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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루이스는 브라질 마낭스에 있는 단골 술집에 죽치고 있었다. 테이블엔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 한 병이, 무릎엔 사랑스런 여종업원이 앉아 있었다.
인생이란 별다른 게 없이 멋진 방향으로 돌고 도는 그저 그런 것이었다. 이번 일은 멋진 여행 중 하나에 속했다. 그에게 남자를 은근히 달아오르게 하는 여자와 위스키만큼 좋은 건 없었다. 좋았어. 하지만 몸의 일부는 아직 쾌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사춘기에 접어든 이후로 완전한 절정을 맛본 지도 오래되었다. 여긴 사랑스런 테레사가 있는 곳이었다. 금발머리 테레사의 미국 억양이 섞인 포르투갈 어는 형편없었다. 벤은 그녀가 알아듣기 쉽게 ‘테레사’라고 발음하는 걸 알아들었을 뿐이었지만, 뭐 상관은 없었다. 유일한 관심은 그녀가 곧 일을 마칠 것이며 그후에는 그를 방으로 데려가서 그의 요동치는 엉덩이 아래에 누워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자 은근히 몸이 달아올랐다.
바텐더인 크리스투스는 테레사에게 잡담은 그만하고 빨리 일하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벤에게 깊고 진한 키스를 하고는 웃어 보였다.
「45분만 있으면 끝나는데. 그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죠?」
그는 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알았어. 기다릴게.」
바텐더가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고함을 지르자 그녀는 크리스투스에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알았다니까요.」
그녀가 무릎에서 일어나자 벤은 그녀의 엉덩이를 톡톡 쳐주었다. 그리고 독한 위스키를 마시려고 자세를 편하게 한 다음 뭔가 고민하는 사람처럼 벽에다 등을 붙이고 앉았다. 어둠침침하고 담배연기로 가득한 술집은 이방인들에겐 최고의 장소였다. 어쨌든 사람들은 어떤 나라, 어떤 도시에 자신과 비슷한 존재가 있는지 찾으려 한다. 마치 어떤 특별한 장소로 굴러온 떠돌이처럼 말이다. 브라질은 벤이 성장한 앨라배마에서 아주 먼 곳이지만, 이제는 이곳이 마치 고향처럼 느껴졌다. 바에는 자신들이 보고들은 것들과 자신들의 활약상에 대해 떠벌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는 이런 저런 이유로 등뒤는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벤은 크리스투스 앞에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고는 흐뭇해했다. 안내원과 강을 지키는 사람, 퇴역 후 활동하는 용병들이 있었다. 그렇게 보면 난폭한 사람들이 가득한 싸구려 술집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곳은 바깥의 열기를 피해 들어오는 휴식처와 같이 편안한 곳이었다.
벤은 바에 있는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있어도 충분히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고, 이곳엔 그를 죽인 사람도 없었다. 크리스투스가 벤의 등뒤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는 등을 벽에 기대고 앉아 있지 않았다. 그는 총이나 칼을 예상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런 일은 여러 번 일어났었다. 벤은 사람들이 들어오는 입구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 있는 곳에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을 알 수는 없었다. 벤은 선천적으로 빈틈없는 사람이었고, 사실 여러 생명을 구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평생 동안 지켜온 습관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때 두 남자가 술집으로 들어와서 어두운 실내에 적응하려고 한참 서 있다가 자리를 찾아 앉았다. 벤은 곧 그들을 알아보았고, 지금 본 것이 영 탐탁지 않게 생각되었다. 한 명은 낯설었지만 다른 한 명은 얼굴과 이름이 많이 익은 사람이었다. 보아하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스티븐 케이츠는 도덕이나 규칙도 없고 자기 외에는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사기꾼이었다. 그와 만난 적은 없었지만 벤은 정보를 수집하는 습관이 있어서 케이츠를 둘러싼 모든 얘깃거리를 다 갖고 있었다. 미국에서 활동했던 케이츠가 브라질에서 뭘 하려는 거지?
두 남자는 바가 있는 쪽으로 갔다. 케이츠는 바에 기대며 크리스투스에게 조용히 몇 마디 말을 건넸다. 무뚝뚝한 바텐더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늙은 크리스투스는 상대방의 외모가 마음에 안 들면 조개처럼 입을 꽉 다물고 말문을 닫았다. 그의 술집이 인기 있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케이츠가 다시 말을 건네자 이번에는 크리스투스도 할 수 없다는 듯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두 남자는 자기끼리 짧게 얘기를 나눈 뒤 크리스투스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테이블로 돌아갔다.
잠시 후 테레사가 벤이 앉은 테이블로 왔다.
