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낯선 시간속의 향기-23화 (완결) (24/24)

23

마나우스는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만했다. 엄청난 사람들과 북적이는 소음이 들썩이고 있었다. 사야드의 경비행기로 그들은 마나우스까지 단숨에 날아왔다. 시간을 절약하는 뜻밖의 교통편이었다. 며칠이 아니라 겨우 몇 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가 비행기를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조처한 다음, 그들은 택시를 타고 공항에서 곧장 그녀가 전에 묵었던 호텔로 향했다. 적어도 그들은 당당히 돌아왔다고 질리언은 스스로 위안했고, 사야드와 모아레즈 덕택에 그들의 몸과 옷차림은 단정하고 깨끗한 상태였다. 더구나 안젤리아 모아레즈는 남편과 함께 두 연인이 재회하는 걸 기꺼이 도왔고, 심지어 질리언이 자신의 화장품을 사용하도록 종용하기까지 했다.

벤은 질리언을 다정히 옆에 안고, 호텔의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스위트룸이라뇨?」

그녀가 중얼거렸다.

「난 그만한 돈이 없어요.」

「난 있으니 걱정 마.」

질리언과 릭이 남겨두었던 소지품들을 되찾았고, 또 그녀가 만일을 대비해 써두었던 편지들을 돌려 받아 지배인을 안심시켰다. 지배인은 명랑하게 그들의 무사 귀환을 축하해주었다. 그리고 두 명의 신사들에 대한 안부도 물어오자, 바로 뒤에 있던 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경고의 뜻을 내비쳤다. 지배인은 이 암시를 알아챘고, 재빠르게 질리언에게 다른 말을 하면서 그녀가 대답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곤 직접 그들을 스위트룸까지 안내했다.

벤은 릭의 소지품을 한쪽 구석에 치우고, 질리언이 짐을 푸는 동안 지배인에게 전화로 조용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질리언의 물건과 함께 자신의 옷가지들을 챙겨 호텔로 가져오도록 조처했다.

질리언은 그가 전화하는 소릴 들었지만 들으려고 하진 않았다. 여왕의 심장에 대해선 전혀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피로가 뼛속까지 파고들 정도로 지쳐있었다. 벤은 경기의 규칙을 바꿨지만, 그녀가 아는 건 더 이상 없었다. 단지 소원이 있다면 아주 오랫동안 푹 자는 게 전부였고, 아마 잠이 깰 때쯤이면 이 전투를 처음부터 다시 재개할 마음이 생길 것이다.

벤이 침실로 들어왔다.

「오늘밤은 그냥 푹 쉬어야 해.」

「보통 여행에서 돌아온 첫날에 당신은 뭘 하죠?」

그녀가 천천히 물었다.

「위스키를 마시고 드러눕는 거지.」

「점잔하고는 거리가 멀군요.」

「당신은 지쳐 있고, 난 충분히 기다릴 수 있어.」

그가 말했다. 벤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자, 그녀는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다. 그녀가 과장되게 기겁한 표정을 짓자, 그는 그녀를 노려보다가 갑자기 껴안아 침대로 데려갔다.

「이 일은 잠시 후에 결말을 짓자고.」

이렇게 말하더니, 그녀의 신발을 벗기고 나머지 옷들도 어렵잖게 벗겨낸 다름 능숙하게 그녀를 이불 사이로 밀어넣었다.

「좀 자둬. 이건 명령이야.」

「혼자서요?」

그녀가 놀라며 물었다. 그는 지금 양같이 온순해 보였다.

「자고 싶으면 혼자 있어야 할 거요.」

그리고 커튼을 내리고 온도를 낮게 조절한 다음 짧게 덧붙였다.

「난 다른 방에 있겠소.」

질리언은 커다란 침대에 누워 푹신한 베개에 파묻혔다.

30분 후에 벤은 그녀가 확실히 잠들었는지 살짝 엿보았다. 그녀는 깊고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조용히 문을 닫은 후 자리에 앉아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다음날 룸서비스로 아침식사를 막 끝냈을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벤이 나가서 배달되어 온 큰 상자와 여행용 가방을 받아왔다.

