지 했는데, 마침 나갈 일이 생겼다니.

나는 흠, 하는 소리를 내며 턱을 괴고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왜 다들 그 간단한 걸 못해서 난리인지 모르겠어. 제대로 된 마법사는 정말 나밖에 없는 건지.”

내가 무얼 고민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단테의 투덜거림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쉼 없이 투덜거리지 싶어서 신기하기도 한 반면에, 얼마나 가기 싫으면 저러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잠깐이라도 나와 떨어지기 싫다는 투정으로 들린다면, 역시 내가 너무 부풀려서 해석하는 거겠지.

나는 단테의 불평을 계속해서 들어주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말대로 너를 따라올 사람이 없나 보지, 뭐.”

“그건 그렇지만…….”

더 이어지려는 말을 대충 손을 휘저어서 틀어막았다.

“그렇게 말해도 나가긴 할거지?”

“…응.”

“그래, 그럼.”

걸음을 옮겨 나갈 채비를 마친 단테에게로 다가갔다. 잠시 단테를 올려보다가, 이 상태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고개를 숙여보라는 듯 손짓했다.

단테는 내 뜬금없는 행동에 의아해하면서도, 손짓에 따라 고분고분 몸을 낮추었다.

하여튼 말 하나는 정말 잘 듣는단 말이야.

이렇게까지 숙여줘야지 나와 시야가 맞는다니, 새삼 단테의 키가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났다.

“잘 갔다 와.”

쪽.

하얀 뺨에 입을 맞추고는 몸을 돌려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태연하게 다시 소파에 앉았는데,

- 쾅!

“……!”

갑작스레 집 밖에서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났다. 뭐가 떨어지는, 아니, 터지기라도 하는 소리 같았다.

나도 모르게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는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에 순간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집 앞에서 바로 내다볼 수 있었던 숲이, 아주 그냥… 쑥대밭이 되어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기만 했는데.

“…….”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던 푸른 풍경은 어디 가고, 황폐해진 땅만 거기 있었다. 숲 전부가 망가진 건 아니었지만, 딱 우리 집에서 보이는 만큼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엉망이었다.

새까맣게 타서 마치 석탄처럼 보이는 나무 기둥들이 각각 앞과 옆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도 반 이상이 까맣게 탄 모양새였다.

그 처참한 풍경을 보고 있으니, 누구라도 저기 서 있었으면 뼈도 못 추렸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이렇게 맑은 날에 이런 봉변이 일어날 수가 있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일어날 리가 없지. 그러면 누가 이런 짓을 했을까?

내가 지금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 싶어서 창문을 열어젖히니, 매캐한 연기 냄새가 났다.

고개를 내밀어서 살펴보니 더 가관이다. 큰 기능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마당의 일부였던, 집 바로 앞의 울타리까지 날아가 있었다. 아니, 진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걸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다.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어이없어하다가, 결국 단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너 미쳤어?”

“어? 아, 아니, 잠시만. 내가 고칠게. 잠깐만…….”

허둥지둥하면서 내 쪽으로 다가오려던 단테는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면서 비틀거렸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놀랄만한 일이었나?

우당탕! 결국 의자가 엎어지는 소리가 나고, 넘어질 뻔한 단테는 그 자리에 우뚝 섰다.

이제 보니까 목부터 얼굴, 귀까지 완벽하게 붉어졌네. 정말이지 왜 그렇게 더워 보이냐고 놀려도 할 말 없을 듯한 모습이다.

나는 그런 단테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뭘 어떻게 하면 갑자기 벼락을 떨어뜨리는 거야?”

“무언가라도 부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

“…….”

이어지는 침묵에 단테는, 결국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애써 진정하려는 듯 계속 마른세수를 하더니 종래에는 부끄러워 죽겠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와중에 이런 말 해서 미안한데, 한 번만 더 해주면 안 돼?”

그 말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면서 한 번 더 입을 맞춰줄 수밖에 없었다.

* * *

M1.

마샤는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다.

붉은 머리와 주근깨가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곤 하는 그녀는 수다 떠는 것을 즐기고,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며, 로맨스 소설에 열광하는 평범한 아이였다.

