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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간속의 향기-8화 (9/24)

8

탐험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밤에 비가 내렸다. 벤은 예상하고 있었고, 저녁 폭풍은 특이한 게 아니었다. 이례적인 시기와 위치로 저녁에는 폭풍우가 이곳을 비켜간 덕에 그들은 갑판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처음으로 상쾌한 바람이 그의 얼굴을 때리자 흔들리는 해먹에서 내려왔다. 그의 왼쪽 편에 있던 페페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벤은 질리언을 깨우며 말했다.

「비가 올 거요. 지붕 아래로 들어가요.」

남자들은 방수포를 펴서 바닥에 연결시켜 꽉 묶고는 어둠을 밝히려고 등불을 켰다. 부시시 잠에서 깨어난 그들은 물품 상자 위에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앉았다. 조르지와 비센테는 날씨와는 전혀 상관없이 곧바로 골아 떨어졌다. 플로리아노는 하품을 하며 꾸벅꾸벅 졸다가 우르릉 울리는 천둥소리에 깼다가 다시 곯아 떨어졌다.

강철 지붕을 때리는 세찬 소리와 함께 비가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했다. 질리언은 체온을 유지하려고 자신의 몸을 꼭 감싸안고 상자 위에 웅크리고 앉았지만 상자의 뾰족한 끝 부분이 그녀의 옆구리를 찔러 앉아 있기가 불편했다. 그녀는 자리를 좀더 편안하게 만들려고 주위에 있는 판자를 밀어냈다.

「여기.」

벤이 그녀를 끌어당겼고, 그녀의 머리는 그의 어깨에 파묻혔다.

「훨씬 괜찮지?」

「으음.」

마치 담요를 덮어 쓴 것처럼 그의 체온은 따뜻하고 포근했다. 그녀는 스르르 두 눈을 감고 서서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럼 그건 어때?」

그가 부드럽게 속삭였지만, 그녀는 그의 점잖을 빼는 듯한 어투를 감지했다.

「조만간 당신이 나와 함께 자려 한다는 거 알아요.」

아무 말도 없이 그녀는 자리를 뜨더니, 가방에서 여분의 셔츠 두 장을 꺼냈다. 한 장은 공처럼 돌돌 말아 베개로 사용했고, 또 한 장은 팔을 덮는 데 사용했다. 그녀는 잠들기 전 그가 그냥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의 체온이 얇은 셔츠보다 훨씬 더 따뜻했던 것이다.

벤은 등을 돌린 채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녀를 지켜보았고, 진작에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더라면 그녀는 지금쯤 자신의 품속에서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물론 잠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깨어 있는 시간을 즐기긴 했을 텐데 말이다. 지금 그는 깨어 있긴 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페페가 전등을 껐다. 계속 이어지는 비와 폭풍으로, 번쩍이는 번개만이 어두운 밤을 밝힐 뿐이었다. 쿵쾅거리는 천둥소리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얼마 후 벤은 쿵쾅거리는 소리가 다시 더 커지고 있음을 알아차렸고, 또 다른 폭풍이라도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밤 공기는 고요했다.

「페페!」

그가 조용히 말했다.

「듣고 있어요.」

인디언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을 깨워.」

페페는 조용히 어둠 속에서 움직이더니 브라질 사람들을 흔들어 깨웠다. 벤은 질리언을 깨우며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뜻하지 않은 친구를 만난 것 같소. 조용히 바닥에 엎드려 있어.」

「밀수꾼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속삭였다.

「아마도.」

그는 그녀가 안전하게 피신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오직 감각에 의존한 채 엽총을 쥐었다. 온통 시커먼 어둠 속에서 벤은 다른 사람들이 무기를 찾아 장전하는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두 번째 배에 경계태세를 취하라고 무선 수신기로 감히 말할 수도 없었다. 다른 배를 조종하는 투카노 부족의 유로지오가 엔진소리를 듣고 사람들을 깨우길 바랄 뿐이었다.

가까이 접근한 배는 밀수꾼이 아니라 해적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강을 올라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밤새 배를 묶어둘 만한 안전한 장소를 찾고 있는 순진한 사람들이거나, 마지막 시나리오가 맞아떨어질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신중을 기하기 위해 그는 확실한 걸 알 때까지 발사하지 말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속삭였다. 그러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엔진소리가 그치고, 고요한 적막만이 감돌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배 한 대가 점점 더 가까이 떠내려오자 벤의 근육은 긴장했다. 그는 다른 동료에게 속삭였고, 왼손으로 방수포의 끝자락을 잡은 채, 엽총을 쥔 오른손에 힘을 주었다. 그는 침입자가 가까이 다가오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엽총이 치명타를 발휘할 수 있는 범위 내로 적이 다가오길 원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금이야!」

그는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다섯 명의 일행이 동시에 방수포를 위로 던져 올린 뒤, 조용히 접근해 오는 검은 물체를 향해 총을 조준했다. 그의 눈은 어둠 속에서 잘 적응했다. 그래서 벤은 저쪽 갑판의 어둠 속에서 엉거주춤하는 사람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고, 옆에 닿은 선체로 즉시 옮겨 탈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시커먼 물체가 갑자기 움직이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에서 깜짝 놀란 외침소리가 튀어나왔다.