「저기 두 사람이 당신을 찾고 있어요.」
그녀는 테이블을 닦을 필요가 없는데도 몸을 구부려 테이블을 닦으면서 말했다. 벤은 그 광경에 감탄하며 그녀의 블라우스를 완전히 벗기고 풍만한 젖가슴을 만지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다.
「강 상류 쪽으로 아내해줄 사람을 찾는 것 같던데.」
테레사는 말을 하면서도 줄곧 얼굴에 미소를 띄고 있었다. 지금 그가 무엇을 쳐다보고 있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녀가 어깨를 움츠리며 블라우스를 약간 아래로 잡아당기자 가슴의 깊은 골짜기가 더 많이 드러났다.
「난 일도 필요 없어.」
그가 그녀의 가슴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말했다.
「그러면 뭐가 필요해요?」
여자가 애교를 부리며 말하자 그의 눈빛은 게슴츠레하면서도 천천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정신없이 몇 시간 동안 격렬하게 일만 치르고 싶어.」
그가 솔직히 시인하자, 그녀는 몸을 떨며 고양이 같이 작은 혀를 핥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그는 테레사를 좋아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하지 않았다. 마음씨가 착했고, 굉장히 육감적이어서 늘 침대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벌써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신체에서 감지한 반응으로 그 징조를 잘 알고 있었다. 쇠처럼 단단해진 그의 물건이 감지하지 못하거나, 그 외 다른 일로 실수하는 건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테레사는 꾸준히 관계를 가졌다. 마치 그의 경우처럼. 그가 주위에 없으면 다른 남자들이 그녀를 만족시켜왔다. 사랑스런 테레사는 특별하진 않았지만 모든 남자를 좋아했다. 그들의 무기가 제대로 작동만 된다면 말이다.
그녀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본연의 임무로 돌아갔지만 얼굴은 기대감으로 화색이 돌았다.
벤은 케이츠와 그와 함께 있는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실 지금은 일이 필요 없었다. 은행에 돈도 충분히 있고, 생활방식도 사치스럽지 않았다. 멋지게 행동하려면 돈이 많이 들겠지만 평범하게 즐기는 데는 몇 푼 들지 않았다. 먹을 음식과 침대와 좋은 위스키, 그리고 충분한 섹스가 있는 한 인생에서 더 이상 필요한 건 없었다. 벤 루이스는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제기랄.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는 탐험이 하나 끝나고 나면, 또다시 가기 힘든 곳으로 이끄는 모험심 때문에 온힘을 다해 일했다. 스티븐 케이츠 같이 힘든 일에 슬쩍 빠져나가는 미꾸라지 같은 녀석이 아마존 유역을 도보로 통과하려고 애쓴다면… 거기엔 엄청난 일이 일어나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케이츠에 관해 아는 바로는, 그저 뒤로 슬쩍 빠져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킨 후, 일일이 간섭만으로 그들이 힘들게 번 돈을 빼앗아 가는 타입이었다. 아마존은 평범한 강이 아니며 공원을 산책하는 것과는 엄연히 달랐다.
케이츠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뭔가 큰 일이었다.
벤은 일어서서 테이블에 놓인 위스키 한 병을 들고, 생각을 바꾼 듯 그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는 병을 기울이며 혀끝에 감촉을 느낄 정도만 마셨다. 술을 삼키기 전 잠시 맛을 음미했다. 위스키 맛 한번 끝내주는군.
케이츠는 차가운 시선으로 벤을 노려보았다. 벤은 두 남자를 보며 눈썹을 치켰다.
「루이스요. 날 찾고 있다구요?」
벤은 케이츠의 얼굴 모습을 보고는 큰소리로 웃을 뻔했다. 케이츠는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면도도 하지 않고 얼룩지고 주름진 옷을 입은 채 술병을 흔들고 있는 사람. 그래, 지금 벤은 면도도 하지 않았고, 지저분하고 주름진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으며, 아직 술병을 다 비울 생각도 없었다. 아주 힘든 강 상류 여행에서 곧장 술집으로 왔으며, 면도와 목욕은 테레사 집에 갈 때까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함께 목욕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 이 위스키는 너무 훌륭했다. 맛있는 술을 마셔본 지 몇 개월 만이었다. 테이블에 술병을 남겨놓았더라면 저 자식들이 훔쳐 마셔버렸을 것이다. 그는 술 한 병 값을 지불했다. 그가 한 번 왔다 가면 술도 작살이 났다.
다른 남자가 호기심에 찬 눈으로 그를 보았다.
「벤 루이스?」
「그렇소.」
이 녀석은 삼십 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그 이상일 수도. 꼴을 봐서는 방탕한 생활을 했을 텐데도 동안이라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벤은 재빨리 그에 대해 판단했고, 게으름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게으른 엉덩이를 일으켜 무슨 일을 하기 보단 인생에서 카드 패를 잘못 돌렸다고 투덜대는 타입이었다. 그가 무슨 일인가를 했다고 한다면 돈을 마련하려고 편의점에 들어가서 강도 짓이나 했을 것이다. 사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 같았다. 물론 벤 자신도 판에 박힌 봉급쟁이 직장 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람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스스로 노력해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다.
