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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간속의 향기-11화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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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발은 참으로 인내심이 강하구나. 5분이 지나면서 질리언은 생각을 했다. 이보다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 그녀는 벤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고, 그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부끄러움이란 걸 모르는지 맨살이 드러나도록 옷을 다 벗었다. 벤은 여성과 알몸으로 있는 일에 익숙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여자라면 싫어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는 키도 크고 매력적인 몸매에 근육 또한 잘 발달되어 있었다. 동그랗고 탱탱한 엉덩이는 자신도 모르게 툭 쳐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 그런 생각을 억누르느라 주먹을 꼭 쥐어야 했다. 그의 어깨는 하역 인부처럼 딱 벌어졌으며, 쭉 뻗은 다리 또한 운동선수같이 튼튼해 보였다. 그녀는 지금껏 남자를 보면서 이런 희열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는 폭포 아래로 걸어가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 머리를 뒤로 젖혀 머리카락을 흔들었다. 근육이 움직일 때마다 햇볕이 비춰와 놀랍도록 건장한 그의 육체에 얼룩을 만들었고, 공중에 흩어지는 잔잔한 물방울들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렸다. 그의 남성은 허벅지 사이에 무겁게 달려 있었다. 완벽하기 이를 데 없는 남성미였다. 그녀는 가슴이 조여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때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푸른빛을 띤 그의 눈은 너무 강렬해서, 10여 미터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가 앞으로 몇 발 걸어나왔고, 강한 물줄기가 이번에는 등을 내리쳤다. 그는 물웅덩이 위, 평평한 바위 끄트머리에 서 있었다. 그의 몸이 완벽하게 드러났다. 힘있는 신체 곡선을 흐리게 하는 물줄기도 없었다. 그가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자, 그의 물건이 흥분되어 굵고 길게 자라나더니 성이 난 듯 복부를 향해 솟아올랐다.

저주받을 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녀는 몸이 뜨거워졌다. 욕망을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누군가가 자신을 원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큼 사람을 유혹하는 일은 없었으며, 그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단순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나타나는 그의 신체 반응은 정말이지 저항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가 평소에 능수능란하게 지껄이던 교활하고 음탕한 감언이설과 뼈를 녹일 듯한 키스로 느껴지는 유혹에 비하면 10배는 넘을 듯했다.

시선이 직립한 그것으로 향하는 것을 그녀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고, 말 그대로 나약함이 느껴졌다. 입에는 침이 고였고, 그녀는 발작적으로 집어삼켜야 했다. 구근의 두부(頭部)보다도 굵은 그의 물건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크게 신음소리를 낼 뻔했다.

그녀는 시선을 다시 끌어올려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의 밝게 빛나는 눈은 뭔가를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랬다. 그는 그녀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잔인한 그에게 돌멩이를 집어던지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충동에 휩싸였다.

이제 그는 목욕을 끝내고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옷가지를 북북 문질러 빨고 있었다. 빨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었다. 질리언은 무릎에 놓아두었던 총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캠프 쪽으로 이어지는 자은 길을 둘러보면서 감히 벤에게 위협을 시도해보려는 침입자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새들은 노래를 부르며 푸드득 나무 사이를 무심히 날아다녔고, 그들이 날갯짓을 할 때마다 한줄기 햇빛이 비춰와 무지갯빛 광채를 발했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폭포 아래 서 있는 벌거벗은 남자는 어느 정글 생물 못지 않게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아예 그와 여기에 눌러앉으면 어떨까? 수백 킬로미터 내에 오직 두 사람만 남는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갑자기 자기 자신이 너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여기가 낙원도 아니고, 그가 아담도 아닌데 말이다. 벤 루이스는 기껏해야 건달에 모험가였다. 어느 여자라도 그와 함께 영원히 있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미쳐버릴 게 분명했다. 그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였다. 일회용 여자, 한 순간의 쾌락을 충족시켜줄 그런 여자였다. 하지만 어떤 여성이라도 그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일 것이다. 한껏 즐기고 나면 그는 다른 일을 찾아 떠나버릴 테지만, 여자는 그가 가끔이라도 찾아와 함께 식사도 하고 잠자리도 같이 할 거라 기대하면서 목을 빼고 기다릴 것이다. 물론 그를 위해 그런 희생을 아끼지 않을 여자를 찾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겠지. 어쨌든 질리언은 절대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안자르 시를 발견하는 일은 그녀의 경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자신의 입지를 분명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자신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는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고학 재단에 얽매이지 않았고, 오살라와 안자르에 대한 그녀의 관심에 보이는 동료들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번 여행으로 장기 결근을 하게 되었고, 어차피 다시 돌아가고 싶을지도 미지수였다. 분명한 것은 돌아간다 해도 그전과 똑같은 위치는 아닐 거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마음을 굳혔다. 폭포수 아래 알몸으로 서 있는 그의 모습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벤 루이스 따위에는 관심을 갖지 않겠다고.

