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낯선 시간속의 향기-17화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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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과 식량을 어떻게 구했죠?」

벤이 빠르고 능숙하게 텐트를 꺼내는 모습을 보고 어리둥절하여 질리언이 물었다.

「텐트와 배낭은 마르팀 거요. 안자르에 도착한 후에 캠프 밖에다 숨겨두었다. 지금 생각하면 현명한 조치였군. 젠장, 아무 일도 없었으면 이런 게 필요하지도 않았을 텐데. 이런 난리가 일어날 걸 예상했기 때문에 동굴 밖에 있던 바위에다 감추어 두었소. 동굴을 빠져 나올 때면 짐 챙기느라 머뭇거릴 틈이 없는 건 당연하니까.」

좁은 텐트지만 그녀에겐 천국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날 처음으로 편안히 누워 쉴 수 있는 안전한 장소였다. 그녀는 사방이 탁 트인 바깥에서 잠드는 게 두려웠지만, 벤이 가까스로 챙겨운 텐트를 보자 안도감과 함께 거의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배고프지 않소? 불을 피우는 건 엄두도 못 내지만, 조리가 필요없는 것들이 있어.」

그가 말했다.

「아뇨. 지금은 전혀 배고프지 않아요.」

게걸스레 주먹밥을 먹어선 지 어느 정도 괜찮았다. 하지만 갈증이 났고, 일단 텐트를 세웠으니 물을 마실 만큼의 여유가 생긴 셈이었다.

벤이 텐트를 다 세우는 동안, 그녀는 손전등을 비추어주고 있었다. 그는 숨기 적절한 곳에다 텐트를 세우고는, 나무줄기와 잎들을 꺾어 텐트 위에다 덮었다. 그러자 그들의 은신처는 감쪽같이 위장되었다.

「당신 먼저.」

그가 텐트를 가리키며 말하자, 그녀는 기꺼이 텐트 안으로 기어들었다. 그가 뒤따라 들어와 입구의 지퍼를 올렸다. 이제 그들은 밀림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편히 쉬어, 질리언. 이제 더 이상 전등을 켜 둘 순 없소.」

그녀는 지친 손길로 신발과 양말을 벗고는 얇은 침낭을 펼친 후 벤을 위해 가능한 한 많은 공간을 남겨놓으며 자리에 들었다. 그는 배낭을 한쪽 구석에 밀어놓고 권총을 손이 쉽게 닿는 곳에 두고는 부츠와 양말을 벗었다. 그가 손전등을 끄자 암흑의 세계가 엄습해왔다. 온통 시커먼 암흑뿐이었지만 확실한 든든함이 남아 있었다. 바로 옆에 누워 있는 벤의 몸은 너무나 따뜻하고 편안했다.

이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자, 그날 하루의 떠올리기조차 싫은 모든 일들이 끔찍한 기억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릭이 죽어버렸다.

「릭이 내게 도망가라고 했어요.」

그녀가 멍한 시선으로 중얼거렸다.

「오빠의 결점 때문만이 아니라 우린 친했던 적이 없었죠. 이때까지 나를 진짜로 미워하는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두트라가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히 알면서도 내게 도망가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어요.」

「당신이 절벽에서 릭을 구했을 때, 그는 진실에 눈을 뜨고 다시 생각하게 된 거요.」

벤은 깊은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그때 이후로 그렇게 망나니 같지는 않았잖소.」

그녀는 릭과 나눴던 짧은 대화를 떠올렸다.

「그러네요. 결코 망나니가 아니었어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렸을 때 한번은 릭이 내 인형을 훔쳐 갈기갈기 찢어놓았죠. 어느 날인가 오빠의 방을 기웃거리다가 그걸 찾아냈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가 무서웠었나?」

「아뇨. 단지 좀… 릭은 가족의 일부가 아닌 것 같았어요. 난 아빠와 아주 친했고, 지금에야 릭도 그러고 싶어했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리고 나와 아빤 기질이나 관심 분야가 비슷했는데, 그래서 아마 불쌍한 릭은 기회조차 갖지 못했던 것 같아요. 아빠의 관심에서 가장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던 거죠. 그가 날 미워한다 해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어요.」

「당신이 태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을 거요. 지금 그대로가 그 사람의 참 모습인 셈이지. 아무리 다른 환경이 주어진다 해도 그가 대단하게 변하진 않았을 거요.」

「우리도 지금 이 꼴이 되리란 걸 누가 알았겠어요, 안 그래요?」

그녀가 슬픈 어조로 말했다. 다시 침묵의 순간이 잠시 흐른 뒤,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비센테도 죽었어요. 첫 번째로 두트라의 총에 당했죠.」

벤은 상스런 욕을 마구 해대더니, 이어 한숨을 내쉬었다.