잠시 후 손전등의 딸깍거리는 소리가 뒤쪽과 벤의 왼쪽에서 들렸다. 전등 불빛은 황급히 달려가는 낯선 사람을 비추었고, 분명히 그들의 손에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질리언!

해적 한 명이 동작을 정지함과 동시에, 질리언의 존재가 그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지나갔고, 그는 어깨에 맨 라이플 총을 잽싸게 꺼내 손전등의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방향으로 발사했다.

「젠장, 엎드려!」

벤은 그녀에게 큰소리로 고함쳤고, 밤의 고요는 총소리에 흩어졌다. 해적선은 겨우 5미터 떨어져 있었다. 벤이 엽총으로 저쪽 사수를 쏘자 놈은 쾅 하고 뒤로 넘어졌다. 벤은 다른 선체의 실내 쪽으로 총을 겨누고 다시 발사했다. 이번에는 선체 꼭대기가 부서지면서 긴 나무조각들이 흩날렸다.

손전등의 불빛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다.

전투는 생각이나 사리판단할 틈도 없이, 감각적인 경험으로 진행될 뿐이었고, 본능과 사전에 터득한 기술 따윈 아무 소용없었다. 그의 양손에 거머쥔 엽총의 뜨거운 열기는 마치 생생히 살아 있는 느낌이었다. 화약 가루가 폭발하면서 밤의 열기 속에 널려 톡 쏘는 강한 냄새가 났고, 우레와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또한 그는 사람들의 외침과 욕설, 그리고 고함소리와 함께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모든 감각은 고통스러우리 만치 날카로웠고, 몇 초가 몇 분과도 같이 시간은 더디게 흘러, 모든 게 멈춘 듯 진행되는 것만 같았다. 그는 모든 상황을 보고 감지하며 꿰뚫고 있었다. 두 번째 배에 탄 일행들 역시 발포하고 있는 것을 알았으며, 그들의 공격에 해적들은 이중방어를 하고 있었다. 벤은 자신의 머리 근처로 재빨리 날아오는 총탄을 느꼈고, 본능적으로 다시 발사하면서 옆으로 잽싸게 피하자, 총탄이 아슬아슬하게 그를 빗겨갔다.

그때, 어지러운 혼란 속에서도 그는 심한 기침소리를 들었다. 해적들이 강둑에서 천천히 배를 후진시켰다. 벤은 달아나는 그들을 향해 몇 번 더 총을 발사했다. 해적들은 그나마 충분한 기동력이 있을 때, 배의 방향을 돌려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배가 지나간 흔적으로 철썩거리는 물결이 정박시켜둔 그들의 배에 부딪혀 배가 흔들거렸다.

벤은 페페에게 부상자가 있는지 확인하라고 소리쳤고, 그런 다음 질리언 쪽으로 몸을 확 돌리며 빌어먹을 손전등을 찾았다. 하지만 끔찍스럽게도 그것을 갖고 있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질리언!」

거친 목소리로 그가 소리쳤다.

「여기 있어요.」

선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들려왔다. 그는 손전등을 이리저리 돌려 불빛을 얼굴에 비쳤다.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피신처 뒤쪽에서 기어나왔다.

혼란스러웠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그것을 갖고 있지 않았다면, 도대체 누가?

「괜찮은 거요?」

드디어 그가 물었다.

「상처 하나 없어요. 당신은 어때요?」

「괜찮소.」

젠장, 그 소리는 그들이 한가롭게 차나 한잔하려고 둘러앉은 것처럼 들렸다.

그때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제 손전등 돌려주시겠어요?」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손전등을 돌려주지 않고, 그 대신에 손전등을 그녀의 얼굴 쪽으로 갖다댔다. 벤은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당신 손전등이오?」

「그래요. 전지가 다 닳겠어요.」

그는 신경질적으로 손전등을 껐다.

「당신에게 아래쪽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는데.」

그는 아주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빌어먹을. 당신은 일어나 그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췄잖소. 당신 죽고 싶어 환장했소?」

「아니요, 난 그저 손전등을 켜서 상자 위에 올려놓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줄곧 상자 뒤에 숨어 지켜봤죠.」

그는 지금 두 손으로 그녀를 제정신이 들 때까지 뒤흔들고 싶었지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그녀가 이해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매일 해적을 만나 총을 쏴본 것처럼 태연했다.

「당신 전에 해본 적….」

그는 단호하게 말했지만 그녀는 냉정하게 말을 잘랐다.

