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낯선 시간속의 향기-19화 (20/24)

19

그녀가 당황하리라고 생각한다며, 그에게 당당히 보여줄 수도 있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녀는 다른 문화를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배워서, 별다른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행복한 기분으로 여자들과 함께 이들이 매일 수영하는 깊이 숨겨진 숲 속 호수로 갔고, 하루에 두 번이나 옷을 벗고 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눈에 익은 꾸러미를 가지고 달려오자, 마냥 물에 있을 수 없었다.

벤의 옷이었다. 어쩜 이렇게 교묘히 허를 찌르는지 기가 찼다. 원주민들 앞에서 그의 세탁물을 거절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만일 그녀가 거절한다면 이 원주민들은 충격을 받을 것이다. 이들의 문화에는 각 개인과 성별에 따라 주어진 임무란 게 있었고, 각자의 일을 수행하는 데에 논쟁 따위는 필요 없었다. 바로 이들의 단순한 생활방식이었다. 빨랫감에 손대기 전, 그녀는 여자들이 만든 신선한 향내가 나는 옅은 초록색의 아교로 만든 비누로 몸부터 씻었다. 비누는 쉽게 풍부한 거품이 생겼다. 진짜 목욕다운 목욕을 하자 날아갈 듯이 상쾌해졌다.

질리언은 비누로 자신들의 옷가지를 깨끗이 빤 후, 여자들과 호수에서 나왔다. 그리고 외부세계 와 접촉한 경험도 있는 알시다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여자가 친절하게도 헝클어진 머리를 부드럽게 헹궈주는 걸 가져다주었다. 달콤하고 섬세한 냄새가 꼭 신선한 꽃향기와도 같았다. 그녀는 여자들이 만든 나무빗으로 반지르르 윤기가 흐를 때까지 정성스레 머리를 빗었다.

그리고 그녀는 끈으로 된 허리띠를 걸쳤는데, 이 옷은 뒷부분을 완전히 노출시킨 채 허리 근처에 작은 띠가 둘러지고, 앞부분은 여러 개로 땋은 줄을 늘어뜨려 놓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도 모두 이렇게 최소한의 부분만 가려주는 걸 입고 있었고, 그녀의 상상처럼 완전히 벗은 느낌이나 불안감은 들지 않았다. 아마 예상했던 것보다 자신은 나체 상태를 더 좋아하는 것도 같았다. 이렇게 차려 입으니 희미한 즐거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보는 관점에 따라 이 차림새는 벗었다고 할는지도 모르겠군. 아마 벤은 다소 불편한 순간을 경험할 거라는 점잖은 걱정마저 들었다. 그리고 비겁한 방법으로 그의 옷가지를 그녀에게 떠넘긴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될 것이다.

야노마미 남자들은 그녀의 창백한 피부에 일순간 흥미를 보이는 걸 제외하고는 그녀의 나체에 별 관심을 두지 않을 테지만, 벤의 반응은 전적으로 다를 것이다. 그는 새 친구들을 화나게 하고 싶지 않아, 어느 야노마미의 여자에게도 눈길을 주진 않겠지만, 질리언의 나체는 다른 경우였다.

모로카로 돌아가면서, 그녀는 이제 원주민의 옷을 입었을 때 느껴지는 해방감이 아주 좋아질 정도였다. 노출된 피부로 와 닿는 불쾌한 열기와 습기는 훨씬 줄어들었고,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을 이때까지 거의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피부로 살며시 스치는 미묘한 바람의 감촉을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다. 이 살랑거리는 바람에 반응하여 그녀의 유두가 당당하게 일어섰다.

