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낯선 시간속의 향기-6화 (7/24)

6

케이츠는 자신들이 다른 강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고 격분하면서 무선통신으로 항의를 해대는 중이었다.

그의 불평을 계속 듣는 것에 짜증난 벤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셔우드 양이 말한 길로 가고 있는 중이오.」

간단히 질리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 잠시 후 항의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았는지 케이츠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스름이 내리기 전, 벤은 후미진 만의 은신처로 배를 돌렸다.

「폭풍이오.」

그가 질리언에게 짧게 말했다.

「배를 묶어두기에 안성맞춤이군. 여기서 밤을 새는 게 좋겠소. 폭풍이 끝날 때쯤이면 어두워질 거요.」

그들이 브라질에 머문 동안 거의 매일 비가 왔으니, 이런 날씨는 놀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질리언은 짙은 자주색의 구름들이 수평선으로 모여들어 그들 쪽으로 점점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배의 엔진이 꺼져 있어서 천둥치는 소리가 들렸다.

두 배에 나눠 탄 브라질인들이 평평한 지붕을 덮고 있던 무거운 방수포를 펴기 시작했다. 두 척의 배에는 문이 달린 선실이라곤 없었고, 짐칸도 방수포고 덮은 얇은 지붕 하나가 고작이었다. 햇볕이 비스듬히 기울고 있는 늦은 오후 내내 방수포는 그늘을 제공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바람이 일기 시작하자 그녀는 진짜 방수포의 용도를 알 수 있었다. 방수포를 펴고 갑판 위 고리에 단단히 묶어 불어오는 비바람을 막았다. 바람이 맞닥뜨리지 않도록 한쪽은 열어 두었다.

아직 폭풍이 닥친 것도 아니어서 질리언은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에 갇혀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남자들과 함께 갑판으로 나왔다. 한 브라질인이 수줍은 듯 그녀에게 미소를 보이자 그녀도 미소로 답했다. 벤은 이 남자들이 평범한 일꾼도 아니지만 최고도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질리언은 그들 중 한 사람이 맘에 들었다. 자기들끼리의 대화에서 그의 이름이 조르지라는 것을 알았다. 벤은 그 원주민 인디언을 페페라고 불렀지만, 본명이 아닌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이름에 대답할 분이었고, 다른 사람에게 이름을 알리지도 않았다. 나머지 두 명은 플로리아노와 비센테였다. 다른 인디언 원주민인 유로지오는 두 번째 배를 안내했으며, 벤이 고용한 다른 두 사람 조아킴과 마르팀도 그 배에 타고 있었다.

찌는 듯한 열기 때문인지, 본격적인 폭풍이 불어닥칠 때까지 방수포 뒤로 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다른 쪽 배를 쳐다보니, 그 쪽 사람들도 자신들과 똑같이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도 모두 갑판에 나와 있었다 릭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마나우스를 떠난 이후로 릭은 술을 계속 마셨던 것 같았다.

가까이 천둥소리가 울리기 시작했고, 갑작스런 바람이 상쾌하고 시원한 공기를 몰아왔다. 질리언의 머리칼이 신선한 바람에 휘날렸다. 하늘은 눈에 띄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리한 섬광 같은 번개가 어둠 속에서 번쩍였고, 어두컴컴한 정글이 현란한 백색으로 밝혀지는 중이었다. 바람은 잠잠했고 고요한 정적만이 감돌았다. 뜨거운 열기는 강둑에 어렴풋이 보이는 부패한 잡초더미로 인해 한층 더 눅눅하고 무거워졌다.

「드디어 시작이군.」

벤이 말했다. 그러고 나서 배가 발 아래에서 출렁이기 시작하자 그는 돌아보더니 그녀의 팔을 붙들었다.

「지붕 밑으로 들어가요.」

거대한 강풍이 배를 강타했고, 기온은 급격히 떨어졌다. 방수포 뒤의 피난처에 있는 질리언도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그들이 있는 후미진 만이 트인 강보다야 훨씬 고요했지만, 그래도 배 아래의 물살은 세찬 바람에 크게 출렁거렸다. 지붕으로 후두두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 소리는 마치 망치소리 마냥 세차게 부딪혔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시끄러운 빗소리 탓에 얘기해봤자 들리지도 않았지만.

