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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마탑주였다 (13)화 (13/181)

13.

단테는 자신에게 기회를 달라고 했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라고 말하면서, 그때도 내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깔끔하게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은 결국 내 대답을 듣기 전에는 떠나지 않겠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단테가 이 집에 머무르는 시간도 늘어나게 되었다.

다 양보해서 더 머무르는 것까지는 이해한다. 그런데 왜 여기가 원래부터 자신의 집이었다는 듯 구는 건지는 결국 이해하지 못했다.

원래도 상대의 변화를 크게 신경 쓰는 성격은 아닌지라, 단테가 놀랍도록 태연하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다음 주에 다시 장을 보러 가야 할 것 같은데, 간다면 어느 날이 좋은지 이야기하다가 알아차렸을 정도다. 관계 자체는 분명 집주인과 하숙인인데, 왜 동거인끼리 주고받을 법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지?

단테가 내 의문에 대한 답으로 ‘자신은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말한 것도 어이없었다. 넌 도움이 아니라 사심이잖아.

어쨌든, 그 자연스러움이 내 마음을 바꾸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한다면 솔직히 똑똑한 선택이었다고 인정해주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단테를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고 있더라고. 외출하고 돌아올 때 단테가 마중 나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음식과 물건을 준비할 때 자각도 없이 두 사람의 몫을 준비하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느끼게 된 지는 꽤 됐는데, 부러 단테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꼴이 될까 봐 말은 하지 않았다.

어쩐지 단테가 이런 점을 노리고 행동한 것 같아 쓸데없이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기도 했고.

그렇게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갈 무렵, 단테가 할 일이 있다며 외출을 하는 바람에 나 혼자 숲을 거닐던 날이 있었다.

단테는 요새 자주 집을 비웠다. 처음에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하더니, 오늘은 자기가 없는 동안 생각보다 더 난리가 나서 수습하러 다녀와야 한다-사실 흘려들어서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에 따라 내가 혼자 있게 되는 시간도 늘어나면서 심심하다고 느끼는 날이 많아졌다. 네가 오기 전에는 혼자 있는 시간과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을 나누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둘의 차이가 명확했다.

나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에, 나는 너에 대하여 생각했다.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말하던 너를.

그리고 너를 완벽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나에 대하여 생각했다.

이쯤 되니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단테를 싫어하기는커녕, 오히려 호감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감정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일부러 깊게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외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직시하는 것이 두려웠던 탓이다.

그런데 단테가 자꾸 머릿속을 헤집고, 내 마음을 흔들어서 당초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계속 자각하게 만든다. 결국 나는 피하고 싶어도 피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끝내 단테에게 흔들렸음을 인정하고 그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함께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으로 끝날 수 있을까?

분명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단테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오래 살게 되면서 깨달은 것 중 가장 값진 것은 두 가지가 있었다. 내가 과거에 미련을 가지기 시작하면 종래에는 버틸 수 없게 될 것이란 것과,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리 완벽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무한한 시간을 버틸 수 없다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일 거라는 것.

나는 아픈 게 싫었다. 그래서 과거를 잊고, 내가 받았던 애정과 상냥함을 잊고, 나에게 애정을 주고 친절하게 굴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잊었다. 떠난 것들을 기억하고 곱씹는다면 미련이 생길 것이 틀림없었다.

정말로 잊은 것인지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그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과거에 미련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 때문에 행복을 느낄 때마다 동시에 불안했다. 모든 현재는 언젠가 과거가 될 테고, 행복한 기억은 늘 미련으로 남으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낼 수 있는 일상이 유지되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고, 설사 이변이 생기더라도 일부러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너와 함께한다면 지금 당장은 기쁘겠지만 최후에도 그 기쁨이 여전할까. 네가 변심해서 빠르게 떠나든, 반대로 오랜 시간 동안 내 곁에 있든 결국 마지막은 나 혼자 남겨질 터였다.

이곳에 넘어왔을 때부터 사람을 만나고 이별하는 것을 반복했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이별의 형태는 그다지 온건하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죽거나 상대가 죽거나 둘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내 옆에 있었던 사람 중에 나를 떠나지 않은 이는 없었으니, 지금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든 너는 나를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온다면 나는 늘 그랬듯이 너를 잊으려 하겠지.

하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너를 허락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손쉽게 잊었던 것과는 다르게 너는 어렵게라도 잊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때가 되면 너를 잊는 것보다 모든 기억을 통째로 날리는 게 더 빠르리라는 것도.