비센테는 성실한 일꾼이었으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태평스런 친구였다. 벤의 강력한 경고도 그를 구하지 못한 셈이었다. 질리언이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벤은 이 미세한 동작을 감지했고, 그녀 쪽으로 돌아누워 엄습해오는 지난 기억의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그녀를 팔로 감싸 안았다. 그의 생동감 넘치는 야성적인 열기는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해서 그녀는 더욱 가까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얼굴에서 머리로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커다란 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입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고, 그녀는 완전히 그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자코 깊게 파고드는 그의 키스와 혀를 받아들였다. 그녀의 호흡이 점점 더 가파르게 빨라졌고, 나른한 관능이 온몸으로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 힘든 하루가 지나갔다. 그녀는 지금 그를 원하고 있었고, 또한 그가 필요했다. 충격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쳤지만 지금은 논쟁이나 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입술을 떼고, 어둠 속에서 그녀 위로 올라왔다.

「당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날 거부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그는 깊은 저음으로 말했다.

「날 받아줘, 질리언. 지금 말이야.」

그의 어조는 애원이 아니라 단호한 남성적인 본능만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진지한 손길로 그녀의 바지를 스르르 벗기기 시작했다.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 그녀의 엉덩이와 다리를 지나 발 밑으로 바지를 쭉 미끄러뜨렸다. 그리고 같은 동작으로 팬티도 쓸어내리자, 그녀는 허리 아래로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살며시 떨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두 눈을 감았고, 그의 옷도 서둘러 벗겨지는 소리를 느꼈다. 마치 시간이 정지해서 그녀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그가 너무나 신속하고 확고한 의지대로 움직였으므로, 그녀는 어떠한 저항이나 거절을 떠올릴 수도, 또한 거절하고 싶은 이유조차 생각할 수 없었다. 왜 그를 저지시켜야 하지? 그녀는 다시 그때의 느낌을 떠올렸다. 오랜 기다림이라는 느낌. 마치 오랜 시간을 거쳐, 이제야 정착역을 도착한 기분이었고, 숙명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오늘 잠깐이었지만 그를 영원히 잃는 줄 알았었다.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되는 마지막 관문의 순간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자리를 옮기며 그녀 위로 올라갔다. 질리언은 그의 강한 팔뚝을 손톱이 파묻힐 정도로 꼭 붙들었다. 그리고 그가 그녀의 위에서 육중한 무게를 한 팔로 떠받치는 동시에, 다른 한 팔은 아래로 내려 자신의 남성을 그녀에게로 인도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뜨거운 접촉으로 그녀가 움찔 피하려 하자 그가 중얼거렸다.

「긴장을 풀어, 질리언.」

긴장을 풀려고 애썼지만, 왠지 자신의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녀에겐 준비할 시간이나 사전 연습이 전혀 없었고, 오직 본능에만 의지한 채 따라가는 게 전부였다. 그가 그녀 안으로 천천히 하지만 가차없는 힘으로 밀고 들어오자, 그의 부푼 남성이 그녀의 몸 안에서 더 단단하게 죄어졌다. 그녀는 그의 밑에서 몸을 뒤틀었고, 참을 수 없이 퍼지는 감각으로 거의 고통스러운 단계까지 도달해 부드러운 몸을 파르르 떨면서 그의 몸에 익숙해지려고 애썼다.

「쉬-이.」

그가 부드럽게 달래자,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작게 훌쩍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의 셔츠를 벗겨내며 그녀 위로 온몸을 완전히 실었고, 넓고 단단한 가슴에서 곱실거리는 무성한 털들이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을 안타깝게 쓸어내렸다. 그녀는 그의 어깨를 단단히 껴안으며 힘껏 매다렸다.