「뭐예요?」

그녀는 질문을 던지며 그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고, 벤은 상자와 가방을 모두 침대 위에 놓았다. 이젠 침대가 적절하게 제 기능을 할 때라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어젯밤 그가 그녀를 품에 안긴 했지만, 그녀가 잠자야 한다고만 고집했을 뿐이었다.

「내 가방. 옷가지들을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지. 그리고 이 상자는 당신 거구.」

그가 말했다. 그녀는 상자를 살펴보았다.

「이 상자는 내 것이 아니에요.」

정색을 하며 말했다.

「아니, 당신 거야.」

「생전 처음 보는 상자에요.」

「그냥 이 망할 놈의 상자를 확 열어 봐!」

그가 너스레를 떨었다. 일단 이 정도 반응을 보이는 데 만족하며, 그녀는 상자의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정장 한 벌이 들어 있었다. 귀부인들이 오찬 모임에 갈 때가 입는 정장으로, 무릎에서 약간 올라간 길이의 날씬한 곡선이 흐르는 치마와 우아한 절개선으로 마무리된 재킷은 세로로 가는 분홍과 흰 줄무늬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갑갑한 사무용 정장하고는 질부터 틀린 실크였다. 그녀의 짐작으론 족히 500달러는 넘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어울리는 구두와 실크 속옷도 겸비되어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이것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다 뭐죠?」

그는 침대 위에 놓인 자신의 가방에서 옷을 꺼내고 있었다.

「옷.」

그가 짧게 대답했다.

「빨리 입어. 스타킹이 좀 유감이지만, 맨다리로 입을 만한 정장류가 아니라서 말이야.」

「하지만 뭐 때문에 이런 걸?」

그녀가 다시 물었다.

「날 위해서.」

그가 시계를 보았다.

「딱 20분 주겠소.」

「뭘요?」

「차려 입는데.」

「거절한다면 어쩔 거죠?」

「맙소사, 그냥 입기나 해!」

그가 소리쳤다. 그는 점점 더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동안, 그는 일일이 모든 걸 지시했다. 그리고 그녀가 완벽한 화장을 하도록 지시했고, 치장하는 동안에도 함께 욕실에 서 있을 정도였다.

「날 초조하게 만드는군요.」

그녀가 투덜거렸다.

「내가 당신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고?」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죠, 벤 루이스? 내가 아는 한 당신은 비열하고 음흉한 속셈이 있어요.」

「맞아. 아니, 그 립스틱은 맘에 안 들어. 붉은색이 좋겠어. 붉은색을 발라.」

그녀는 성마른 표정을 지으며 그를 거울로 노려보았다.

「분홍색 옷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래. 여자들은 그렇게 자잘한 것들을 어떻게 다 아는 거지?」

「간단해요. 어느날 당신이 분홍색 옷을 입고 붉은 립스틱을 바른다면, 잘못된 선택이란 걸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더 밝은 립스틱을 바른다면 썩 괜찮아 보이죠. 당신은 배색 능력도 여자들 배란 효과의 일부라고 생각하는가 보죠?」

현명하게도 그는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까스로 립스틱을 다 바르자,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방문으로 재촉하며 이끌었다.

승강기 안에서도 그녀의 시선은 그에게 못 박혀 있었다.

「무슨 일이죠?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미칠 지경이에요. 난 깜짝 파티에 익숙하지 않아요. 좋아하지도 않고요. 당신이 뭘 계획했는지 귀띔이라도 해주는 게 더 안전하단 말이에요.」

「세상에!」

그가 중얼거렸다. 승강기 문이 스르르 열리자, 호텔의 지배인이 서둘러 다가왔다.

「이 정도면 전부 된 겁니까, 세뇨르 루이스?」

「완벽하오, 세뇨르 조빈. 전부 준비된 거요?」

「네, 세뇨르. 모두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모두들이라뇨? 누구죠?」

질리언은 이를 으드득 갈 정도였다.

「이제 알게 될 거요.」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며 앞으로 재촉했다. 그녀는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간신히 걸어갔다.