그는 드디어 목욕을 끝내고 물에서 나와, 보란 듯이 둑에 올라서서 몸을 말렸다. 그는 굳이 등을 돌리려고 애쓰지도 않았고, 그녀 역시 눈길을 피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그가 몸으로 보여주는 무언의 초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는 뻔뻔스럽게 그 사람을 평가했다.

「당신은 그다지 훌륭한 경호원은 아니군.」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애써 감추며 그가 말했다.

「당신은 주변을 경계하는 것보다 날 훔쳐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소.」

「과연 그럴까요? 당신은 제 할 짓 다 하면서 내 관심을 끌려고 깃발을 흔들어댔잖아요.」

그녀는 대답했다.

「그저 당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내가 흔든 것 깃발이 아닐 텐데. 당신이 깃대라고 한다면, 나도 인정하겠지만.」

그는 정곡을 찌르며 말했다.

그녀는 돌멩이를 잽싸게 집어들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를 향해 집어던졌다. 그녀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 소프트볼 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덕에 팔 힘이 굉장했고, 목표물 조준도 정확했다. 그녀가 던진 미사일은 아슬아슬하게 깃대에서 비켜가 그의 허벅지 언저리에 맞고 떨어졌다.

「아야!」

그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전지전능하신 신이시여!」

그는 고함을 질러댔다.

「당신이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잘 보시오.」

「이렇게 잘 보고 있어요. 제가 원하는 대로 목표물에 잘 맞춘 것 같은데요.」

그녀는 돌멩이를 또 하나 집어들었다.

「어덯게 던지는 건지 보고 싶으세요?」

그는 황급히 등을 돌렸다. 거친 투수에게 돌 던질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고, 조심스럽게 떨어진다 해도 싫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위험스러울 정도로 달콤하게 바뀌었다. 그녀가 마음을 고쳐먹기 전에 벤은 얼른 옷을 주워 입으며 다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 기뻤다. 그는 자신의 알몸과 물건을 보면서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제대로 보았던 것이다. 그녀가 그를 원하는 게 분명했다. 적어도 그녀는 더 이상 그가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기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오랫동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부러 그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일까? 두 사람 모두에게 혼란만 일으킬 뿐 그렇게 해서 과연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지만 그는 그것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질리언은 그를 애태워서 돌아버리게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만 곁에 있다면 지루함에 지쳐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녀와 협상할 때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는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여자를 유혹할 수 있었지만, 질리언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유혹이 통하지 않았다.

그는 옷을 다 챙겨 입고는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가 쥐고 있던 총을 들어올렸다.

그는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고는 몸을 굽혀 그녀에게 입맞춤을 했다.

「이제 당신 차례요.」

그런 가벼운 접촉에도 그녀의 입은 전율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보초를 서주겠다고 맹세할 수 있어요?」

그의 푸른 눈은 서늘하게 변했다.

「아가씨, 그건 내가 먼저 제안한 거 아니오?」

「당신 말이 맞아요. 미안해요.」

그녀는 괜한 얘기를 했다고 후회했다. 그는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줄곧 헌신적으로 그녀를 보호해왔다. 그러니 그는 그녀가 목욕하는 동안에도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을 것이며,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라도 그가 그녀에게 뛰어들지 모르지만 다른 어느 누구도 그런 짓을 하지 못할 거라고 그는 호언장담했다. 그녀는 중심을 잃어갔고, 그런 자신을 깨달으면서 묘하게도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벤은 편안한 자세로 몸을 뒤로한 채 쇼를 즐길 준비를 했다. 그는 먼저 조심스럽게 주변에 도사리는 위험은 없는지 샅샅이 둘러본 다음, 그녀에게 온통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녀의 알몸을 보게 된다는 기대감에 그의 심장은 무겁게 굴러가고 있었다.