「손전등으로 눈속임하는 수법은 매번 사용할 뿐만 아니라, 당신이 맞추려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죠. 전에 그 수법을 도굴꾼에게 사용한 적이 있어요.」

그는 말을 멈추었다.

「도굴꾼?」

「그래요. 새 유적지는 도굴꾼의 표적이죠. 인간은 시신과 그 사람의 귀중품을 함께 묻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는 그녀가 무덤 가에 쭈그리고 앉아, 한 손에 손전등을 다른 손엔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는 얼굴을 문지르며 포기했다.

「제기랄!」

페페가 다가와 플로리아노가 팔에 부상을 입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고 보고했다. 그 외 사람들은 모두 괜찮았다. 해적들은 난폭하게 총질을 해댔지만, 선제 공격을 당하자 그들의 공격 계획은 완전히 혼란 속에 빠졌다. 두 배의 상황을 살펴봤으나 피해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아주 민첩하게 대처했기 때문에 위험을 가볍게 물리쳤다.

사람들은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져 있었다. 두 배에서 일어난 사건을 계속 지껄이며 흥분은 서서히 진정되었다. 벤의 바람대로 유로지오 역시 해적선이 접근하는 것을 알고, 두 번째 배에 탄 사람들을 준비시켰다. 그래서 모두 싸움의 시작부터 참가했던 것이다. 얼마 후 해적들이 다시 역습할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하자, 그들은 마음을 가라앉혔다. 예방책으로 벤은 매시간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세웠고, 모두에게 푹 잠잘 기회를 주었다. 만약의 경우 해적들이 2차 시도를 위해, 급회전할 만큼 어리석다 해도 빈틈없이 경계 태세를 취할 수 있도록 경비 시간을 짧게 만들었다.

일단 등불을 들고 나가자 모든 사람은 아래쪽에 조용히 누웠고, 놀랍게도 곧바로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벤은 우레를 동반한 폭우에도 사람들이 깨지 않는 게 신기했다. 그와 페페는 고양이처럼 선잠을 잤기 때문에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깼다. 해적들이 엔진을 일찍 끄고 조용히 노를 이용하는 영리함을 발휘했다면, 상황은 훨씬 더 난처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들이 유리했었다.

질리언은 상자 위에서 이전의 자세를 취하며 편하게 앉아 다른 사람들처럼 쉽게 잠이 들었다. 그녀가 깊이 잠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벤은 그녀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앉아 긴 다리를 쭉 뻗었다. 그는 그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고, 긴장된 신경이 마침내 서서히 누그러졌다.

빌어먹을 상자는 너무 편안했고 졸음이 그를 엄습했다. 아니면 생각보다 더 졸렸을 지도 모른다. 그는 깜박 잠이 들었고, 30분 뒤에 깨어나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모든 게 고요하고 ?의 방해도 받지 않는 평온한 밤이었다. 그의 곁에 있는 질리언은 편안하고 따뜻했다. 본능적으로 벤은 몸을 돌려 그녀의 허리를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그녀는 방해받고 조그맣게 투덜거렸지만 깨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그의 따스한 온기 속에서 깊은 숨소리를 내며 숙면에 빠져들었다.

질리언은 동트기 전에 눈을 떴다. 울부짖는 원숭이들이 일상적인 소란을 피우기 직전이었다. 원숭이들은 성능이 뛰어난 자명종 역할을 톡톡히 했으며, 첫날 아침 이후 그녀는 변함없는 대소동이 시작되기 전에 깨어났다. 소름끼치도록 깜짝 놀라는 것에 대비한 자기방어 차원이었다.

그녀의 첫 번째 논리적인 생각은 상자 위에서 잠을 잤더니 몸이 뻣뻣하고 경련이 일어난 것과,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남자의 품에서 잠을 깨는 건 아주 편안한 뭔가가 있었다.

세상에. 생쥐 같이 슬며시 다가오다니.

그는 그녀가 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이 함께 잤다는 거짓말을 남들이 확실히 믿도록 하려고 곁으로 슬쩍 다가왔을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 또한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사소한 기회마저 놓치지 않고 비겁한 방법으로 다가왔고, 그리고 그녀가 죽 지켜본 결과에 의하면 그는 확실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의 팔은 질리언의 가슴 위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었고, 손목은 그녀의 가슴 사이에 걸려 있었고, 손은 그녀의 목과 어깨 사이에 있는 적은 공간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가 꼼짝도 않고 있어서 잠들었을 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숨을 쉴 때마다 단단한 가슴 근육이 움직였고, 너무 푸근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때 그녀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일어날 시간이기 때문에 몸을 빼야 했다.

그때 그녀는 몸을 조금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분명히 느꼈고, 일어나는 것만이 상책이 아님을  깨달았다. 벤은 분명히 깨어 있었다. 그는 엉덩이를 그녀 쪽으로 불쑥 밀어붙이더니 그녀를 잡고 있는 팔을 더 단단히 죄어왔다.