지배인은 그들을 큰 회의실로 안내했고, 문을 열어주었다. 벤이 그녀를 안으로 이끌었을 때, 대부분이 남자로 구성된 30여 명의 무리가 그들 쪽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벤은 재빠르게 그들을 저지시키면서, 회의실 끝에 설치한 단상으로 그녀를 계속 이끌고 있었다.

밝은 조명이 켜지자, 그들은 내리쬐는 빛과 열기에 휩싸였다.

영어와 포르투갈 어가 섞인 떠들썩한 질문들이 그녀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안자르'와 '여전사'라는 단어를 듣자 그녀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가 이 사람들을 여기로 불러모았고, 이제 증거가 없으니 그녀는 놀림감밖에 더 되겠는가!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 게다가 단상까지 일일이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 의자엔 그녀를 앉히고 벤은 다른 의자에 앉았다.

「착석해 주십시오.」

짧게 마이크로 말하자, 그의 깊은 목소리가 방안 가득 울렸다.

「빨리 자리를 잡을수록 질문도 빨라질 겁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회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이곳에는 브라질 정부의 고대 유물부 대표자들과 기자 분들도 계십니다. 셔우드 양이 자신의 발견에 대해 짧은 진술을 한 다음, 정부대표 측의 질문을 먼저 받을 겁니다. 그리고 유물부 측이 적절한 질문을 알고 계실 것이므로, 이곳에 계신 신사 숙녀 분들과 기자 여러분도 충분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점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는 질리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곤, 탁자 밑에서 크고 따뜻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감싸며 편안하게 꼭 쥐어주었다.

그녀는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 떨지 않고 잘 해왔었지만, 지금은 메스꺼운 감정을 겨우 억눌러야만 했다. 그녀는 아주 솔직하게 사라진 도시와 안자르 부족에 대해 쓴 아버지의 기록을 어떻게 발견했는지 먼저 간단해 말했고, 전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오빠, 그리고 다른 동업자가 어떻게 탐사대를 모아, 그녀 아버지의 기록장에 적힌 암호로 된 지시문을 따라갔는지 설명했다. 하지만 오빠와 동업자는 안자르 탐사 도중에 결국 생명을 잃어버렸다는 것도.

녹화 중인 카메라가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우린 찾아냈어요. 안자르의 스톤 시티를 우리가 찾아낸 거죠. 그곳은 말 그대로 돌로 조각된 도시였고, 수천 명의 거주민들이 있었을 겁니다. 일상 생활용으로 보이는 유물들을 많이 찾아낼 수 없었던 걸로 미루어, 안자르 사람들이 도시를 떠날 때 자신들의 소지품들을 다 가지고 간 걸로 추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놀랄 만한 사원은 남겨 두었습니다. 그 사원에는 관이 하나 있었고, 그 관 위에는 양각으로 조각된 남자가 있었습니다. 또한 여전사 모습을 한 석상들이 죽 늘어서 있었고….」

회의실은 꼭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온통 들끓고 있었고, 그녀는 일단 말을 멈추었다. 예상대로 기자들은 유물부 측의 질문을 먼저 양해했던 벤의 요구를 묵살해버렸다.

「당신은 지금 아마존의 여전사들을 발견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셔우드 양?」

한 통신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역사가들이 말했듯이, 스톤 시티는 큰 연구과제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고 있는 건 여전사들이 석상을 발견했다는 게 전부입니다.」

「그럼 석상들은 얼마나 큽니까?」

「받침대까지 합치면 3미터쯤 됩니다.」

「당신 아버지가 사용한 암호 말입니다.」

다른 기자가 소리쳤다.

「군사 정보부와 관련이 있나요?」

「아뇨, 그는 고고학 교수이셨습니다.」

「사이러스 셔우드 교수 말입니까?」

「네.」

그녀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괴짜 셔우드로 유명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전혀 괴짜가 아니었음을 증명합니다. 그가 옳았던 거죠.」

「어떤 종류의 암호였죠?」

「암호는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고안해내셨죠. 주기도문에 근거한 암호입니다.」

옆에 있던 벤이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세뇨리타 셔우드.」

더블 단추의 정장을 입은 턱수염의 신사가 입을 열자, 그녀는 그가 유물부의 관계자임을 한눈에 알아챘다.