그녀가 여자들과 정답게 모로카의 넓은 공간 안으로 들어서자, 벤의 반응은 그녀의 예상 대로였다. 마치 보이지도 않는 주먹이 상체가 고꾸라질 정도로 세게 그의 배를 강타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두 가지 격렬한 욕망이 동시에 휘몰아쳤다. 첫 번째는 그녀에게 담요를 던지며 다른 남자들의 눈으로부터 그녀를 감추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녀에게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두 번째 충동은 여지없이 산만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딱 맞게 걸치고 있는 이 천 조각은 잘 감싸고 덮여져 있긴 하지만, 부풀어 오르는 그의 남성을 위한 충분한 공간을 마련해주진 않았다.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의 크림같이 창백한 피부는 연한 황금색으로 빛났고, 갈색 피부의 원주민들 사이에서 단연 보석처럼 돋보였다. 놀랍게도 균형 잡힌 몸매에 어우러진 그녀의 유연하고 탄탄한 근육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녀는 날씬했지만 그렇다고 피골이 상접한 여배우나 모델들처럼 여윈 편은 아니었다. 그녀의 피부는 매끈하고 탱탱할 뿐만 아니라 충분한 굴곡도 갖추었으며, 그가 찬양하여 마지않는 여성적인 부드러움이 넘쳐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슴은 둥글고 탄력적이었고, 달콤한 작은 유두를 입에 넣을 때는… 맙소사! 왜 이렇게 된 거지? 입에 침이 고였다. 그는 그녀의 흔들리는 엉덩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부드럽게 윤기 흐르는 그녀의 엉덩이를 집어삼킬 듯이 쳐다보았다. 또한 앞부분을 덮은 장식 끈을 무섭게 노려보면서 그 아래를 들춰보고 싶은, 아니 그 부드러운 살결을 일분일초라도 느껴보고 싶은 굶주림으로 허덕였다.

그녀의 자연스런 행동에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화가 났다. 그녀는 이렇게 많은 남자들 앞에서 벌거벗고 있으면서 어쩜 저리도 태연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가 있는 쪽은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고, 그는 그녀의 관심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려면 차라리 여기에 없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화가 치밀었다. 이때까지 어떤 여자에게도 소유욕이란 걸 느껴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는 자신의 강한 원초적인 반응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여자였다. 오로지 그만의 것이었다. 다른 어떤 남자도 그녀를 이렇게 쳐다볼 권리가 없는 것이었다. 드디어 그녀가 그를 쳐다보았고, 그 천사 같은 미소에 그는 놀라서 거의 펄쩍 뛸 정도였다.

질리언이 저렇게 달콤한 표정을 지을 때는 그녀의 심사가 뒤틀려 있을 때뿐이었다. 저 환한 미소는 그가 지금 곤경에 처해 있음을 의미했던 것이다. 반짝이는 직감으로 빨랫감이 그 이유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아마 그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놓았을 것이다. 아니, 그건 너무 쉬워. 그는 옷을 입고 안 입고에 별다른 관심이 없으니 그건 아닐 거야. 더 잔인한 방법으로 그를 진짜로 비참하게 만들 만한 것으로 말이지. 젠장, 아마 그녀는 그를 거부할 것이다.

공평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불공평해. 그는 분노를 발산시키며 조용히 앉아 있었다. 조물주는 왜 여자를 이리도 성가시게 만들었지? 남녀 사이의 공평한 상호작용 따위는 무시하고 말이야. 남자가 무슨 일을 해도, 심지어 아주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도 여자란 즉시 무시무시한 총을 꺼내 협박하지.

저말이지, 여자의 콧대는 하늘을 찌를 정도라서 그 섬세한 어깨를 냉정하게 돌릴 때면, 남자는 즉시 그 뜻을 알아채고는 아마 무릎으로 설설 기며 사과할 때까지 사랑을 나눈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지. 그는 확실히 약점을 잡혔고, 가슴에서 공포의 기운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기 전에 그녀의 발치에 몸을 던져 정말이지 무릎으로 기어야 할 것 같았다. 아마 그러면 그녀도 누그러지겠지.

그런 일까지야 일어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그는 이 일을 쉽사리 모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세탁물을 그녀에게 보낼 생각을 떠올렸던 자기 자신을 원망했다. 사실 그녀는 공식적으로 그를 거절하지 않을 거고 또 거절할 수도 없는 게, 그녀는 자신들을 환대하는 이 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많고 또 매우 민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무릎을 꿇고 빈다 해도 적어도 하룻밤 동안은 그를 무시할 것이다.

다타가 팔꿈치로 툭 치자 벤은 싱글거리는 검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새 여자야?」

다타는 물으면서 벤이 입고 있는 천 조각 위로 불안하게 불룩한 부분을 가리켰다. 물론, 벤이 아주 오랜 시간을 질리언과 함께 보낸다면 이렇게 격렬한 반응은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벤은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네. 새 여자요.」

「여자는 당신과 산책하려고 할 거야.」

천만에! 벤은 우울하게 생각했다.

