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낯선 시간속의 향기-18화 (19/24)

18

낮과 밤이 늘 이런 식으로 반복되었다.

물론 '반복'이라는 말은 전혀 평범하지 않은 사실을 설명하는 데 적절한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들은 하루종일 걸었고, 어떤 때는 멈추지 않고 걸어가면서 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낮 동안 벤은 그녀에게 손도 대지 않고 어쩔 수 없는 짧고 간단한 접촉도 가능한 한 자제했지만, 그녀는 이해했다. 그녀 역시 욕구불만을 느꼈다. 아침에 텐트를 떠나는 건 물론, 사랑의 열정이 채 가시지도 않아 당장 강행해야 하는 급박한 행군도 잊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실제로 나눈 사랑의 행위가 훨씬 근사했기 때문에 이전보다 지금의 욕구불만이 더 끔찍한 상황이었다.

때때로 길고 어두운 밤의 환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일이 무심하게 느껴졌다. 몇 주 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벤의 경솔한 농담들이 모두 진심이었던 것이다. 사랑을 나눌 때 그의 체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여서 과연 그가 '금욕'이라는 의미를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러웠다. 그는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그녀를 완벽하게 이끌었다. 사랑을 나눌 때 그녀가 보답하는 앙탈을 부드럽게 웃어넘겼고, 참을 수 없는 절정의 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녀가 그의 아래에서 안타깝게 떨고 있을 때까지 강하고 끊임없는 리듬에 맞춰 그녀 안에서 거세게 움직였다. 또한 그는 고양이만큼이나 장난스러웠다. 커다란 고양이처럼. 아니 조심스레 자신의 힘을 억제하고 있는 호랑이라고나 할까. 한 번은 명령만 내리기 좋아하는 사령관처럼 나태해져서, 등을 대고 느긋하게 누운 채 그녀를 자신의 몸 위로 올려, 그녀가 맘껏 즐길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연인으로서 그는 정말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그녀가 자신을 거부했던 사실에 그는 진짜로 화가 나서 안절부절 했으며, 지금 돌이켜 보면 그녀 역시 이 사실이 놀라웠다. 그녀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걸 깨닫지 못했었기 때문에 감히 그를 멀리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안전한 곳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은 힘겹게 자신을 억제하며, 타오르는 욕구를 묻어둬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나우스에 도착하는 대로 두트라를 살인죄로 고소하리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케이츠에게 살인죄가 적용될지는 알 수 없었다. 비록 그가 벤을 쏘았다고 해도 브라질 정부가 미국인끼리의 고소에 관심을 가질는지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두트라의 경우는 달랐다. 브라질 정부는 오랫동안 그를 잡으려고 애써왔던 것이다. 케이츠와 두트라가 도망갈 가능성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들을 고소할 작정이었다.

가끔씩 릭을 생각하면 목이 메였다. 그녀는 그의 시체를 찾아 묻어주고 싶었지만, 벤이 말한 것처럼 시체는 밀림 속에서 빠른 속도로 부패할 것이다. 어쩌면 케이츠와 두트라가 증거를 없애려고 시체를 어딘가 한적한 곳에 치우거나 까마귀들에게 던져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질리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살인자들을 고발하는 게 전부라는 확신에 매달렸고, 나중 일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녀는 스톤 시티를 발견했지만 증거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 기록장이나 뒷받침이 될 만한 사진들, 하다못해 깨진 도자기 파편조차 가져오지 못했다. 그녀는 더 이상 거기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사실 푸념만 늘어놓는 건 소용없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상실한 것에 대한 깊은 공허감을 매일같이 억눌러야 했다.