그들 모두는 이 같은 폭풍에 익숙해져 있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인디언 페페는 구석에 조용히 웅크리고 앉아 기다렸고, 브라질인들은 편안하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벤은 그녀 곁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끌어당겨, 열기가 뿜어 나오는 몸에 기대게 했다.

그의 팔을 끌어내리려 했지만 벤은 완강했고 질리언은 저항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그의 확고한 푸른 눈은 그녀에게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경고하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그녀는 다른 일행들이 그의 행동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벤은 질리언을 자신의 여자로 점찍어 두었다. 그녀가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든든하고 남자다운 그의 태도를 생각해보면 그녀에게 보호조치를 해주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만히 앉아 그에게 몸을 기대었고, 그의 따스한 열기는 추위에 떨고 있는 그녀를 녹여주었다. 본의 아니게 원초적인 여성 특유의 만족감이 밀려들었다. 아마 수천 년 전의 여성들도 불꽃이 이는 동굴에 앉아 가족을 부양하고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주는 믿음직한 반려자에게 기댄 느낌이 이랬을 것이다. 그녀는 그의 강한 힘에 유혹을 느꼈다. 단 몇 백 년간의 문명이 수천 년에 걸쳐 발달되어 온 본능을 앞지를 수는 없었다.

순간적으로 질리언은 한 집단에서 힘이 우세한 남성이 얼마나 쉽게 여성을 선택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의 지배력은 자신이 그들 중 최고의 선택권자임을 인식하게 했다. 벤은 일행 중에서 가장 힘있는 남자였으며 그녀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탐험에 참가하는 유일한 여성에게 했던 벤의 경고는 옳았다. 그는 이런 불안한 상황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녀가 받은 고등교육과 생활방식은 인생의 기본적인 본질마저 간과하게 했다.

모든 상황이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밖에 없도록 돌아갔고, 질리언은 벤이 텐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데 아주 노련한 발놀림이 필요할 것이다. 벤은 그녀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결론지은 것 같았고, 질리언도 이 오랜 전투에서 그가 더 우세한 입장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녀는 자신과도 싸워야 했다. 인생을 뒤흔들어 놓는 자신의 성적 본능 말이다. 육체적으로는 벤에게 강한 매력을 느꼈으나 정신적으로는 사랑에 빠져 일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감정이 뒤얽혀 혼란상태에 빠지는 것은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성적 본능을 가진 건강한 보통 여자였지만, 남녀간에 생기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만심으로 가득한 그의 태도는 그녀를 발끈하게 했다. 벤은 그녀의 저항을 꺾을 거라고 확신에 차 있었고, 굳이 그것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심장이 멎을 듯한 미소와 유혹적인 푸른 눈빛이 그의 자신감을 더해주었다. 벤은 그녀의 저항에도 도전했고, 마찬가지로 그녀는 그의 확신에 도전했다. 하지만 여자의 자존심은 굳은 날씨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수그러들었다.

「당신을 내 것으로 만들겠소.」

불쑥 내던진 그의 말에 질리언은 본능적이고 이성적인 신랄한 반응을 보였다.

「오, 그래요?」

질리언은 강한 경쟁심을 타고났다. 카드놀이를 하거나, 좋은 주차 공간을 차지하려고 싸울 때조차도 반드시 이기고 싶어했다. 그녀는 단체경기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미식축구를 좋아했다. 그녀를 유혹하는 일은 벤에게 단지 게임일 뿐이었고, 그래서 그녀 역시 어떻게든 게임에서 승리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질리언은 벤과의 첫만남에서 그를 과소평가하는 과오를 범했지만, 이제 그를 제대로 파악했고, 그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주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아담과 이브의 하찮은 사랑 놀음 따위에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었다. 눈을 크게 뜨고 냉정하게 이성을 지켜야만 했다. 그가 지적한 대로 탐사 중에는 안전하지만, 일이 끝나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녀는 벤이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히도록 보고만 있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주위가 황혼으로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이내 깜깜한 어둠의 천지로 변했다. 이대로 정글을 통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강둑으로 배를 끌어올렸다. 날카로운 비명과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 기침소리와 남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주위를 가득 메웠고, 질리언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전지 충전식 등불이 켜져 있었다. 배에는 기름 난로가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식사 준비를 빠르게 진행되었다. 비센테가 쌀과 생선 그리고 각종 양념을 사용해서 한끼 식사를 마련했다. 상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먹을 만했다. 식사는 배를 가득 채우고 재충전을 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근사한 만찬은 아니더라도, 힘을 얻는 데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 양철 접시를 깨끗이 씻어 두었다. 그런 다음 해먹을 보기 좋게 걸어놓았더니 갑판 공간을 거의 다 차지했다.