질리언은 물가로 걸어 내려가면서 숨을 깊이 들이 쉬었다. 그의 시선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그녀는 옷을 벗고 목욕 준비를 했다. 굳이 목욕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필요가 없었다. 벤 루이스가 그녀의 쇼를 기대했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앉아서 먼저 부츠와 양말을 벗고 그에게 등을 돌려 나머지 옷을 전부 벗었다. 그녀가 조심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지만 최선을 다해 몸을 가렸다. 셔츠를 벗을 때에도 먼저 수건을 가져와 엉덩이에 두르고는 수건을 조금씩 올려가면서 셔츠를 살짝 벗어 올려 가슴이 가려지도록 했다. 그녀는 감히 그를 올려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우거지상을 한 그의 얼굴이 폭풍우 치는 날씨만큼이나 어두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 뒤 그녀는 폭포 뒤쪽으로 슬며시 기어 내려가 수건을 던져 햇볕에 잘 마르도록 큰 바위에 걸쳐놓았다. 알몸을 한 채 세찬 물줄기 아래로 걸어 들어간 그녀는 물줄기의 힘에 눌려 외마디 소리만 지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가운 폭포수가 머리와 어깨에 세차게 흘러내렸다. 처음엔 고통스러울 지경이었지만, 그녀의 단단한 근육이 물줄기에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편안해졌다. 그녀는 계속해서 폭포 뒤쪽에 몸을 숨기려고 신경을 쓰면서 등을 돌린 채, 비누를 집어 신이 나서 문질렀다.

잔뜩 기대에 부풀었던 벤은 고통스러운 마음을 쓸어 내리며 흐릿한 그녀의 윤곽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제발 돌아서! 그는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는 자신이 생각만 하면 자기 의지대로 그녀를 움직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돌아서란 말이야! 그녀를 정말 보고 싶었다. 물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엉덩이가 고작이었고, 그는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진짜 그녀의 젖가슴을 보고 싶었다. 흥분된 공상을 채워줄 만한 현실적인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벤은 그녀의 복부가 이루는 평원이 어떤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녀의 체모가 빳빳한 직모인지 아니면 곱슬하게 말렸는지, 또 밀림처럼 무성한지, 아니면 깔끔하게 덮여 있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손에서 땀이 배어 나와 바지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그의 가슴은 숨쉬기조차 거북할 정도로 힘겹게 뛰었다. 그런 그의 심정을 무시한 채, 작은 악마 같은 그녀는 그에게 어떤 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얼마나 그녀의 몸을 보고 싶어하는지 그녀는 정말 모르는 걸까?

그때 그의 말초적인 시력에 미세한 움직임이 포착되었고, 그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즉시 총을 장전하고는 눈을 가늘게 떠 집중하면서 멀리 보이는 둑을 찬찬히 살폈다. 그놈이 다시 움직였다. 토끼보다 약간 큰 듯하고 얼룩무늬와 줄무늬가 뒤섞인 설치류인 파카였다. 벤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파카는 인디언들이 잡아 식용으로 쓰는 동물이었다. 벤도 몇 번인가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돼지고기와 비슷한 맛이었다. 파카는 주로 강둑에 집을 짓는 습성이 있으니까 이런 곳에서 그놈을 보는 것은 그다지 신기한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놈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벤은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놈을 잡아가면 식사 대용으로 안성맞춤이겠지만, 총을 쏘지는 않았다. 아직 식량이 남아 있었고, 바닥이 나면 그때 가서 사냥을 해도 늦지 않았다. 그는 확실해 하기 위해서 시간을 갖고 주변을 다시 천천히 훑어보았다. 새들만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마음껏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질리언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는 목을 뒤로 젖히고 머리카락을 헹구고 있었다. 벤은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특히 그녀의 곡선미가 시선을 끌었고, 절제 있는 그녀의 동작에서 보여지는 우아함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흐릿한 물줄기 속에 가려진 그녀의 몸을 얼마나 뚫어지게 쳐다봤는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눈이 시리고 아파왔지만 절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모습을 잠시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절망스러운 꼴이 되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이토록 비참하게 굶주려 본 적이 있었던가! 마치 거지가 된 듯했다.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라도 감사히 먹겠다는 심정이었다. 그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어떤 여자도 벤에게 이런 막강한 힘을 과시하며 군림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설령 여자가 그를 거절하더라도 기꺼이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여자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른 여자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다른 여자가 있다 해도 그에게 위로가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에 기분이 착잡해졌다. 그는 질리언을 원했다. 다른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다.