그가 꿈쩎도 안 하자 다타가 다시 벤을 쿡쿡 찔렀다.

「여자와 얘기를 해봐. 당신이 말을 안 해주면, 어떻게 알겠어?」

그가 충고했다.

오, 그녀는 잘 알지. 영악한 마녀니깐. 고분고분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갈 때조차 그는 자신의 시도가 소용없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하필이면, 그곳의 모든 여자들이 그의 천 조각으로 상황을 이해한 듯한 시선을 던지더니 곧 정중하게 눈을 돌렸다.

질리언이 그를 올려다보았고 얼굴에는 여전히 달콤한 미소를 담고 있었다.

「산책 좀 할까?」

그가 요행이라도 바라면서 제안했다. 그녀 역시 시선을 아래로 떨구더니, 더 달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린 5일 동안 걸었어요. 잠시라도 쉴 기회가 있는 게 반가울 정도죠. 그리고 방금 난 우리의 세탁물을 다 해치웠거든요.」

그녀는 옷가지가 마르도록 펼쳐져 있는 곳으로 고갯짓을 했다.

그는 크게 신음하는 듯했다.

「그런 일로 내게 대들지 마.」

그녀의 눈은 투명한 녹색의 호수처럼 반짝였다.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로 대들 생각은 없어요.」

「알았어.」

그가 한숨 지으며 말했다.

「젠장, 질리언. 자신이 여기에 과민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내가 약간 비겁한 방법으로 세탁물을 보낸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내가 그걸 빨 수는 없잖아. 여기 남자들은 빨래를 절대로 하지 않거든. 내가 직접 빨래를 한다면 심각한 위반사항이 될 거라구.」

「저도 알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정말이오?」

「물론이죠.」

그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나랑 산책은 안 하겠지?」

「네.」

「왜지?」

그녀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신이 옳을지는 몰라도, 아무튼 내가 바로 천국으로 가는 입구의 문지기거든요.」

그는 흥분으로 씩씩거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럼 내가 옳더라도 계속 이러겠다는 건가?」

「네.」

「세상에, 왜지?」

이제 끓어오르는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어깨에 훌쩍 메고 어디론가 데려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를 안고, 5분 간 만이라도 애원하면서 말이다. 사실 그는 그녀에게 손을 뻗으려다가 가까스로 자신을 억눌렀다. 물론,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그녀의 감정만 다치게 할 것이다. 사실 빨랫감을 준 행동이 아니라 방법에서 그는 좀 비겁했고, 주도권을 쥔 그녀가 대등한 위치에서 그를 너그럽게 받아들일 때가 되어서야 이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았다. 사소한 이 문제들은 다분히 복잡해질 소지가 있었다.

몇 번이나 말을 걸려는 부질없는 시도를 했지만, 그녀를 이해시킬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아 번번이 중단했다. 결국 그는 다타 옆으로 돌아와 앉았고, 다타는 그의 실망을 매우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당신 여자가 걷기 싫대?」

그가 즐겁게 물어봤다.

「너무 많이 걸은 후라서, 그녀는 걸을 수 없다는군.」

벤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실망한 표정을 애써 감추었다.

「아!」

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자기 여자가 다치지 않게 잘 보살펴야 해.」

다타의 말에서, 벤은 숲에서 사랑을 나눌 때 자신이 질리언에게 너무 거칠게 대했기 때문에 걷는 걸 거부한다고 그가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상황이 매우 비참했다.

마을 전체가 함께 자는 모로카에 그들의 해먹도 매달려 있었다. 질리언은 기쁜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다. 반나절은 걷지도 않고 그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보냈을 뿐인데도, 상당히 피곤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힘든 육체노동의 단계는 거의 끝이 났으며, 내일이면 가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강 상류를 탐사할 수 없다는 아쉬움을 지닌 채, 길고 단조로운 나날들을 배에서 지겹게 보낼 것이다. 또한 며칠동안이나 천천히 흔들거리는 해먹에 누워, 게으른 나무늘보 마냥 빈둥거릴 것이다. 마나우스에 다다를 때까지 그녀는 그야말로 완전한 휴식을 취할 것이다.