그녀는 스톤 시티로 돌아갈 생각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여전히 다른 고고학자들은 그녀 말에 전혀 흥미가 없을 것이고, 탐사를 후원할 만한 돈줄이 없는 것도 뻔한 사실이었다. 그녀는 벤이 탐사를 계속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물어볼까 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벤은 부자도 아니었고, 단지 모험가이자 밀림의 안내자일뿐이었다. 그는 그만한 돈도 없을 것이고, 설령 있다 해도 많은 돈을 탐사에 소비하는 데에는 흥미 없을 것이다. 단지 그들이 함께 잤다고 해서 그에게 큰 기대를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정부가 스톤 시티 발견자에게 약간의 상여금을 지불해줄지도 모르지만, 아마 탐사비용을 충당할 만큼 넉넉한 금액은 아닐 것이다. 그래. 결국 그녀는 실패했고,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아마 벤은 작별키스를 해주고 엉덩이를 두드리며 배웅을 해주러 나오겠지. 아니 나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 따르는 여자가 수두룩한 벤과 같은 남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여자란 있을 수도 없으니까. 단지 그녀가 지금 눈앞에 있고 그의 정열이 타오르고 있긴 하지만, 일단 마나우스에 당도할 때면 상황을 달라질 것이다. 그의 동물적인 특성을 첫눈에 간파했듯이 그녀는 그를 붙잡아 둘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가지고 토라지면서 그에게 변화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주어진 시간 동안 그와 맘껏 즐길 것이고, 여자로서 벤과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건 일생의 단 한 번뿐인 기회일 것이므로 신에게 감사해야 했다. 벤이란 존재는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는 그녀의 세계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 시킬 수도 있었다. 자신의 삶이 평범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벤을 만난 이후로 그녀는 격렬하게 들끓고 있는 화산 꼭대기에 서 있는 기분을 맛보았다. 너무나 즐겁고 격정적인 경험이었지만,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현실로 돌아가면,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프로스트 재단에서는 더 이상 기회가 없었고, 만일의 경우 그녀의 행동을 겸허한 방법으로 용서할 리가 없다는 것마저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고고학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가르치는 일은 내키지 않지만, 아마 대학에서 자리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하는 게 훨씬 나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미래에나 있을 일이지, 지금은 벤과 밀림, 그리고 뒤따르고 있는 위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5일째 되는 날, 천둥소리에 벤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곧 이쪽으로 올 모양이군. 안전한 곳을 찾아 몸을 씻자고. 텐트를 치고 그 안에 옷을 넣어 놓으면 젖지 않을 거야.」

그녀는 코를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좀 젖는다고 옷감이 상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실 그들의 옷은 너무 불결한 상태여서, 그녀가 옷을 걸칠 때마다 치를 떨며 움츠러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물며 몇 번이나마 속옷을 빨 기회도 없었더라면 여태까지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그녀를 향해 그럴싸하게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배가 있는 곳에 도착할 테구, 그럼 세탁할 수도 있을 거야. 뜨거운 태양에 옷이 마르는 동안 갑판에 벌거벗고 누워 있을 걸 생각해봐.」

「혹시 내가 세탁할 수 있을 거란 항목에 당신 옷도 포함되나요?」

그녀는 독특한 기호를 선호하는 사람처럼 최대한 부드럽고 호기심에 찬 태도로 물어보았다. 그는 희망에 찬 시선으로 그녀를 보다가 이내 무거운 함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들은 좁지만 일단 위쪽이 훤하게 트인 곳을 찾아냈다. 아마 거대한 나무들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울창한 숲의 천장 부분을 허물어뜨려 생긴 곳 같았다. 쓰러진 나무들은 급속히 부패했고, 새로운 식물들이 그 공간을 곧 메우게 되겠지만, 일단 천장이 열려 있는 동안 태양과 비가 아낌없이 쏟아졌다.

