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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마탑주였다 (9)화 (9/181)

9.

나는 바보가 아니었다. 눈치를 채는 것이 남들보다 느리긴 해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고, 한번 알아차리면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는 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인데, 처음부터 단테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하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다. 아니, 눈치채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다면 모른 척도 힘들다는 걸 깨달을 일은 없었을 테니까.

내가 단테의 마음을 알아차린 후에도 우리 사이에 변화는 없었다. 나는 단테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기로 마음먹었고, 단테는 내가 자기 마음을 알아차린 걸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척을 할 뿐인 사람에게는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있듯이, 내가 예전처럼 단테를 대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단테가 소위 말해 ‘티가 나는’ 행동을 할 때마다, 일부러 무덤덤한 표정을 짓기 위해 얼굴을 굳혔다. 표정 관리가 안 될 때면 아예 화제를 돌리고, 아주 가끔은 못 보고 못 들은 척도 했다.

처음에는 별거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다 정신력을 깎아가면서 해야 하는 일이더라고. 게다가 부작용인지 뭔지, 자꾸 단테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쏠리려고 해서 죽을 맛이었다.

단테는 자꾸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들어오고, 나는 그럴 때마다 눈치채지 못한 척하려고 한다. 이렇게 계속 지내다 보니 단테와 나 사이에는 오로지 나만 느끼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가 좀 성격이 무던해서 다행이지, 신경줄 얇은 사람이 여기 있었다면 분명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을 거다. 차라리 말하고 끝내! 하고 외치면서.

물론 나도, 이렇게 피곤해하면서 지낼 바에야 일부러 언급하고 끊어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늘, 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왜냐면 단테는 언젠간 이곳을 떠날 사람이었으니까.

단테가 내 집에 머무르고 있는 이유는 단지 몸이 다 낫지 않아서였고, 자기 입으로 ‘몸이 낫는 대로 떠나겠다’라고 말한 전적이 있다. 실제로 처음에는 떠나지 못해서 안달 난 것처럼 굴기도 했는걸.

변변찮은 약도 없이 자연 회복을 하고 있다 보니 시일이 좀 늦어지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단테는 자신을 노리는 사람을 처리하기 위해서라도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마디로 번거롭게 들추어낼 필요도 없이, 단테가 마음을 정리하는 건 결국 시간 문제라는 말이다. 떠나기 전에 정리하지 못해도 뭐 어쩔 거야,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식을 텐데.

끝까지 내가 모르는 척만 잘하면 원만하게 끝낼 수 있는 문제였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했는데.

“소파에서 자는 건 괜찮아?”

“응, 이제 익숙해졌어.”

“그래. 불편해도 조금만 더 참아, 몸 다 나으면 나갈 거잖아.”

“…….”

잠깐 해명 아닌 해명을 하자면, 나는 저 말을 의도하고 말한 게 아니었다. 정말 단테가 불편해 보였을 뿐이고, 내가 마땅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조금만 참으라고 한 것뿐이다.

단테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단테의 침묵이 곧 동의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평소처럼 잘 자라고 인사를 하고, 내 방에 들어와서 잠을 잤는데.

그렇게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우리 집에 방이 하나 더 생겨 있었다. 단테가 마법으로 방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떠나고 싶지 않다는 걸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이거지?

멀쩡한 집을 뜯어고치겠다는 발상을 하고 그걸 실행에 옮긴 당사자는 정작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갑자기 생긴 방문을 활짝 열고 방을 구경하겠냐고 물어볼 정도로.

하지만 집주인인 나는 얼마나 놀랐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눌러살겠다는 의지를 이렇게 강력하게 드러내도 되는 거냐고.

내가 황당해하자 단테가 내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끝내 그 방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 * *

“나 오늘은 일찍 잘 거니까 지금 책 읽을 거야.”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날, 나는 아무렇게나 골라온 책을 들고 말했다.

사실 책은 핑계고 결국 이야기나 좀 하자는 말이었다. 단테도 그걸 알아들었는지 답지 않게 긴장했고, 곧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옆에 순순히 앉은 건 좋은데, 어쩐지 거리감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앉은 것 같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밤에는 늘 등불 빛 때문에 붙어 앉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지금은 낮이니까 그럴 필요 없긴 하지. 자꾸 빈자리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분명 기분 탓일 거다.

어차피 책을 읽을 생각도 없겠다, 나는 책 펼치는 시늉조차 하지 않은 채 본론부터 꺼냈다.

“몸은 좀 괜찮아?”

“……갑자기 왜?”

“우리 집에 못 보던 방이 생겼는데, 아파서 마법도 못 쓴다는 사람이 만든 것 같지는 않아서.”