「우리는 탐험을 계획 중인데 당신이 최고 가이드라고 들었소.」
다른 남자가 말했다.
「당신을 고용하고 싶습니다.」
「그래요, 지금 말인가요?」
벤은 곁에 있는 의자를 끌어당기며 의자를 거꾸로 하고 앉았다. 양팔은 의자 등걸이에 걸쳤다.
「물론 내가 최고인 것은 맞소. 하지만 시간이 날 지 모르겠군. 여행에서 방금 돌아왔거든요. 지금부터 휴가를 즐길 계획인데.」
스티븐 케이츠는 처음에는 그를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대하다가 서서히 경계를 푸는 듯했다. 여행에서 막 돌아온 사람이 지저분하고 면도하지 않은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루이스 씨, 이번 탐험은 당신에게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루이스 씨? 벤이 깍듯한 존칭으로 불린 지는 꽤 오래 되었다. 그래서 벤은 뒤에 누가 서 있는지 보려고 돌아볼 뻔했다.
「그냥 루이스라고 불러요.」
그가 말했다.
「내게 가치가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오. 난 피곤하고 몇 주 동안은 진짜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싶었거든요.」
여자와 함께 있는 진짜 침대 말이다.
「10,000달러 주겠소.」
케이츠가 말했다.
「기간은?」
벤의 물음에 케이츠는 어깨를 으쓱했다.
「우린 모르오. 이건 고고학 탐사거든요.」
이 부분은 의심스러웠다. 벤은 케이츠가 고고학 탐사처럼 수준 높은 탐험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케이츠가 고고학 탐사를 겉포장으로 사용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 바로 그거야. 점점 일이 재미있어졌다.
「탐사 지역이 어디입니까? 어딘지 알면 길을 예측할 수 있을 텐데.」
다른 남자가 브라질 지도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크지도 않고 상세하지도 않은 지도였다. 사실 백과사전에서 북 찢어온 듯했다. 그는 내륙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아마존의 북부 지역이었다.
「여기가 어디쯤이요. 우리도 정확히 어딘지는 몰라요.」
벤은 눈을 반쯤 감은 채 지도를 응시하며 위스키 한 모금을 홀짝였다. 젠장, 10,000달러 정도면 가볼 만했다. 목이 타 들어갔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곳을 가리키는 바람에 크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나간 녀석들이 초등학교 수준의 지도를 갖고 와선 그들이 가야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있었다.
「저기 위쪽은 지도에도 없는 곳이오.」
결국 그가 말했다.
「그 영토엔 나도 들어가 본 적이 없소. 누가 가봤는지도 몰라요.」
「갈 수 없단 말인가요?」
두 번째 사내가 실망한 듯 물었다. 벤은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예, 아니 물론 갈 수는 있죠. 그런데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저는 릭 셔우드, 이쪽은 스티븐 케이츠입니다.」
케이츠가 가명을 쓰진 않았군. 그는 분명 이곳에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건 안전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릭 셔우드, 스티븐 케이츠, 당신들을 거기까지 데려다주겠소. 한번도 간 적은 없지만 정글을 헤쳐 나가는 법은 알죠. 당신이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면 내가 어디로 이끄는지 모른다는 것과 별 차이가 없죠. 문제는 만 달러가 껌 값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요. 그 정도 액수로 여행안내 해줄 사람을 고용할 순 없을 테니까. 당신들은 2, 3개월 정도를 얘기하는군요. 제 몸값은 일주일에 2천 달러요. 그리고 필요한 모든 물품과 나머지 일꾼도 당신들이 지불하는 겁니다. 제가 가격을 책정하겠소. 2만 내지 2만 5천 달러로 하고 나머지 만 달러는 돌아오면 받는 걸로 하죠. 그래도 당신들은 그 힘든 ‘고고학 탐사’를 착수할 건가요?」
둘은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벤이 마지막 두 마디를 은연중에 강조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 문제없소.」
케이츠가 조용히 말했다.