「이 전설상의 발견을 뒷받침해줄 만한 증거는 가져 왔습니까?」

회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마 사진은 있을 테죠?」

그 신사는 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증거품은?」

그녀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않자,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뇨리타, 난 이것도 일종의 쇼가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소. 당신 아버지가 터무니없는 우스갯소리로 유명했듯이 말이오.」

「아마.」

벤이 부드럽게 끼여들었다.

「당신은 셔우드 양과 그녀의 아버지께 사죄를 해야겠소. 우린 증거가 있소.」

질리언이 창백해졌다. 순간 그녀는 벤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리고 기겁한 시선으로 그를 돌아다보니, 그는 몸을 숙여 단상 밑에서 어떤 꾸러미를 들어올렸다.

그녀는 마이크에서 고개를 돌리고, '벤!' 하고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는 탁자 위에 놓고 침착한 동작으로 꾸러미를 풀기 시작했다.

천 조각이 떨어지자, 붉은 돌이 현란한 조명 아래에서 믿을 수 없이 뜨거운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여왕의 심장입니다.」

벤이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드문 보석인 붉은 다이아몬드입니다.」

사진기 눌러대는 소리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고, 기자들이 소리쳤다. 유물부에서 나온 그 신사는 입을 딱 벌린 채 아연하게 보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 재산은 아니지만,」

벤이 계속했다.

「이걸 '질리언의 다이아몬드'라고 다시 불러야 한다고 봅니다.」

「당신이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그녀가 망연자실하게 중얼거렸다. 그들은 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침내 벤이 그녀를 정신없이 북적이는 회의실에서 구출해낸 것이다. 이제 여왕의 심장은 유물부의 광적인 애정을 받는 보관품이 되었고, 다른 탐사대를 조직하려는 성급한 준비도 이미 행해지고 있었고, 그리고 거기에 참가하려고 들끓는 세계 곳곳의 고고학자들로 전화선은 불이 날 지경이었다. 그날 오후 전세계의 통신은 여왕의 심장에 대한 기사를 대서특필할 것이다.

「좀 극적인 연출이었지.」

그도 동의했다.

「하지만 효과는 대단했잖소. 기자들이 들어올 때부터 보석을 거기 올려놓는 것보다 훨씬 더 굉장했소.」

「그거 말고요.」

그녀의 눈이 휘둥그래졌고,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그건 벤이 기대하던 바가 아니었다. 재빨리 그녀를 안고 침대 위로 쓰러뜨리고는 커다란 몸으로 그녀를 꼼짝없이 가두었다.

「그렇게 힘든 결심은 아니었소.」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당신이 달아났을 때 당신과 그 빌어먹을 돌덩이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고, 결국 당신을 택했지. 이상 끝.」

「하지만 돈이….」

「그래, 보석은 엄청난 돈줄이었겠지만, 난 파산한 게 아니오. 내 짐작으론 25만쯤 저축해 놓은 게 있을 정도요.」

질리언은 빤히 그를 쳐다보고는 작은 소리로 물어보았다.

「달러로요?」

「음, 물론이오. 난 여왕의 심장으로 더 큰 포부를 세웠지만, 대신 안내 일을 계속할 거요. 아마 싫증이 좀 났었는가 봐.」

질리언이 그의 목을 꼭 껴안으며 우울한 기색을 싹 지워버리자, 그도 긴장을 서서히 풀었다. 뭐, 다 그런 거지.」

「아마 이번에도 다음 탐사까지 한 달 이상은 쉴 수 없을 것 같군.」

그가 투덜거렸다.

「저 양반들이 애송이 탐사지원자들을 모으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일주일, 잘 하면 그만큼은 안 걸릴 수도 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다른 탐사에도 갈 거요?」

「난 잘해낼 수 있어요.」

「하지만 이번엔 꼭 2인용 텐트를 가지고 갈 거요.」

「좋아요.」

그가 시계를 보았다.