그녀는 벗어나려고 무리하게 그의 팔을 잡아당기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의 힘은 너무 셌다.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들어 손가락으로 그의 숱 많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힘껏 잡아당겼다.

「아야! 잠깐!」

그가 날카롭게 외쳤다.

「가만!」

벤은 잡아당긴 머리끝이 덜 아프도록 무릎으로 일어나 앉았다.

질리언은 그를 놓아주고는 유연한 동작으로 벌떡 일어서며 그에게 기쁨의 미소를 보냈다.

「좋은 아침이군요. 잘 잤어요?」

그는 머리를 문지르며 그녀에게 얼굴을 찌푸렸다.

「잠은 잘 잤지만 일어나는 건 지랄 같군, 젠장.」

「그렇다면 처신을 잘 했어야죠.」

「빌어먹을, 내가 자제할 부분이 아니오. 내가 아는 모든 남자들도 발기 증세로 아침에 일어난다고.」

「아무래도 그렇겠죠.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제 몸에 갖다대지도 않고 비벼대지도 않아요.」

「내가 아는 모든 남자들이 그것을 당신 몸에 갖다 문지르진 않겠지. 나뿐이니까.」

「그래요. 그리고 당신 머리카락을 잡아당긴 사람도 저뿐이니까, 그렇죠?」

그녀는 상냥하게 물었다.

벤은 낮은 소리로 투덜거리며 얼굴을 돌렸다. 서로가 주고받은 대화에 만족한 질리언은 반대 방향으로 돌아앉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아주 당황하는 모습에서 깜짝 놀라 충격을 받은 모습까지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네 명의 눈동자들과 부딪혔다. 페페는 당황하며 갈팡질팡했고, 반면 조르지는 크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질리언은 모든 게 벤의 잘못인 것처럼 의심스런 태도로 어깨를 움츠렸고, 그들의 표정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화장실이 있는 후미 쪽으로 조심해서 걸어갔다.

울부짖는 원숭이들의 세레나데가 시작되었고, 마치 신호를 받은 양 모두가 몸을 움직였다. 아침식사가 준비되는 사이 케이츠는 앞쪽 배로 넘어왔고, 릭도 발뒤꿈치를 들고 살며시 뒤따라왔다.

「어젯밤은 정말 멋진 총격전이었소.」

릭은 흥분한 듯 사건을 계속 들추어내며 말했다.

벤은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가 릭을 쏜다 해도 개인적으로 이해했을 텐데. 릭은 동네 패싸움 수준의 소규모 접전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벤은 다시 듣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질리언이 그의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겨서 머리가 아직까지 아팠고, 솔직히 짜증스러웠다.

「아주 작은 일에 불과하오.」

그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내 총에 맞은 그 자식만 빼고 이런 지역에선 부상을 입었다고, 마나우스까지 가서 의사의 진찰을 받지는 않을 거요. 쓰레기 같은 그 녀석이 기꺼이 치료받고 싶다 해도 말이오.」

「우리가 돌아가면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길까요?」

케이츠이 잠시 벤을 못미더워 하는 시선으로 걱정스레 물어오자, 벤은 그를 짜증스러운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해적을 쏜 것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처음은 아니오. 그렇다고 마지막도 아닐 거요. 아침식사 준비 됐는데, 먹으러 가죠.」

못내 짜증스러운 듯 벤은 몸을 돌려버렸다. 케이츠는 릭과 두 번째 배로 돌아갈 때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그 자식이 걱정이군. 그 광경을 보는 게 아닌데. 오늘 아침 그가 심한 과민반응을 보이는 건 그 때문이군. 벤은 아마 그 남자를 죽였을 거야. 해적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가 낮게 속삭였다. 릭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앞쪽 배의 뱃머리에 서서, 강을 탐색하는 벤을 바라보았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조아킴의 말에 의하면, 어젯밤 벤이 강에서 일어난 문제를 처리하는 데 아주 능숙하고 유명하다고 했어. 그리고 그가 고객들을 책임지고 잘 돌보기 때문에 경찰은 고객들을 그에게 보냈던 거야. 그런 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단 얘기지.」

케이츠는 차가운 눈빛으로 릭을 쳐다보며 거북한 듯 한마디 던졌다.

「당신은 남미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군. 그들은 당신의 허풍에 만족하나 봐.」

배에 올라탄 케이츠의 금발머리는 상쾌한 아침햇살에 눈부시게 빛났다. 셔우드 같은 멍청이가 가지 말에 반박하다니 그는 참을 수 없었다.