「당신 거요.」

벤은 가장 가까운 해먹을 가리키며 질리언에게 말했다. 둘 중 하나가 가까이 기울이기만 해도, 물론 질리언은 아니겠지만, 손에 잡힐 정도로 가까운 자리였다.

그녀는 흔들리는 해먹을 능숙하게 조절했고, 위에는 모기장을 쳐놓았다. 벌레에 물리지 않고 잠을 청할 수 있는 멋진 밤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길 잃은 곤충이 자신 위에서 뛰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기장은 부드러운 천으로 직접 만든 것이었다.

벤이 자신의 해먹을 걸고 있었다.

「그 정도면 안전할 것 같소?」

그는 잠시 후 나른하게 속삭이며 말했다.

「해먹에서 그거 해본 적이 있소?」

「물론이죠.」

그녀는 무관심과 지루함을 적당히 섞어 흔쾌히 대답했다. 그 일에 관해 궁금하다면 그러라지, 뭐! 그는 자신이 말한 '그것'에 대해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나름대로 해먹에서 잠을 자본 적이 있냐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벤은 살맛을 잃은 우거지상을 하고 있었다. 곧 그는 흔들리는 해먹에 몸을 싣고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물론이죠라니? 어떤 의미로 한 말일까? 고고학 탐험기간 동안 그의 생각 이상으로 많은 일이 있었단 말인가? 뭐, 그렇다 해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오랜 기간 동안 남자들과 동행하면서 생식기가 발동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 말이다. 그는 그런 상황에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사실 그의 성적인 세계에는 내숭이라곤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흔들리는 해먹에 누워, 질리언의 다소 볼품없는 엉덩이와 뼈만 앙상하게 남은 무릎을 떠올리자,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다. 벤은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마음을 추스렸으나, 인상은 더 찌푸려졌고 이상하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질투심이 느껴졌다. 벤은 그런 생각을 애써 지우려 했다.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그의 일생에서 질투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이 감정은 질리언에 대한 질투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녀는 그의 타입이 아니었다. 절대로. 그녀가 가진 매력이라고는 유일한 여자라는 것뿐이었다. 그는 흥분을 가라 앉혔다.

벤은 팔을 뻗어 그녀의 해먹을 팔꿈치로 살짝 건드렸다.

「어디서?」

「어디서라뇨?」

그녀는 선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어디 있는 해먹에서 그걸 했소?」

「아, 그거. 제 아파트 발코니에서요.」

어둠 속이라 그가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질리언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사실이었다. 발코니에 해먹이 있었고, 종종 거기에서 낮잠을 자곤 했다.

벤은 자신의 해먹에 누워 속을 부글부글 끓였다. 뼈만 앙상한 고고학자의 이미지는 태양에 빛이 바랜 머리를 하고 진짜 상표가 붙은 옷을 칭칭 감은 모습으로 바뀌었다. 발코니에서? 그런 공공연한 장소에서. 제기랄, 그는 여태껏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이 크게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그는 여자의 마음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질리언은 그를 끊임없이 혼란스럽게 했다. 그날 밤 호텔 방에서 키스했을 때 그녀의 흥분을 감지했지만, 답례 키스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녀의 그런 자제력은 그를 난처하게 했다. 왜 본능을 억제하려 할까?

청명한 밤은 아니었지만, 희미한 불빛이 정글의 높은 나무들로 뒤덮여 완전히 어두워지는 걸 막아주고 있었다. 제기랄, 어떻게 발코니에서 관계를 가져봤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냥 잠을 잤다는 걸까? 벤은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다.

벤은 해먹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도회적인 멋진 남자와 함께 있는 그녀의 영상을 계속 떠올리며 자신을 대치시켜 보기도 했다. 그는 질리언을 여러 번 만져보기도 하고 품에 안은 적도 있어서, 그녀의 근육이 얼마나 단단하고 매끄러운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단단하게 균형 잡힌 그녀의 나체와 의기양양하게 위로 솟은 젖가슴, 그녀의 몸 속으로 들어갈 때 흥분을 더해주는 빳빳한 유두를 쉽게 그려볼 수 있었다.