「또 약속이 있는데, 젠장. 당신 옷을 구길 생각이 아니었는데.」

「이번엔 또 뭐죠?」

그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벤, 더 이상의 깜짝 파티는 못하겠어요.」

「결혼식이오.」

이렇게 말하면서 일어선 다음, 그녀도 일으켜 세웠다.

「글쎄, 아마 오늘은 안 될지도 몰라. 경험이 없으니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군. 그래도 시도는 해보자고.」

그녀는 얼어붙은 듯이 서 있었다.

「결혼이라고요?」

그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래, 결혼. 나도 당신만큼 충격적이었소. 당신에게 청혼할 계획이었는데, 그때 하필 당신이 그 망할 놈의 다이아몬드를 찾아낸 거지. 그 돌덩이가 우리 사이에 떡 버티고 있는 한 당신이 허락할 거라곤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래서 그 장애물을 미련 없이 버린 거요.」

그리고는 천천히 뭔가 갈망하는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나와 결혼할 거요, 그렇지? 내가 세상에서 최고로 훌륭한 남편감이 아니란 건 알아. 젠장, 아마 이 호텔의 우리 층에서도 아닐 거요. 하지만 난 아주 재미있잖소.」

「그렇죠, 아주 많이.」

그녀가 살며시 동의했다. 무릎에서 힘이 쫙 빠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그의 넓은 가슴에 살포시 기대었다.

「그럼, 대답은?」

「네.」

머리 밑에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걸 느끼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랑해요. 알죠?」

「그럼 알지.」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정수리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나도 사랑해. 당신 때문에 다이아몬드도 다 포기했으니, 난 당신을 죽도록 사랑해야 해. 나중에 바가지 긁을 때면 이 점을 잘 기억해 두라고.」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질리언은 침대 위에서 다리를 포갠 채 앉아 있었고, 다리 위엔 신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벤은 그 옆에 편안하게 누워 텔레비전의 축구경기에 한창 빠져 있었다. 브라질 아나운서가 열을 올리며 고함치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쭉 뻗어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질리언 셔우드… 루이스입니다.」

나중에 생각난 듯 덧붙였다. 결혼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 새 이름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벤의 성을 따르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곧 자신의 성 뒤에 연결해서 쓰는 걸로 마음을 바꿨다. 솔직히 벤은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원하는 걸 다 가졌고, 그녀의 이름은 그녀가 좋을 대로 부를 수 있었다. '질리언 셔우드 루이스'라면 꽤 어울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잠시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더니, 입을 열었다.

「재단 측이 탐사에 관심을 가지도록 애를 쓸 만큼 썼지만 비웃음만 당했어요.」

이번엔 좀더 길게 듣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지금 프로스트 재단의 일원으로 여기에 온 건 아니에요. 휴가를 얻어 제 개인 경비로 이번 탐사를 해야 했죠.」

또 듣고만 있었다. 막 브라질 팀이 득점을 하자, 응원하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잠시만요, 남편에게 말해보죠.」

그녀의 눈엔 장난기가 반짝였고, 수화기를 입에서 약간 떨어뜨리며 말했다.

「벤, 프로스트 고고학 재단인데요, 제가 아직 그들의 실제적인 고용인이니깐 이번 탐사를 그들 주최로 했다고 보고하래요. 물론 그 대가로 승진도 멋지게 시켜준대요, 어떄요?」

그의 반응은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에 그녀는 수화기를 그의 쪽으로 건넸다. 시선을 텔레비전 화면에 줄곧 못박은 채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가 입을 열었다.

「엿 먹으라고 해.」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꾹 참으며 수화기를 다시 가져왔다.

「제 남편은 그 생각이 맘에 들지 않나 봐요.」

그녀가 정중하게 말했다.

「안녕히, 에트슨 씨. 사직서는 정식으로 보낼게요. 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녕히 계세요.」

그녀는 만족스레 전화를 끊고, 자신의 일로 다시 돌아왔다.

나중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벤이 물었다.