일행은 곧 강 상류 쪽으로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벤은 흡족했다. 질리언은 그가 아주 영리한 걸 알았다. 그가 자처한 일이었다. 그때 그녀가 그의 머리를 잡아당기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황당한 일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애정공세를 그녀가 적당히 인정해주지 않아서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후 며칠간 거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예상대로 벤은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그녀가 다가가서 그가 얼마나 섹시한지 속삭이며 껴안아주면 벤은 곧 환한 미소를 지을 테지만, 지금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라도 질리언에게 제공한 것처럼 뻣뻣하게 굴고 있었다. 웃지 않으려고 입술을 너무 자주 깨물었더니 이제 그녀의 입술은 아플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토라져 있다 해도 여전히 그녀를 보호할 책임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케이츠에게 이익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언제나 주위에서 얼쩡거리지는 않았지만, 일행들은 휴식을 취할 때면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받았고, 그래서 두 번째 배에 탄 일행들도 추측하건대 벤이 그녀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항해 중에 다소 거친 지점이라도 지나칠 때면 항상 그녀에게 배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지라고 경고했고, 밤에는 그녀와 일행들 사이에 끼어 잤고, 그녀가 목욕을 하거나 겨우 옷장 만한 작은 공간의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도 방해받지 않도록 배려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의 행동에 감쪽같이 속고 있었지만, 그녀의 견해는 냉소적이었다. 자신이 스톤 시티로 가는 길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에, 벤이 그녀를 아주 잘 돌보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강을 항해한 지 10일 째가 되자, 질리언은 깊은 관심을 보이며 지나가는 정글과 강의 흐름을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가끔 그녀는 혼자 구석진 곳으로 물러나, 종이를 몇 장 꺼내어 판독하기 힘든 지시문을 들고 씨름했다. 그들은 상륙해야 하는 지점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기 도착하는데 이틀에서 나흘 정도 더 걸릴지 모르지만 자칫 부주의로 지나치지 않도록 분명히 확인하고 싶었다.

「속도를 늦추고 당신이 찾는 장소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 싶으면 내게 말하시오.」

일에 도움이 되도록 시무룩한 표정을 다소 지우며 벤이 말했다.

그는 지금 그녀의 행동에 변화가 있음을 곧바로 알아차렸고, 지금 그들은 강 상류 깊숙이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 지점에 가까이 와 있었고, 거기에다 배를 남겨두고 육로로 여행을 계속해야 했다. 지난번 정박지를 떠난 지 이틀이 지나도록 그들은 단지 뗏목 하나만 보았을 뿐이었다. 강폭이 좁아짐에 따라 더 울창한 밀림이 모습을 드러냈고, 공기를 더 뜨겁고 후덥지근해서 정오엔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그들은 이대로 적도에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들은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 아마존 유역은 대부분 평평했지만, 리오 니그로는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쪽으로 쭉 뻗은 산맥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푸르고 신비로운 산맥은 대부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자연 그대로 남겨져 있었다. 몇 년 전 이 산 속에서 야노마미 부족이 발견되었을 때, 그들은 석기 시대의 문명을 고이 간직한 채 수세기 동안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질리언은 정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강이 다시 갈라지게 되죠, 그렇죠?」

벤은 웃었다.

「터무니없는 지도를 보고 말하는 것 같은데. 난 이런 위쪽 오지까지 와본 적이 없소. 고립된 채 살아가는 원주민 부족 말고는 여기엔 아무것도 없소. 더구나 그들은 전에 백인을 본 적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 그리고 야만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소.」

질리언은 마지막 말을 무시해버렸다.

「왼쪽 길로 들어가요.」

「예, 분부대로 하죠. 아가씨, 그 다음은 뭐요?」

「그 다음은 지도의 지표를 확인한 뒤, 알게 되면 말해줄게요.」

벤은 그들이 지금 들어가려는 지역을 그녀가 지도상에서 가리킬 때 정확하게 말하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의심이 많은 아가씨로군.

하지만 질리언은 현명했고, 그는 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벤은 식료품도 그녀의 정보에 따라 진짜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떨어지지 않도록 충분히 준비해두었다.

한 시간 후 그들은 강이 갈라지는 곳에 닿았고, 벤은 왼쪽 길로 들어섰다. 항해는 더 이상 방심할 수 없는 처지였다. 강 깊이는 더 얕아지고 폭도 더 좁아졌다. 그래서 겨우 앞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그는 아예 엔진을 꺼버렸다. 질리언은 뱃머리 쪽에 서 있었고, 걱정과 갈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난간에 기대어 항해에 길잡이가 되는 육지의 지표를 찾고 있었다.

벤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렇게 기대어 있지 말아요. 배가 암초에라도 걸리면 당신은 배 밖으로 빠져 버릴 거요.」

고분고분하게 그녀는 뒤로 물러났지만 자제하기란 어려웠다.

질리언은 지표를 놓치지 않을까 두려웠고, 또 교수의 노트를 직접 확인하려고 수차례 다른 각도에서 그 과정을 반복 검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해독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벤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질리언은 고개를 돌리고, 페페가 타륜을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즉시 그녀는 머리를 휙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녀가 페페를 보는 몇 초 사이에 혹시라도 지표를 놓쳤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되었다.