벤이 그녀 옆에서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해먹을 흔들고 있었다. 남을 해치려다 자신이 다치는 경우일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만두었었는데, 희생을 각오한다손 치더라도 좀전의 상황으로 보아 아주 가치 있는 희생일 것 같았다.

상황은 점점 더 재미있어져서 몇 시간 전에 미약하지만 아주 친숙한 벤의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단언하건대 아마 내일쯤이면, 대자연의 섭리로 벤은 더욱 더 큰 좌절을 경험할 것이다.

「당신과 해먹에서 사랑을 나누었다는 그 남자 말이지,」

벤이 어둠 속에서 낮게 중얼거렸다.

「아직도 그를 만나나?」

그녀는 만족스레 하품을 했다.

「난 해먹에서 섹스를 해본 적이 없어요.」

쥐 죽은 듯한 침묵이 몇 초간 흘렀다. 그러고 나서 여전히 낮은 목소리이지만 격노한 반응이 그녀를 향해 집어삼킬 듯 거세게 밀려왔다.

「무슨 소리야? 해먹에서 해본 적이 없다니? 해봤다고 당신이 똑똑히 말했잖아. 우린 두 번이나 거기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어. 이때까지 날 속였다고 말하는 거야? 날 질투 나게 하기 위해서?」

「난 절대로, 해먹에서 섹스를 해봤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아니, 했어. 배에서 첫날밤에.」

「당신은 해먹에서 그렇게 자본 적이 있나고 물었잖아요. 그때 우린 막 자려고 누웠을 때였고, 당신은 ‘뭘’ 해본 적이 있냐고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난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당신이 ‘잠자는 걸’ 의미한다고 확신했어요. 그리고 당신이 해먹을 어디에다 놓았냐기에 발코니라고 말했죠. 그리곤 대화가 끝났어요.」

「제기랄. 당신은 내 말의 의미를 알았잖아. 그리고 내가 낮잠 따위엔 관심도 없는 걸 알잖소. 또 우리가 폭포에 있을 때, 전혀 모르는 남자와 발코니에서 일 해본 적이 있는지도 내가 물었소. 그때 당신의 대답 때문에….」

「나도 내가 말한 걸 잘 기억해요. 그리고 당신이 섹스 외의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 건 내 잘못이 라니란 것도 알아요. 그때 난 낯선 사람과 발코니에서 섹스를 해봤다고 말하지 않았고, 그건 왜곡할 수 없는 진실이에요. 난 누구와도 발코니에서 섹스 해본 적이 없으니 말이에요. 이제 좀 자게 조용히 해주실래요?」

「아니, 당신 목을 비틀어 버릴 거야.」

「성질 좀 죽여요.」

그녀는 힐책하면서도 어둠 속에서 웃고 있었다.

벤은 약이 올랐다. 그녀는 고의로 그랬던 것이다. 별거 아닌 거짓말로 이때까지 그를 고문했고, 질투로 눈이 뒤집힐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확실히 남자들은 보다 온순한 성별과 거래를 하게 될 때면 가혹한 손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여자들이란 최상의 에이스 카드를 모두 쥐고 있는 존재들이었다. 물론, 대부분의 여자들은 질리언 셔우드만큼 악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여자는 그에게 어떤 단추를 적절하게 눌러야 하는지 훤히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해먹으로 다가가 흔들었다.

「알았어. 하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교묘한 대답이 아니라 상식적인 진실만 말해. 당신은 미국에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혹은 어떻게든 사귀는 사람이 있어?」

「절대로 상식적인 진실이라고요?」

그녀가 물었다.

「그래 진실만.」

그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적어도 6개월 간은 데이트를 해본 적도 없어요.」

「좋았어, 그런데 왜지?」

그는 머리털이 곤두 설만큼 충격을 받으며 소리쳤다.

「머리가 쪼개질 정도로 지겨운 데도 정중하게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게 더 낫기 때문이죠. 그리고 난 섹스에 큰 관심도 없었어요.」

「거짓말.」

그 단어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당신은 한시도 나한테서 손을 못 떼잖소.」

「그건 당신이 능숙하게 잘 이끈 탓일 거예요.」

그녀가 빈정대며 말했다.