벤은 이제 호기심 이상이었다. 케이츠가 눈도 깜짝하지 않아서 벤이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저 위쪽에서 무얼 하든지 3만 5천 달러는 새 발의 피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케이츠에겐 고고학 논문에 연구성과를 기재하겠다는 타오르는 욕망은 없었다. 고고학적으로 가치 있는 장소가 저 위쪽에 정말 있다고 해도 그곳을 찾아다닐 정열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벤은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게 될 때까지 저 지역에 뭐가 있는 지 여러 방면으로 추측해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지역에 있을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정글은 사람이 떠나고 나면 가능한 한 빨리 인간의 흔적을 지워버리는 곳이었다. 케이츠 같은 자가 무엇에 매력을 느끼고 그런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려고 하는 걸까? 물론 정글에는 잃어버린 보물과 환상적인 신화로 가득 차 있다고들 하지만 벤이 알기로는 어느 것도 진실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늘 잃어버린 보물을 찾았지만, 이상한 난파선 말고는 보물을 찾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증거가 있든 없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건 뭐든지 믿고 싶어한다. 어쨌든 벤은 무지개 다리 끝에서 금 단지를 찾으려고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았다.
「선불을 주시오.」
벤이 말했다.
「무슨 말이오. 그만둬요.」
셔우드가 거칠게 고함치자, 케이츠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 이맛살을 좀 찌푸렸긴 했지만.
벤은 병을 위로 기울여 또 한 모금 홀짝이며 말했다.
「난 내 고객을 대충 상대하진 않소. 그랬다면 더 이상 돈을 벌지 못했을 테니까.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해서 다 똑같은 건 아니오. 나도 힘들게 터득했소. 내 앞에 돈을 가져오든지 아니면 협상은 끝이오.」
「루이스, 다른 가이드도 얼마든지 있소.」
「물론 있겠지. 나만큼 훌륭하진 않지만. 당신네가 살아 돌아오던지 아니면 그곳에서 죽든지 그건 당신들이 선택하는 거요. 내가 말한 것처럼 난 여행에서 방금 돌아왔소. 그리고 일을 다시 하기 전에 휴식도 갖지 못하고 있소.」
벤은 진실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했다. 하지만 이건 게임이었다. 이 바보들이 흥정을 모른다면 그건 그들 문제였다. 사실 정글 생활에 대해서는 벤보다 그 지역에 있는 인디언들이 더 잘 알고 있었지만, 인디언들은 그들 영토의 불법 침입자에겐 가장 큰 위험이 될 수도 있었다. 아주 깊은 오지에는 백인을 본 적도 없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이 거주하는 거대 지역들은 여전히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지도 않았다. 아직까지 그곳에 들어갔다가 바깥세계로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젠장!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그 지역이 사람을 사냥하는 야만인들로 들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데 가서 알아봐요.」
벤은 무관심하게 일어나면서 덧붙였다.
「말했듯이 난 지금 일이 필요 없지만 당신들은 가이드가 필요할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치를 높이 평가해주는 이유는 정말 우스웠다. 그가 생각한 것처럼 일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가 자신이 최고임을 그들에게 입증시켰다.
「그렇게 재촉하지 말아요.」
케이츠가 말했다.
「당신은 고용된거요.」
「좋아요.」
벤은 좀 전처럼 시큰둥하게 말했다.
「언제 출발하고 싶소?」
「최대한 빨리.」
그는 한숨을 쉬었다. 빌어먹을. 며칠 쉬고 싶었지만 자그마치 2만 5천 달러였다.
「좋소.」
그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3시 30분이었다.
「7시에 여기서 만나 야영에 필요한 것을 살펴봅시다.」
그 정도면 테레사와 3시간 정도 보낼 수 있고 깨끗이 씻을 시간도 충분했다.
「우린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한데.」
「당신은 가능해도, 난 안 돼. 7시오.」
벤은 테레사에게 걸어갔다.
「당신 열쇠 줘.」
그는 속삭이며 그녀 목에다 코를 비벼댔다.
「목욕재계하고 침대에서 기다릴게.」
그녀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면서 웃었다.
「좋아요. 하지만 당신이랑 욕조에 함께 들어갈 계획이었는데.」
「할 일이 있어. 샤워를 미리 끝내면 침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잖아.」
「그럴 거라면 얼른 움직여요.」
그녀가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키스해주었다. 벤은 어슬렁거리며 바에서 걸어나갔다..
세 사람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걸 알았으나, 그는 오직 하나에만 관심이 있었다. 여자였다. 제기랄, 그녀들의 사랑스럽고 은밀한 곳. 바로 그곳 때문에 남자들이 얼마나 미쳐 날뛸 수 있는지 여자들이 알았다면 전세계 힘의 구조를 진작에 뒤엎어놓았을 것이다. 은밀한 그곳을 차지하려고 남자들은 더 크고 더 강하게 행동하려고 했을 거고, 남자들에게 싸움의 빌미를 제공했을 테니까.
릭은 그들이 없는 동안 소지품을 보관해두라고 질리언에게 지시했다. 그러고 나서 케이츠와 호텔을 빠져 나와 얘기로 들었던 가이드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혼자 있는 시간이 기뻤다. 그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사항에 대해 살펴볼 절호의 기회가 생겼으니까. 우선 보관품을 맡기려고 호텔 지배인을 찾았더니, 그는 물건 보관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다가 보관료로 2개월 치의 선불을 내밀자 기꺼이 받아주었다.