그가 약간 물러났다가 천천히 다시 돌진해 오자, 그녀는 긴장했다가 온몸이 떨리는 환희를 맛보았다. 지금 그는 너무 흥분해서 바로 절정에 이르려는 느낌이 들었고, 적어도 한 시간 동안 관계를 지속하는 데 익숙한 그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몸 일부가 단단하게 긴장되어, 거의 절정에 다다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 버렸고, 이렇게 빨리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그녀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로 만들었고, 그녀의 팔은 그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꼭 껴안고 있었으며, 게다가 나긋나긋하고 탄력적인 그녀의 몸이 그를 환영하고 있었다. 결코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로렐라이의 유혹이 손짓하며 부르고 있었고, 그의 몸은 너무 오래 참았던 욕구를 더 이상 일분 일초도 견뎌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강하게 돌진하기 시작했고, 신음하면서 세게 연속적으로 그녀의 안으로 움직이자, 점점 촉촉하고 나긋나긋해지는 그녀의 몸이 그에게 꼭 매달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날씬하고 탄력적인 다리가 그의 허리를 휘감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화물차처럼 절정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고, 격렬하게 그녀의 몸 안으로 자신의 씨앗을 쏟아내면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울리는 신음을 터뜨렸다.

이제 끝난 것이다. 침묵이 흘렀다. 질리언은 여전히 그의 어깨에 누워 있었고, 그의 정열에 압도된 채 멍한 상태로 조금 기진맥진해 있었다. 그의 압도적이고, 지배적인 욕구에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잠시 그녀 위에서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가슴은 심하게 오르내리고 있었고, 땀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그는 잠시 잠잠하다가 천천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부드럽게 신음하자, 그의 혀가 그녀의 입 안을 깊숙이 탐색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가 부드럽게 속삭였다.

너무나 멋진 절정의 순간이었고, 그를 완벽하게 받아들였다. 그녀의 엉덩이가 무심결에 조금씩 들리면서 움직였고, 그들은 다시 관능적으로 포개졌다. 그는 이제 느긋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여전히 그의 남성은 단단했고, 적어도 한 번 더 아마 두 번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며, 잠깐 동안이 아니라 천천히 비단 같이 매끄러운 피부와 촉촉이 젖은 그녀의 온몸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었다.

그는 몸을 빼내고, 천천히 다시 강하게 돌진했다. 그는 그녀 안에서 점점 단단해지고, 그녀의 날씬한 몸이 긴장하여 위로 솟구치며 희미한 흥분으로 파르르 떨리는 걸 느꼈다.

「벤… 벤.」

그녀는 그의 이름을 되풀이하며 미칠 것 같은 욕망으로 괴로워했다.

예상만큼이나 완벽했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그는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녀의 온몸에 그의 여자라는 낙인을 찍고 싶은 지배적이고 격렬한 욕구로 절정의 열기를 채웠었다. 어떤 여자도 그녀처럼 소중한 적도 없었고, 그에게 절묘하리만큼 딱 어울린 적도 없었다. 너무나 완벽했다. 그는 오늘밤처럼 흥분한 적이 없었을 만큼 온몸에 생기가 가득 찼고, 그녀의 아주 미세한 소리와 동작 하나하나를 다 감지해 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아래서 그녀가 부드럽고 부자연스러우며, 무의식적인 신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그녀 아래로 미끄러지더니 그녀의 엉덩이를 잡아 들어올렸고, 더 세차게 그녀 안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그의 품에서 그녀의 몸이 격렬하게 뒤틀리고 있었고, 깊고 섬세한 내부에 몰입해 있던 그의 몸은 이 흥분을 감지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날은 질리언에게 끝없이 계속되는 악몽의 하루였고, 밤 역시 끝이 없었지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어졌다. 그는 그녀가 도저히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나 이젠 자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할 때도,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서 다른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지 귀신같이 잘 알았다. 그리고 달콤하고 음탕한 사랑의 말들을 속삭이며, 그녀의 가슴과 허벅지 사이의 계곡에 아낌없는 관심을 쏟았다.

그들이 마침내 잠이 들었을 때에도, 그는 여전히 그녀 위에 그리고 그녀 안에 머물러 있었다. 밤사이 그는 서너 차례나 그녀 안에서 단단해지더니 다시 사랑을 나누었다. 아니, 그가 멈춘 적이나 있었던가? 어둠은 모두에게 환상의 안개를 드리워서 감각으로만 움직이는 극적인 세계를 연출했다.