그의 남성이 고통스럽게 바지 위로 솟아올랐다. 어둠 속에서 그녀가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에 얼굴을 찡그리더니, 더 편안한 자세로 누우려고 몸을 바로 했다.

그는 오랫동안 깨어 있었고, 불편한 듯 인상을 찡그리며 뒤척였다. 다른 폭풍이 멀리서 생겨나더니 잠시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가 들렸다. 벤은 피난처로 옮겨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지만, 폭풍은 그들을 지나쳐 먼 곳으로 물러갔다. 배 한쪽에서 희미하게 긁는 소리가 들려오자, 벤과 페페는 난간 쪽으로 불빛을 비추었다. 깜짝 놀란 거북이 한 마리가 쏜살같이 물밑으로 사라졌다. 깊은 밤의 연가가 평온하게 울려 퍼졌다.

벤은 다시 해먹에 자리를 잡았다. 갑자기 나타난 방해물 때문에 질리언에 대한 끝없는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그는 연신 하품을 하더니 드디어 잠에 빠져 들었다.

울부짖는 원숭이 소리에 새벽이 지나도록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에 잠이 달아난 질리언은 해먹에서 벌떡 일어나 모기떼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모기장 덮개를 팔로 휘저었다. 옆에 있던 벤은 투덜거리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놀라진 않았다. 그는 갑판 쪽으로 획 가버렸다.

첫 번째 소란이 지나자 질리언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재빨리 깨달았다. 짖는 짐승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긴 하지만 영역을 차지하려고 저렇게까지 시끄럽게 새벽 의식을 거행하는지 몰랐다. 원숭이의 외침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수천 명의 고함소리와 맞먹었다. 그녀는 갑작스런 공포감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옆에 정박해 있는 배를 힐끗 쳐다보았다. 벌떡 일어서려는 릭과 케이츠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표정으로 보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겁나서 그러는 거요?」

벤은 하품을 하며 물었다.

「너무 놀라서 펄쩍 뛸 뻔했어요.」

그녀는 거짓말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요. 모두들 그저 알람시계가 울리는 정도로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당신은 잘 잤소?」

「생각보다 잘 잤어요. 피곤했었나 봐요.」

아마도 그녀는 그의 옆에서 잠드는 게 안전하다고 느낀 것 같았다.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그는 잠에 취한 호랑이처럼 팔을 쫙 뻗어 무거운 팔을 그녀의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그녀와 동쪽을 바라보았다.

「봐요.」

이른 아침 그의 목소리는 더 깊고 느릿했다.

거대한 태양이 거무스레한 윤곽을 드러낸 나무와 진줏빛 하늘을 배경으로 불타고 있었다. 강물은 검은 유리잔에 담겨 있는 것처럼 잔잔했고, 정글 숲 속에는 평온함이 깔려 있었다. 나무 꼭대기에 걸린 희미한 구름 몇 점은 천지창조를 막 끝낸 뒤 남은 마지막 연기와도 같았다. 태고적 시간이 시작되는 느낌이었다. 이 강은 아직도 자연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벤은 희미한 여명 속에 서 있는 그녀 곁을 떠나 계획한 대로 일과를 시작했다.

아침식사는 간단히 커피와 스크램블 에그, 베이컨으로 때울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정상적인 음식을 먹기란 불가능했고, 벤의 효율적인 감독 하에 식사를 준비해서 치우기까지 4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어쩌면 이렇게 신속할 수 있을까 생각에 잠긴 사이에 그들은 후미진 만을 느긋하게 빠져 나와 강의 물살로 다시 들어섰다.

질리언은 배를 타고 가는 일이 대단한 게 아니라고 여겼지만, 계속되는 새로운 경험으로 지루할 겨를이 없을 정도였다. 그래도 둘째 날은 지루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하늘로 찌를 듯 우뚝 솟은 식물들은 마치 살아 숨쉬는 푸른 벽처럼 강둑에 서로 뒤엉킨 채 늘어서 있었고, 그 모습은 영원히 변할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밝은 색 깃털의 앵무새가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닐 때 비치는 진초록의 화려함이 그녀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끝없이 이어지는 정글뿐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자연의 현란함과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매혹되어 있었다.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최면에 걸린 듯 계속적으로 떨리는 엔진에 문제가 생길 수도, 따뜻한 기후가 주문을 걸어 그들을 꾸벅꾸벅 졸게 만들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녀는 주위환경이 이상할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매혹적인 강이었다. 완전한 검은색도 아니었고, 선명한 갈색에서 번쩍이는 호박색으로 다시 부드러운 홍차 빛깔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시원한 아침동안 그녀는 뱃머리에 편안히 자리 잡고는 빠르게 흘러가는 물살을 보며 마음을 달랬다.