포르투갈 어와 영어가 뒤섞인 짧은 대화만으로도 그녀가 탐험에 따라 나서는 걸 반대하는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세뇨라, 많은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했어요.」
지배인은 심각하게 말했다. 그는 땅딸막하고 검은 직모에 크고 새까만 눈을 가진 전형적인 라틴계였다.
「정글은 사람을 집어삼키죠. 그건 다신 세상구경을 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구요.」
세뇨라! 질리언이 결혼한 여성이라는 그의 추측을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면 그를 당황하게 만들 게 분명했다. 릭과 질리언은 갈색 머리칼만 빼면 닮은 구석이라곤 전혀 없었으니 그녀를 여동생이 아니라 아내로 추측하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지배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손을 톡톡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신이 걱정하는 건 이해하지만 전 그들과 함께 가야 해요. 절 믿으세요.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정글에 들어가진 않아요. 전 고고학자예요. 아주 힘든 상황에도 익숙하거든요. 침대보다 텐트에서 더 많은 밤을 보냈어요. 그리고 전 아주 신중한 편이에요.」
「세뇨라, 그러길 바랍니다. 저라면 절대 가지 않을 거예요.」
걱정스런 눈으로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가야 해요. 약속드리지만 정말 조심할게요.」
그녀는 거짓말을 하진 않았다. 주로 건조하고 먼지 많은 날씨 속에서 많은 작업을 해봤고, 그런 상황에서는 식물과 동물 둘 다 치명적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 예방주사를 맞았고 구급상자도 구비해서 경미한 부상의 치료쯤은 가능했다. 심지어 산아제한에 필요한 피임 처방전 3개월 치를 천식, 두드러기 치료제로 위장해서 가져오기까지 했다.
우림 기후로 약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도 잘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가 항상 도사리고 있는 곳이므로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뱀에게 물리는 일은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일어날 수 있었다. 구급상자에는 뱀의 독을 동물 체내에 주사해서 얻은 항바이러스제가 들어 있지만 해독제가 없는 독도 있었다. 적의를 갖고 있는 원주민도 뱀보다 나을 건 없었다. 아마존 유역은 엄청나게 광활한 곳이었기에 탐험해 본 적도 없고 지도상에 나와 있지 않은 지역도 많았다. 그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질리언은 지배인과 일을 끝내고 한 가지 생각에만 몰입하면서 호텔을 빠져 나왔다.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총 한 자루를 구입해야 했다. 마나우스에서 총을 구입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 넓은 도로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고 유럽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 도시는 면세 항구도시로 전세계에서 대량생산된 모든 제품을 찾아 볼 수 있었다.
로스앤젤레스의 생활은 예전에 시애틀에서 살았던 때보다 뜨거운 열기에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습기로 인해 무기력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들 일행은 최상의 계절일 때 이곳에 온 셈이었다. 6월에서 8월까지는 겨울이었으며 연중 가장 건조한 시기로, 이 때는 열기가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건조’라는 말은 매일 비가 내리는 것 대신 이틀에 한번 꼴로 비가 내리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운이 나쁘지 않다면 하루에 세 번이 아니라 겨우 두 번 정도 비가 내릴 것이다. 그녀는 하루에 두 번만 비가 내리는 행운을 기대했지만, 혹시 세 번 내릴 경우를 생각해서 대비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호텔 주변을 걸어다녔다. 겨우 2백 미터 정도 지나는데 최소한 일곱 개의 다른 언어를 들을 수 있었다. 마나우스는 내륙에서 2천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항구도시로 깊은 바다에 둘러싸인 아주 매력적인 도시였다. 다양한 국적의 유람선이 왕래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이 대륙의 한 중간에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거대한 아마존은 그만의 법칙이 있어서, 백 미터가 넘는 깊은 바다 아래에서도 선체가 그대로 드러날 정도의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릭은 질리언이 지도를 간직하겠다고 고집부리는 통에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그녀에게 말도 걸지 않았지만 질리언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번 탐험은 그녀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아버지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그녀는 강했고, 이번 일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교수인 아버지는 자신이나 명성, 그리고 추억 어느 것 하나 방어할 수 없었다. 질리언이 안자르에 관한 아버지 이론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아버지는 영원히 정신나간 괴짜로 기억될 뿐이었다. 그녀는 릭을 믿을 수 없었다.