질리언을 처음 본 날 밤, 그는 테레사의 침대에도 가지 않았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오후 내내 고된 작업을 하느라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쁜 징조였다. 테레사의 아파트로 달려가 그녀 위에 올라타는 게 정상적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가 마음속으로 가능성을 점쳐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게임을 즐기는 데 불과했지만, 이제는 그녀를 갖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여자 뒤꽁무니를 쫓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지만, 질리언은 다루기 힘든 여자였고, 남성적 본능에 모험을 걸어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의 결의는 단호했다. 그냥 참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런 일은 생각할 수도 없지만, 그녀의 알몸에 올라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는 심각한 상실감에 시달릴 것이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는 상실감을 못 이겨 변할 것이고, 그의 인생은 불완전하게 될 것이다. 어떤 여자라도 이런 허전함을 채워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느낌은 정말 처음이었다.

아니, 빌어먹을 가능성은 또 뭐란 말인가? 벤은 가능성 따위를 생각하는 자신이 무기력하게 느껴져 익숙하지 않은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서 밀어내려고 했다.

질리언은 목욕을 끝내고 젠장 맞을 수건을 다시 몸에 두른 채 폭포 뒤쪽에서 나왔다. 숱이 많은 그녀의 검은머리를 수달의 가죽 표면처럼 매끄럽게 윤이 흘렀고, 드러난 어깨의 맨살은 불그스레한 저녁놀의 태양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녀는 더러운 옷가지를 집어들면서도 그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더니 다시 폭포 뒤로 사라져버렸다.

벤이 그녀를 원하는 만큼 질리언도 그를 원했다. 그도 그녀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목욕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을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그 눈빛으로 그녀가 그를 얼마나 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여자는 어쩌면 저렇게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을 숨길 수 있을까? 그녀는 그를 애달게 하려는 작전에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피기 위해 일부러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녀는 참으로 냉정한 여자였다. 어찌나 냉정한지 그가 제대로 된 적수를 만난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당혹스럽기조차 했다. 그녀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기껏해야 50대 50이라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90대 10정도라면 해볼 만할 텐데. 아니지. 젠장, 저 여자한테 그 정도도 아깝지! 그는 그녀를 그의 여자로 만들 수 있다는 백퍼센트의 확신을 원했다.

세탁까지 끝낸 질리언은 폭포 뒤로 다시 나와 깨끗한 옷가지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그녀가 옷을 벗으면서 교묘하게 몸을 가려 그가 볼 수 없도록 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입을 때는 과연 어떤 방법을 쓸지 정말 궁금했다. 그녀는 정말 잘 해내고 있었다. 여자들은 어디서 저런 걸 다 배웠을까?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정말로 화가 났다.

질리언은 상쾌한 기분에 젖어 자신의 말쑥한 모습에 만족해하며, 앉아서 부츠를 신었다. 그리고는 그제야 어깨너머로 벤은 한번 쳐다보았다.

「끝났어요. 갈까요?」

그는 전혀 돌아갈 마음이 없었지만 들뜬 기분은 얼른 지워버리고 캠프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둑 아래로 내려가, 바위를 건너 그녀 쪽으로 갔다.

「당신 엉덩이 정말 귀엽던데, 그거 알고 있소?」

「뭐예요?」

그녀의 초록색 눈이 커다래졌다. 천진한 눈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눈을 치켜 뜰 것까지는 없잖소.」

그의 눈은 호기심에 차서 희미하게 빛났다. 그는 그녀의 등에 살짝 손을 얹었다.