「잘 자요. 난 이만 자야겠어요.」

그는 자신의 해먹을 부드럽게 흔들고 있었고, 웃음이 싱긋이 되살아났다. 그래, 그녀는 지금 내게 푹 빠져 있는 게 확실해.

이튿날 아침 그들은 다타다사를 포함한 네 명의 부족 남자들과 동행하여 모로카를 떠났고, 세 시간 후 드디어 강에 도착했다. 원주민들은 정확히 배를 남겨둔 장소로 인도했다. 두 척의 배 중 하나가 사라졌는데도 벤은 그리 놀라지 않았고, 설령 두 척 다 없어졌다 해도 전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염려하는 거라곤 케이츠와 두트라가 어떻게든 그들보다 앞서서 배를 타고는 어디 후미진 곳에 숨어 기다리고 있을까봐 걱정이 될 뿐이었다. 두트라와 케이츠가 여기 배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더 논리적이었지만, 아마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야노마미 족과 함께 있는 이상 섣불리 덤비진 못할 것이다. 원주민이 한 명이라도 숲으로 도망가는 경우 추적하자면 케이츠와 두트라는 곤경에 빠질 것이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원주민들이 밀림에서 살아가는 기술과 지혜를 따를 순 없었다.

숨겨놓은 구명정들과 공급물의 저장소는 아무 탈없이 안전했으므로 벤은 한숨 돌렸다. 사실 케이츠가 첫 번째 배를 가져갔다면 물품은 물론 모든 걸 몽땅 다 가져갔을 게 뻔했던 것이다.

그들은 일부 물품과 구명정 하나를 배에 실었다. 케이츠와 두트라가 나머지 물품에 손댈 염려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페페와 다른 일행들이 사용할지도 몰랐던 것이다.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마침내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벤이 엔진에 시동을 걸자, 배는 서서히 후미진 곳을 빠져 나와 넓은 강의 물살로 들어섰다. 질리언은 야노마미 족이 안 보일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두트라는 자신의 머리에서 200미터 정도 더 높게 솟은 튼튼한 은신처 바닥에 엎드려 원주민들에게 발각될까봐 두려워 감히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권총만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모든 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텐데 하고 심술궂은 생각에 잠겼다. 이틀 전에 그는 진흙에서 미끄러지면서 권총도 잃어버렸고, 깊은 협곡까지 미끄러졌었다. 그래서 저 왜소한 원주민 놈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지금 덤불 속에 움츠려 있어야만 했다. 저놈들은 힘으로 밀어붙이면 그의 상대가 되지도 않았지만, 독화살로 무장하고 있는 상태라서 어쨌든 그에게 불리한 셈이었다.

두트라는 이때까지 배에 먼저 도착하기 위해 용케 잘 참아왔고, 결국 해냈다. 그러나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루이스를 숨어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고, 이 외진 상류에는 다른 총을 구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다른 쪽 배를 손에 넣고 멀리 떨어진 상류 쪽에 숨긴 다음 루이스와 여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또한 두트라는 공급품들을 배에 싣기 시작했지만, 곧 그 일은 완전히 자신을 노출시킬 수도 있고, 루이스를 더 신중하게 행동하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의 일은 루이스를 따라 하류로 쫓아가서 무기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 일단 왕래가 더 잦은 강변에 도착하면 아무 배에나 뛰어올라 총을 훔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때까지 루이스는 안심해도 되겠지만, 두트라는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총알 몇 개만 있으면 다이아몬드는 두트라의 몫이 될 것이다.

두트라는 한 시간을 더 기다렸고, 그만하면 야노마미가 이곳을 벗어나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다른 배와 마주칠 확률은 전혀 없을 것이다.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권총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두트라는 지금 상황에 꽤 만족했다. 루이스가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는 케이츠의 말을 들은 순간부터 두트라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오직 다이아몬드만 손에 넣는다면, 그는 멋진 옷과 수많은 보석을 마음껏 걸칠 수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커다란 차를 사서 마나우스를 누빌 것이고,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또한 경찰들에게 뇌물만 먹이면 그를 가만 내버려 둘 것이고, 더 이상 쫓기느라 강 상류로 피신할 일도 절대 없을 것이다.

