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편이 마탑주였다 (7)화 (7/181)

7.

D1.

“단테, 불멸자가 필멸자를 사랑하게 되면 재앙이 일어난단다.”

그것은 단테가 천재 소리를 들으며 자랄 무렵,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스승이 해주었던 말이다.

그러나 단테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했다. 자신에게 재앙이 올 날은 없으리라고.

* * *

단테는 마법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기억은 마법의 존재를 느끼는 것부터 시작했으며, 타고난 마력의 양 또한 웬만한 마법사를 거뜬히 뛰어넘었다. 굳이 검증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눈부신 재능이었다.

그런 단테를 한눈에 알아보고, 그를 마탑에 데려온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율리안, 수백 년간 마탑을 통치하고 있었던 사람이자 단테의 스승이 될 자였다.

율리안은 아주 현명했기 때문에, 자신이 데려온 아이가 초월자가 되어 불멸을 얻으리라 일찍이 짐작했다. 어쩌면 자신을 뛰어넘는 마법사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도.

그런 스승이 단테에게 가장 먼저 가르쳤던 것은 학문의 기초나 세상의 비밀이 아니었다.

그녀는 앞으로 펼쳐질, 광활하며 기나긴 세월을 견디는 법을 가르쳤다. 무한한 시간을 살아갈 가능성이 보이는 작은 제자에게.

생명의 끝에 연연하지 않게, 그러나 죽음을 하찮게 여기지도 않게. 소중한 사람이 생기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소중한 이가 이끌어 내는 감정에 집중하지는 않도록.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되 금방 잊어버릴 수 있도록.

불멸자는 필멸자를 사랑해서는 안 돼. 불멸자는 홀로 남겨질 것이고, 남겨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영원히 고통스러울 테니까. 언젠가 사라질 이를 사랑한다는 건 곧 불멸을 후회하게 된다는 것과 다름없으니.

현명한 스승을 믿었던 단테는 가르침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그는 영리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이 가르침이 자신에게 필요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러나 필요성만을 느꼈을 뿐, 가르침을 온전히 체감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항상 간절함과 열의가 부족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단테의 삶에는 큰 시련이 없었다. 무언가를 애타게 원한 적도 드물고, 누군가를 먼저 좋아하거나 사랑한 적도 없다.

날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그는 호의와 관심이 익숙했다. 어딜 가든 그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었고, 단테는 그 사실을 익숙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관심을 받지 않는 게 어색할 정도였으니 오죽했을까. 자칫 오만해질 수 있었던 그가 바르게 자란 것은 그의 스승이 현명했기 때문이고, 그가 영리한 머리를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제자의 마음이 올바르지 않게 흘러갈 때마다 바로잡아 줄 수 있는 스승의 혜견과, 이게 어리석은 감정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머리.

그리고 그 모두를 타고날 수 있었던 그의 행운 덕분이었다.

그래, 한 마디로 그는 운이 좋았다.

호의를 느낄만한 상대가 생기면, 그 상대가 이미 더 큰 호의를 가지고 있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렇다고 상대의 감정에 고마움을 느끼기에는, 그런 이들이 그의 주위에 너무 많았다.

그러니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늘 단테였다. 그는 그렇게 형성된 관계가 절실하지도, 소중하지도 않았다. 꼭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그가 무언가를 먼저 사랑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세상 사람 모두가 그를 좋아한 건 아니었으나, 단테가 그런 이들에게 호감을 느낄 이유 또한 없었다.

한 번은 동료 마법사에게 짝사랑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은 적도 있었다.

“왜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해? 그냥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닌가?”

“선배.”

단테의 멍청한 답을 들은 후배는 가볍게 웃으며 물었다.

“누굴 먼저 좋아해 보신 적이 있으세요?”

“……아니, 없는 것 같은데.”

“그럴 것 같았어요. 선배는 선배를 좋아하는 사람한테 둘러싸여서 자란 티가 나거든요.”

그리고 그 말대로였다. 단테는 타인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심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그러는 사람은 봤어도 자신이 그런 적은 없었던 탓이었다.

이러니 그가, 필멸자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스승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감해 보았겠는가?

경험하지 못한 것임에도 계속해서 가르침을 되뇌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어리석은 이들은 때때로 겪어보지 못한 것들을 간단히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러나 어리석음과 거리가 멀었던 단테는 이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다행이라고.

불멸자가 필멸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오는 게 재앙이라면, 자신에게 재앙이 올 리는 없을 테니까.

그 재앙이 무엇인지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도 짐작하지 못했으나, 그러니 더더욱 다행인 일이었다. 될 수 있으면 영원히 모르고 싶었다.

이러나저러나 단테는 운이 좋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예상만큼이나 평탄하게 흘러갔다. 그에게 재앙을 선사할 이를 만나지 못한 채로.

* * *

모든 마탑주는 고대 마법을 해석할 의무를 가졌다.

단테가 불멸을 손에 넣었을 무렵, 그의 스승은 단테에게 마탑주 자리를 물려주고 떠났다. 마탑의 폐쇄적인 성향 탓에 몇백 년 만에 마탑주가 바뀌어도 큰 변화는 없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귀찮아지던 단테는 고대 마법을 해석해야 한다는 핑계로 모든 인간관계를 끊어냈다. 어차피 그에게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에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세월이 100년에 가까워지던 시점, 그에게 ‘지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마탑 업무를 도와주는 그의 비서와 몇몇 권력자들뿐이었다. 단테가 끊고 싶어도 끊어 낼 수 없었던 사람들만 그의 곁에 남은 것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줄어들었음에도, 단테가 느끼는 피곤함은 여전했다. 고대 마법의 강력함을 넘보는 무리가 그를 귀찮게 했기 때문에.