「당신이 말하지 않은 것을 얘기해주겠소.」

벤은 투덜거렸다.

「카르바잘이 아마존으로 올라가서 안자르를 발견했다면, 왜 우린 리오 니그로 쪽으로 올라가고 있지? 당신이 지금까지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소. 그렇다면 이젠 내게 말못할 이유가 없잖소. 안 그렇소?」

「카르바잘의 일기에 대해 얘기할 때 상세히 언급 안 했을 뿐이에요. 오렐라나와 그의 탐험에 나선 그 사람들은 타푸아 부족과 소규모 충돌이 있었고, 그 원주민 여자들은 자기 남자들을 따라 함께 싸웠죠. 카르바잘은 그 여자들을 아마존이라 불렀던 거예요.」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안자르에 관한 그 모든 이야기는 당신이 꾸며낸 거요?」

「아뇨. 그게 아니라 카르바잘의 것보다 안자르에 관한 자료는 더 많아요. 타푸아와의 사건이 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 이름이 어떻게 나왔냐 하는 거죠. 하지만 깊은 오지에 살았던 여전사 부족에 관한 다른 견해와 이야기들도 있어요. 안자르의 도시죠. 안자르와 아마존의 두 이름은 아주 유사해요. 안자르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어떻게 아마존의 신화처럼 도외시됐는지 쉽게 알 수 있어요.」

「아직까지 그들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질리언은 수평선을 바라보며 웃었다.

「당신은 모르겠어요? 상관없어요. 문제되는 건 스톤 시티가 실제 존재했느냐 하는 것이니까. 그런 다음 아빠의 주장이 옳았음을 증명할 거예요. 그 부족이 여전사들로만 구성되었든, 남녀가 섞인 부족이든 아무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잃어버린 도시, 즉 잃어버린 문명세계에 대한 증거물을 찾아내는 거예요.」

「그래, 애꾸눈 산적떼들이 그곳에 살 수도 있는데 상관없겠소?」

「물론이죠. 키클로프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눈이 하나밖에 없는 거인족)에 관한 옛 신화가 떠오르긴 하지만.」

「이곳에서 얘기할 만한 신화는 전부 알고 있소. 애꾸눈 산적은 잊어버리시오.」

그녀는 갑자기 몸을 뻗으며 말했다.

「이곳이에요!」

「이곳?」

「그래요. 바로 여기예요.」

그리고 그에게 황급히 몸을 돌리며 다시 소리쳤다.

「여기라고요. 젠장.」

그는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통과할 수도 없이 뒤엉킨 강둑을 바라보았다.

「내 생각이 딱 맞군.」

그러고는 페페에게 명령을 내리자, 그는 해안 쪽으로 배를 틀었다.

정박하기에 좋은 장소는 아니었지만, 후미진 쪽으로 배를 끌어올려 최대한 보이지 않게 숨긴 후, 나무에 쇠사슬로 단단하게 묶어놓았다. 이렇게 한다고 해도 그들이 돌아왔을 때, 어쩌면 배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고, 그래서 그들은 커다란 공기팽창용 구명정 두 대를 배에서 50미터쯤 떨어진 내륙에 숨겨놓았다.

강둑은 언제나 식물들이 빽빽이 뒤얽혀 있어서 햇볕을 필요로 하는 곳이었다. 그들은 배를 숨겨두고 길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나무들로 하늘이 겹겹으로 덮여 있어, 좀 어둡긴 해도 조심스레 피해 가는 게 훨씬 더 쉽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식물의 생명력은 정글의 바닥에서 꾸물거리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햇볕을 향해 위로 쭉쭉 뻗어나갔다. 그리고 빽빽이 덮인 하늘 아래의 다른 세상에서는 쭉쭉 뻗은 야생 난과 후텁지근한 공기로 메워져 있었다. 두터운 뿌리를 지탱하고 서 있는 거목들은 머리 위로 높이 뻗은 큰 가지 나무들을 날개인양 펼치고 있었다. 밝은 대낮인데도 식물들이 지배하고 있는 어둠침침한 밀림의 세계는 황혼으로 변해 있었다. 열대의 두꺼운 덩굴줄기가 머리 위로 뻗어 있어서, 훨씬 더 위에 있는 원숭이들의 움직임은 전혀 볼 수도 없었다. 가끔씩 덩굴만이 흔들거렸다. 간혹 비치는 태양빛은 나뭇잎들의 색을 얼룩지게 만들었고, 주변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단조로운 소리마저도 이내 사라지곤 했다. 정글에 서식하고 있는 동물들이 시끄럽게 울부짖고 떠드는 소리를 잠시 들을 수 있었고, 그 소리도 점점 멀어지더니 예상한 대로 정글 속은 텅 빈 성당처럼 고요해졌다.