민망하다는 듯이 웃지 마. 미인계 안 통하니까.

“단테. 네가 다 나을 때까지 머무르라고 한 건 나였고, 여전히 아프다는 사람을 내 집에서 쫓아낼 생각은 없어.”

내가 말을 이을수록 단테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건 마치 무언가를 직감한 사람 같기도 했고, 동시에 그 직감을 거부하고 싶은 사람 같기도 했다.

“근데 슬슬 나도 물어보긴 해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보는 거야. 몸 상태는 어때? 아직도 불편한 곳이 있어?”

“…….”

“왜 대답을 안 해.”

마치 자기 몸 상태를 말하기 싫은 사람처럼.

내가 그렇게 생각한 찰나, 단테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물 좀 마시고 올게.”

말을 돌리려는 의도가 뻔히 보였지만, 한 번은 봐주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이야기하든 나중에 이야기하든 달라질 건 없었다.

어차피 좁은 집이라 갈 데도 없는데, 저렇게나마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 게 안쓰럽기도 했다. 방금 말 한마디 하는 것보다 더 확실한 답을 보여준 것도 모르고.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다. 너, 나한테 거짓말하기는 싫구나. 그리고 여기서 나갈 생각도 없어 보여.

몸이 덜 나은 것치고는 생생하게 돌아다닌다고 생각한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단테가 나를 속일 이유가 없다는 생각도 함께했을 뿐이지.

사실 작정하고 속였다기보다는 그냥 몸이 나았다는 사실을 굳이 말하지 않은 것에 가까웠지만, 대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니 거기서 거기였다. 나는 몸이 낫는 대로 떠나겠다는 네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는데도 말이야.

단테는 침착한 척을 하며 컵에 물을 따르고 있었다. 그래봤자 불안한 기색은 숨겨지지 않아서, 정말 ‘침착한 척’을 하고 있다는 게 티가 났다.

정말 말하는 수밖에 없나? 나는 그동안 필사적으로 외면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고, 한숨을 한 번 쉬었다.

“단테.”

“응.”

물을 마시고 있어서인지 발음이 조금 뭉개진 대답이 들렸다. 나는 단테를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 말했다.

“너 그렇게 나 좋아하는 거 계속 티 낼 거야? 숲에 사는 토끼도 알겠다.”

쨍그랑. 컵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 * *

D3.

단테는 최대한 이 집에 머무르고 싶었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지내기를 바랐다기보다는, 그냥 그녀의 곁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없었던 일상으로 돌아가기 싫었고, 이 평화로움을 조금이나마 더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몸만 다 나으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려던 계획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는 얼마나 나았다고 말해야 자연스러울지, 그렇게 말하면 얼마나 더 이곳에 머무를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했다.

다소 충동적으로 방을 하나 만들어버린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였다. 곧 나갈 거니 불편해도 조금만 더 참으라는 말이, 자신이 더 머무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침대를 핑계 삼아 쫓아내려는 것처럼 들려서.

방이 하나 더 생긴 것에 대해 어이없어하던 걸 보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지만, 뭐가 됐든 단테는 자신이 나갈 이유가 될 만한 것들은 다 없애고 싶었다.

그리고 단테가 가장 철저히 숨겨야 하는 것이 바로, 그가 그녀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몸만 다 나으면 떠날 거라고 약속했는데 계속 머무르고 있고, 게다가 그게 사심 때문이라는 걸 안다면……. 아무리 무심한 사람이라도 불편해할 것만 같았다.

불편해하기만 하면 다행이지, 그럼 더 머무를 이유가 없는 거 아니냐는 매정한 대답이 돌아올 수도 있었다. 그는 다른 거절보다 그 말이 더 상처가 되리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런 말이 나올만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고자 했다.

그래서 단테는 가끔, 그녀가 둔한 것이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원망스럽다가도 모른다는 사실에 감사했으며, 될 수 있으면 자신이 마음을 정리할 때까지 모르기를 바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정리라는 게 가능한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도 노력을 하기는 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단테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단테는 100년 넘게 이런 종류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지금까지는 숨길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즉, 그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이 아주 서툴다는 말과 같았다.

단테 나름 숨긴다고 숨긴 거였지만, 글쎄. 그 어설픈 눈속임이 과연 그녀에게 통했을까?

여기서 그의 불행은 단 두 가지였다. 그녀는 단지 모른 척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과, 그녀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직설적인 사람이었다는 것.

결국, 단테는 변명거리를 생각해내며 찬물을 들이키다가 예상치도 못한 말을 듣게 된다.

“너 그렇게 나 좋아하는 거 계속 티 낼 거야? 숲에 사는 토끼도 알겠다.”

단테의 손에서 컵이 미끄러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쨍그랑. 컵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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