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11)화 (11/181)

11.

내 말에 단테는 뜻 모를 표정을 짓다가, 손을 한 번 휘저었다.

위험하게 반짝이던 유리 파편들이 금세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단테의 손짓에 따라 보랏빛 바람이 흐르고, 그 바람은 곧 가루가 된 유리 조각을 휘감다가 그대로 사라졌다.

마법은 역시 봐도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그 광경을 보고 있는데, 단테가 주먹을 꽉 쥐어 바람을 날려 보냈다.

“내가 널 싫어하기를 원했으면 그런 말도 하지 말아야지.”

“응? 뭐라고?”

너무 작은 소리라 제대로 못 들었다. 단테는 다시 말해주는 대신,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여전히 소파에 앉은 채였고, 단테는 그런 내 앞에 서 있었다. 차라리 옆에 앉으면 좋겠는데. 목이 아파지기 전에.

하지만 이런 대치 상황에서 옆자리를 권하는 것도 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내가 일어나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단테가 말했다.

“내가 아깝다는 이유는 그게 다야?”

그게 다냐니. 충분히 이해될 만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대체 저 ‘고작 그런 거냐고’ 묻는 듯한 어조는 뭐란 말인가.

하지만 나는 굳이 의문을 표현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테가 아깝다는 변명에 가려져 있는, 네 마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이유를 말할 수는 없으니까.

도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단테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거지?”

지금 계속 그 이야기했잖아. 단테에게 어이없다는 눈길을 보내다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래, 싫어하지 않아.”

애초에 싫어했으면 네가 아깝다는 생각도 안 했다니까.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단테가 표정을 풀며 사르르 웃었다.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로 갑작스럽게.

“그럼 됐어.”

뭐가 됐다는 건데? 순간 얼굴에 넘어갈 뻔해서 급하게 이성을 잡았다.

위로 한껏 올려야 했던 시선이 갑자기 훅 낮아졌다. 단테가 그대로 옆자리에 앉았고, 내 시선 역시 그를 따라서 옆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자리 이동에 반응하기도 전에, 단테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네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해 본 건데, 네가 말한 대로 마음 정리를 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

“……뭐?”

“매정한 말을 좀 들었다고 접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넌 몰랐던 것 같지만. 덧붙여진 장난스러운 어조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렸다.

아니, 나라고 해서 바로 접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단칼에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는데.

아까 창백하게 질려서 당황하던 모습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모르겠다. 그를 알고 지내던 시간 속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태도에, 나는 낯선 것을 바라보듯 단테를 쳐다보았다.

“마음을 정리 못 하면 너만 손해인데? 나는 네 감정에 보답 못 해줘.”

단테의 태세 전환에 잠깐 흔들린 와중에도, 말은 여상하게 흘러나왔다. 기분이 잘 드러나지 않는, 덤덤하고 고조 없는 목소리가 오늘따라 고맙게 여겨졌다.

“나도 알아, 네가 이야기한 것들이 거절이나 다름없다는 걸.”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거절당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너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다며.”

“……단테, 싫어하지 않는 거랑 좋아하는 건 달라.”

“다르지. 그것도 알아.”

어느새, 단테의 사뭇 달라진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있고, 조금 전과 같은 조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 네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야?”

“……?”

이게 무슨 말이지. 순간 표정 관리를 할 생각도 하지 못한 탓인지, 헛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 표정을 분명 확인했을 터인데도, 단테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이미 네 마음을 한 번 바꿔본 적이 있어. 한 번 해본 걸 두 번 못할 건 없지.”

“내가 언제 마음을…… 아.”

설마 그때를 말하는 건가? 단테가 깨어난 날, 여기서 더 지내고 싶다고 나를 ‘설득’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돈을 쥐여주면서 자기를 좋아해달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 나는 다소 삐딱하게 생각했다.

“너는 뭐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꽤 자신 있어. 믿고 있는 구석이 있거든.”

“아, 그러셔. 그게 뭔데?”

뭐라고 말하든 반박할 생각이었다. 네가 뭘 믿고 있든, 나한테는 통하지 않으리라고, 그리고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통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하려 했다.

단테의 대답이 나를 당황하게 만들지만 않았다면 분명 그랬겠지.

“내 얼굴.”

“…….”

“너, 내 얼굴 좋아하잖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렇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고, 아니라고 하면 양심이 상한다. 애초에 왜 저렇게 뻔뻔히 말하는 거야? 부끄럽지도 않나?

하지만 정말 부끄러움은 나만의 몫이었나보다. 단테는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다 네가 말해준 거야. 나보고 잘생겼다는 자각을 좀 하고 살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네가 지금까지 만나던 사람 중 제일 잘생겼다고…….”