그들은 고대 마법을 다룰 수 있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단테가 어리석다고 말했다. 그 힘만 손에 넣는다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고 하며, 종래에는 마탑주 자리까지 욕심내었다.

그들이 주는 관심은 단테가 흔히 받아오던 것처럼 동경과 호감이 섞인 종류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적개심, 집착, 질투심 등 온갖 질척거리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가 떨친다고 떨쳐지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탐욕이 정점을 이루던 날, 단테는 작정한 듯 쏟아지는 공격을 상대하다가 크게 다쳤다. 고대 마법이 담긴 책을 빼앗기기 직전 달아날 수 있었던 곳은 인적이 드문 숲이 고작이었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는 도움을 청하기도 힘들었으나, 다행히도 가까운 곳에 사람이 있었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단테에게 뭐라고 말을 걸며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그 순간에 단테가 기억하는 건 그 사람의 목소리가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는 것과 그의 상처를 만지던 힘이 미약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그 사람이 그를 도와주었다는 것과 그가 살아났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때까지는, 정말 그 사실 말고 중요한 것은 없었다.

* * *

단테는 의식을 차리고 나서도 곧바로 자신을 돌봐준 사람의 집을 떠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이렇게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는 누구도 상대할 수 없었으며,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이곳에 머무르는 이유의 전부라고 단테는 생각했다.

다친 그를 머무를 수 있게 해주고 돌봐주는 이는 한없이 무심한 사람이었다. 함께 지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단테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바짝 긴장해 부러 차갑게 말할 때도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곱게 좀 말하라고 협박할지언정 그가 하는 말에 상처받는 일은 없었고, 그것은 모두 그녀가 무신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낯설기만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무관심에 익숙해졌다. 따라오는 시선이 없다는 건 생소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기분이 좋은 쪽에 가까웠다.

세상 만물에 관심이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가 평생 받아왔던 눈길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뜻하지 않게 만난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는 건 얼마나 기묘한 일인지.

그 무관심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그녀의 이목을 받을 때마다 당황한 적도 있었다. 그가 허둥지둥하는 걸 본 그녀는 그를 부끄럼 많은 사람으로 취급했지만, 단테로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었다. 자신만큼 사람들 시선에 익숙한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하지만 요즘 들어 유독 많이 당황하게 되는 건 사실이었기에 반박은 할 수 없었다.

* * *

지금까지 만나본 적 없는 유형의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낀다는 걸 깨닫자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자라났다.

어차피 회복에만 집중해야 하니 할 일도 없겠다, 단테는 종종 함께 사는 이를 관찰하며 시간을 보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생소했기 때문에 그녀를 지켜보는 일 또한 재미있었다.

그것은 희귀한 동물을 발견한 사람에 가까운 흥미였고, 불멸을 얻은 뒤로 자주 권태를 느꼈던 그는 그 흥미를 기꺼워했다.

분명 그때까지 그녀는 단테의 심심함을 달래주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켜본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모습은 물론이고 감히 알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까지도.

단테는 그녀가 무언가를 사러 가기 전 그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잠들었다 싶으면 이불을 덮어주고, 한 톨도 신경 쓰지 않다가 어느 순간 불쑥 걱정을 내민다는 것도 알았다.

그것은 정말 그가 기대하지 않은 다정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숨겨진 일면을 찾아냈다는 사실이 반갑기라도 했던 모양일까. 그것도 아니면, 상대에게 느끼는 흥미가 줄어들지 않고 커지기만 했던 탓일까.

유독 화창했던 어느 날, 단테는 그녀의 눈동자가 햇빛 밑에 있으면 호박색으로 빛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그 사람의 눈동자가 옅은 갈색이었기에, 빛을 머금으면 더 옅은 색인 호박색을 띠는 것일 테다. 그가 그것을 알았다는 것이 단순히 ‘그런 사실을 알았다’라는 건조한 문장으로 끝나는 것이었다면 좋았을 터인데.

그는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이 밤을 지나 낮이 올 때까지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루가 꼬박 지나는 동안 한 사람만을 눈에 담았던 것이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스스로 자각하지도 못한 채.

그 사소한 깨달음을 시작으로 단테는 그녀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그녀가 어이없을 때 짓는 표정 같은 것들을. 힘이 약해 무거운 물건을 들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낸다는 것도, 턱을 괴면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버릇이 있다는 것도, 아침잠이 없어 항상 일찍 일어난다는 것도, 웃을 때면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그녀의 머리카락이 어깨의 조금 위에서 살랑거린다는 것, 날씨가 좋은 날이면 고동색 머리카락이 밝은 갈색으로 보인다는 것,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면 그 무엇보다도 입꼬리가 먼저 올라간다는 것까지. 그녀 자신조차도 잘 알지 못할 사실들을 알아챘다.

누가 보아도 사소하고도 쓸모없으며, 그가 자세히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을.

그럼에도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는 가끔 그녀가 뒤돌아있을 때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가 궁금했고, 까닭 없이 하늘을 보다가 멍한 표정을 짓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녀의 이름은 왜 알파벳 한 글자뿐인지, 원래부터 이름이 그것인지, 다른 이름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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