그녀는 남자의 몸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의 젖꼭지를 만지거나 등을 쓰다듬으면 그는 기쁨으로 몸을 떨었으며, 그녀가 부드럽고 묵직한 남자의 일부분을 감싸쥐면 그는 신음을 울렸다. 그는 완벽한 감각주의자로 유전적으로 부끄러움이나 정숙함하고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그리고 그도 그녀의 몸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녀가 언뜻 들은 적은 있었지만 생전 경험도 못해 본 방법으로 도발적으로 애무하면서 그녀를 쾌락으로 이끈 다음, 그녀의 욕구가 격렬한 리듬으로 머리끝까지 고조되었을 때, 그가 느끼기에 그녀가 필요로 하는 만큼 능숙하게 자신을 조절했다.

그들을 감싸고 있던 은밀하고 친밀한 어둠은 그녀의 수줍은 절제의 벽을 허물어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밤은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펼쳐져 있었고, 그들의 유희는 끝없는 애무만으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벤은 그녀를 한시도 가만두지 않고 꼭 끌어안았고, 그의 건강한 육체가 요구하는 욕망으로 그녀의 슬픔은 사라졌다. 그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낄 수 있을 만큼 꼭 안겨서 그녀는 무한한 안도감과 희열을 느꼈고, 강한 팔과 다리의 감각적인 느낌으로 밤이 새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의 탄탄한 몸이 그녀를 침낭으로 내리 누르자, 그녀는 너무나 황홀해서 소리내어 울 것만 같았고, 새벽이 밝아오는 것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마침내 둘 다 잠들었지만, 그녀는 곧 깨어났다. 눈을 뜨진 않았지만, 희미한 빛이 텐트를 위장시켜 놓은 두터운 잎사귀 층으로 된 천장을 뚫고 들어와 얇은 나일론 천막 안에서 점점 퍼지면서, 이 특별한 밤이 영원히 끝났음을 알려주었다. 아직 그녀는 환한 낮과 마주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녀 위에서 그는 몸을 쭉 뻗은 채 누워 있었고, 그녀가 숨쉴 수 잇게 상체를 조금 옮겼지만 그래도 육중한 무게는 여전히 무거웠다. 그는 잠잘 때의 편안하고 느린 숨결로 가슴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허벅지는 벌어진 채로, 그 사이로 그의 엉덩이가 안겨 있었고, 그의 한쪽 다리가 위쪽으로 올라가자 그녀의 다리도 그의 엉덩이에서 더 위쪽으로 움직여졌다. 그는 지금 편안히 잠들어 있지만 여전히 그녀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나무 꼭대기에서 원숭이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자 벤이 깨어났다. 그가 움직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몸 안에 있던 그의 남성이 빠른 속도로 커지고 있음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그의 근육 전체로 스며들었다.

그녀의 손이 부드럽게 그의 등 위쪽을 배회하다가 그의 목을 휘감았다. 조금씩 부드럽게 그가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을 꼭 감은 채, 아쉬운 새벽의 여운이나마 좀더 길게 잡고 있었다.

그는 겨우 몇 분간 숨을 돌린 후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해. 케이츠는 아마 어젯밤 저쪽 절벽에 도착했을 테니 몇 시간 여유가 있긴 하지만, 시간 낭비할 겨를이 없어.」

그는 몸을 풀고 일어나 앉아서 머리를 쓸어올렸다. 세상에, 정말이지, 그녀와 몇 주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먹고 자고 그리고 느긋하게 사랑만 나누고 싶었다.

질리언도 눈을 뜨고 현실 세계와 마주했다. 릭은 죽었지만, 그녀는 넋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되고 있었고, 그녀와 벤은 아직 숨쉬며 급박한 위험에 직면해 있었다. 그녀는 릭의 일로 깊은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나 위로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릭에 대한 기억은 깊숙한 저편으로 밀어놓고 출발 채비를 서둘렀다.

아니, 아직 완전한 준비는 안 된 것 같지만, 그녀는 즉시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입을 열었다.