「자, 갑시다. 빨리 돌아가야 해요. 금세 어두워질 거요. 페페가 먹을 것을 남겨 놨어야 하는데.」

그들은 젖은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질리언은 총을 옷 깊숙이 쑤셔넣어 보이지 않도록 했다. 그녀는 약간 당혹스러웠다. 벤이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뭐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튼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들은 계곡을 따라 내려와 캠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오자, 케이츠와 릭은 심할 정도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고 두트라는 평소에 비해 훨씬 더 샐쭉해 있었다. 질리언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두트라가 그녀의 물건을 훔쳐보려 했는데, 케이츠가 허락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암호로 적힌 지침서를 해독하고 있다가 난데없이 벤의 손에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외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지만, 케이츠만은 시선을 끌지 않으면서도 지도를 손에 넣고도 남을 교활한 인간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와 벤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들이 어떤 상상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벤은 일부러 모두들 보란 듯 그들이 애정 행각을 벌인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니 부인한들 소용없는 시간낭비였고, 그녀 역시 부인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자기를 보호해준 사람을 궁지로 내몰 만큼 인정머리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곧장 텐트로 들어와 평소 습관대로 일을 했다. 그녀가 가방을 열었다. 지도는 같은 주머니에 들어 있었지만 놓인 위치가 바꿔져 있었다. 그들이 지도를 훔쳐본 것이 분명했다. 그랬다. 그녀는 암호를 모두 확인하고 검토한 후에야 처음으로 그것을 정확하게 해독했다. 그녀는 만족스러웠다. 만사가 다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는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유난히 피곤하게 느껴졌다. 벤 루이스와 줄다리기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전이 될 뿐이었다.

그 다음 일정에 따라 그들은 더 깊은 산 곳으로 들어갔다. 길은 점점 더 구불구불 엉망이 되었다. 그들은 계곡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지만 발이 미끄러웠고, 벤은 산악 등산가들처럼 밧줄로 그들을 한데 묶어 서로 의지하게 했다. 그러면 하루 꼬박 걸릴 거리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모두들 걱정하는 일은 우회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다음 목표를 놓칠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녀는 아직까지 그들이 갈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낼 수 없었다. 이런 절벽을 기어오르자면 이중 라벨 장비를 갖춘 등산 전문가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식으로 5일 동안 산을 오르자, 산 쪽으로 난 좁고 굽이진 오솔길과 마주쳤다. 갑자기 폭풍이 일었지만 마땅히 피난처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아주 세차고 재빠른 폭풍이었다. 그들은 오솔길에서 방수포를 펴고 그 아래로 들어갔다. 숨을 틈도 없었다. 자연의 비바람이 깎아 만든 산 벼랑길은 아주 좁았고, 위아래로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바람과 찔끔찔끔 내리는 비에 완전히 노출되었으며, 머리 위로는 번쩍거리는 번개가 스치고 천둥소리가 쾅쾅 울려댔다.

「될 수 있는 대로 벽에 바짝 붙어서 몸을 웅크려!」

벤이 큰소리로 말하자 길게 늘어선 일행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 그런 뒤 그는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질리언 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비를 맞지 않으려고 머리와 어깨를 최대한 구부리고 앉아 있었다. 벤은 그녀 곁에 함께 웅크리고 앉아 그녀를 감싸 안으며, 최선을 다해 세차게 몰아치는 비를 막아주었다. 열대지역의 폭풍우는 만만치가 않았다. 폭풍우는 으르렁거리며 연신 포격을 가했고, 그 무지막지한 힘으로 나뭇잎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어딘가에 숨어 보려고 허둥대는 생물들을 모조리 쓸어가버렸다.

질리언은 그의 품속에 웅크리고 앉아 참을성 있게 폭풍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사나운 날씨에 바위 암벽을 타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폭풍우는 그들이 피신처를 찾아 피하기도 전에 그쳐버릴 게 분명했다.

세찬 빗줄기가 그들을 때릴 때에는 시간이 참으로 더디게 느껴졌다. 가느다란 실비가 어느새 굵고 힘찬 빗줄기로 변하자 봇물 터지듯 비가 내려 발 아래로 진흙탕물이 소용돌이쳤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안에 몰아치는 폭풍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고, 그 짧은 순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게다가 번개가 칠 때마다 그 웅장한 소리에 위축되는가 하면, 아주 하찮은 소리에도 마음을 졸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금속성 천둥소리가 산 능선을 따라 울려 퍼지더니 폭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이어 비가 그치고 햇볕이 비추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온통 밝은 햇볕 속에 섞여 반짝였다.

그들은 쥐가 난 다리와 등을 쭉 펴면서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르팀은 방수용 가방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툭툭 털더니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비에 젖은 손가락은 옆으로 미끄러지기만 하고 불을 켤 수 없었다. 별 생각도 없이 그는 반사적으로 불을 얻으러 앞쪽으로 걸어나왔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마.」

벤은 날카롭게 외쳤다.