「사직한 걸 후회하오?」

「아뇨, 눈곱만치도. 난 고고학을 사랑하고, 또 그 일을 그만두지도 않을 거예요. 마침 브라질 유물부 측이 자리를 제안했고, 승낙하려 해요. 당신은 발굴을 계속하는 데 구미가 당기지 않나요?」

「왜 않그렇겠소? 내 첫 발굴은 진짜 대어였잖아.」

「우린 탐사 안내도 계속할 거예요.」

「그래.」

그가 투덜거렸다.

「이젠 좀 느긋하게 할 거요.」

하품을 하면서, 불현듯 궁금해하던 게 생각났다.

「그런데 당신 아버지의 암호가 주기도문에 근거한다고 했지?」

「어떤 건지 가르쳐드릴게요.」

그러면서 고개를 그의 어깨에 파묻었다. 따스한 남자의 체취를 음미하며 더 깊이 파고들자, 즉시 그가 강한 포옹으로 응답했다.

「아침에. 지금은 외우기가 좀 힘들어요.」

「주기도문이? 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외웠소.」

「음, 이건 약간 어려운 암호잖아요.」

「얼마나 어려운데?」

「고대 방언이에요.」

「고대 방언이라고?」

그가 깜짝 놀라며 반복했다.

「이런 거예요.」

어두운 호텔 방에서 사랑하는 남자의 품에 안겨 그녀가 암송을 시작했다.

「??래 개신 우리 ?버지, 이르미 거루키 여기므 ?드시오며, ??이 이?오시며 뜨시 ??래서 이룬 거?치 ?애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느? 우리애개 이료? 랴시글 주오시고, 우리? 우리애개 재 지은 ?르 ??여 주거?치 우리 재를 ??여 주오시고, 우리르 시허매 드개 ?지 마오시고, ?? ?개서 구?오소서. 대개 ??? 구어새가 여고?니 ?버지개 여우어니 이?오 ?이?. ?맨.」

「세상에, 신이시여!」

그가 투덜거렸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살며시 미소지었다.

「딱 어울리는 말이네요.」

에필로그

「세뇨르, 루이스!」

벤은 자신의 이름을 부른 사람을 찾아 북적대는 부두를 쭉 훑어보았다.

그들은 스톤 시티로 가져갈 짐을 싣고 있었고, 질리언은 배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더니, 질리언은 단번에 배에서 뛰어내렸고, 벤을 지나 양팔을 활짝 벌리며 달려갔다. 벤이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남자에게로 뛰어가더니 열렬하게 그를 껴안았다. 그때서야 벤은 질리언이 껴안고 있는 남자와 그 뒤에 서 있는 남자를 알아보고는 찌푸린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질리언이 조르지를 풀어주고 이번엔 페페에게 반갑게 팔을 펼치자, 페페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그때서야 벤이 그들에게 다가왔고,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언제 돌아왔나?」

「어젯밤에요.」

조르지는 열렬한 질리언의 환영인사에 얼굴을 붉힌 채 말했다.

「부두마다 당신과 세뇨리타에 관한 얘기뿐이에요. 우린 이게 당신 배란 걸 겨우 듣고 오늘에야 여기 오게 됐어요.」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한 잔 걸치며 얘기를 나누세.」

벤이 말했다. 그리고 어둑한 술집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모험에 관한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모두 돌아온 건가요?」

질리언이 물었다. 조르지가 끄덕였다.

「비센테만 빼고요. 우리가 떠나기 전에 비센테와 당신 오빠를 묻어주고 왔어요, 세뇨리타. 그리고 다른 사람, 그러니까 케이츠에 대해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케이츠는 어떻게 된 건가?」

벤이 물었다.

「두트라가 죽였어요. 캠프에서요.」

「좀 궁금했어. 두트라가 우릴 뒤쫓아올 때 혼자기에, 난 케이츠가 죽었거나 부상을 입어 두트라가 버려 두고 온 거라 생각했지. 아무튼 케이츠에 대해선 걱정할 것도 별로 없었소.」

조르지의 검은 눈이 심각하게 변했다.

「두트라는 어떻게 된 겁니까, 세뇨르?」

벤은 냉담하고 확고한 눈빛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두트라에 대해서도 이젠 신경 쓸 거 없어.」

이 한마디에 조르지는 다시는 두트라를 볼 수 없으리라 확신했고, 분명히 뛸 듯이 기뻐하는 눈치였다.

