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단테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의미 없이 페이지만 노려보기를 한참, 결국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 궁금해.”
목소리에 이유 모를 억울함이 가득했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나는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너는 너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고, 난 네가 알려준 이름조차 진짜 이름인지 몰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는 단테를 보고 내심 놀랐다. 한집에 살면서 함께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도 단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란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대놓고 물어본 거야? 내가 몇 살이냐고?”
여전히 내가 웃는 얼굴이자 단테는 오히려 기분이 나빠진 듯했다. 아니, 그것보단 초조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러면 안 돼?”
나는 남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한편 나에 관한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오랜 세월을 살며 생긴 버릇이었다.
다른 사람은 늙어갈 동안 계속 똑같은 시간 속에 갇혀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든. 상대에 대해 알아가고 교류하는 것이 얼마나 쓸모없는 일인지 말이다.
하지만 내가 이러는 게 단테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쳤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같이 사는 사람인데, 소소한 취미조차 묻지 않고 말하려 하지 않는 것이.
한집에서 지내며 같이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으니 의아하게 느낄 만도 했다.
나는 내가 과하게 신경을 끄고 살았다는 걸 인정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단테가 얼마나 불편했을지도. 따지고 보면 저쪽은 손님이니 신경이 더 쓰였으리라.
보통 이만큼 ‘나는 너와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라는 티를 내면 알아서 멀어지던데, 단테와는 그게 잘되지 않았다.
“안 되는 건 아니지.”
내가 깔끔하게 부정하자 단테의 얼굴에서 당혹의 빛이 스쳤다.
“그렇지만 나이는 궁금해해도 안 알려줄 거야.”
“…왜?”
“내가 원래 나이 알려주는 걸 안 좋아해.”
“안 좋아할 것까지 있나…….”
투덜거림에 가까운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못 들은 척했다.
“그래도 다른 건 물어보면 알려줄게.”
“…….”
“진짜야. 그렇게 못 믿는다는 얼굴로 쳐다보지 말고.”
오히려 이렇게 말해줄 때 궁금한 걸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니야? 웃으며 속삭이듯 말하자, 단테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했다.
“……막상 물어보려고 하니까 생각이 안 나.”
“정말? 지금이 아니면 대답 안 해줄 건데?”
이 한마디 했다고 바짝 굳는 모습이 웃겼다. 역시 놀리는 재미가 있다니까.
“농담이야. 나중에 생각날 때 물어봐.”
내가 한 장난에 불안해지기라도 한 듯, 단테는 마치 약속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굴었다.
“그래 놓고 또 모른 척하면 어떡해.”
“내가 언제 모른 척을 했다고 그래?”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야? 네가 제일 잘하는 거잖아. ‘단 거 좋아해?’하고 물어보면 ‘글쎄.’하고는 똑바로 대답 안 하는 거.”
아니, 뭐. 내가 자주 그러긴 했지만.
“이제 안 그런다니까.”
단테와 선을 그으려던 게 실패한 이상, 그런 식으로 대답을 외면하는 건 의미가 없다. 정말 선을 그으려 했으면 이런 말도 나오지 않게 해야 했는데. 단테가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차갑게 굴고 대화조차도 잘 하지 않아야 했다.
이건 전부 단테가 내 생각보다 잘생긴 탓이고, 내 말을 잘 받아준 탓이고, 나와 대화가 잘 통했던 탓이다. 한마디로 전부 단테 탓이라는 말이다.
이제 시시콜콜하게 하는 대화가 늘어나면서, 너에 대해 더 알게 되겠지. 대화가 쌓일수록 나만 힘들어질 테지만 별수 없었다.
단테가 떠나고 나면 금방 단테에 관해 잊을 수 있기만을 바랄 수밖에.
다른 것도 아니고 친구 비슷한 사이니, 이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 * *
그날부로 매일 밤 나란히 앉아 책을 읽는 것은 암묵적인 규칙이 되었다.
어차피 이야기를 나누고 투닥거리다 보면 책은 거의 읽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어쩐지 책 때문에 밤마다 만나는 거라고 우기고 싶었다.
처음 며칠은 단테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기도 했으나, 그것도 일주일이 넘어가니 금방 적응됐다.
굳이 낮이 아니라 밤을 골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재밌다고 느껴질 무렵,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잠깐. 저번에 나보고 특이하다고 한 것치고는 너도 일찍 자는 편은 아니잖아.”
항상 거실에 나올 때마다 단테가 깨어있는지부터 확인하지만, 요즘 들어 자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억지로 깨어 있는 기색도 아니니 그냥 밤늦게 잠드는 게 익숙한 것 같았다.
네가 나보고 특이하다고 할 이유가 뭐가 있냐고 말하자, 단테가 사뭇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는 마법을 쓸 수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주변을 밝히는 건 일도 아닌걸.”