돌고래 한 마리가 배 옆으로 뛰어오르자 그녀는 놀라움과 동시에 기쁨의 감탄을 자아내며 무릎으로 기어 다가갔다.

벤이 페페에게 배의 타륜을 넘겨주고 그녀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

「분홍 돌고래들이군.」

그녀의 표정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

질리언은 반쯤 경고하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지만 돌고래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해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조금도 뒤지지 않고 배와 나란히 달리고 있는 장난스런 포유동물들이 배와 술래잡기하듯 돌진하면서 뛰어오르기도 했다. 그녀는 배 한쪽에 팔꿈치를 기댄 채 돌고래를 더 가까이 보려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갑자기 커다란 손이 그녀의 바지 허리띠를 낚아채더니 등을 확 잡아당겼다.

「앉아요. 앞으로 돌고래는 많이 보게 될 거요. 배에서 뛰어내릴 정도는 아니오. 이 강은 사람을 습격하는 피라니아 떼로 가득하오.」

그녀는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는 V자 모양 뱃머리의 다른 편에 부츠 신은 발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한 발을 쭉 뻗어 그녀를 잡고 있었다.

「피라니아 따위로 겁주려 하지 마세요. 여기서 수영을 해도 안전하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고 있어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벤은 이를 드러내며 싱긋이 웃었다. 전혀 무안해 하지는 않았다. 아마존 유역에 초행인 사람들은 피라니아에 기겁을 했다. 발끝이라도 물에 담그면 꺼내 올리기도 전에 덥석 잡혀버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질리언은 피라니아를 유혹하는 것이 피라는 것을 알았다. 피를 흘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수영해도 무방했고, 물장난을 하며 놀 수도 있었다.

「이제 여기서 당신을 끌어내려면 힘들겠군요.」

「그럴듯한 얘기네요.」

벤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머리를 뒤로 젖히며 푸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난 이 강을 너무나 좋아하오.」

그는 팔을 넓게 벌려 뱃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마존은 언제나 도전의 대상이오. 당신은 강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조수와도 타협해야 하오. 아마존에서 발생하는 폭풍은 넓은 바다에서 생기는 것만큼 거세긴 하지만, 이 강은 거의 완벽에 가깝소. 증류수만큼이나 순수하고 깨끗하니까 말이오.」

강을 향한 그의 열정에는 거짓이 없었고, 그녀는 배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돌고래를 지켜보는 즐거움으로 다시 돌아왔다.

「강의 수위가 아직 높아서… 그렇지 않으면 돌고래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텐데 말이오. 돌고래들은 대부분 야자수 늪지대에 퍼져 있고, 수위가 낮으면 더 많이 모여들지.」

「언제쯤 수위가 낮아지나요?」

「장마가 끝났으니 물은 이미 빠지기 시작했지만, 가장 낮은 수위는 10월경부터 연말까지 계속 될 거요. 원주민들은 그 계절을 가장 좋아하지. 낚시가 훨씬 잘 되거든. 강물은 장마가 다시 시작될 때까지 6미터 정도 낮아질 거요. 이 지역도 한 이틀만 있으면 백색의 모래밭이 될 거요.」

밝은 파랑과 노란색을 띤 앵무새들이 높이 솟은 야자수들을 따라 미끄러지듯 공중을 날아다녔으며 눈처럼 새하얀 백로는 아침밥이 헤엄쳐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명한 햇살이 비추는 아침은, 너무 신선해서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곳은 지상낙원인가 봐요.」

「정글 속의 식물과 동물들은 인간에겐 감당할 수 없는 존재요. 이 강 위쪽으로 수차례나 왔었지만, 아직까지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소. 아마존 역시 그렇겠지만, 내가 왜 수년 동안 이렇게 돌아다니는지 짐작할 수 있겠소?」

그녀는 호기심을 갖고 그를 쳐다보았다.