그가 텐트를 세운 뒤 막 자라나고 있는 잔 나무들을 일부 베어냈을 때, 천둥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서늘한 바람이 위의 천장 부분에서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쪽 세계에 서식하는 생물체들은 호우를 대비해 숨을 곳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옷을 벗어 텐트 안에 던져넣은 뒤 좁지만 높게 하늘이 트인 곳으로 걸어가자, 막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놀라운 힘으로 질리언의 피부를 때렸고, 그녀는 기겁을 하며 펄쩍 뛰었다. 이제 폭풍은 지나가고 하늘에선 두터운 비구름이 빗방울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폭포 아래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연신 퍼붓는 빗줄기로 그녀의 피부는 따끔거렸다. 고개를 힘껏 젖히고 두 눈을 꼭 감고는 빗줄기가 머리카락 사이로 골고루 흐르도록 했다. 아! 지금 비누가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이만큼 활기차고 산뜻하고 격렬한 샤워가 어디 또 있을까? 그녀의 유두가 차가운 빗줄기로 단단해져 있었다.

자유의 단맛을 만끽하면서, 그녀는 당당하고 원초적인 남자의 모습으로 빗줄기 아래에서 몸을 씻는 벤을 지켜보았고, 벤 역시 그녀의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있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넓은 열대 우림 한 가운데 그녀가 서 있었다. 그것도 전라의 상태로. 그리고 하늘에서는 거대한 밀림에 생명을 불어넣는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머리 위의 나무에서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쳤고,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수리가 연신 그녀 주위에서 메아리쳤다. 밀림의 생명체들은 모두 은신처로 숨어들었다. 지금 이 폭우 속에 서 있는 건 아주 위험했다. 그러나 서서히 달아오르는 흥분으로 그녀는 환호성을 맘껏 지르고 싶었다. 그녀는 팔을 높이 올렸고, 자유롭게 빗줄기를 온몸으로 들이켰다. 평생 이렇게 황홀한 목욕을 경험해본 적도 없거니와 아무리 사치스럽다 해도 오늘같이 압도적인 건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천둥이 우렁차게 갈라지는 소리 사이로 낮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벤이었다. 그는 그녀가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꼭 끌어안고 그녀를 발치까지 들어올려 자신의 입으로 그녀의 입술을 눌렀다. 두 눈을 스르르 감으며 그의 어깨를 꼭 쥐고, 그의 매끈하고 시원한 피부에 손톱을 파묻었다. 그들의 나체 사이로 뜨거운 열기가 빠르게 전해졌다.

그는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더 위로 끌어올렸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아 자세를 고정시켰다. 그의 입술이 맹렬하게 유두를 덮쳤고, 혀가 원을 그리며 열기를 내뿜더니 입 안으로 깊이 들이켰다. 질리언은 숨이 넘어가는 듯한 비명을 질러댔고, 옴 안의 피는 끓어오르는 환희로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부풀어 오른 남성 위로 그녀를 천천히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그의 것이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에 닿자 그녀는 신음하며 살짝 눈을 떴다. 그녀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었다. 얼굴로 쏟아지던 빗줄기가 그들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고, 지금 그의 푸른 눈동자는 짙푸른 바다와도 같은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여길 봐.」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똑똑히 봐.」

거의 고통스런 욕망으로 자지러지면서 그녀는 그의 명령을 따랐다. 그의 남성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뒤틀리며 불거져 있었다. 그는 그녀를 조금 더 내렸고, 그의 남성이 그녀의 부드러운 계곡 입구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요 며칠간 종종 느끼는 놀라움이었지만, 그녀에겐 아직도 충격이었다. 그의 폭발하는 열기가 그녀를 불태웠다. 조금씩 조금씩 그녀가 밑으로 내려올수록 그의 남성이 그녀 쪽으로 깊숙이 치솟았고, 그녀의 부드러운 계곡의 끝까지 뻗어갔다. 그는 그녀 안에서 더욱 커지는 자신의 일부를 느꼈고, 그녀의 자궁까지 닿는 것 같았다. 그의 몸이 자신의 몸 안으로 사라지는 걸 보면서, 또 온몸으로 느끼면서 그녀는 절정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는 그녀가 몸부림치는 동안 그녀를 꼭 안으며, 그녀의 엉덩이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한번 더, 다시 느껴보고 싶어.」

그가 속삭였다.