“그래?”
대답을 듣고 나니 더 이상한데.
“그러고 보니 귀족들은 마법사를 고용해서 불을 밝힌다고 들었어. 그럼 이런 등불보다는 마법이 더 낫다는 거지?”
“당연하지.”
이쯤 되니 이상하다 못해 의아하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단테가 왜 그러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럼 너는 이걸 왜 쓰는 건데?”
내가 가리킨 건 주변에 켜 둔 등불들이었다. 탁자에 하나, 발밑에 하나를 둬도 글자만 간신히 읽을 수 있게 하는 등불.
내 말을 들은 단테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만 먹으면 주변을 밝히는 건 일도 아니었다며. 쓰면서 불편하지 않았어?”
“네 말대로, 불편했지. 처음에는…….”
어째 더듬더듬 말하는 게 심상치 않다.
“설마, 너…….”
“…….”
“아직 불 밝히는 마법을 쓰기에는 몸이 덜 나은 거야?”
“응?”
“근데 벽을 고치는 것보다 불을 밝히는 게 더 어렵나? 내가 마법은 잘 몰라서.”
단테는 내 말을 한참 생각하는 것만 같더니, 황급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 불을 밝히는 게 더 어려운데, 그것까지 하기에는 몸이 덜 나았어.”
“난 네가 잘 돌아다니길래 거의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응.”
어째 단테의 얼굴이 너무 뻔뻔해서 수상할 정도였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러면 더더욱 일찍 자야지. 계속 이렇게 잠을 줄이면 몸에 안 좋아.”
이렇게 진정성 있는 걱정은 오랜만에 해보는 것 같다. 사실 함께 사는 사람이 아프면 결국 고생하는 건 나였기 때문에, 걱정 반 타박 반이라는 표현이 적절했다.
“일찍 잔다고 빨리 낫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고 일찍 잠들고 싶지도 않아.”
“왜?”
내 물음에 단테가 얼마간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일찍 자면 너랑 이렇게……. 밤에 이야기 못 하니까.”
“…….”
“……너는 내가 일찍 잠들었으면 좋겠어?”
조심스레 내 기분을 살피는 듯한 시선이 와닿는다. 혹시라도 내가 마지못해 거실로 나오는 걸까 봐 걱정하는 것만 같았다.
그 시선을 받으니 문득, 단테가 이런 식으로 살피는 것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순간부터 단테는 언제나 내 기분을 신경 쓰고,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마치 내가 싫어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랬으면 내가 이렇게 매일 나오지도 않았지.”
내 말 한마디에 단테의 얼굴이 활짝 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머쓱해져서 시선을 돌리는데, 문득 단테의 귓바퀴가 눈에 들어왔다.
등불 빛이 비쳐 그렇게 보이는 거라고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하게 붉은색이다.
언제부터 저랬지?
…….
나는 단테가 부끄럼을 타는 게 줄어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마을 사람들 앞에서 티 내는 것이 줄어든 거지, 내 앞에서는 여전히 쑥스러워했다.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어디 둘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게 단순히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 적어도 지금까지는.
하지만 단테가 점점 내 기분을 살피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걸 넘어서 나와 함께하는 걸 기뻐하고, 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얼굴을 붉히는 게 눈에 보인다.
그리고 그게 전형적으로 설렘을 느끼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착각이라면 좋을 텐데.
“단테.”
이름을 부르니 보라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차가운 색채라고 생각했던 그 눈은 온갖 다정한 감정만을 담고 있어서, 나는 눈을 피하지 않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왜 불렀어?”
“……아무것도 아니야. 마저 책 읽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되물을 법도 하지만 내가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시선을 거둔다. 지나치게 말을 잘 듣는다는 점까지 발견하자, 착잡한 감정이 속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단테가 언제부터 이랬는지 고민하는 건 의미가 없다.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도 생각해낼 수 없었다. 그가 이럴 때마다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고,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던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다만 알아차릴 만한 순간이 많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동거인에 대한 호기심일 뿐이었다면, 나에 대해 알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답답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외에도 의심 가는 부분이 정말, 아주, 놀랄 정도로 많았다.
차라리 눈치채지 못한 채로 있을 것이지. 애매하게 느린 눈치에 절망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모른 척하는 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내가 획기적으로 모른 척할 방법을 101가지쯤 떠올리고 있을 때, 단테는 내 옆에 앉아 얌전히 책을 읽고 있었다. 책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부르기만 하면 바로 돌아볼 거라는 사실이 어째 막막하게만 느껴졌다.
이 집에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된 지 벌써 몇 달, 그리고 단테가 갑자기 이상해진 이유를 알게 된 밤. 잘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 나는 가까스로 인정했다.
단테가 나를 좋아해.
나를 좋아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