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10)화 (10/181)

10.

바닥에 깨진 유리 파편들이 흩어졌다.

나는 더 이상 컵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 것들에 시선을 주다가, 다시 단테를 바라보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얼빠진 목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뭐?”

“어떻게 알았어?”

진심으로 묻는 건가. 잠시 어이없다는 눈으로 단테를 보다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네가 오죽 티를 냈어야지.”

“…….”

“나는 바보가 아니야, 단테. 그리고 너는 바보라도 알 수 있게끔 행동했어.”

창백하게 질린 모습을 보니 정말 꿈에도 몰랐다는 눈치라, 나는 남몰래 작게 혀를 찼다.

이왕 과격하게 말하자고 마음먹은 김에 넌 내가 바보로 보였냐고 물으려고 했지만, 바로 아니라는 답이 나올 것을 알기에 참았다.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단테가 알아들으리라 생각하기도 했고.

“그리고 네가 나를 좋아하게 된 김에 충고 하나 하자면, 빨리 마음 정리하는 게 좋을 거야.”

이 말을 누구든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누군가는 내 말이 잔인하다고 했을 것이다. 또 너를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너무 매정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겠지.

하지만 이 잔인하고 매정한 말이 내 진심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니고 단테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 진심.

오롯이 너를 위한 충고였다.

“……뭐라고?”

내 말을 되묻는 단테는 멍한 기색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눈에 담다가, 가만히 시선을 돌렸다.

피곤함을 가장한 목소리는 어렵지 않게 흘러나왔다.

“네가 얼마나 시간을 끌든, 어차피 떠나는 건 정해져 있잖아. 그러니까 네 감정도 다 털어버리고 가야지.”

“…….”

“몸도 다 나은 것 같던데 나갈 거면 빨리 나가줬으면 좋겠어. 솔직히… 둘이서 지내는 거 불편했거든.”

무슨 소리인지 알겠지? 나는 가볍게 덧붙이며 부러 웃음소리를 냈다. 고개를 내리고 있어서 단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대강 예상이 갔다.

얼굴 보면 괜히 죄책감만 자극될 게 뻔한데 아예 안 보는 게 낫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릎 위에 팔을 얹고 턱을 괴었다.

나는 내 말을 들은 단테가 나를 책망할 거라 예상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화를 내거나.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단테의 마음을 티끌만큼도 존중하지 않는 말을 내뱉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무시당하는 와중에 기분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지만 뜻밖에도, 단테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것은 약간의 슬픔뿐이었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말이어서 그랬을까,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 즉시 단테가 천천히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순간 화를 내려는 걸까 생각했지만, 이어진 말을 들으니 그게 아니었다.

“지금 일부러 상처받으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잖아.”

“…….”

“네가 진심으로 하는 말인지 아닌지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알아.”

눈썰미가 쓸데없이 좋네, 그런 것도 알아보고.

아주 잠깐 멈칫한 것뿐인데, 내 행동에 확신이라도 얻었는지 단테가 얼굴을 단단히 굳혔다.

그래봤자 애타는 시선은 변하지 않아서, 가만히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더 안쓰럽게만 보였다. 아, 이거 안 좋은데.

완전히 정을 떼게 하려던 입장에서 마음이 약해지는 건 좋지 않다. 정말로.

나는 저절로 머리를 짚기 위해 올라가는 손을 억지로 내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마치 더 말해보라는 듯한 침묵이 계속되었기에, 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마음을 접도록 도와주고 있는 거야, 단테.”

“그러니까 그걸.”

조급하게 입을 열었던 단테가 문장을 끝마치지 못한 채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걸……. 왜 도와주는지도 모르겠고, 왜 그런 식으로 도와주는지도 모르겠어. 영영 보지 않을 사람을 대하는 것 같잖아.”

“나는 당연히 네가 떠난 후에 다시는 너랑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어.”

“…….”

“이건 일부러 상처 주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야.”

그 말을 들은 단테는 충격이라도 받은 듯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진정될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목이 멘 듯이 겨우 토해낸 질문이 이거다.

“…나를 싫어해?”

자신을 미워하는지,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물어보는 말.

대답은 아주 빠르게 나왔다. 애초에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그냥 솔직하게 답하기만 하면 됐다.

“아니, 싫어하지는 않아.”

난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일부러 잘해주려고 해도 잘 안 되더라고. 중얼거리면서 소파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하지만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내 감정이 뭐가 어떻든, 너는 정리를 해야 해.”

“대체 왜 그래야 하는데?”

그렇게 물어주니 고맙다. 그 질문이야말로 오늘 내가 들은 질문 중에 제일 답하기 쉬운 것이거든.