오빠가 이 일에 개입되지 않기를 바랐지만, 주위를 둘러싼 환경은 그녀의 소망과 어긋나 있었다. 질리언이 자기가 보고 있는 게 뭔지 깨닫게 된 찰나에, 그녀가 무슨 일을 꾸미지 않을까 걱정됐던 릭이 방으로 다시 들어왔던 것이었다. 질리언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릭은 주위에 널려 있는 논문들과 지도를 훑어보았다. 정확한 결론을 내린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젠 ‘보물지도’라고 부르고 있었다.
릭은 자신에게도 동등한 자격을 달라고 며칠 동안 그녀를 못살게 굴었다. 질리언은 오빠를 알았다. 무능한 사람으로 통했던 그는 아버지의 명성과는 상관없이 야심으로 똘똘 뭉친 사냥꾼에게 정보를 팔아버렸다. 릭은 고고학자들에게 발굴할 유물을 맡기거나, 내용물과 관련된 목록정리를 법대로 처리한다고 브라질 정부에 발견한 유물을 고스란히 내놓긴 싫었을 것이다. 질리언은 외부 후원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신나간 괴짜 셔우드의 딸 역시 무모하다는 비난을 듣고 있는 실정에서 유물이 도굴당한다고 호소하는 서류를 갖고 있다 해도 무시당하거나 비웃음을 당할 게 뻔했다.
스티븐 케이츠를 탐사에 끌어들인 건 바로 릭이었다. 릭의 설명으로는 케이츠가 재정지원을 해준다고 했다. 질리언은 최선을 다해서 발굴품을 지키리라고 마음먹었지만, 이 일에 눈뜬 봉사와 다를 바 없는 일행과 일할 처지에 놓이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혹시 그들이 그녀의 아버지나 그녀를 믿는다면 탐험에 수련된 고고학자와 신뢰할 만한 가이드가 함께 일을 하게 되겠지만, 릭과 케이츠가 파렴치한 근육덩치들만 고용할까봐 걱정이 앞섰다.
아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더라면 주저하지 않고 그렇게 했을 테지만, 지금은 쓸 수 있는 자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그녀는 실용주의자였다. 준비된 실용주의자. 질리언은 돌로 이루어진 도시의 위치를 자신의 머릿속에 확실히 저장해두었다. 그러니 그들은 그녀를 데려가야 했다.
당연한 예방책이었다. 권총을 구할 능력도 충분했고, 직업상 총을 다루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다. 뱀과 다른 위험물도 작업의 일부였다. 이번에는 두 다리가 있는 뱀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요소였다. 되도록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상처이기만 바랄 뿐이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거의 죽은 상태에 이르러 정글에서 죽게 버려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릭은 인간적으로 오빠로서 결점이 많지만 결코 살인자는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 닥치면 오빠가 막아주길 기대했다. 그녀는 스티븐 케이츠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했다. 표면적으로 그는 아주 세련된 사람 같았지만 겉보기와 다른 인물일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대도시에서 총을 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총 한 자루 구입 못할 정도로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총을 세관에서 통과시킬 자신이 있었다면 미국에서 가져왔겠지만 총을 밀반입 하는 것은 피임약 밀반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그녀는 다른 호텔 앞에서 줄지어 서 있는 택시 운전사들을 유심히 살피며 걸었다. 다른 운전사에 비해 돈벌이가 시원찮아 보이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말끔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고 하나같이 초라해 보였다. 드디어 한사람을 골랐다. 면도도 하지 않은 얼굴에 다른 운전사보다 조금 더 지저분했고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는 운전사였다. 미소를 지으며 그 택시로 걸어가서 서툰 포르투갈 어로 부두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운전사는 대답할 기미도 보이지 않았지만, 질리언은 잠시 기다렸다가, 조용히 말했다.
「무기를 하나 구입하고 싶어요. 어디서 파는지 아세요?」
운전사는 재빨리 거울로 뒤를 쳐다보았다.
「무기라고 했습니까, 세뇨라?‘
「권총이 필요해요. 자동 권총이 좋은데 그걸 뭐라고 부르더라… 하긴 뭐든 상관없지만.」
그녀는 ‘회전식 연발권총’이란 포르투갈 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의 검은 눈은 걱정스러우면서도 냉소적인 빛을 띠었다.
「그곳에 데려다주겠지만 난 기다리지 않을 거요.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세뇨라.」
「알았어요. 무슨 말인지.」
질리언은 그에게 안심시키는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호텔로 돌아올 때 택시를 잡을 수 있을까요?」
「요긴 관광객이 많아요. 택시는 어디든 있죠.」
일단 그녀는 다른 택시를 탈 수 있을지 없을지 궁금했다. 필요하다면 공중전화까지 걸어가서 택시를 부르면 되지만, 이 열기 속을 걷는 다는 것은 전혀 내키지 않았다. 그녀는 맨다리에 아주 얇은 면 치마를 입었지만, 찜통 같은 더위에 비오듯 땀이 흘러내렸다. 이런 날씨엔 뭘 입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운전사는 도시의 허름하고, 다 쓰러져 가는 구역으로 차를 몰았다. 허름하긴 하지만 빈민가는 아니었다. 질리언은 넉넉하게 팁을 준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운전사가 가르쳐 준 가게로 곧장 들어갔다.
