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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마탑주였다 (2)화 (2/181)

2.

“날 왜 데리고 왔지?”

경계심이 듬뿍 담긴 목소리였다.

“다쳐서 쓰러져 있길래 데리고 왔지. 그것보다, 이거 다 당신이 부순 거예요?”

“난 여기까지 온 기억이 없어.”

“아, 없겠지 그럼. 숲에 쓰러져있던 걸 내가 겨우겨우 끌고 왔는데. 그나저나 집 네가 엉망으로 만들어 놨냐니까.”

“……쓰러졌다고? 쓰러진 지 며칠이나 지났지?”

“일주일.”

내 말은 듣는 척도 안 하는군. 조금 짜증이 났지만, 날 노려보는 눈빛이 흡사 누구 하나 죽일 것 같은 눈빛이었기에 참았다.

남자는 붕대가 칭칭 둘려있는 자신의 상체를 보다가 또 뾰족하게 물었다.

“여기까지 데려와서 무슨 짓을 하려고 했지? 나는…….”

“뭐래. 나는 당신한테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보세요, 상의 빼고 당신 옷이랑 가방이랑 장신구까지 그대로인 거. 가방은 저기 있으니까 확인하시고, 귀걸이도 당신 귀에 그대로 걸려있잖아요.”

그러자 입을 꾹 다문다. 자기가 쏘아붙였다는 건 아는 모양인지 곤혹스러운 기색이었다. 이미 말할 대로 말해놓고 뒤늦게 저런 표정 지을 건 또 뭐람.

나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엉망인 집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아, 내 소파 다 망가졌네…….

강도가 다 털어간 적도 있었고, 불에 홀라당 타버린 적도 있어서 집이 엉망이 된 것 자체에 속상하지는 않았다.

속상한 건 내가 주워온 사람이 엎었다는 거지. 이래서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지 말라고 했던 건가. 은혜를 날로 처먹은 수준이 아니다, 이건.

내가 집안에 들어와서 난리가 난 집을 대충 치우고 수프를 끓여올 때까지 남자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수프를 내밀자 또 나를 노려보길래, 그냥 나도 같이 마주 노려봤다.

“왜. 그냥 굶을래?”

이렇게 말하니 금세 풀이 죽어 그릇을 받긴 하더라. 배고프긴 했던 모양이지.

다시 한 번 한숨을 쉬며 침대 앞에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왜 여기 앉아?”

“내가 어디 앉든지 네가 뭐라 할 권리는 없지. 집주인은 나니까.”

“…아까까지는 존댓말 쓰더니 이제는 말도 놓고.”

“너도 반말하잖아.”

“…….”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문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어쩌다 다쳤냐고 물어도 대답 안 해줄 거지? 왜 여기까지 와서 쓰러져 있었는지도.”

“…….”

“널 주워오고 치료해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내가 아주 매정한 사람은 아니거든. 아픈 사람한테 내 집 물어내라 할 생각도 없으니까 걸을 수 있게 되면 바로 나가.”

네가 돈이 있겠니, 뭐가 있겠니. 다쳐서 숲에 쓰러져있었던 주제에. 의자에 앉아서 발만 까닥거리기를 한참, 계속 침묵하던 남자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바로는 곤란한데.”

아, 왜 또.

* * *

대충 사정을 들어보니, 자신을 노리는 나쁜 사람들 때문에 자신이 있던 곳으로 바로 돌아갈 수 없단다. 돌아가려면 회복을 좀 해야 한다나 뭐라나.

“너 뭐 잘못한 거 있어? 그 사람들이 왜 널 노리는데?”

“잘못한 건 없는데, ……그런 게 있어.”

“아, 그래.”

사실 궁금하지는 않은데 예의상 물어봤다. 내가 되묻는 척도 하지 않으니 남자가 황당한 듯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뭐 어쩌라고.

솔직히 살림살이 파괴범을 대하는 것치고는 굉장히 온화한 태도 아닌가? 집을 다 부숴놨는데 대답도 꼬박꼬박 해줘, 바로 쫓아내지도 않고 무슨 사정인지 들어주기까지 해. 평소 같았으면 ‘그건 네 사정이야, 잘 가라’하고 보내고도 남았을 거다.

그래도 일주일간 돌봐준 사람이니까 들어 주고는 있는 거고.

나는 시큰둥하게 턱을 괴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앞뒤 이해 안 되는 불친절한 사정 설명 잘 들었어.”

“…….”

“그런데 굳이 여기일 필요 있어? 이 숲만 나가면 바로 마을인데.”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등 뒤의 풍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남자의 시선도 등 뒤쪽으로 향했다.

“지금 내 집이 손님 받을 사정이 안 되는 것 같거든. 어떻게 생각해?”

“…….”

남자는 개판이 된 집안 풍경을 한 번 보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를 한 번 보았다가, 슬그머니 옆으로 눈을 피했다. 아, 그래. 너도 잘못한 건 알고 있나 보지?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머물고 싶지 않아. 그들이 아직 나를 찾고 있을 테니까.”

“흠. 네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더 찾지 않을 가능성은? 너 정말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는데.”

남자는 느리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야. 기껏 해봐야 힘이 빠진 채 쓰러져 있을 거라고 짐작하겠지.”

그러니 나를 더 빨리 찾으려고 할 거고. 실낱같은 목소리로 덧붙여진 말에, 나는 잠시 고개를 기울이려다가 말았다. 이 남자가 죽지 않았다고 놈들이 확신할 이유가 뭐지, 싶어서.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이 남자는 죽지 않았고, 남자를 쫓는 무리는 무슨 이유에서든지 남자가 살아있음을 알고 있다. 그 말인즉슨 그쪽 사람들이 찾아내기 전에 남자가 회복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나는 흠, 하는 소리를 내며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네가 회복될 때까지 내 집에 머물고 싶다는 거 아니야.”