나는 단테가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부터 해왔던 생각을 여과 없이 말했다.

“네가 아깝잖아.”

“…….”

“그렇게 보지 마, 괜히 핑계 대는 거 아니니까. 내가 아무리 마법사를 처음 봤다고 해도 모든 마법사가 너와 같은 수준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

순식간에 부서진 집을 원상태로 되돌리고, 자신이 원한다고 방 하나를 통째로 만드는 마법사가 어디 흔하겠는가.

집을 고치고 방을 만드는 행위 자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걸리는 시간 또한 너무 짧다. 그리고 본인은 그다지 힘을 들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넌 분명 마법사 중에서도 뛰어난 편일 거야, 그렇지? 돌아오는 침묵이 답을 대신해주었다.

“마법사는 귀하지. 그리고 강한 마법사는 더 귀해. 근데 그런 마법사가 얼굴도 잘생겼고 키도 크고 성격 좋고 다 하면 뭐, 끝난 거나 다름없지. 분명 너를 좋아하던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

“그런 건 상관없잖아.”

“아니, 상관있어.”

나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단테를 바라보았다.

“너를 좋아하던, 아니, 너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사람들은 적어도 너에게 고백할 정도의 용기와 자신감이 있었어.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보통 부, 명예, 신분에서 나오지.”

“…….”

“그리고 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봐. 어때, 이제 좀 알겠어?”

너는 나한테 매우 과분한 사람이란 걸 말이야. 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 * *

단테의 마음을 알았을 때부터 그 마음을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고민해왔었다. 거절할 이유는 충분하다 못해 넘쳐서, 나 혼자서 일일이 세지 못할 정도였다.

차원을 넘어온지라 멀쩡한 신분도 없고, 재산이라 할 만한 것도 없고,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이 있지도 않다. 그저 아무도 없는 숲에서 하루하루를 낭비하고 있는, 조금 특이하고 남들 보기에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사람.

사실 이런 사람에게 단테가 일말의 호감이라도 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호감은 호감이고, 그게 계속 유지될지는 별개의 이야기지.

타인을 떠나지 않게 붙잡아 둘 수 있는 요소 중에 내가 가진 것이 뭐가 있는가. 나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이런 나라도 계속 좋아해 주겠지’라는 꽃밭 같은 생각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비관적이고.

그래, 말하자면 나는 단테의 마음에 확신이 없었다.

남의 마음에 멋대로 확신을 하니 마니 따진다니, 같잖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거 이해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데 의심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지금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그게 언제까지 갈까, 하는 의심 말이다.

그리고 내 조건과 단테의 조건을 비교해보자, 해답은 손쉽게 나왔다. 언제까지긴, 단테가 스스로 자신이 아깝다는 걸 깨달을 때까지겠지.

애초에 받아주고 말고를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단테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거절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로부터 내 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생각도 없었지만, 내가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직시했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왜냐고? 나는 양심이 있으니까. 안 그래도 나보다 짧은 생을 살아갈 사람에게 시간 낭비를 하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짧게 지나갈 애정이라면 내 쪽에서도 사양이라서.

나는 먼 훗날 ‘그런 사람도 있었지’쯤으로 단테에게 기억되길 바란다. 그것보다 더 희미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상관없지만 중요한 기억으로 자리 잡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 이상 관계 진전을 한다면 나는 단테의 머릿속에서 일정 분량을 확정적으로 차지하게 되는 것은 물론, 나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었다. 아니, 분명 나쁜 쪽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달갑지 않았다.

가까운 시일 내에 애매함과 찝찝함만을 남기고 사라질 게 뻔하다면, 아예 제대로 생기기도 전에 끊어내는 것이 나았다. 단테도 이곳에서 벗어나기만 한다면 자기가 느낀 감정이 별거 아니었다고 느낄걸.

어쩌면 시간이 지나 나보다 훨씬 제대로 된 감각을 선사해주는 이를 만날지도 모르고, 상대에게 눈이 똑바로 달려있다면 단테를 거절할 일도 없을 것이다.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하고 나쁜 사람을 자처하는 누구와는 다르게.

이런 생각을 차분하게 하는 걸 보니 내가 감정에 무뎌지기는 한 모양이다. 오랜 세월이 생각보다도 나를 더 지치게 만든 모양이지. 나는 많이 무감각해졌고, 그랬기에 내가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다는 사실이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마지막으로 남은 찌꺼기까지 털어낸 듯한 후련함 뿐.

나는 내 쪽으로 다가오려는 듯한 단테를 잠깐 일별했다.

“이쪽으로 올 거면 발밑 조심해. 다칠라.”

이 와중에 이런 말을 건네는 내가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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