「브라질에 얼마나 있었죠?」

「스무살 때부터니까, 아마 15년쯤. 화물선을 타고 여행하다 마나우스에서 내렸소. 그때 내가 구살 수 있는 직업이라곤 강을 안내하는 것뿐이었는데, 우연히 이 생활이 내 적성에 맞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줄곧 있게 된 거요.」

질리언은 스무 살의 청년이 화물선을 타고 여행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가 생략해버린 많은 부분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화물선은 타고 무엇을 하고 싶었어요? 경제적인 세상 구경이라도 하려고요?」

「뭐 그런거지.」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고 최대한 착한 청년처럼 보이고 있었지만 그녀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녀의 어깨에 그의 손가락이 살짝 닿자 질리언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접촉을 피해 앞으로 앉았다. 그는 이 미세한 저항이 아예 일어나지도 않은 듯 낙천적이고 유쾌하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계속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망치듯 집을 나왔소. 집은 좋았지만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은 없었거든.」

「집이 어디예요? 남부 어디죠?」

「앨라배마. 아직도 그곳에 있소. 앞으로도 계속 거기 있을 거구.」

「그렇겠죠.」

그녀의 얼굴로 머리카락 한 올이 스치자 뒤로 쓸어 넘기며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브라질에서 15년이나 있었는데, 여전히 남부억양이 남아 있네요.」

「뽀빠이가 말했듯이 나는 나요. 당신은 어떻소? 집이라 부르는 곳이 어디요?」

「로스엔젤레스. 보기 드문 경우죠. 순 캘리포니아 토박이거든요.」

「왜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소? 내가 가이드가 된 것과 같은 이유인가?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말이오.」

「아빠가 고고학 교수셨어요. 그래서 그런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했죠. 아마 그런 게 유전인자에 들어 있었나 봐요. 전 딴 일은 전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 일이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그는 의심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뼈를 발굴하는 일에서 크나큰 즐거움을 얻는다는 얘기로군.」

배는 물살을 가르며 천천히 움직였다. 다른 범선들이 스쳐 지나갔고 대부분 카누 정도 크기의 배였지만 모터 달린 배도 몇 척 눈에 띄었다. 수위가 높을 때면 모든 여행이 배로 이루어졌다. 벤은 그녀에게 언제 수위가 낮아지는지, 또한 원주민들이 어떻게 전세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대형 수족관에 전시될 열대어를 잡아서 공급하는지 설명해주었다. 원주민들은 열대어로 그다지 많은 돈을 벌지 못했고 주고 다른 경로로 돈을 벌었다 강의 상인들이 마을에 들러서 생선과 물품을 교환해주었지만, 이윤이 아주 낮아 마을 사람들의 부채는 점점 더 쌓여만 갔던 것이다.

어리석게도 그녀는 벤을 경계하느라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었고, 뜨거운 열기가 불편했지만 이야기가 너무 흥미로워 오랫동안 그곳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 결국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지붕 아래의 그늘 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엔 물품상자로 만든 편안한 좌석이 있었고, 그녀는 뒤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벤은 페페에게 타륜을 건네 받았다. 느긋해진 질리언은 이쯤은 전혀 험한 생활도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강 상류 쪽으로 향하는 게 이 배 하나뿐이라면 더 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벤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벤과 함께 하는 개인적인 작은 싸움마저 그녀의 기분을 북돋아주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안자르의 증거를 찾아 떠나는 길이었다. 이 일을 성사시킨다면 아버지의 불명예를 씻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위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하늘 높이 올라갈 것이다. 안자르는 평생의 업적으로 길이 남을 유적지가 될 것이다. 아마도 모든 고고학자들은 확실한 가능성을 꿈꾸며 이런 업적을 남기고자 덤벼들 것이다. 하지만 발견되지 않은 오래된 문명이 많이 남아 있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문젯거리는 전부 두 번째 배에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문젯거리가 저기 뒤쪽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가슴이 답답했다. 차라리 배에서 보내는 시간이 가장 평화로울 것 같았다. 일단 땅에 닿으면 그녀는 릭과 케이츠, 두트라로부터 한시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바람이 잠잠해지고 빠른 속도의 폭풍이 시야에 들어와 그들은 점심식사 후에도 다시 출항하지 않았다. 비는 정상적으로 내렸지만 폭풍이 강타하는 시점은 매일매일 다르기 때문이었다. 벤은 배를 안전하게 묶어둘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사나운 폭풍이 이는 동안 파도가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었다. 배가 좀더 컸더라면 다소 거친 파도를 만나더라도 항해할 수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배가 전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말이다.