두트라는 다이아몬드를 상상했다. 본 적은 없지만 그의 가슴속에 사랑스런 이미지로 자리잡고 있는 다이아몬드는 얼음조각 같이 보일 것이며, 멋진 숙녀의 반지에서 반짝이고 있는 보석처럼 생겼을 것이다. 훨씬 더 크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햇빛에서 본다면 빛이 너무 강렬해서 눈이 멀지도 모른다. 평생 이 다이아몬드만큼 뭔가를 간절히 원해 본 적도 없었다. 루이스는 그걸 가질 자격이 없었다. 이제 이 두트라가 루이스를 곧 죽이고 모든 걸 만끽할 것이다.

우선 질리언은 그늘에 해먹을 걸고 그 위에 편안히 누웠다.

벤은 그녀를 훑어보더니 다시 둘만 남게 된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야노마미와 마주쳤을 때 기쁘긴 했지만, 동시에 사생활을 침해당한 것 같았다. 그와 질리언, 단 둘만 있게 되길 바랐던 것이다.

「선장은 선원이 좀 더 부지런하길 바라오.」

그가 말했다.

「선원은 내일쯤 부지런해질 거예요.」

그녀가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오늘 왜 그래? 어젯밤에 푹 잤잖아.」

「오늘은 녹초예요. 그걸 시작하는 첫날엔 기분이 좋지 않거든요.」

그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설명했다. 침묵이 감돌았다. 이윽고 벤이 입을 열었다.

「알겠소. 생리 첫날에는 피곤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이지. 아직도 내게 화난 거요?」

「정말 그날이에요.」

그녀가 덤덤한 어조로 계속했다.

「그리고 당신의 많은 실수를 한꺼번에 다 받아들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벤은 다시 그녀를 보았고, 이번에는 그녀의 눈 밑에 둥글게 그늘진 부분을 알아챘다. 그녀는 농담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순간 우울해지다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필요한 게 있소? 어떻게 해줘야 당신 기분이 나아질까?」

그러자 그녀는 눈을 뜨고 그를 향해 미소지었다. 그를 두렵게 만드는 귀여운 악녀 같은 미소가 아니라 진심 어린 미소였다.

「난 괜찮아요. 아프진 않고 좀 피곤할 뿐이죠. 정말 필요하면 날 깨워줘요. 그리고 내일이면 더 나을 거라고 약속할게요.」

그는 여기 강 상류 지역에선 조타실을 떠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않다면 그녀를 팔에 꼭 껴안고 잠들 때까지 지켜주었을 것이다. 그는 항상 그녀를 어린애처럼 다루고픈 이상한 충동에 사로잡혔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그는 그녀가 이때까지 만나본 여자나 남자를 통틀어 가장 능력 있고 신념이 굳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 기간이 보통 얼마나 돼?」

「뭐요? 제 그날이요? 아님 지금 이러는 게 당신이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꾸민 거라는 당신의 이상한 망상 말인가요? 그날은 4일 내지 5일이 될 테지만, 당신의 망상은 끊임없다는 걸 알겠군요.」

그는 싱글거리며 웃었다.

오, 그녀가 저렇게 새침하게 말할 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날엔 사랑을 나눌 수 없다는 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군.」

「실제로 그게 좋을 것 같지도 않고 또 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리고 그 점은 당신도 알아야 해요.」

「결론이 난 것 같군.」

그녀는 그의 목소리에 묻어나는 애처로움에 킥킥거리며 해먹 속으로 더 편안한 자세를 잡으며 깊이 파묻혔다.

「난 당신의 마음을 확실히 알아채고 나서야 당신과 ‘산책하는 걸’ 거절하기로 생각했었어요. 내게 알려줘서 고마웠어요. 난 그냥 음식에 이상한 걸 넣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순간 그는 뻣뻣하게 굳어졌다. 그리곤 웃기 시작했다.

「내 사랑, 다음부터는 자신의 판단대로 하도록 해.」

「명심하죠.」

그녀는 점잖게 말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난 어떤 게 더 좋은 생각인지 구별하는 방법을 알거든요.」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푹 자도록 해.」

「고마워요.」

몇 분이 흐른 뒤 다시 돌아봤을 때, 그녀는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그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살며시 미소지었다. 그녀가 악랄하고 심술궂을 때조차 그는 그녀와 있을 때가 일평생 어떤 순간보다도 더 즐거웠다. 그녀를 어떻게든 마나우스에 묶어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