30분 후, 그녀는 38구경 자동 소총을 지니고 있었다. 깨끗하고 간수하기도 쉬웠다. 소총의 무게로 어깨에 맨 가방이 아래로 축 처졌다. 총을 판 남자는 그녀에게 호기심 따위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미국 여성들이 무기를 사가는 경우가 흔한 모양이었다. 마음속에 늘 그리던 총을 갖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주인은 그녀를 위해 택시를 불러주었고 차가 도착할 때까지 안에서 기다리도록 배려해주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릭과 케이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물론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여전히 화가 난 릭은 그녀를 밤새 혼자 남겨두고도 남았다. 릭은 그녀가 겁먹기를 바랐겠지만 그 기대는 어긋나 버렸다. 관광이나 하러 이곳에 온 건 아니었다. 호텔에 남아 있는 게 싫지 않았다. 오히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가 반가웠다. 릭과 케이츠는 그날 오후 늦게 호텔로 돌아와서 그녀의 방으로 들어왔다. 둘 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숨을 쉴 때마다 술 냄새가 났지만 취한 것 같진 않았다.
「가이드를 찾았어.」
릭이 유쾌한 기분으로 들떠서 소리쳤다. 화가 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7시에 만나 계획을 세우기로 했어.」
「여기 호텔에서?」
그녀에겐 그게 편했다.
「아니, 술집에서. 너도 함께 가야 해. 이번 계획에 대해 우리보다 더 많이 알잖아.」
질리언은 한숨을 쉬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시끄러운 술집보다 논의하기 더 좋은 장소를 생각해 보았다.
「가이드가 누구죠? 그 사람 이름을 아직 못 들은 것 같은데.」
「루이스.」
케이츠가 말했다.
「벤 루이스요. 우리가 물어본 사람들마다 전부 그가 최고라고 했거든요. 정말 잘된 것 같아요. 그가 술 마시는 일에 대해 괘념치 않는다면 꽤 괜찮을 것 같아요.」
정말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이군. 그녀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미국인이에요?」
릭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글쎄, 남부억양인 듯했어.」
질리언의 사고방식으로는 그 사람의 국적을 정확히 못박아두고 싶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스스로 판단해보려 했다.
「그 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났소.」
케이츠가 거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을 미국인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군. ‘해외 이주자’란 말을 듣고 알았어요. 그가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더군.」
질리언은 열대지역으로 떠나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에 도박을 걸어보기로 했다. 일을 서둘지 않아야 세부사항을 일일이 점검할 수 있는 법이었다. 지금 전세계 대부분의 도시는 효율적이고 신속한 미국적인 것을 따라가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다른 나라에 있을 때 마음이 느긋해졌다. 아프리카에서 발굴작업을 할 때 보면 그들의 언어에는 ‘시간’이란 단어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일정표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개념을 아주 낯설어했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미쳐버리든지 둘 중 하나였다. 루이스를 선택한 게 어떤 작용을 할 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는 모든 걸 자신이 지휘하고 싶어하는 타입이야. 그에 관해 들은 내용 중에 절반 정도만 맞아도 잘될 것 같아.」
루이스라는 인간에게 아주 깊은 인상을 받은 릭을 보고 그녀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오빠의 취향은 사춘기 시절이나 매한가지였다. 어쨌든 판단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릭은 사내답다고 재는 허풍쟁이 건달 녀석에게 감명받았을 뿐이었다.
릭의 말에 따라 그녀는 6시 30분에 준비를 끝냈다.
그녀는 오빠를 잘 알았다. 오빠는 질리언이 깊은 인상을 받았던 사람을 몸매로 현혹시키거나 유혹시킬 수 있는 깜짝 놀랄 만한 금발머리 여자로 보이기를 바랐겠지만, 그런 오빠를 위해 기꺼이 머리를 멋지게 장식하려고 해도 놀라게 해줄 만한 기본재료가 없었다. 필요한 건 관능미였지만 불행히도 질리언에겐 많이 부족했다. 그래도 만족스러운 건, 남자들을 아첨이나 하는 얼간이로 바꿔 버릴 풍만한 가슴 흉내라도 내보려고 많은 노력을 들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금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보기에는 단정하고 깔끔하며 상냥해 보였지만 홀딱 반할 정도의 미인은 아니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가장 자신 있는 부분이 어디냐고 물으면 두뇌라고 말할 것이다.