“그만.”

“응, 알았어.”

그 와중에 말은 잘 듣는군.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머릿속에서 상황을 돌이켜 볼수록 어쩐지 더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애써 그 기분을 무시했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네 얼굴이… 나한테 잘 통한다고 하자. 하지만 여전히 네가 아깝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

“그거 말인데.”

막힘없이 말하던 단테가 갑자기 뜸을 들였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자, 나를 바라보고 있던 단테와 눈이 마주쳤다.

“왜 내가 그런 것들을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해?”

“응?”

“네가 말한 부, 명예, 신분 말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보란 듯이 웃어 보인다. 그 웃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하고 있던 생각이 모조리 날아갈 정도로 예쁜 웃음이었다.

“그런 것들은 신경 쓸 필요 없어.”

“뭐,”

그렇게 말해도 분명 나중에 가서는 아까울 텐데, 하고 말하려고 했다. 단테가 갑자기 마법을 사용하는 바람에 똑바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순식간에 불어온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바람결 사이로 반짝이며 흔들리는 보라색 귀걸이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단테가 웃는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다.

손목이 잡혔다는 걸 깨달은 순간, 단테의 손이 미끄러지듯 내려와 내 손아귀에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손을 펼쳐보니 그건 작은 꽃이었다. 보석 같은 것으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듯, 빛을 반사하며 선명하게 반짝이는 꽃.

……아니, 보석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보석인가?

내가 너 뭐하냐는 눈으로 올려보든 말든, 단테는 나를 내려다보며 자기 할 말을 계속했다.

“네 말이 맞아. 나는 엄청나게 대단한 마법사거든. 그것도 대륙에서 손에 꼽을 만큼 강한 마법사. 이게 무슨 뜻인지 알아?”

“왜, 무슨 뜻인데.”

“네가 생각하는 부, 명예, 뭐 그런 것들은 모두 내가 차고 넘치게 가지고 있다는 거야.”

나도 모르게 손안에 있는 보석을 꾹 쥐었다. 언뜻 오만하게 들릴 수도 있는 저 말이,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라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잠시 이 대륙의 마법사 대우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는 걸 까먹었다. 어떻게 거절할지 그렇게 많이 생각했으면서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다시 말하지만, 마법사는 귀하고, 실력 좋은 마법사는 더 귀하다. 실력 있는 마법사를 잠깐이라도 부릴 수 있다면 뭐든지 주겠다는 사람은 넘쳐난다.

단테는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부와 명예, 그리고 신분을 포함한 것들을.

“그런 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왜 필요해. 나보다 더 많은 걸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저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최근 내 앞에서 쑥스러워하는 모습만 봤더니 내가 잠깐 잊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단테는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돈을 줄 테니 숙식을 제공해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뻔뻔한 사람이었다는 걸 말이다.

시리도록 아름답게 빛나는 눈이 묘한 선을 그리며 접혔다. 원래 저런 식으로 웃지 않았던 거 같은데, 그새 누구한테 배우기라도 한 걸까.

“또, 네 말대로 날 욕심 낸 사람은 많았어. 하나같이 높으시고 능력들이 대단한 분들이었고. 내가 좀 잘났잖아.”

“아, 그러셔.”

예상하고는 있었다만 당사자 입으로 직접 들으니까 재수 없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좋아해 본 적은 없어. 네가 그 사람들보다 부족해도 상관없고.”

“…….”

“나는 어떤 초라한 사람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수 있거든.”

헛웃음을 흘리는 나에게 단테는 당당하게도 말했다. 말하는 태도를 보니, 단테라면 정말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서 화가 날 정도였다.

“그러니까.”

단테는 내 손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입술이 닿은 부분이 유난히 뜨거웠다.

무언가 대답을 하고 싶은데,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뜨겁다 느끼는 건 손등인데 왜 머리에 열이 오르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계속 거절하려고만 하지 말고 한 번만 다시 생각해줘. 네가 충분히 시간이 지난 후에도 나를 거절하면, 그때는 정말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보라색 눈 안의 은하수가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때까지 본 미소 중에 가장 예쁜 미소를 지으면서, 뻔뻔한 태도로 말하고 있으면서도 뺨은 붉히고 있는, 정말 짜증 나게도 잘생긴 사람이 나를 향해 말했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이 아닌데도, 왜 저 모습이 더 고백처럼 느껴지는지.

“하지만 네가 나를 허락해주는 날이 온다면, 그런다면.”

떨림을 감추려 애를 쓰는, 잔잔하지만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뭐든 할 테니 제발 자신을 좋아해달라고 말하고 있는 너는.

“내가 너를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만들어줄 거야.”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자신이 없는 나에게,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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