벤은 배를 보호해줄 제방 쪽으로 천천히 향하기 시작했지만, 그곳에는 이미 다른 배가 정박해 있었다. 공간은 충분했지만 그는 다시 물살이 흐르는 강 쪽으로 방향을 획 돌렸다.

「왜 그래요? 정박할 수 없어요?」

배가 제방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질리언이 물었다.

「저쪽은 안 되겠소.」

그가 말했다.

「왜 안 되죠?」

벤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급속도로 나빠지는 날씨에 관심을 쏟았다. 질리언은 그의 눈이 번쩍이는 걸 보았다.

「밀수꾼들이오.」

「어떻게 알아요?」

의문의 배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들이 항구를 떠날 때 봤던 50여 대의 배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경험으로 아는 거요. 난 15년 동안 이 강을 지나 다녔으니까.」

「우리를 쏠까요?」

「그럴 수도 있지. 총을 쏘게 놔두진 않겠지만 말이오.」

「강에 밀수꾼이 많은가요?」

「상당히, 아가씨. 무엇보다도 자신을 지키는 것이 가장 안전하오.」

케이츠에게 있어서 밀수꾼이 많다는 건, 만약 여왕의 심장이나 다른 유물들을 손에 넣었을 경우 그 물건들을 이 나라밖으로 빼돌리는 데 용이하다는 뜻이었다. 벤은 그녀가 이 점을 간파하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비 한줄기가 번개소리에 맞춰 스쳐 지나갔다. 벤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방수포를 덮어놓은 피신처로 향하게 했다.

「방수포 뒤로 가서 기다려요. 배 묶어둘 장소를 찾기도 전에 날씨가 사나워질 수도 있소.」

흠뻑 젖지 않으려면 그의 말대로 피신처로 가, 지붕기둥을 꼭 부둥켜안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배는 높게 출렁이는 파도에 맞춰 아래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예고도 없이 뚝뚝 떨어지던 작은 빗방울은 갑작스레 세찬 소나기로 내리쳤다. 다른 기둥을 꽉 잡고 있던 조르지가 그녀에게 뭐라고 소리쳤지만 맹렬하게 쏟아지는 빗소리와 낮은 천둥소리에 묻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배는 거칠게 이는 파도 사이에서 흔들리다가 놀라울 정도로 위로 확 솟아올랐다. 마치 뗏목으로 파도를 타는 것 같았다. 그녀는 헬멧도 구명조끼도 없었으며 피신처 안에도 그런 축복 받을 만한 물건은 없었다.

질리언은 위험에 빠질 정도로 폭풍이 거칠거나 파도가 높은 것은 아니어서 놀라지 않았다. 단지 불편할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물론 모든 게 상대적이었고, 그녀가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지금 배가 출렁이는 것처럼 비행기가 흔들린다 해도 그저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얼마 후 그녀는 배가 잔잔한 흐름 쪽으로 천천히 들어서는 것을 느꼈다. 파도의 요동은 가라앉았지만 마구 쏟아지는 비는 여전히 정상적인 대화를 불가능하게 했다. 추이 때문에 팔에는 소름이 돋았고, 최대한 체온을 유지하려고 무릎을 세워 꼭 껴안았다.

페페와 벤은 배를 안전하게 묶고 피신처로 몸을 피했으며 나머지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두 사람은 마치 강물에 뛰어든 것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벤은 눈을 덮은 검은 머리카락을 올리며 질리언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그가 가까이 왔을 때 질리언은 그의 눈에서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번쩍이는 걸 볼 수 있었다.