그는 부드러운 엉덩이를 움켜쥐고 그녀를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의 강인한 몸이 그들을 꿋꿋이 지탱하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흥분으로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녀의 무게가 아래로 향할 때마다 그의 고통스런 육체는 뜨거운 열기와 부드러운 살결에 파묻혀 환희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비는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질리언은 그에게 매달려 절묘한 고통을 고조시키는 돌격이 있을 때마다 신음하기 시작했다.

「제발.」

「아직, 질리언. 아직 멀었어. 너무 멋지다구.」

그가 헐떡이며 말했다.

차가운 빗줄기가 그들을 씻어 내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몸은 열렬한 광채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주도권을 잡으려고 도발적인 씨름을 벌이면서 미처 상상도 못한 곳에서 배회하던 절정을 맛볼 수 있었으나, 강철 같이 탄탄한 근육질의 몸 앞에선 무기력한 시도였다. 즐거움이라기보다 강렬한 승리의 소리로 그가 크게 웃었다.

햇빛이 구름 사이로 비치며 여기 하늘이 높게 트인 지역으로 스며들었지만, 여전히 빗방울은 쏟아졌고, 반짝이는 햇살 속에서 그들의 경이로운 목욕은 계속되었다. 마치 투명한 다이아몬드 안에 갇힌 것 같았다. 그녀는 그에게 거친 키스를 퍼부으며 온몸을 가까이 밀착시켰고,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

그의 손끝이 그녀의 엉덩이 틈을 파고들었고, 격렬한 말을 내뱉으며 어쩔 수 없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는 빠르고 격렬한 동작으로 그녀 안으로 돌진했고, 그녀 역시 안타깝게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떨고 있는 그녀의 내부에 달콤하게 감싸인 채 원초적 고함소리와 함께 고개를 뒤로 젖히며 부르르 떨었고, 그의 몸 안에 있던 뜨거운 액체가 그녀에게 힘차게 분출되었다.

그의 다리가 후들후들 흔들릴 지경이었고, 엉켜 있는 몸을 아래로 무너지지 않게 하는 데 온힘을 집중했다. 질리언은 그의 품에서 축 늘어져 그의 어깨에 고개를 떨구었고, 다리는 여전히 그의 허리를 감은 채로 있었다. 햇빛은 희미하게 거의 어두울 정도로 비치기 시작했고, 폭풍이 지나가자 이제 비도 그쳤다. 이 순간 그들에게 들리는 소리라곤 시간이 멈춘 듯이 천천히 잎사귀에서 똑똑 떨어지고 있는 빗방울뿐이었고, 마치 그들 주위를 에워싼 자연의 찬사 같았다.

잠시 후 그녀가 즐거운 소리로 말했다.

「우리 몸에서 김이 오르고 있어요.」

숲 전체에서 김이 모락모락 생겼고, 습기가 찬 구름과도 같은 증기가 땅 밑에서부터 오르고 있었다. 가는 물줄기가 그들의 뜨거운 몸을 타고 흘렀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품에 만족스레 안겨 있었다.

「움직이질 못하겠어. 움직이면 쓰러질 것 같아.」

마침내 그가 그녀의 젖은 머리에 기대어 투덜거렸다.

그녀는 킥킥거리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으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멋지군. 안 그래?」

「내가 위쪽을 차지하는 동안은요.」

「으음.」

잠시 동안 그의 깊은 신음소리만 들렸고, 그리고 이 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자 그의 숨소리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녀는 이제 자러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벤은 조심스레 그녀를 바로 세우며 똑바로 몸을 가눌 때까지 안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그에게 기대어 있었다. 여전히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그들은 텐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한시라도 그녀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그는 거센 열정의 여파로 약간 어리벙벙한 상태였고, 이렇게 격렬한 정열을 느끼리라곤 거의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손바닥으로 몸을 닦으며 최대한 물기를 털어냈다. 그는 손수건으로 머리에 흐르는 물방울들 닦아냈고, 질리언도 그걸로 몸을 닦았다. 습기가 급속도로 더해졌고, 그들이 걸친 옷도 약간 축축하게 피부에 닿았다. 그녀가 옷을 다 걸치고 있을 때 옆에 있는 그가 갑자기 바짝 긴장했다.