「우린 짐을 싣고 다시 돌아갈 거예요.」

질리언이 부드럽게 말했다.

「난 원래 시체를 거두어 옮겨와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그곳에 그냥 둘 생각이에요.」

바로 그 스톤 시티에서 오빠는 마침내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 처음 그녀를 배려하는 행동을 했었다. 셔우드 교수는 스톤 시티를 결국 보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그 일을 해냈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든 한 명의 셔우드가 그들 모두를 불러들인 곳에 결국 묻혔고, 전설의 일부가 되는 건 적절한 결말이었다.

그녀가 앉은 의자 뒤로 팔을 걸치면서, 벤은 말없이 가볍고 자연스런 손길로 그녀의 어깨 부분을 위로하듯이 어루만지고 있었다.

「난 사업을 좀 확장하려고 하네. 혹 관심이 있다면 자네들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안하려고 하는데.」

그리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난 번 같은 여행은 절대로 아닐 거네.」

「고맙습니다, 세뇨르.」

조르지가 말했다. 그는 이 제안에 기뻐하는 눈치였다.

「나머지 일행들에게도 말할 겁니다.」

페페는 잠자코 있다가, 벤에게 자신의 언어로 뭔가를 중얼거리더니, 조용히 의자를 빼고 술집에서 나가버렸다.

「페페가 뭐라고 했죠?」

질리언이 물었다. 벤은 뒤로 기대어 앉으며 말했다.

「음, 고맙지만 강에 붙어 있는 게 더 좋대. 그리고 내가 당신이 텅 빈 땅덩어리를 찾아다니는 걸 돕고 싶어해도, 페페는 행복하게 강에 남아 있겠다는군.」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대화는 함께 한 모험 후에 나누는 추억의 일상사로 흘러갔다. 잠시 후 조르지가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고, 질리언과 벤도 배로 돌아가기 위해 함께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당신을 위한 깜짝 쇼가 있어.」

질리언과 함께 부두로 돌아가는 길에 벤이 말했다.

그녀는 미심쩍은 눈길로 벤을 보았다.

「내가 깜짝 파티를 안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내가 언제 실망시킨 적이 있던가? 날 믿어.」

그녀가 비웃음을 흘리자, 곧 재빠르고 강한 도둑키스가 지나갔다. 벤은 그녀에게 팔을 두른 채 계속했다.

「해먹에서 해볼 일이 있어?」

그가 음흉하게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놓은 덫에는 걸리지 않았다.

「뭘 말이죠?」

방심하지 않고 캐물었다. 벤 역시 하나도 틀리지 않고 다시 물었다.

「당신도 대답을 알잖아.」

그는 아주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늘밤 할 거야.」

「그래요?」

그날 오후 마침 해먹이 배에 실리는 걸 봤기 때문에, 그녀는 딱 멈춰 서서 팔짱을 꼈다.

「오늘밤 난 배 위에서 자지 않을 거예요.」

「물론 아니오. 집에서라니깐.」

벤의 거처가 이제 그들의 집이 되었다. 그녀는 호텔이 너무 비싸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는 그곳에 방해물이 너무 많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의 거처가 여느 잡지 표지처럼 우아하게 꾸며질 리는 만무할 테지만, 그들이 필요로 하는 부엌, 침대, 그리고 기능적인 배관시설까지 두루 갖추었다.

「확실히 말해봐요. 집에 뭐가 있죠?」

「해먹. 오늘 하나 배달시켰지.」

분명한 대답을 듣자, 상상만으로 그녀는 이미 흥분되고 있었다. 언뜻 벤을 보니 그도 똑같은 기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크고 푹신한 침대가 있는데, 왜 하필 해먹이죠?」

그는 그녀를 꼭 껴안으며 다시 키스를 퍼부었다.

「우린 해먹에서 새로 시작하는 거야. 누가 어떻게 알겠어, 우리가 어디서 끝낼지.」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즐겁게 웃음을 터뜨렸다.

벤과 함께라면 모든 게 모험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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