「목욕 좀 해야겠어요.」

그는 웃으며 돌아누워 속옷과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물론 둘 다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기다려야 할 거야.」

「오래 기다릴 순 없어요.」

코를 찡그리며 까다로운 표정으로 투덜거리더니, 그녀 역시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난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이에요. 도대체 왜 당신이, 마나우스에 도착할 때까지 목욕이나 샤워라도 미뤄야 한다는 거죠?」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지금 농담하는 거요? 나도 너무 오래 참았더니 헛소리가 들릴 정도야. 난 체질적으로 참는 거하고는 거리가 멀어. 건강에도 해롭고.」

그러더니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는 그녀의 턱을 감싸더니 눈을 마주보았다.

「괜찮소? 어젯밤 당신 어깨에 대해 미처 생각지 못했소.」

「어깬 괜찮아요.」

그녀는 고개를 들고 찡그린 표정으로 덧붙였다.

「약간 욱신거리긴 하지만 어깨 쪽은 아니에요.」

그의 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

「말해봐. 마사지가 필요한 곳이 어디야?」

「목욕부터 하고요.」

확고한 어조로 그녀가 말했다.

「맙소사!」

그는 질겁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더니, 목욕에 대한 그녀의 요청을 좀더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다.

「알았어. 냇가에 도착하면 그곳은 안전할 테니, 거기서 목욕할 수 있을 거요. 단, 신속하게 해야 하오. 아니면 깨끗한 곳을 찾아내서, 비올 때 그곳에 서서 씻으면 돼. 그렇게 하겠소?」

그녀는 부츠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훨씬 괜찮은 제안이군요.」

아침은 즉석 오트밀과 커피였고, 5분 후 벤은 텐트와 장비를 챙겨서 배낭에 넣고는 다이아몬드가 잘 숨겨졌는지 그리고 질리언이 눈치를 챘는지 살펴보았다.

세상에! 그는 하늘을 나는 듯 가뿐했다. 그녀와 나눈 사랑은 그의 상상보다 훨씬 더 근사했고, 강렬하고 긴박한 정열이 담겨 있었다. 온몸이 편안하고, 신기하리 만치 의기충천하고 더 젊어져서, 마치 온 세상을 가진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그는 격렬한 소유욕에 불타고 있었다. 그녀는 이젠 그의 여자가 되었고, 절대로 그녀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강으로 돌아가는 길은 밀림으로 들어올 때와 같은 길을 택하지 않았다. 사실 전에는 지도에 그려진 지시 방향과 정확한 지점만을 따라야 했다. 전과 같은 행로를 따라가는 건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이제는 더 빠른 지름길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벤의 계산에 의하면, 적어도 하루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케이츠가 나타나기 전에 배가 정박해 있는 곳에 닿아야 했다. 그들이 추적 당하고 있다는 사실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질리언은 이미 두 명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고, 케이츠는 벤이 다이아몬드를 가진 걸 알았던 것이다. 그래, 쫓기고 있는 건 확실하지. 추적자들이 얼마나 바짝 쫓아오고 있느냐가 바로 문제였다.

그는 확실한 단서를 남기지 않으려고 칼도 가능한 한 적게 사용했다. 원주민이라면 쉽사리 그들을 추적할 수 있겠지만 케이츠와 두트라에게 그만한 기술은 없었다. 사실 케이츠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들이 길을 트려고 덤불 숲을 벤 때조차 그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들은 서너 개의 개울을 절벅거리며 건넜지만, 목욕하기엔 너무 얕고 풀이 무성한 곳이었다. 일상적인 폭풍우가 불고 있었다. 폭풍이 항상 이 지역을 휩쓸고 가는 건 아니었지만, 오늘은 폭우가 서서히 이는 날이었다. 벤은 일단 주위를 살펴보았고, 그녀의 고집스런 표정을 보니 그의 착오로 폭우가 이곳을 스쳐 지나가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을 거란 글귀가 쓰여 있었다.

「목욕하기 전에 날이 저물었으면 좋겠군.」

그가 설명했다.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이대로 빨면 아침까지는 마를 거요.」

「마치 내가 사사건건 바가지 긁는다는 말투로군요.」

그녀가 말했다.

「맞아. 아주 조용히 긁고 있지.」

그녀는 한참 동안 당당한 표정으로 그를 보았다.