「겁먹지 마.」

그가 부드럽게 타일렀다.

셔츠의 단추를 채우던 그녀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숲에 가려서 거의 보이진 않았지만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몇 명의 원주민들이 서 있었고, 수수께끼 같은 표정으로 그녀와 벤을 지켜보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허리에 걸친 걸 제외하면 거의 나체였고, 활과 화살로 무장을 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쭉 뻗은 검은 머리카락은 바가지를 엎어놓은 듯한 모양으로 짧게 깎여 있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지만, 그들의 검은 눈들은 모든 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야노마미 족이군.」

그는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위험한가요?」

「백인들과 얼마나 접촉을 했느냐에 달려 있지. 그리고 어떤 종류의 만남이었는지 말이오. 보통 야노마미 족은 아주 위험한 건 아니오.」

「어쩌죠?」

「그들이 뭘 원하는지 알아봐야지.」

그는 조심스레 총에서 손을 뗐다. 이들은 사냥집단으로, 지금 지니고 있는 60센티미터 가량의 화살 끝에는 아마 시아닌 같은 독이 묻어 있겠지만, 아주 치명적인 독성은 아니었다. 벤은 그들의 언어로 얘기를 나누었다. 반백발의 위엄을 갖춘,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야노마미가 대답했다.

몇 분간 대화가 오가더니, 원주민들이 긴장을 풀며 심각한 표정에 미소가 그려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반백의 남자가 뭔가 말하면서 손바닥을 몇 번이나 치자 모두들 웃었다.

벤도 싱글거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오.」

그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자 그녀는 더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겼다.

「뭐죠? 내게 말하는 게 좋을 거예요.」

「그는 우리가 왜 빗속에서 찰싹찰싹 하는지 궁금해하는군. 저 좁은 모로카 안에서 재미를 안 보고 말이오. 아, 모로카는 그들 말로는 집이고 우리에겐 텐트요.」

구경꾼들이 재미있게, 그러면서도 어리둥절하게 거기서 그들을 지켜본 걸 깨닫자, 질리언의 얼굴은 확 달아오르는 것 같았지만, 동시에 막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찰싹찰싹이라구요?」

그녀는 희미한 소리로 물어보았다. 벤의 눈이 즐거움으로 생생하게 빛났다.

「그래, 당신도 알다시피.」

그가 가볍게 두 손을 치자, 그들의 젖은 몸이 격렬한 리듬으로 함께 움직일 때 들리던 날카로운 소리가 흉측하게 되살아났다.

「찰싹찰싹.」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았지만, 어쩔 수 없이 킥킥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야노마미들도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유쾌함에 동참했다.

그는 점잖은 표정을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내가 듣기론 나의 몸과 그리고 내 정력에 감동을 받았다는군.」

「그만해요.」

그녀는 헐떡거리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삼키려고 애썼다.

「안 그러면, 내가 당신의 철판을 철썩철썩 할 거예요.」

그의 표정은 순수한 즐거움으로 변했다.

「오, 세상에. 정말 그럴 거요?」

야노마미 무리는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대접하겠다고 제안했고, 이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두트라와 케이츠가 그들보다 먼저 배에 도착하는 것도 위험하겠지만, 그보다 이들의 호의를 거절함으로써 잠시 야노마미를 모욕하는 게 더 위험할 거라고 벤은 판단했다. 원주민들은 그들을 모로카로 안내했다. 그곳은 부족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거주하는 공동주택으로, 크고 둥글게 짚으로 이은 지붕으로 된 구조물로 외부에 들킬 염려 없이 꼭꼭 숨겨져 있었다. 부족의 수는 매우 적었다. 벤의 설명에 의하면 겨우 50여 명 정도로, 200여 명 이상인 부족은 거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두 명의 이방인을 환영하기 위해 모두 나왔고, 벌거벗은 갈색 피부의 아이들은 수줍게 재잘대고 있었으며, 여자들은 감쪽같이 질리언을 벤에게서 떼어놓은 반면 남자들은 벤을 다른 방향으로 인도했다.