이렇게만 이야기한다면 여느 마을 아이들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마샤에게는 유별나다면 유별난 특징이 한가지 있었다.

그건 바로 마샤가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어쩌면 조금 과할 정도로,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

하지만 그녀는 16살이 되도록 자신의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말 미남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를 실제로 만나본 적은 없었다.

사람은 실제로 경험한 것 이상의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들 하지만, 마샤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의 또래 남자아이들은 그다지 잘생긴 편이 아니라는 것을.

가끔 높으신 분들의 얼굴이 담긴 그림이 마을까지 전해지곤 했지만, 공들여 갈고닦은 게 분명한 얼굴을 보면서도 그녀는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느꼈다.

분명 세상 어딘가에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완벽한 얼굴이 있을 텐데!

…그리고 그런 마샤에게 기적적으로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바로 단테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었다.

몇 달 전부터 이 마을에 살게 된 그 사람은 마샤에게는 삶에 내려온 빛 한 줄기 그 자체였다. 단테를 처음 맞닥뜨린 그 순간, 마샤는 자기 인생에 다시는 저런 얼굴을 만날 일이 없으리라 직감했다.

마샤는 단테와 에이가 가끔 마을로 장을 보러 올 때마다 그들을 보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이었는데, 단테를 보자마자 친구들의 주접을 조금 더 유심히 들었어야 했다고 한탄했다.

그때는 이 시골 마을에 잘생긴 사람이 나타나봤자 별거 있겠냐고 생각했는데!

사실 여전히 저렇게 귀티나고, 돈 꽤나 있을 거 같고, 무엇보다 끝내주는 얼굴을 가진 사람이 어쩌다 이런 시골 마을에 살게 된 건지는 의문이었다.

뭐라고 했더라, 번개로 집 벽이 까맣게 타버려서 고치기도 어려워진 김에-그 오빠의 여자친구가 옆에서 변명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지만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마을에서 살게 되었다고 했나.

숲에서 살았다는 말도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그냥 정체가 요정인가보다 하고 넘겼다. 사정이고 정체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건 이 미모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인데!

마샤는 단테의 얼굴을 볼 때마다 펄쩍 뛰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눌러야 했다. 세상에 저런 얼굴도 존재하나 싶어서. 실제로도 단테를 처음 봤을 때는 펄쩍은 아니고 폴짝 정도로는 뛰었다.

그날 이후로 마샤의 내면에 변화가 찾아왔다. 어떤 짜증 나는 일이 있어도 그 오빠의 얼굴 하나면 모든 울분이 풀리는 듯했고, 목소리 한 번이면 기절하는 시늉까지 할 수 있었다.

잘생기고 성격도 좋고 어쩌고저쩌고. 정말이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마법사라는 소문도 있던데, 그러면 정말 별로인 거다. 내 마음속의 별로.

그래서 마샤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 오빠의 여자친구라던 에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마을 소녀들은 에이를 꼬박꼬박 언니라고 부르는데 마샤만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것만 봐도 그랬다.

아마 질투가 나서였겠지. 자신은 그런 이유가 아니라고 우겨댔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건 질투였다. 부러움에서 시작해 시기와 미움이 섞이며 탄생한 감정.

마샤는 어디까지나 시골 마을의 순진한 소녀였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에이를 시샘하지는 못했으나,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길 정도는 됐다.

한눈에 봐도 단테가 에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둘이 연인이라는 것은 이해했지만, 어쩌다 연인이 되었는지와 더불어 에이의 어떤 점이 그의 호감을 사게 된 건지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마샤는 단테의 애정 표현에 크게 기뻐하지 않는 것 같은 에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단테 오빠는 저런 사람을 왜 좋아하는 걸까?

무심하고, 무뚝뚝하고, 만사태평하기만 한 사람에게 어쩌다 반하게 된 건지. 애인이 생기면서 성격에 큰 변화라도 생겼나 했더니, 그건 또 아닌 듯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마샤는 늘 한결같이 에이를 못마땅해했다. 그쯤 되니 에이를 잘 따르고 친해지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라면 저런, 감정도 없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 텐데.

아마 마샤는 에이를 계속해서 좋아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그날 일만 없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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