「장담하는데 내가 바가지를 긁는다면 절대 조용히 긁진 않을 거예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조용하리라 생각지도 않았어.」

그녀가 잔소리하는 걸 상상하자 그는 내심 즐거웠다. 질리언의 매서운 혀는 그를 즐겁게 했다. 하지만 그가 염려하는 건 오늘밤 그녀가 사랑을 나누지 못하게 할 가능성으로, 혹시 목욕하지 못한다면 그녀는 팔을 교차시키며 그가 자신에게 손대는 걸 고집스럽게 거부하리란 건 뻔한 사실이었다. 왜 여자들은 이렇게도 까다로워야 하는 걸까? 청결이란 항상 중요하지만, 천만다행으로 지금은 밀림 한복판이었고, 좀 지저분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질리언은 목욕을 원했다.

젠장, 적당한 개울을 찾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는 사력을 다해 적당한 곳을 물색했다.

마침내 그가 찾아낸 곳은 자랑할 만한 곳도 못 되는, 그들이 여행 동안 여러 번 찾아냈던 개울, 아니 이전에 목욕했던 폭포와 비교하면 확실히 대단치 않을 곳이었다. 그래도 안전하고 물이 차 있는 곳이었지만, 겨우 무릎까지 잠기는 깊이에, 게다가 북서쪽으로 지나가던 폭우가 남긴 빗물로 겨우 채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는 깨끗한 바위를 찾아냈고, 둘은 옷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벤은 물이 튀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권총을 조심스레 놓아두었다.

벤이 미처 챙겨오지 못했고 필요하리라 생각지도 못한 건 바로 비누였다. 그냥 맑고 미지근한 물로 간단히 씻었지만 그만하면 충분했다. 질리언은 몸을 숙여 머리카락 사이로 물이 흐르도록 하면서, 손으로 목덜미를 문지르자 땀으로 끈적거리던 머리가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벤은 굶주린 눈으로 처음 보는 그녀의 전라(全裸)에 노골적인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즐거워하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속옷까지 깨끗이 빨았다.

「바지 안에는 뭘 입을 생각이오? 여벌의 속옷을 챙겨오지 않은 걸로 아는데.」

그가 느린 어조로 말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걷진 않을 거잖아요.」

그녀가 짧게 대답했다.

「잠시 속옷을 입지 않고도 견디고, 내일 옷 입을 땐 깨끗한 속옷을 입을 거예요.」

오늘밤 그녀가 옷을 입지 않고 잘 거란 말에 매우 안도하면서, 그냥 그녀를 향해 씩 웃어주는 게 전부였다. 물론 매일 아침만 되면, 그는 씻을 만한 곳을 찾아야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았다. 그들이 마음껏 쓸 수 있는 식수를 충분히 확보하는 건 좋았지만, 물을 정제시킬 알약을 많이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것마저도 가능한 한 아껴야 했다.

「당신, 지금 바보처럼 웃고 있는 거 알아요?」

그녀는 둑으로 올라가며 말하고는, 머리의 물기를 손으로 쓸어내기 시작했다.

「찔레꽃을 입에 물고 있는 바보처럼 말이지.」

그가 즐겁게 덧붙였다.

「글쎄요. 바보란 말은 맞지만, 찔레꽃을 물고 있는 건 또 뭐죠?」

「나도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고향에서 쓰던 농담 같은 거였어.」

그는 젖은 머리를 쓸어 올리고는 물에서 나왔다.

그녀는 그가 옷 입는 걸 지켜보면서 벤이 이 순간 순간을 즐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냉소적이면서 영리하고 최고로 유능한 모험가였다. 동굴 입구에 배낭을 숨겨서 식량을 확보하는 사전조치를 그가 취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상황이 훨씬 위험했음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았다. 그리고 잠자는 동안 뱀과 벌레들, 그리고 다른 위험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는 텐트는 목숨이나마 부지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다. 또한 그가 챙겨 온 식량으로 그들은 사냥할 필요도 없었고, 게다가 만일을 대비해서 총알을 아낄 수도 있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가 애초부터 그들이 직면하게 될 모든 위험을 준비해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재빨리 옷을 챙겨 입은 뒤, 최대한 흔적을 없애며 흙으로 감쪽같이 덮었다. 그러나 자리를 잡자 그는 작은 불이나마 허락했고, 따뜻한 생선 통조림과 충분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 내가 뭘 간절히 원하는지 알아요?」

그녀는 한숨을 지으며 뒤로 물러나 앉아 말했다.