「어쩌죠?」

질리언은 호기심이 일면서도 약간 겁먹은 듯이 말했다. 벤은 어깨너머로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웃으면 예쁘게 보여.」

「아주 고마워요.」

중얼거리고는 그의 조언대로 여자들에게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이빨이 다 빠지고 쭈글쭈글한 여자 가장부터 막 가슴이 생기기 시작하는 나긋나긋한 어린 소녀들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여자들은 가슴을 노출시킨 채였다. 사실 이 부락에서 윗도리 비슷한 거라도 입은 원주민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여러 개의 끈으로 장식한 허리띠를 걸치고 있었으며, 엉덩이는 벗은 채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녀는 원주민들의 말을 하나도 몰랐지만, 포르투갈 어를 약간 할 수 있는 두 명의 원주민이 있어서, 아주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여자들은 공동의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고, 일하는 동안 옆에 그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질리언은 팔에 아기를 안고 바닥에 앉아 있었고,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 두 명이 그녀의 다리 위로 이리저리 기어다녔다.

벤과 함께 남자들이 돌아왔고 모두 즐거워 보였다. 그는 그녀에게 윙크를 보냈지만,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남자들과 함께 있었다. 그녀는 계속 아기와 놀면서 간단히 조리한 생선과 마니악과 신선한 과일을 먹었다. 그녀의 지식에 의하면, 마니악은 일종의 식물줄기의 전분으로 만든 음식으로 훌륭한 탄수화물 성분이며, 이들의 중요한 식단이었다. 또한 원주민들이 무기의 끝 부분을 강화시키는 시아닌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원료였다. 마니악을 준비하는 건 복어를 다루는 것처럼 까다로워서,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

식사 후에 벤이 다가와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고 있는 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는군.」

그가 아기의 발바닥을 간질이며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최고로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군요. 사실 피임약을 스톤 시티에 놓고 왔잖아요.」

그녀는 한 달 주기의 거의 끝 부분에 있어서 임신의 확률이 매우 낮다는 말은 성가시게 덧붙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벤은 그녀의 예상처럼 당황하는 게 아니라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만 있었다.

「내 아기를 가지기 싫소?」

그녀의 미소는 잦아들었고, 무릎에서 바둥거리는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그를 올려다보았을 때는 훨씬 더 부드럽고 수수께끼 같은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얘기해야겠죠.」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자, 그는 짧게 끄덕이고는 주제를 바꾸었다.

「오늘밤은 여기서 묵을 거야. 시간을 지체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은 이들과 친해진 것 같고, 확실히 이 우정을 변하지 않게 하고 싶군. 어쨌든 이들과 함께 있는 한 우린 안전해.」

「하지만 케이츠와 두트라가 배에 먼저 도착하면 어쩌죠?」

「내일 족장이 남자 서너 명과 함께 우리를 강까지 데려다 준다는군. 내 생각보다 강에 좀 더 가까이 왔나봐. 이들은 우리가 남겨놓은 배를 자신들이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맙소사! 우리가 배에서 내리면서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을 거야. 난 이들에게 그 동안 일어났던 일과 우리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에게 지금 쫓기는 중이라는 말을 했소. 족장인 다타다사는 우리가 떠날 때까지 자신들이 우릴 보호할 거라고 하는군. 그후에는 우리 길을 가는 거요.」

「다시 말이죠.」

그녀가 덧붙였다.

「그래, 여기 머무르는 건 무모할 정도로 위험해. 강으로 가는 게 더 낫지. 어쨌든 여기 있는 동안, 이들이 만든 비누로 목욕하고 진짜 빨래라는 걸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요.」

「옷이 다 마를 동안 우린 뭘 입죠?」

그녀가 정중하게 물었다. 벤의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물론 야노마미가 입고 있는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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