그러니까, 내가 너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피할 수 있었던 고통을 기꺼이 맞이한다는 것과 같았다.

네가 아깝다며 한껏 너를 생각하는 척했던 것은 전부 거짓말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나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네가 사라지면 혼자 남겨질 나를.

그리고 그렇게 나만을 생각하자, 나는 너를 거절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너에게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하지 못하는 걸까.

단테는 계속 이곳에서 지내게 된 게 아니라, 단지 잠깐의 유예를 받았을 뿐이었다. 나도 그걸 알고 있었고, 너는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내 집에서 떠나라고 말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고 한다면 우리 관계는 끝이 날 것이다. 너는 내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나는 어디론가 사라진 너를 찾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관계인데, 대체 왜.

한 번도 이렇게 흔들린 적 없었고, 흔들리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어디서 뚝 떨어진 사람 때문에 상상도 못 한 것들을 많이 경험하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밑도 끝도 없이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는데 갈팡질팡하고 있는 게 답답하기도 했고.

몇 시간 동안 계속 숲을 거닐었지만, 내가 왜 이런지 나도 모르겠다, 역시 그 얼굴 때문에 내가 홀려서 이러는 거다, 아니 처음부터 거기서 치료를 해주면 안 됐었다, 하는 뜬구름 같은 생각들만 스쳐 지나갔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푸르렀던 하늘이 저녁 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슬슬 해가 진다고 생각하며 느리게 눈을 깜빡인 순간,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최근 들어 나에게 익숙해진 바람이었다.

또 마법을 써서 이쪽으로 오나 보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바람이 만져질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이로 손을 뻗었다. 보랏빛과 금빛의 무언가가 반짝거리며 내 손가락 사이를 스치다가 서서히 빠져나갔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 대신,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아 오는 것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고, 단테와 눈이 마주쳤다.

웃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고, 부드럽게 팔을 당기는 손의 감촉이 느껴졌다. 잠시 고개를 숙이는 것 같던 단테가 내 귀에 속삭였다.

“마중 나왔어, 내 사랑.”

* * *

“누가 네 사랑이래.”

“너도 저번에 나를 그렇게 불렀잖아. 나도 그냥 해본 소리야.”

정말 말은 잘한다. 내가 노려보든 말든 단테는 싱글싱글 웃었다. 근래 웃는 빈도가 굉장히 높아진 것 같은데. 아, 나 때문이구나. 젠장.

순간 골이 아파져서 미간 사이를 꾹꾹 누르니 어디 아프냐면서 걱정스럽게 물어온다. 이마에 닿아오는 손이 다정했다. 왜 서늘한 손이 닿았는데 얼굴은 더 뜨거워지는 건지 모르겠네.

잠시 자신의 손을 내 이마에 올려놓고 있던 단테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손을 내렸다.

“열나는 것 같은데.”

“아니, 열이 아니라. 그냥 잠깐 머리가 아파서 그래.”

“아프다고? 빨리 가서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너 때문에 이런 거라고 말할 수도 없고. 최근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도로 삼키는 일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단테가 얼굴을 가깝게 들이미는 지금이라든가.

나는 그 얼굴을 밀어버리고 싶은 충동과 그냥 볼을 잡고 더 가까이 당기고 싶은 충동 사이에서 갈등했다.

갈등에서 이긴 것은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쪽이었다.

“됐어, 나 잘 안 아파. 아파도 오래 안 가서 금방 낫고.”

죽어도 금방 살아나는데 아픈 게 뭐 대수겠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대충 손을 휘젓자, 단테가 흠, 하는 소리를 내면서 몸을 바로 세웠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래, 그래. 다행이니까 이제 집에 가자.”

네가 왔으니 더 고민하기는 글렀고, 그냥 다음에 또 생각하지 뭐. 나는 성의 없이 단테를 잡아끌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단테가 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다. 너 지금 내 힘 약하다고 버티고 서있는 거냐, 쯤의 눈빛으로 단테를 올려다보자 단테가 빙긋 웃었다.

“내가 저번에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마법 보여주겠다고 약속했었잖아.”

“어, 그랬지. 왜?”

“그거 지금 보여줄게.”

굳이 지금?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단테의 눈이 신난 어린아이처럼 반짝거리고 있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여러모로 쟤 눈빛에 약해지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착각이길 바란다.

“내 손 잡아. 조금 위로 올라가야 해.”

“위로?”

대답을 듣기도 전에, 발밑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법에 휩쓸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