“……굳이 말로 설명한다면 그렇게 되지.”

나는 부러 심각하게 고민하는 척을 했다. 내 마음이 이미 반쯤 정해진 걸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이불에 주름을 만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쫓아낼 명분은 많았다. 일단 눈에 보이니까 구해준 거지, 이 남자가 일주일 전에 만나서 오늘 처음 이야기해 본 사람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또 그런 사람이 우리 집을 죄다 부숴놓기까지 했으니까.

게다가 자신이 쫓기는 신세라서 우리 집에 몸을 좀 숨기고 싶단다. 쫓는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는 모르지만, 이 남자가 반 시체로 쓰러져있던 걸 생각하면 상식적인 이들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답 나왔지, 뭐. 내가 왜 이런 위험부담을 떠맡아야 해?

처음부터 계속 머무르라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더더욱 쫓아내고 싶어졌다. 그런데도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내가 쫓아냈다는 사실 하나로 사람이 죽으면 굉장히 찝찝할 것 같다는 거?

잠깐 생각을 멈추고 힐끗, 시선을 올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눈이 마주쳤다. 약간 초조한 듯한 남자의 얼굴을 살피던 나는 희미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죽다 살아난 사람을 두고 할 감상은 아니지만, 정말 생각을 방해하는 얼굴이었다.

이 정도 미남이면 사정도 안 들어주고 머물게 해줄 사람도 있을 법한데, 사람 많은 곳은 싫다고 하니 골치가 아팠다.

“내가 나가라고 하면 넌 어떻게 돼?”

“어?”

남자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부러 무표정하게 남자를 쳐다보았다.

“우리 집 살림살이가 다 부서져서 두 사람이 지내기에는 부담스럽고, 너를 쫓는 사람들이 나까지 노릴까 봐 무섭고, 그래서 너를 내보내야겠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

내가 이렇게 물어본 이유는 간단했다. 내 집에 머무르는 것 말고도 차선책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그 차선책이 그럴싸하다면 정말 내보내면 되니까.

하지만 남자는 좀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곤란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한번 쉬더니.

“……설득을 해야지.”

…아, 나가서 다른 곳을 찾아보는 게 아니라?

내가 의아함을 표현하기도 전, 남자가 자신의 가방을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일어나기도 힘든 모양인데 대체 어떻게 집을 부순 건지. 아무튼 환자의 의사 표현에 따라 얌전히 가방을 가져다주자, 남자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집을 부순 건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눈을 떠보니 모르는 곳이길래 어디 끌려온 줄만 알고 과하게 반응했어.”

“아, 그래.”

“지금 당장 내가 부순 걸 고쳐줄 수는 없지만… 급한 물건은 새로 살 수 있을 거야.”

그걸 사는 건 나인데? 삐딱하게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남자가 가방을 열고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부순 물건값부터 내가 지내는 것에 대한 비용까지, 미리 지불할게. 원하는 대로 가져가.”

남자는 처음 깨어났을 때와 달리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말투가 얌전해진 것과는 별개로 건네준 주머니가 가벼웠기 때문에, 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원하는 대로 가져가라고? 내가 이 주머니를 달라고 하면 어쩔 건데?

그렇게 열어본 주머니는 예상대로 아주 평범했다. 아주 평범한…… 금화 몇백 개.

“…….”

손이 반사적으로 주머니를 닫았다.

지금 내가 뭘 본거지?

내가 주머니를 열자마자 닫으니 남자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지만, 지금 의아해할 사람은 내 쪽이었다. 무게를 봐도 크기를 봐도 전혀 이런 게 들어있을 만한 주머니가 아닌데?

“……어떻게 들어있는 거야?”

“뭐가?”

“이 주머니에 들어있다고 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잖아.”

“아.”

남자는 무언가 대답하려다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중요해?”

“중요하지는…… 않지.”

이 주머니가 뭐 어쨌든, 중요한 건 네가 돈이 있다는 사실이지. 그것도 내가 당황할 정도로 많게.

같이 있던 가방에 이런 게 들어있을 줄은 몰랐다. 이 정도로 돈을 들고 있으면…… 특별한 사연이 없어도 목숨이 노려질 만한 것 같기도 하고?

주머니를 다시 열어젖힌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이, 내 눈치를 살피던 남자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몸이 낫는 대로 떠나면 네가 그들에게 노려질 일도 없을 거야. 그래도 불안하다면…… 내가 그냥 평범한 여행객이라고 생각하고 지내.”

도대체 어떤 평범한 여행객이 이런 걸 들고 다닌단 말이야?

머리로는 그렇게 반박하고 있었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과장 조금 보태서 평생 봐온 돈보다 더 많은 돈이 눈앞에 있는 탓에.

그래, 저 남자 말대로……. 급한 물건은 충분히 사고 남긴 하겠네. 순간 머릿속에 내가 마을에서 받아오는 소일거리, 그리고 그 소일거리로 버는 돈이 스쳐 지나갔다.

“……평범한 여행객으로 생각하라고?”

“응.”

눈치를 보면서도 대답해오는 게 아주 뻔뻔하기 짝이 없지만, 그런 건 신경조차 쓰이지 않을 정도로 내 마음은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

그래, 뭐. ‘평범한 여행객’을 돈 받고 몇 밤 재우는 것쯤이야 상관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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