질리언은 남자들과 함께 짐을 내리는 일을 했다. 그들은 각자 소유의 가벼운 텐트와, 기포 침낭, 그리고 개인 소지품과 일반 식료품들을 담은 가방을 짊어졌다. 나머지 식료품은 들것에 실어 2인 1조가 되어 4개 팀의 짐꾼들이 운반했다. 벤은 마나우스로 돌아갈 경우를 생각해서 충분한 식료품을 구명정에 남겨놓았다.

배에서 짐을 내리고 식료품을 나누는 데 반나절을 보낸 뒤, 계속 전진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하룻밤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내륙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텐트를 치고 불을 지폈다. 기름난로는 무게가 많이 나가기 때문에 배에 남겨두고 이제부터 모닥불에 식사를 준비할 것이다.

늦은 오후 케이츠는 볼일을 보려고 캠프를 비웠고, 2분도 채 되지 않아 일행들은 그의 거친 외침소리를 들었다. 벤은 엽총을 집어들고 소리나는 방향으로 돌진했고, 모두가 그 뒤를 따랐다.

정글의 식물들이 너무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케이츠는 멀리가지 못했다. 질리언은 벤이 말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독이 있는 건 아니오.」

「빌어먹을, 독이 없다는 말은 하지 마시오!」

모두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케이츠는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산호 뱀이야!」

「가짜 산호요.」

침착하게 벤이 말했다.

「이건 강에 사는 뱀이오. 뱀이 꿀꺽 삼켜버릴 정도로 당신이 작은 것도 아니니 위험하지 않소. 진정해요. 작대기를 갖다주겠소.」

브라질 사람들은 웃음을 억지로 감추면서 이미 캠프로 향하고 있었고, 질리언도 마찬가지로 돌아가려다 두트라와 마주쳤다.

그녀는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와 마주치자 비위가 상한 듯이 속이 뒤틀렸다. 그녀의 아주 가까운 뒤쪽에 서 있는 두트라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에게서는 심한 악취가 났다. 자신이 어떻게 냄새를 맡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저 그녀를 보고 이를 드러내며 웃자 누런 이가 드러났다. 긴 앞니는 그녀의 등줄기를 오싹하게 하는 가시바늘 같았다. 질리언의 가슴을 쳐다보는 그의 작은 눈은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질리언은 끔찍하게도 그가 그녀의 가슴을 쥐어뜯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질리언은 황급히 캠프로 돌아가려다 멈춰 섰다. 텐트는 2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빽빽한 식물들 때문에 앞이 가려 길을 잘 볼 수 없었다. 두트라와의 거리는 너무 가까웠고, 몇 발자국 못 가서 결국 혼자 갇히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다. 대신 의도적으로 그녀는 벤 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벤은 놀라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았지만, 두트라를 슬쩍 보더니 한순간의 놀람이 이해심으로 대치되었다.

벤은 그녀의 허리를 슬쩍 감싸 안았고, 질리언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역시 벤 루이스는 기회를 놓칠 사람이 아니었다.

뱀을 구경하려고 중단했던 볼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케이츠가 그곳을 다시 뜨자, 일행도 캠프로 돌아왔다. 두트라가 눈앞에 보이지 않자, 그가 얼마나 조용히 움직이는지 다시 한 번 놀랐다.

벤은 그녀의 허리를 더 세게 잡았다.

「괜찮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이죠.」

벤에게 감사의 미소를 건네며 그녀가 말했다.

「그저 조심하려 했을 뿐이에요.」

「잘했소.」

그는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텐트가 보이는 적당한 장소까지 그녀와 걸어가다 갑자기 멈춰 섰다.

「당신에게 키스하고 싶소.」

그가 중얼거렸다. 이미 그의 머리는 굽혀진 상태였다.

「빼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사실 보조를 맞춘 셈이었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튼튼한 양팔에 꽉 붙잡힌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저항하려고 애써봤지만 그의 입술은 이미 포개져 있었다. 그리고 반항하기도 전에 입 안으로 그의 혀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기쁨의 전율 속에서 그녀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짜릿함을 경험했다. 벤처럼 키스하는 사람은 위법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벤을 힘껏 밀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즐거운 유혹에 빠져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건장한 목에 팔을 감고 근육질로 다져진 몸에 한껏 기댔다.

그의 목구멍에서 놀람과 만족감이 뒤얽힌 거친 소리가 흘러나왔고, 그녀를 더 꼭 껴안으며 그녀의 엉덩이를 자신에게 바짝 끌어당겼다. 한 손이 스르르 내려가더니 그녀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순간 질리언은 잽싸게 몸을 뺐고, 정리 중인 캠프 쪽으로 발길을 옮기며 어깨너머로 그에게 윙크를 보냈다. 그녀의 뒤에서 분노에 찬 신음소리가 들렸다. 당연한 대가였다. 그저 벤의 손에 자신을 맡기려고 두트라를 피한 게 아니었다. 그의 손이 아주 능수능란하게 움직였다 해도 말이다. 그는 곤란에 빠진 처녀의 약점을 이용하면 안 된다는 걸 배울 필요가 있었다.