「나!」

「잘 나가다가 틀렸군요.」

「그럼, 동물은 아니군.」

「네, 식물이에요. 아! 동물도 약간 포함돼 있겠군요.」

「미트볼 스파게티?」

「아주 비슷했어요. 피자예요. 햄과 치즈가 듬뿍 들어있는 걸로.」

그는 배낭을 열고 그녀에게 작은 과일 통조림을 던져주었다.

「이걸로 대신해.」

「고마워요. 일단 마나우스에 도착하면… 글쎄, 마나우스에서 피자를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하지만 미국으로 돌아가면, 내가 아는 가장 큰 피자를 주문할 거예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위험한 경고의 기색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잠자코 자신의 과일 통조림만 먹고 있었다.

질리언은 그가 왜 자신의 말에 단단히 화가 났는지 궁금했지만,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대신 그녀는 과일 통조림에 흠뻑 빠져 한 입 한 입을 음미하고 있었다.

그녀가 아주 즐겁고 아무런 눈치도 없이 고양이처럼 우아한 태도로 숟가락을 핥고 있는 모습을 살짝 훔쳐보면서, 벤의 가슴은 조금씩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망할 여자 같으니. 미국으로 돌아가는 걸 어떻게 저리도 간단히 말할 수 있는 거지? 그는 그녀가 떠나가도록 내버려둘 생각이 추호도 없었지만, 그녀가 떠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자체에 화가 났다. 어젯밤 나누었던 사랑은 그녀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일상적인 일이었던가? 그는 일상적인 관계를 많이 가져왔지만, 어젯밤만큼은 달랐다. 그녀도 그걸 깨달아야 했다.

그녀가 일어서서 작게 하품을 했다. 하루종일 밀림을 걸었으니 피곤할 만도 했다. 하지만 해가 진 뒤에도 그녀는 밤을 꼬박 새웠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물론 어젯밤 내내 벤이 그녀를 자도록 해주지 않아 피곤한 이유도 있었지만 말이다.

「전 잘 준비가 됐는데, 이대로 있을 건가요?」

아직도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그는 일어나서 그녀를 세게 끌어당겼다. 하루종일 그들은 계속 행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가까스로 그녀를 만지고 싶은 걸 억누르고 있었지만 뱃속에서는 욕구가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아마 오늘의 상황 때문에 그녀는 자신이 이제 그의 여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날씬한 몸을 팔에 안자, 그는 거의 고통스러우리 만치 안도감을 느꼈다. 이런 느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해 본, 가슴이 찡하게 아픈 공허감이 갑자기 따뜻한 느낌으로 꽉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가 그녀에게로 고개를 숙이자, 그녀는 발끝으로 서며 그에게 착 붙어서는 팔을 그의 목에 감아 부드러운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고, 그는 달콤한 승리를 흠씬 맛보았다. 그는 그녀의 탄력적인 근육 사이로 물결치는 희열의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뭐?」

「당신이 이대로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고요.」

그는 웃음이 터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 대신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남성으로 가져가 그의 부푼 곳을 손끝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어떻게 생각해?」

질리언은 끓어오르는 욕구로 이미 힘이 빠져 그에게 나른하게 안겨 있었다. 그녀는 하루종일 그의 손길을 갈구했지만, 계속 나아가야 하는 상황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그의 거센 돌격을 열렬하게 받아들일 걸 생각하자 그녀의 몸이 떨렸다.

「분명히 이해한 것 같아요.」

「충분히는 아닌 것 같은데.」

그는 굶주린 듯이 다시 키스했다.

「우린 서로가 원하는 걸 알고 있어.」

그가 모닥불을 끄는 동안 그녀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고, 그가 들어왔을 때는 이미 반쯤 벗은 상태였다. 그녀는 그가 옷을 벗는 동안 근육질의 몸매를 즐겁게 감상했고, 그 역시 동작을 멈추고 그녀의 나체를 음미했다. 유감스럽게도 전등 빛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암흑의 세계가 밀려들었고, 그가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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