그때 바람소리 같이 휙 하는 생기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르팀이 디디고 있던 자리의 땅이 붕괴되면서 공포에 질린 짧은 고함소리만 남긴 채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그의 고함소리가 한참이나 계속될 것 같았지만 순식간에 끊어져 버렸다.

「빌어먹을!」

벤은 버럭 화를 내며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가지고 있던 밧줄 한쪽의 고리를 풀어 어깨에 걸쳤다.

「물러서!」

그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전부 가장자리로 물러나. 비로 땅이 물러졌어.」

그들은 고분고분 산을 등지고 다시 한 번 몸을 수그리고 앉았다. 그들은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들이었다. 마땅히 밧줄을 멜 만한 것이 없어서 그는 몸에 줄을 묶고 한쪽 끝을 페페에게 던졌다.

「꽉 잡아!」

그는 단단히 당부하고는 벼랑 끝으로 몸을 쭉 뻗어 미끄러지듯 천천히 내려갔다.

질리언은 심장이 목구멍에 걸린 듯 초조해져서 몇 발 앞으로 나아갔지만 체중을 더해 위험을 증가시킬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균형을 잡고 뛰어내릴 태세로, 있는 힘을 다해 페페를 지탱해주었다. 발아래 흙이 떨어지면서 낭떠러지로 쭉 미끄러질 위험한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벤은 절벽 끝자락 쪽을 유심히 살폈다.

「마르팀!」

두 번이나 더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다. 벤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말했다.

「망원경을 줘!」

조르지는 신속하게 망원경을 찾아 비에 흠뻑 젖은 땅 아래로 벤이 뻗친 손에 건네주었을 뿐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벤은 망원경을 끼고 초점을 맞췄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침묵을 지키다가 망원경을 조르지에게 넘겨주고는 절벽 끝으로 슬슬 미끄러졌다.

「셔우드, 들것으로 마르팀의 위치를 표시해!」

그는 간단히 말했다. 릭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아무 불평 없이 그의 말에 따라 일사천리로 움직였다.

질리언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서 긴장되어 있었다. 그녀는 발아래 흙이 낭떠러지로 떨어지면서 마르팀이 절벽으로 떨어지던 순간, 극도의 공포로 떨리던 그의 눈빛과 무력한 표정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그 자신도 죽음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질리언의 아버지 역시 산에서 낙상해 돌아가셨다. 아버지도 이런 벼랑 끝에 서 계셨을까? 아버지 눈에도 무력하기 그지없는 표정이 서려 있었을까?

「이제 어떡하죠?」

그녀는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벤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물론 계속 갈 거요. 우린 이곳을 떠나야 해요.」

「하지만… 내려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아직 목숨을 부지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녀는 그들이 최소한의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도 알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마르팀이 생존해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사실을.

「만약에… 만약에 그가 죽었다 해도 묻어줘야 하잖아요.」」

「우리는 그에게 갈 수 없소.」

벤은 대답하며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마치 그녀가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가봐야 해요. 그가 그저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니, 그는 죽었을 거요.」

「망원경으로 봐선 그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어떤지 쉽게 단정지을 수 없잖아요.」

「질리언, 정신 차려요!」

그는 그녀를 감싸 진흙투성이가 된 자신에게로 바싹 끌어 당겼다. 그리고는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져주었다.

「그는 죽었어요. 맹세할 수 있소.」

사실 마르팀은 두개골이 반으로 쪼개져 저 아래 바위 위에 잘 익은 멜론처럼 쩍 벌어져 있었다. 마르팀을 위해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질리언에게 끔찍한 시체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시체는 가져가야 하지 않아요?」

「그럴 순 없어요. 장비가 준비된다 해도 저렇게 튀어나온 바위를 지탱한다는 건 무리요. 그를 일으켜 세우려면 전문가가 한 팀은 와야 할거요.」

그녀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녀의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져 그녀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그럼 시체를 찾으러 다시 와야 해요. 알았죠?」

그녀는 끝까지 다짐을 받으려 했다. 이쯤 되면 진실을 말해야 했다.

「우리가 시체를 찾으러 돌아와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거요.」

그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정글이 마르팀의 시체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알겠어요.」

그녀는 어깨를 펴고는 그를 밀어냈다. 그렇게 큰 충격으로 흥분하지만 않았더라도 어리석은 질문은 하지 않았을 텐데. 마르팀을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탐험을 계속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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