식사 후, 질리언은 아직도 열 받아 있는 그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싶어 일찍 텐트로 들어갔다. 안에서 그녀는 기포 패드를 폈다. 패드는 3센티미터 정도의 두께인데 비해 놀라울 정도로 편안했다. 나일론 텐트는 무척 좁았다. 높이는 간신히 서 있을 정도였고, 폭은 1.5미터 정도였다. 침낭의 폭은 85센티미터 정도였으므로, 개인 공간이 옆으로 70센티미터 정도 남겨져 있었다. 텐트의 입구는 내구성이 강한 양편 플라스틱 지퍼로 잠글 수 있었다. 확실하게 방어하려고 그녀는 가방에서 전기 기술자용 테이프 하나를 꺼내 10센티미터 크기로 잘라서 머리의 바로 아래 부분에 붙였다. 이런 식으로 막아놓으면 아무도 바깥쪽에서 텐트 지퍼를 열 수 없었다. 싸고 효과적인 안전장치였다. 그녀와 정글 사이엔 견고한 나일론 텐트가 버티고 있었고, 벤 루이스와의 사이엔 전기 테이프가 가로막고 있어서 아주 안전했다.

그리고 질리언은 다음날 벤에게 건네줄 좌표의 위치를 신중하게 정한 뒤, 모든 것을 깨끗이 정리하고 옷을 벗었다.

그녀는 손전등을 껐다. 바깥의 모닥불 빛이 나일론 텐트를 통해 희미하게 아른거려서 완전히 어둡진 않았다. 모닥불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현명하다면 최대한 잠을 많이 자둘 텐데. 내일의 여행은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여 바로 누워 잠을 청했다. 잠결에 어렴풋이 벤이 텐트로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릭은 질리언과 벤의 두 텐트가 서로 나란히 세워져 있는 모습을 보았고, 화를 내며 노려보고 있었다.

「질리언이 보물에 관해 그놈에게 말했을 거야.」

그가 케이츠에게 중얼거리며 말했다.

「그는 우리를 막으려 들 거야.」

케이츠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벤은 정글 속에 폐허 말고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을 전혀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만일 루이스가 처음 고용할 때의 생각대로 형편없는 인물이라면 별로 걱정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탐험을 책임지고 있는 루이스라는 인물은 처음 봤을 때의 조심성 없는 술꾼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를 지켜봐야겠어.」

케이츠가 말했다.

그것만이 현재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들이 보물을 찾고 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질리언은 그 사람에게 흥미가 없는 것 같아.」

릭은 작은 목소리로 말하며 곰곰이 생각하고는 한마디 더 보탰다.

「날 골탕 먹일 진 모르지만 믿어보는 거야.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눈에 가시였거든.」

케이츠는 앞의 남자를 오래 그리고 깊이 생각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릭 셔우드는 지성이라곤 기대할 수 없는 어리석은 인간이었다. 차라리 두트라처럼 투덜대는 그 입이라도 꼭 다물기를 바랐다.

「그녀가 벤과 한 통속이 된다면 당신에게 생각을 이야기할지 의문이군.」

케이츠가 대답했다.

아니, 이건 그녀의 계획 같진 않았다. 질리언은 이복오빠인 릭과 전혀 닮지 않았다. 그녀는 빈틈없고 속을 터놓지 않았으며, 케이츠가 자신의 예정표를 갖고 있는 걸 그녀는 예측할 지도 모른다. 루이스와의 접촉은 경호원을 줄지어 세워놓는 것처럼 자기방어의 형태일 것이다. 릭처럼, 케이츠는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질리언과 벤 사이의 으르렁거리는 갈등을 보았고, 그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 같은 여자는 벤이라는 인간을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보다 더 영리했다. 어쩌면 그녀는 그들보다 먼저 루이스의 진짜 성격을 파악하고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벤 루이스는 문제가 될 것이다. 그는 강인하고 교활한 인간이며 벌써부터 매처럼 빈틈없는 두 눈으로 두트라를 지켜보고 있었다. 케이츠의 명령 하에 그는 전혀 무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벤이 잠깐 나갈 때 기습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들이 마나우스를 떠난 순간부터 문제가 일어났던 것이다. 두트라는 자신이 오지 전문가라고 주장하지만, 결국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끔 강 상류로 피신하는 끔찍한 살인자라는 사실이 판명되었다. 어쨌든 두트라가 올라갔던 강은 지금 그들이 가고 있는 이 길은 아니었다. 정글에서 그의 기술은 기껏해야 보통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이 보물을 발견한 뒤 두트라가 자신들을 데리고 나올 정도의 기술만 갖고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벤 루이스의 왕복 여행은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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