더운 열기 탓에 그녀는 팔과 등이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었다. 사실 그건 그녀가 갖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드레스였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그녀가 입고 있던 스커트와 블라우스를 빼면 여행 중 옷이 닳아빠질 것을 대비한 질긴 바지와 셔츠 그리고 부츠뿐이었다.
릭과 케이츠와 함께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 그녀는 아름다운 주변 광경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마나우스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구경할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늘 그런 식이었다. 그녀는 현대식 도시에 빠져들 시간이 없었다. 일이란 늘 과거의 도시와 함께 했다. 죽은 도시, 묻혀버린 땅.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기만 하면 과거를 끼워 맞춰 볼 수 있었고, 인류가 어떻게 현재 위치까지 오게 됐는지 알 수 있었다. 고고학은 인간이 현재까지 지나온 발자취를 찾아내고 천년 이상 어떻게 변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질리언과 두 남자가 들어선 술집은 화려하지도 허름하지도 않은 평범한 곳이었다. 술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쉽게 자신에게 달라붙은 시선들을 극복했다. 만일 혼자였다면 긴급상황이 아니고는 이런 곳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역시 술집은 어두컴컴하고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두 대가 느리게 돌아가면서 술과 담배, 땀 냄새를 뒤섞어놓았다.
질리언은 릭과 쪽에 서서 벽을 마주하고 놓인 테이블 쪽으로 움직였다. 그곳엔 앞에 위스키 한 병을 놓은 채 반쯤 졸고 있는 듯한 남자가 동행도 없이 빈둥거리고 앉아 있었다. 그의 외모는 겉보기와는 달랐다. 반쯤 감긴 눈꺼풀 아래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에서 강렬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일행이 다가가자 그는 발로 의자를 밀어내고 술집에 있는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 없는 시선으로 질리언을 쳐다보았다. ‘상어’가 ‘송어’와 공통점이 있는 것처럼 사실 술집에 있는 모든 남자들도 그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 남자는 머릿속으로 여자의 옷을 하나하나 벗기며 독수리 날개같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알아채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식이었다.
「음.」
그가 귀찮은 듯 천천히 말했다.
「안녕하시오, 아가씨. 자리가 없다면 내 곁에 앉아도 좋소.」
남자가 방금 발로 찼던 의자를 머리로 가리켰다. 질리언은 그의 눈이 파란색인지 초록색인지, 어두운 불빛 때문에 분명히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그의 피부는 짙게 그을린 편이었고, 턱은 방금 면도를 끝낸 남자의 모습처럼 신선했다. 검은 머리칼은 너무 길어서 거의 어깨에 닿을 정도였으며, 옷은 비록 깨끗하긴 했지만 온통 주름투성이에 많이 닳은 편이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옷이 어떻게 보이든 남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는 부류였다.
눈 하나 깜짝 않고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그의 뻔뻔함은 그녀를 당황케 했다. 그가 가리킨 의자를 무시한 채 질리언은 다른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질리언 셔우드예요.」
그녀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그가 자신을 화나게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이 거슬리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나님은 물론이고 눈이 달린 사람이라면 그녀가 특별할 게 없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쨌든 가까이 접근해오는 모든 여성을 억지로 손에 넣으려는 남자가 있다.
「젠장, 결혼하셨군.」
「제 여동생입니다.」
「이분이 루이스 씨야.」
벤은 눈썹을 치켜올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여동생?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죠?」
질리언의 눈썹도 벤과 같이 올라갔다. 확실히 릭과 케이츠가 탐험에 관한 것을 말한 모양이었다. 남부억양이라고 한 릭의 말이 맞았다.
「전 고고학자예요.」
벤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질리언의 말을 무시하려고 했다.
「당신은 갈 수 없소.」
질리언이 차갑게 쏘아 붙였다.
「왜 안 되죠?」
벤은 그녀의 항의를 예상하지 않았던 터라 깜짝 놀랐다. 그는 위스키를 천천히 한 모금 홀짝이며 그녀는 유심히 살펴보았다.
「젠장, 너무 위험하오.」
그가 귀찮다는 듯 어쩔 수 없이 대꾸했다. 릭이 헛기침을 해대자 벤은 릭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오.」
릭이 말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지 모르겠지만 깊은 내륙으로 여성을 데려가진 않소. 얘기는 끝났소.」
「당신의 고용도 이제 끝이란 말이군요.」
질리언은 아주 침착하고 낮게 말했다. 그녀는 전에도 벤과 같이 남성 우월주의에 빠진 녀석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람으로 인해 일을 성가시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질리언은 꼭 가야 해요.」
릭이 못마땅한 듯 질리언을 노려보며 끼여들었다. 그에겐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우리가 가는 목적지를 아는 유일한 사람이오.」