「신나는 파도타기 아니오?」

그가 소리 높여 말했기 때문에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흠뻑 젖은 셔츠를 벗어 옆에다 던져놓았다. 그리고 조르지가 그에게 수건을 건네자 재빨리 머리와 얼굴, 가슴과 어깨를 닦아 내려갔다. 그런 후에 한참 동안 그녀의 바로 앞에 똑바로 서서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의 벗은 상반신은 그녀에게 음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했고, 벤 역시 그런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표정이 변하길 기다리며 유혹하는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고의적으로 검게 곱실거리는 털에 반쯤 가려진 그의 단단하고 작은 젖꼭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복부근육이 본능적으로 긴장되는 반응을 보이자 냉소적인 미소를 띄우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게임에 같이 동조해도 나쁠 것은 없었다.

「내 등 좀 닦아주겠소?」

이제 그는 더 낮게 속삭이고 있었다. 너무 낮아서 사실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입 모양을 확실히 읽었다.

「스스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녀는 내심 한숨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그의 몸을 만져보고 싶은 충동은 거의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유연한 근육으로 다져진 튼튼하고 단단한 한마디로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몸이었다. 넓은 어깨와 가슴 중간에서 복부 아래까지 검은 숲을 이루었고, 매끄럽게 그을린 피부의 몸은 건강미를 한껏 발산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에 수건을 건네주더니 등을 돌렸다. 그녀는 살짝 구부린 등의 단단한 양쪽 근육 사이에 아래로 깊게 패인 골의 중간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벗은 몸을 만지고 싶지 않았고 생생한 활력과 유혹하는 온기를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그녀는 이 게임에서 이기고 싶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그의 피부에 손이 닿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수건으로 등을 닦아주었다.

「됐어요.」

「고맙소.」

그는 목에 수건을 두르고 그녀 곁으로 다시 자리를 잡았다.

「공급품들이 몽땅 젖은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이 깔고 앉아 있는 상자를 살펴보았다.

「괜찮소. 텐트가 들어있는데 곰팡이는 생기지 않을 거요.」

계속해서 세차게 내리는 비가 잠잠해질 때까지 그는 아무런 말없이 그녀 곁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빗방울이 가늘어졌다. 벤이 페페에게 방언으로 얘기하자 작고 마른 체구의 인디언은 조용히 일어나더니 피신처를 빠져나갔다. 잠시 후, 배의 시동소리가 들렸고 일행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수포를 재빨리 원위치로 말아 올리자 햇볕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왔다.

배는 강 위쪽으로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고 벤은 상자 위에 편안하게 기댄 채 앉아 있었다. 그녀의 허벅지 곁에 무심히 팔을 놓고서. 그러다 질리언이 노려보자 즉시 팔을 치웠다.

그는 조용하게 웃었다. 이제 대화가 가능했고, 개인적인 밀담을 나눌 정도로 주위는 조용해졌다.

「신경 쓰지 말아요.」

그가 말했다.

「우리가 이 탐험을 계속 함께 해야 한다는 거 알고 있소?」

「케이츠나 두트라보다 당신이 더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는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아직도 날 믿지 않소?」

「카나리아로 가득 찬 새장에서 고양이를 믿는 격이죠.」

「기회를 줘 봐요. 그러면 당장 당신을 먹어치워 버릴 테니.」

그가 으르렁거렸다. 확신에 찬 어조는 너무 음흉했고, 그녀의 심장박동이 요동쳤다. 이 지구상에 있는 여자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런 남자는 오래 전에 격리 수용시켰어야 했다.

「우린 이미 항해 중이고 당신을 버리고 떠날 수도 없으니 당신이 말한 작은 지도가 뭔지 말해주는 게 어떻소? 거기에 뭐가 있소? 당신은 바로 해독할 수 없다고 했지만, 난 정글에 익숙하니까 내가 알 만한 게 있을 것 같은데.」

「그럴 듯하군요.」

그녀는 목소리에 칭찬을 담아 말했다.

「농담이 아니오.」

그는 손을 약간 움직여 그녀의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렸다.

「왜 내게 말하지 않소? 우리 두 사람이 안다면 더 안전할 텐데.」

그녀는 그의 손을 치웠다.

「당신은 날 교묘하게 다른 배에 오르게 하고는 우릴 버리고 진짜 황금이나 보석을 찾으려고 앞서 달려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거예요.」

「당신은 진짜 날 믿지 않는군.」

솔직히 그는 의심스러운 것 같았다.

「당신은 뭔가 확신하나 본데, 난 아니니까. 변한 건 없어요. 내가 안 가면, 아무도 못 가요. 그런 뻔한 유혹으로 시간을 낭비하다니, 정말 유감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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